저녁부터 새벽까지 가락시장을 누비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가락시장을 누비다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5.09.1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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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견뎌야
심야+장시간+육체노동의 조합
[2015 특별기획 ‘한국의 노동과 삶’] 하역노동자

밤이 낮보다 밝은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의 하루는 저녁시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청과물은 보통 오후 5시부터 입고가 시작되고, 수산물은 그보다 더 늦은 시간에 입고된다. 농수산물 입고가 시작되는 시간의 가락시장은 현지에서 물건을 배달 나온 트럭,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기 위해 하차 작업을 하는 사람들, 품질을 확인하러 나온 경매자들, 경매가 끝난 물건을 지게차로 내리고, 전동차를 이용해 각 중도매인에게 배송하는 풍경으로 시끌벅적하다.

 ⓒ 이현석 객원기자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의 유통 구조

가락시장의 시작은 용산시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락시장이 문을 열기 이전에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영 도매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용산시장에서 민간 상인들이 농민들로부터 농산물을 위탁받아 소비자들에게 판매했다. 유통 경로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비싸게 팔아도 농민들에게는 판매된 가격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값으로 대금을 치루곤 했다. 그래서 농산물 유통구조에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976년 농수산물도매법이 공포되었다. 이 법을 근거로 정부에서 관리하는 공영 도매시장 건설 계획이 추진되었고, 1985년 국내 최초의 공영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 문을 열었다.

16만평의 부지를 자랑하는 가락시장에서 유통되는 일평균 거래물량은 약 7,300여 톤이다. 거래금액으로 환산하면 하루에 104억여 원의 돈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이고, 이용 인원은 13만 명에 달한다.

가락시장의 농수산물 유통은 서울시농수산물공사에서 관리하고 있고, 정부 허가를 받은 9개의 도매법인들이 있다. 도매법인들의 역할은 전국 곳곳의 농어민들에게 농수산물을 위탁 받아 판매하는 것이다. 산지에서 트럭에 실려 도매시장으로 보내온 농수산물들은 하차 및 품질 선별 작업 후 경매에 붙여진다. 중도매인들이 참여하는 전자경매를 통해 농수산물의 가격이 결정되고, 낙찰된 물건들은 중도매인을 통해 소매법인이나 시장을 찾는 개별소비자들에게 판매된다. 그리고 도매법인은 최종적으로 결정된 낙찰가에서 수탁 수수료, 하역비 등을 정산 후 농가로 농수산물의 값의 지급한다.

이 과정에서 산지에서 올라온 트럭에 실린 농수산물을 내리고 분류하고, 경매로 낙찰된 물건을 중도매인들에게 배송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1300여 명의 하역 노동자들이다.

 ⓒ 이현석 객원기자
수박이 달갑지 않는 이유

하역노동자들은 조를 이뤄 하역, 선별, 운반, 상차를 담당한다. 전국에서 농산물이 올라오면 크기, 품질별로 농산물을 선별하고 경매를 위해 분류작업을 해 둔다. 야채를 담당하는 조는 보통 오후 5시에 하역작업을 시작하고, 과일을 담당하는 조는 보통 오후 7시에 작업을 시작한다.

“야채는 해를 받으면 물러지고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어서 과일보다 일찍 작업을 시작한다. 깻잎이 빨리 들어오는 편인데, 들어오는 순서대로 하역작업 하고 경매를 시작한다. 저녁시간에 작업장은 운송 트럭, 경매하러 오는 중도매인, 지게차, 전동차, 하역노동자들로 정신이 없다. 동선이 엉켜서 막 뒤죽박죽이 된다.”

여름에는 농산물 출하가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에 5~9월 사이를 성수기로 구분한다. 하루 평균 취급량이 7,300여 톤인데 성수기가 되면 10,000여 톤 이상이 출하되고 있어서 작업장 공간으로도 부족해 야외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농산물이 출하된 형태에 따라서 하차 방식도 달라진다. 보통 배추나 무는 트럭 단위로 경매가 이뤄진다. 이는 농가에서 박스포장 된 채 출하되지 않았고 하차작업을 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분류할 만한 공간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트럭에 상차한 채 경매가 시작된다.

특히 7~8월에는 수박이 많이 들어오는데 하역 노동자들이 가장 꺼려하는 농산물 중 하나이다. 수박은 박스 포장도 안 되고, 산지에서 품질 선별이 되지 않은 채 가락시장으로 들어온다. 하역 노동자들은 8~9명이 한 조를 이뤄 약 3시간 동안 하차작업을 한다. 수박을 들어서 내리는 역할, 손으로 때려 보고 품질을 분류하는 역할, 내리면서 무게를 다는 역할, 크기 별로 상자형 팰릿에 적재하는 역할 등으로 구분된다. 상자형 팰릿은 지게차로 물건을 나르기 위해 나무로 만들어진 상자모양의 틀이다.

“수박 트럭 한대가 보통 5톤짜리다. 하나하나 사람 손으로 옮기고 선별을 하는데, 성수기가 되면 과적해서 오는 차량들도 많다. 한 차에 많이 실어야 운송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 수박은 물건 내리는데 한 차당 보통 2~3시간이 걸리는데 사과 같은 경우에는 2~30분이면 하차작업을 다 마무리 한다.”

현장 관리자는 수박 선별을 산지에서 해 오기를 요구하지만 농가에서는 수박을 수확해서 트럭에 싣기에도 인력이 부족한 형편이라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며칠만 고생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고, 심야에 육체노동을 장시간 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성수기에는 넘치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현석 객원기자
주당 평균 90시간 심야근로가 기본

하역 노동자들은 하루에 오후부터 새벽까지 최소한 12시간, 주 6일을 일한다. 정해덕 서울경기항운노동조합 위원장은 “우리 조합원들은 평균 주당 90시간을 일하는데, 평균 연령이 51세이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도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서 인력이 부족하다. 자체적으로 정년을 62세로 연장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안 들어와서 정년도 없애자는 이야기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하역 노동자들의 1년 평균 연봉은 3,500만원에서 최대 4,000만원 수준이다. 한달에 최소 300만 원 이상은 벌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봤을 때는 적은 금액은 아니다. 지난해 정규직 근로자 평균 월 급여액은 269만 원이었다. 하지만 주 6일을 일하고, 주당 평균 8~90시간을 심야 육체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강도가 강하다. 새로 온 젊은 남자들도 일을 쉽게 그만둔다. 그래서 현장에는 오랫동안 하역 일을 해 오던 사람들이 많다.

“성수기에는 오후에 왔다가 다음날 새벽에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어제 오후에 들어와서 야채 작업하고 잠시 눈 붙였다가 아침에 수박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이거 마치고 잠시 눈 붙였다가 다시 오후에 작업하고 집에는 새벽 쯤 들어간다. 숙소에서 눈을 붙여도 공동숙소다 보니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푹 자기도 힘들다.”

현재 가락시장의 유통량은 설계 당시 소화 할 수 있는 물량의 1.7배를 뛰어 넘은 상황이기 때문에 물건이 몰리는 경우에는 야외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하차 작업이 이뤄지는 작업장은 항상 트럭이나 지게차가 오가야 하기 때문에 사방으로 뚫려 있다. 당연히 에어컨은 없고 천장에 달린 선풍기 몇 개가 전부이다. 특히나 성수기인 여름에는 푹푹 찌는 작업장 안에서 일해야 하고, 작업장 한 구석에 간이 설치된 컨테이너 숙소에서 쪽잠을 자야 한다.

현장 관리자는 추석을 앞둔 요즘에는 인력을 어떻게 충원할 지 걱정이다. 특히 사과의 경우에는 보통 20kg박스가 통용되던 예전과는 달리 박스당 10kg, 7.5kg 단위로 포장되어 오는 경우가 많다. 박스 개수가 많아지면서 하차 시간이나 분류시간도 더 길어졌다.

“갈수록 소비자들이 소포장, 개별포장을 선호하고 있다. 그리고 사과 크기에 따라 10kg 사과 박스에 사과가 10개 들어 있는 경우, 13개 들어 있는 경우가 있고, 포장에 따라 5개까지 세분화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 이현석 객원기자
근로조건 개선도 중요하지만...

심야 육체 노동,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지만, 그보다 우선 하역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고려되어야 것들이 있다. 하역노동자들은 근로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누가 하역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인가에 대한 법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역노동자들은 실업이나 산재를 당했을 때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하역노동자들은 항만이나 부두에서 일하는 항만 하역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항운노조에 가입해야 하역 업무를 할 수가 있다. 하역노동자와 항운노조는 클로즈드숍(사용자가 근로자를 고용할 때 근로자가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제도) 제도 하에 있고, 항운노조는 도매시장 내 도매법인과 근로자공급사업 계약을 맺고 하역노동자를 공급하는 사업을 한다. 현재 가락시장에는 청과에 5개의 항운노조, 건어물에 1개의 항운노조가 근로자공급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하역노동자들을 모집, 배치, 업무 지시, 급여 지급 등은 항운노조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노동의 대가인 임금 수준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도매시장 내에서 도매법인과 중도매인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주체를 사용자로 보자니 노동조합이 노동조합을 상대로 교섭을 해야 하는 구조가 되어 버리고, 임금 수준을 결정짓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도매법인이나 중도매인들을 사용자로 보자니 사실적 고용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생겨버리기 때문에 사용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이다.

항운노조의 고용구조에 대한 특수성은 과거 부두에서 항운노조가 설립될 당시의 상황을 이해해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수출산업을 육성하던 당시 선박을 이용한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부두에서 하역 업무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증가하기 시작했다. 부두에서는 하역회사가 노동자를 고용하여 하역 업무를 담당하게 했으나, 화물은 거래량이 계절적 변동성이 크고 기후의 영향을 받고 회사간 무역거래에 의해 화물량이 결정되다 보니 하역회사에서는 하역 작업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정규직보다는 일용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고, 하역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노조법 상 인정된 노동조합에 근로자공급사업을 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 준 것이다.

 ⓒ 이현석 객원기자
정 위원장은 “예전부터 해 오던 하역 업무가 위법이 되지 않게 법적인 허가를 내 준 것이지, 그 제도가 우리의 노동권을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노조에서도 사용자를 지정하기 힘드니 최소한 산재보험 가입만이라도 제도화하기 위해 항운노조에서 지난 몇년간 국회활동 등을 벌였다. 이해 당사자가 참가한 가운데 산재보험 관리기구를 구성해서 논의 한다까지 합의했지만, 부담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지 정하기 못해 그 이후로는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고에 대비한 산재보험 가입이나 실직에 대비한 고용보험 가입문제 해결이 시급해 보였다.

“생각보다 자주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지게차나 전동차가 수시로 움직이는 현장이다 보니 발등 위로 차가 지나가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트럭에서 물건을 내이고, 박스를 어깨에 지고 옮기는 작업이 주다 보니 허리를 삐끗하거나 어깨 통증 등의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생긴다. 결국은 자기가 감당할 몫이 많다. 고용보험 적용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일을 그만 두려고 해도 그마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