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청 구조, 개선될 수 없나?
원하청 구조, 개선될 수 없나?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5.09.1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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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I, 원하청 고용구조 실태조사 실시
임금은 최대 2배 이상까지 차이나
[사건]원하청 구조 문제

원하청 노동자들간의 근로조건 격차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금에서는 원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이 3차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원하청간 불공정거래 관행이 개선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원하청 관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7월 13일 노사정위원회에서 개최한 노동시장 원하청 구조 실태와 개선방향 토론회 모습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경기불황 대응 전략으로 하청업체 활용

한국노동연구원은 한국기업데이터,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감사보고서, 고용보험행정자료 등을 바탕으로 국내 원하청 고용 구조 및 근로격차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업종별 하청업체 활용 비율을 살펴보면 조선이 84.3%로 가장 높았고, 1차 금속이 82.3%, 전력 82.2%, 기계 81.6%, 자동차 80.6% 순으로 나타났다. 주로 제조업 분야에서 하청업체 활용이 높게 나타났는데 이시균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대규모 사업체가 존재하고 사업의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업종일수록 하청비율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조선이나 자동차의 경우에는 금융위기 이후 원청업체보다 하청업체에서 고용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경기 불황에 대한 대응으로 하청업체 활용을 높이는 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경기불황이 이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원청업체들은 고용을 늘리는 대신 하청업체에 주는 외주 물량을 늘리거나 비핵심부서들을 외주화 시키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특히나 경기불황에 민감한 조선산업의 경우에는 정년이나 이직 등으로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둬도 그에 상응하는 신규채용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물량을 외주화 시킴으로써 경기 유동성에 대응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 저가수주, 경쟁 심화 등으로 적자가 누적된 중소조선소들이 법정관리나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면서 인원 감축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회사에서 쫓겨난 중소조선소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형조선소의 하청 노동자로 상당수 유입되기도 했다.

하청업체에서 일하다가 원청업체로 고용되는 노동이동 실태 조사도 병행되었는데, 하청업체에서 일한 지 1년 후 원청업체에 고용되는 비율은 0.5%, 2년 후는 0.8%, 3년 후는 1.0%로 아주 낮은 비율을 보였다. 또한 하청업체 활용 비중이 높았던 조선, 1차 금속, 기계, 자동차, 전기 업종 등에서 노동이동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위원은 3년의 경과기간 동안 하청업체에서 원청업체로 이동한 노동자들이 7,00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상향 노동이동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노동이동이 거의 없다는 것은 해당 업종의 원하청 고용구조가 상당히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출처 : 통계청

원하청 노동자 임금은 2배 이상 차이나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원하청 노동자 임금수준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6월을 기준으로 원청업체의 노동자 월평균 임금이 560만 원인데 반해 협력업체 노동자 월평균 임금은 286만 원으로, 원하청 노동자간 월평균 임금격차는 274만 원으로 나타났다.

협력업체 단계별로 임금수준을 살펴보면 1차 협력업체에서는 월평균 임금이 291만 원, 2차 협력업체는 279만 원, 3차 협력업체는 236만 원으로, 협력업체 내에서도 작게는 월 43만원에서 많게는 월 55만 원까지 임금 차이가 벌어졌다.

원하청업체 여부와 하청 단계에 따라서 임금 수준에 차이가 나는 이유로는 업체 규모의 차이도 있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주로 대기업인 원청업체가 비용절감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획득하려고 하고, 이는 하청업체에 낮은 납품단가를 강요하는 수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조 철 산업연구원 주력산업연구실장은 지난 7월 국회에서 개최된 ‘노동시장 원하청 구조의 실태와 개선방향’ 토론회에서 원하청간 임금격차가 타당한 지에 대해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며 “부품업체의 종업원 1인당 연평균 급여는 완성차업체의 42.4%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완성차업체의 노동시간이나 노동강도가 부품업체 측 협력업체보다 더 길고 강도 높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완성차 조립라인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부품업체 작업장은 다양한 기능과 숙련을 요구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원하청 임금 격차의 발생 원인을 “원청 노동자들은 독점적 협상력을 가진 대기업과 노동조합을 통해 권리를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원하청 불공정거래가 지속된다면 “부품업체의 품질 수준이 취약해지고, 원청업체의 노동비용이 높은 상황에서 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이 하락되면서 원청업체의 생산이 해외공장으로 이전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원하청 관계에 대해 “노무현, 이명박 정부시절부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과 원하청 상생협력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소기업간 지불능력 격차는 해소되지 않았고, 노동자 임금이나 복지 격차는 더 증가하는 추세”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감 몰아주기나 내부거래 규제 장안 마련, 공정거래 위반 시 3진 아웃제 도입, 납품단가 조정제도의 합리적 개선, 하청업체의 불공정 거래 신고시 원청인 대기업의 보복금지 명문화 등을 제안했다. 3진 아웃제란 현재 불공정거래 위반 시 처벌 수위가 낮아 위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상습적인 공정거래 위반업체에 대해 각종 정부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중소기업중앙회

중소제조업, 64.2% 원가절감 적절치 않다

정부에서도 하도급 관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불공정거래 개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에 하도급법 강화 및 동반성장 추진을 위한 기구를 신설해 대-중소기업간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을 위한 관리감독에 힘써왔다. 공정위 내 동반성장위원회에서 발표한 지난해 동반성장지수 체감도 조사 결과는 2013년보다 3.5점이 증가한 79.4점를 기록했다.

원하청간 하도급 계약이 구두로 이뤄지는 것도 원하청관계에서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사항인데, 표준하도급계약서 관리감독 활동 결과 작년보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기업이 13%가 증가했다고 동반위는 발표했다. 하지만 협력업체 등록 과정에서 탈락한 업체에게 이의신청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것, 일부 유통분야에서 판매수수료 결정, 변경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것 등의 미흡한 부분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출처 : 중소기업중앙회

공정위에서는 불공정거래 관행이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원가절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이야기 한다.

지난 4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제조업 CR(원가절감) 실태조사 활동을 벌인 결과 원청업체의 원가절감 요구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한 중소제조업체들이 64.2%였다.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한 이유로는 원사업자의 이익추구를 위한 일방적인 강요라는 답변이 42.9%, 기술지원이나 성과보상 등 혜택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18.8%, 관행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20.8%를 차지했다. 그외에 원가절감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답변도 14.9%, 결국 원청업체의 원가절감 요구가 다른 업체의 피해로 연결되기 때문이라는 답변도 나왔다.

중소제조업이 원가절감에 대응하는 방식(중복응답)으로는 41.3%가 기술개발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대응한다고 답변했고, 39.2%가 원자재, 공동구매 등을 통한 재료비 절감으로 대응한다고 답변했다. 그 다음으로 35.0%가 임대료, 전기 등의 경비 절감을 꾀한다고 답했고, 15.4%가 영업이익으로 원가절감 부담분 충당, 14.2%가 노무비 조정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원가절감 요구에 대한 애로사항으로 수익성 악화가 가장 큰 문제이고 과도한 원가절감으로 인한 품질 인하, 임금이나 복지 등의 근무여건 악화, 기술개발 투자 여력 감소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답했다.
앞서 전문가들이 지적한 대로 원청업체의 원가절감 요구는 결국 품질 저하와 기술 개발 투자를 저해하고, 이는 결국 제조산업 성장에 악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원가절감 요구가 하청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복지 수준까지 영향을 미쳐 원청 노동자들과의 격차 심화의 한 요인이 되고 있었다.

7월 2일 금속노조에서 개최한 조선산업 다단계 하도급 '물량팀' 실태조사 및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 모습

불공정거래, 개선되기 어려운 이유

중소제조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중소기중앙회 성장지원실에서는 “주기적으로 하도급 실태조사나 납품단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도 무리한 원가절감을 요구받는 곳들이 많았다”고 전하며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을 가지는 중소기업 산하 협동조합을 설립했고, 조합원들이 납품단가에 대해 협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그리고 공정위와 공동으로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불공정하도급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법 활동과 제도 개선을 통해 불공정거래를 개선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익명이라도 신고사실을 원청업체에서 알게 될 경우 거래가 단절될 위험이 있어서 신고를 꺼려하는 사업장들이 아직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불공정거래가 적발되면 원청업체에 손해가 발생한 금액 3배 이내의 한도 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만드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하청업체가 소송을 제기해야 그 제도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한계점이 있다고 인정하며, 앞으로 현장에 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보완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불공정거래가 개선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원가절감 요구가 담당자간 구두로 먼저 이뤄지고, 그 다음 서류상 금액이 명시되기 때문에 원청업체에서 하청업체에 원가절감을 강요하고 있는지를 적발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에 있다.

부품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조합 관계자는 “불공정거래 문제가 대두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아예 부품에다가 가격을 때려버린다. 만약 부품 하나가 100원이면 원청이 하청에 CR 2%로 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하청은 98원으로 금액을 넣어야 한다. 말로 이야기가 오가기 때문에 서류 상 파악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또한 노동조합에 종사하는 입장에서는 교섭 시기가 되면, 특히 하도급 계약 만료시기에 이뤄지는 교섭에서는 회사에서 원청업체가 원가절감을 요구해서 임금인상이 어렵다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불공정거래를 언급하기 꺼려하는 부분도 있다고 토로했다.

경기불황이 이어지면서 대기업들은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려 애쓰면서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고 있다. 10대 대기업을 기준으로 현재 520조 원의 사내유보금이 잠들어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아직도 하청업체를 대등한 파트너, 동반성장해 나가야 하는 관계로 보기 보다는 비용절감의 요소로 보고 있는 인식에 전환이 없다면, 원하청 노동자들간의 격차는 당분간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