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산업재해, 탄력받는 기업처벌법
계속되는 산업재해, 탄력받는 기업처벌법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09.1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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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근로감독·처벌로 면책받는 기업
강력한 기업처벌 필요 vs. 이미 충분한 처벌 수준
[사건]산업재해 기업처벌법

지난 6월 3일, 울산 한화케미칼에서는 폐수집수조에서 폭발이 일어나 현장에서 작업하던 하청업체 직원 6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런데 산업재해 관련 토론회에서 발언한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는 한화케미칼 사고를 보고 놀랍고 부럽다는 발언을 했다. 한화케미칼 사측이 ‘최선을 다해 수습하고 피해자 보상을 책임지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매년 2,4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9만여 명의 노동자가 부상, 질병을 입는다. OECD 산재사망 1위다. 지금까지도 산업재해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까지고 이런 불명예를 지고 가야 하는 것일까?

▲ 출처 : ILOSTAT에서 재가공

OECD산재 사망률 1위, 은폐율도 상당해

A씨는 약 20여 년 이상 건설현장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90년대부터 최근까지 용접공으로 일했다. 신축, 보수 현장 등 안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일터를 ‘군대’라고 말했다. 위험한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나서 군대 같고, 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조용히 묻히기 때문에 군대 같다고 말했다.

A씨는 부딪치고 넘어지는 사고는 그나마 애교라고 말한다.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1층에서 용접기구를 손보고 있는데 내 앞으로 사람이 떨어졌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무서워서 일도 못하고 3일을 술만 마시면서 지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하러 갔는데 현장에 가보니 사고났던 자리에 아무런 장치도 없었다. 아마 산재도 안됐을 거다. 나도 반평생을 그곳에서 일했지만 정말 소름이 끼친다”고 A씨는 자신의 직장을 평가했다.

A씨 역시 몸이 성치 않다. 오랜 시간 용접으로 인해 한쪽 눈은 거의 실명상태다. 한쪽 손바닥도 화상을 입어 주먹을 잘 쥐지 못한다. 팔뚝에도 크고작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A씨는 “눈이야 어디 회사에 속해있다면 몰라도 몇 십 년을 일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생각한다. 손을 다쳤을 때는 산재를 신청하려고 했다. 근데 현장소장이 그걸 듣더니 별 말을 다했다. ‘병원비에 위로금도 얹어 주겠다. 계속 같이 일해야 되지 않겠냐’ 등등. 다들 마찬가지다. 나도 결국 돈 받고 말아버렸다. 그런 말 들었을 때 ‘그래도 나 산재 신청할거요’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산재통계를 살펴보면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총 1,273,164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를 당했고 이 중, 사망자는 33,902명이다. 연 평균 9만여 명이 산재사고를 당하고 2,400여 명이 사망한다. 이를 OECD에서 10만 명당 사망자수로 환산해 비교한 결과 우리는 10만 명당 약 7.3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위로 5.9명을 기록한 칠레에 약 1.2배, OECD평균에 비해서는 2.8배 높은 수치다.

그런데 각종 연구조사를 살펴보면 통계에서 나타나지 않는 산업재해가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화물운수, 건설기계, 대리운전, 퀵 서비스, 택배기사 등 운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산업재해가 아니라 교통사고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한 해에 사고로 사망하는 운수업 관련 노동자들은 약 1,300명에 이른다.

또 기업이 산업재해를 은폐하기 위해 노동자와는 보상을 약속하고 신고는 하지 않아 공식통계에서 누락된 경우가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건강보험데이터를 통해 공상처리한 내용과 통계상 산업재해 빈도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은폐 정도를 추정했는데 추정 재해율과 공식 통계상 산재 비율이 최대 60배, 평균 23배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산재사망사고, 직업성 질병(백혈병, 진폐증 등)에 의한 산재사망 역시 포함되지 않은 상태라 정부 통계와 실제 산재 비율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현장관계자와 안전 대책 논의 중인 이영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 안전보건공단

미약한 처벌, 웃는 원청업체

중요한 사실은 산업재해가 일어나도 그 처벌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업재해 토론회에서 “매년 정부 정기 감독에서 사업장의 90% 이상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위반 사업장에 대해 고용노동부에서는 시정조치를 남발하고 있다. 과태료 부과 사업장도 평균 90만 원 내외의 과태료 처분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국장은 “산재사망사고가 나도 처벌이 매우 미약한 상태다. 1년 반동안 17명 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당진 현대제철은 안전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고 하청 산업안전관리비를 지급하지 않는 등, 수천 건의 법위반이 적발되었다. 10년 동안 현대건설에서 110명의 사망자가 났음에도 기업에 대한 처벌은 미약했고 현장에서는 반복적인 산재사고가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산재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건설업의 경우도 이 문제가 피부로 와 닿고 있다. 건설산업연맹 이영록 정책국장은 토론회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주요 건설사들의 산재 관련 재판에서 원청의 책임이 적거나 무죄인 판결이 많았다. 이는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 재해율 판정에서 원청이 무죄를 받으면 제외시키는 제도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건설현장은 산재사고가 나면 100%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동반된다. 근데 이 경우에도 하청사업주나 관리자, 일반 노동자만 처벌 될 뿐, 원청에 대해서는 벌금 약간이 전부다. 사고가 생겨도 보상 외에는 현장의 변화가 없고 사고는 반복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 한국노총에서 집계한 ‘중대재해사건 처분결과’에서는 전체(2,045건)에서 벌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4%(1,311건)로 가장 많았으며 집행유예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은 경우는 전체의 3%(62건)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산재 감독에 힘쓸 산업안전감독관의 수는 현재 약 300여 명에 불과해 처벌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다. 사실상 고용노동부가 사업장의 지도·감독과 같은 사전적 예방보다 산재사고 발생 이후 처리와 보상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비판도 있다.

이렇게 미미한 처벌도 하청업체에 집중되고 원청업체는 대부분 무죄나 약간의 제제만을 받는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원청은 비용절감과 책임회피를 위해 더욱 원·하청 구조를 확대하고 이 과정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위험에 노출된다. 한국노총이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하청업체에 도급을 주는 이유로 유해위험작업, 낮은 임금수준, 4대보험 부담 감소, 노사분규 감소 등을 들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계속되는 규제완화, 현실성 부족한 법

1993년 IMF구제금융 사태 중, 정부는 경기를 살리고자 ‘기업 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한다. 특별조치법의 약 50개 항 중에 절반 이상이 안전관련 규제완화 항목이다. 이 법으로 안전 관리자 선임기준, 의무고용 및 선임이 대폭 완화되었고 겸직과 위탁이 가능해졌다.

경제위기 돌파를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특별법은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노총의 보고서는 “규제완화는 사업장 안전보건체계를 약화시켰으며 이는 산업재해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우리나라의 산재 중, 81.5%가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97년 특별조치법 개정으로 50인 이상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자를 선임하도록 완화된 조항을 다시 30인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대규모 사업장에서 대형사고, 하청업체 산재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만큼 97년 개정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한 조항 역시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의원이 산업안전보건법에 유해·위험작업 도급 인가 시 안전·보건평가를 면제해주도록 규정한 조항을 삭제하는 등 개정 노력이 이뤄지고 있으나 규제개혁이라는 정부의 기조에 맞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9월 열린 2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우리 경쟁국들은 과감한 규제개혁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규제개혁은 너무 안이하고 더딘 것이 아닌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규제는 눈을 딱 감고 화끈하게 풀어야 기별이라도 간다”고 발언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부터 규제개혁을 국가발전의 핵심적 요소로 보고 추진해오고 있다.

참여연대 이슈리포트에서는 박근혜정부의 규제완화가 다각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절차조차 무시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규제총량제는 사업장 안전을 크게 위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사업장 안전 부분에서 현저하게 약화되어있는 규제 수준을 높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실효성도 문제다. 한국노총은 보고서에서 “현장에서 노동자가 산재 위험이 높거나 발생 가능성이 있을 때 작업중지를 취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요청할 시 사업주는 손해배상 등으로 압박하며 고용노동부 역시 중대 산업재해 발생 시에만 작업중지를 시키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보건관리자 겸직허용항목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관리자가 다른 업무로 인해 보건업무에 소홀할 수밖에 없으며 사업장의 석면지도 작성의무와 같은 꼭 필요한 제도는 누락되어 있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시행규칙의 문제도 많다”고 주장했다.

외국의 산업재해 대응은?

그렇다면 외국은 산재사망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외국의 산업재해법은 보호·처벌대상 확대, 처벌 강화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산재사고에 대해 강한 대응을 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을 들 수가 있다. 영국에서는 21세기가 되어 산재사고가 기업에 의한 살인으로 기업 처벌 강화를 위한 새로운 형사정책 도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산재사망사고를 과실치사가 아니라 살인죄를 적용해 사업주와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어 사업주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의 법 제정운동이 전개되었다.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이 제정되어 2008년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은 노동자의 포괄적 안전을 책임져야 할 자를 기업으로 보고, 기업이 행한 행위, 위법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가 사람을 사상하게 하였을 때, 책임을 기업 경영자에게 부과하는 법안이다.

사람을 고용하는 모든 기관과 단체는 적용대상이며 주체는 조직과 최고경영층까지 포괄한다. 산재사망이 일어났을 경우 기업 1년 총매출의 2.5~10%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는데 원인이 악성적인 경우 10%이상을 부과할 수 있으며 기업의 범죄사실을 지역과 언론에 광고하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2003년, 기업 대표자가 행한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기업에 물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캐나다에서는 기업 경영자, 관리자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 대해 기업 형사처벌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감독관이 특별한 이유 없이 사전예고를 할 수 없고 반복적 위반과 시정미비시 가중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이 독특하다.

▲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강력한 기업처벌 필요 vs. 이미 충분한 처벌수준

전문가들은 산재사망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근로감독 강화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이호중 교수는 “산재사고 발생시 중간관리자를 처벌하는 수준에서 형사처벌이 마무리 되어왔다. 이는 기업에 안전의무를 준수하도록 압박하는 효과적인 정책이 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이전부터 꾸준하게 기업처벌법의 제정운동을 벌여왔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재해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인해 산업재해 외에 시민 대상 중대 재해를 포함해 기업과 정부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마련운동이 급속도로 진척되었다. 민주노총과 4.16연대, 참여연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20여 개 단체는 지난 7월, 영국 ‘기업살인법’과 유사한 내용의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입법운동을 시작했다. 이전부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준비해온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강문대 노동위원장은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번 법안이 제정된다면 법인, 개인 모두를 처벌하고 경영책임자에게 실질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형량도 상, 하한을 정해 검찰이 마음대로 구형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 공무원도 인허가, 관리감독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법안의 개략적 내용을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산업재해 토론회에서 “국제적 지표인 산업재해 사고 만인율을 보더라도 OECD국가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상황은 사실이다. 과거 기업들이 기업·국가 경쟁을 위해 생산성 향상을 우선시 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투자가 소흘했다”며 현 문제점에 대해서는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수 기업들이 산업안전보건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기업에 대한 산안법위반 처벌은 충분히 높은 수준이다. 실질적으로 사업주가 기업의 안전보건업무를 지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직접적 행위자가 아닌 사업주를 구속까지 해야 하는지는 신중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는 산재노동자 권리구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휴업급여를 지급하고 특히 문제가 되는 하청노동자 안전문제에 대해 ▲하청노동자 모든 사업장에 산재예방조치 시행 ▲위반시 5년 이하 징역,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 조정 ▲시설 변경 시 3년마다 고용노동부 하청 재인가 시행 ▲노동자 안전요구를 사업자가 불이행시 직접 신고 ▲이를 이유로 불이익 시 1,000만 원 과태로 부과 ▲산재사고 은폐 시 과태료 상향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