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전공계열별 취업 격차
극심한 전공계열별 취업 격차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09.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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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론’, ‘문송합니다’, ‘취업깡패’... 취업현실 반영한 신조어
정부 종합적 대책, 구체성·신뢰성 떨어진다는 비판
[사건]전공계열별 취업난

‘인구론’이란 말이 유행이다. 18세기 말 토머스 멜더스가 펴낸 경제학 서적이 아니다. '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는 말의 약자다. ‘문송합니다’란 말은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약자라고 한다. 학생들은 이공계 출신 졸업자를 ‘취업깡패’라고 부르며 부러움과 질시의 시선을 보낸다. 지난 5월, 취업 포탈 <사람인>이 발표한 ‘2015 취업시장 신조어’에서는 온갖 신조어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문계, 자연계 취업 현실을 반영한 단어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만큼 청년취업에서 전공계열별 취업난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증거다.

▲ ⓒ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인문계네? 어디다 쓰지?’

B씨(30)는 대학을 졸업하고 3년째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국문과를 나온 B씨는 3년 동안 몇 백 통의 이력서를 넣었지만 대부분 1차 서류심사에서 탈락했고 이력서 3~40통에 한번 꼴로 면접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B씨는 “서류심사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니 이제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가지고 쓰고 있다. 그런데 면접에만 들어가면 이 국문과, 인문계 졸업생이라는 사실이 큰 족쇄가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1년에 두 번 있는 기업 공채 기간 중, 몇 번 안 되는 면접에 들어갈 때마다 B씨는 면접관으로부터 국문과에 대한 부정적인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면접관이 내가 맘에 들었는지 ‘우리 회사에는 당신과 같은 인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굉장히 좋게 말했었다. 그런데 서류를 보다가 ‘어 국문과네? 어디다 쓰지?’ 그 다음부터는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한마디 안했다. 면접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너무 화가 나고 비참해서 눈물이 났다” B씨의 면접 경험담이다.

B씨와 같은 학과를 나온 대부분의 학생들의 처지 또한 다를 바 없었다. 대부분 3~4년 이상 취업준비를 해서 겨우 회사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들어간 사람은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한다. B씨와 같은 ‘취업장수생’들은 빨리 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업을 가리지 않고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고 있다. 공무원은 학과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공무원 특유의 안정성 덕분에 연금이 삭감되어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B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하면 다른 취업 준비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취업 적기를 지나서도 합격하지 못해 비참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보게 되곤 한다고 말한다.

B씨는 “우리는 고등학교에서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누구도 우리들에게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취업이 되지 않는지,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들 연구소에 들어가서 그래요’

A씨(29)는 얼마 전, 한 중견기업 연구소에 입사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기계공학과를 나온 A씨는 이공계가 취직하기 쉽다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이공계인 그에게도 취직은 어려운 일이었다. 취직을 하기 위해 그는 2학년 때부터 컴퓨터공학과를 복수전공했고 27살때는 1년간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다녀오고 나서도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는 한편, 대기업에서 6개월 동안 인턴 생활을 했다.

A씨는 처음부터 자신이 연구소에 들어가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번듯한 대학도 나왔고, 학점, 자격증, 어학 등 스펙도 잘 쌓았다고 자부했다. 자신은 충분히 대기업에 들어가서 즐거운 회사생활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취업깡패’라는 이공계에게도 벽은 높기만 했다. A씨는 “1년 동안 쓴 이력서만 해도 100통은 우습게 넘길 것 같다. 들어가는 문 자체가 엄청나게 좁아져서 이공계인지, 인문계인지 하는 것은 사실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통계를 내보면 이공계가 많겠지만 그 통계가 떨어진 사람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A씨는 주변에서 많은 선후배들이 취직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취업한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이공계가 취업률이 높아 보이는 것은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근로조건이 정말로 형편없다. 퇴근도 없이 연구에 매달리고 그렇다고 그래서 많은 돈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 직장에서 언제까지 버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A씨는 “무슨 계열이 취업이 잘되고 다른 계열은 안 되는 상황이 우리나라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라 말했다. 뭔가 제대로 된 나라라면 학과별 취업이나 이런 것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정도로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A씨는 “내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는 학과 선택에 취업이 100%는 아니었다. 적어도 적성이나 흥미도 고려했다. 지금은 취업이 전부다. 나중에는 정말로 대학이 아니라 취업스쿨이 돼 버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나타냈다.

A씨는 지금 이공계 취업률이 다른 계열에 비해 좀 잘 나온다고 해서 정부나 다른 곳에서 ‘이공계는 지금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구조가 언제 또다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속성 있는 이공계 취업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취업의 질과 근속기간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우리는 원래 대책이 없어요’

C(32)씨는 인문계, 이공계 취업 위기가 낯설기만 하다. 예체능계열에게 취업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유도를 했던 C씨는 국가대표 상비군에 들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다. 그러나 대학교 1학년에 어깨에 심한 부상을 입은 이후, 국가대표 유도선수의 꿈은 떠나버리고 말았다. 20대 중반까지 수많은 일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온 C씨는 20대 후반에 퍼스널 트레이너 자격증 등을 취득해 체육관에서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

C씨는 “인문계, 이공계 학생들에 비해 예체능계 학생들은 차별대우를 받는 것 같다. 그쪽은 언제나 기업체 취업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들은 대책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하면 ‘니네 공부 못해서 거기 들어가지 않았냐’는 대답만 돌아온다. 우리는 IMF 이전에 대학만 나오면 취업은 따 놓은 당상이던 시절부터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우대받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에게는 밑바닥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C씨는 5년 동안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4번이나 해고당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계약직이기 때문이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못마땅한 일이 있어도 말하기 무섭고 임금체불같은 문제도 자주 일어난다. 대부분의 예체능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만난, 한 곳에서 3년이나 일한 헬스트레이너가 정말 부러웠다고 C씨는 회상했다.

C씨는 주변을 보면 그러한 현상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C씨와 같이 국가대표 상비군에서 경쟁하던 많은 사람들 중에 절반 가까이는 현재 관련 계통에서 일하지 못하고 전혀 다른 업종에서 일하고 있으며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평생을 이쪽에서 운동밖에 모르고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상을 당하거나 경쟁에서 뒤쳐지는 일을 당하면 살아가기가 정말 막막해진다. 체육계통에 있었던 사람들은 몸 쓰는 일밖에 모르니 잘 되면 나같이 헬스장 트레이너 하거나 자영업을 하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조직폭력, 불법 도박, 성매매 알선 등의 길로 들어간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고 C씨는 말했다.

심각한 전공계열별 청년취업

사실 전공계열별 취업률 불균등은 이전부터 지적되던 문제다. 그러나 근 몇 년간 청년취업이 급속하게 위축되고 기업의 채용관이 달라지면서 이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 것이다.

기업에서는 인문계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인문계 지원자는 대학에서 실제 업무와 동떨어진 교육을 받는데 이 지원자들을 채용해 기업에서 원하는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결국, 이직이 활성화되어 대기업 직장인들의 근속연수가 채 10년이 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기업의 이공계 선호추세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2014년, 삼성그룹 신입사원 중 이공계 대 인문계의 비율은 8:2에 달했다. 삼성전자의 이공계 비율은 85%에 육박한다. 경쟁률로 보아도 이공계가 8.8:1인 반면, 인문계는 75:1을 기록했다. 현대자동차도 인문계 신입사원이 전체의 30%에 불과했다. 경쟁률도 인문계 200 대 1, 이공계 50 대 1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심지어 LG전자, 화학, 디스플레이는 인문계 비율이 15%에 불과하다. 게다가 올해에는 인문계 학생을 뽑지 않는 대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 계열사 6곳과 LG디스플레이, 화학 등은 인문계 전공자를 선발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인문계 직무부문을 상시채용으로 전환했다.

예체능계의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교육부에서 나온 ‘예체능계 인력수급 방안’ 연구에서는 2014년 기준으로 예체능계 평균취업률을(비정규직 포함) 30.6%로 조사했다. 예체능계는 세부 분야별 취업률 편차가 심한 상황으로 대부분이 전공 분야에서 활동하려고 하지만 취업선택에 있어 학벌 위주의 채용, 부족한 일자리, 전공 외 필요한 능력의 부족, 현장과 괴리된 교육과정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취업에 있어서 전공 관련 지식과 자격증, 정보 등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현 취업시장에서 요구하는 어학, 인턴 경험 등 이른바 ‘스펙’에 대한 관심과 준비는 아주 낮게 나타나고 있다.

일자리에 있어서도 계약직, 프리랜서가 많은 예체능 계열의 특성상 취업률 조사마저 쉽지 않은 상황으로 4대보험 가입률이 다른 계열 평균에 비해 턱없이 낮은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근로 조건조차 충족되지 못한채 노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숙명여자대학교 여성인적자원개발대학원 이영민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이 이유를 “대부분의 예체능계열이 다른 전공계열과 직업탐색에서 준비, 구직활동 및 취업성과에 차이가 존재하고 취업시장 자체가 협소하며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으로 보았다.

칼 뽑아든 고용노동부

이렇게 계열별 청년취업 상황이 점점 악화되는 가운데 고용노동부도 위기감을 느끼고 여러 방향으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고용동향 확대 점검회의’에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청년 고용의 경우, 인문계 전공자에 대한 획기적 지원방안 등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가 6월 24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인문계 전공자 취업촉진방안’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고용노동부는 현재 인문계 전공자의 취업난은 경기적 요인보다 기업 인력수요가 이공계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구조적 요인. 즉 ‘계열간 미스매치’가 크게 작용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수요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학 저학년부터 진로지도 강화 및 역량향상 지원 ▲재학 중 유망업종의 융합기술교육·훈련 참여기회 확대 ▲대학 졸업 전부터 종합적인 취·창업 지원 등을 골자로 기업이 요구하는 전문 기술을 익혀 전통적인 인문계 취업 분야 이외에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진로지도 관련 강의의 교양필수화 ▲진로지도 참여 실적과 장학금을 연계시키는 ‘역량강화 포인트제’ 확산 ▲이공계 분야 복수전공을 확대 허용 ▲재학중 빅데이터 분석이나 소프트웨어(SW) 개발 등 인문계 특화 교육훈련과정 참여기회 제공 ▲청년취업 아카데미에 연 2000여 명 규모의 ‘인문계 특화과정’ 신설 ▲맞춤형 취업지원 프로그램인 ‘청년취업성공패키지’의 확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장관은 “대학교육, 교육훈련 등 인력공급 정책을 전공, 계열 시각에서 재검토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은 반신반의, 구체적이고 신뢰받는 대안 필요

지난 4월, 직업능력개발연구원에서 대학 3·4학년 재학생 8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훈련 수요조사 결과에서 인문·사회 등 문과계열 학생의 56.2%가 이공계 분야로의 취업을 위한 교육훈련과정에 참여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절반 정도의 학생들이 전공분야와 다른 방향으로 취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응답자들의 39.5%는 전공분야와의 적합성은 취업을 위해 포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나머지 반수의 인문계, 예체능계 전공자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참여를 주저하는 응답자들은 기술 분야와는 적성에 맞지 않아서 46.9%, 엄두가 나지 않아서 15.6% 등을 이유로 꼽았다. 지난 5월 열린 ‘인문계 고용촉진대책 관련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인문계 청년들의 진로변경에서 겪는 강한 심리적 압박감을 해결해야 한다. 더불어 IT·소프트웨어 기업이 인문계 지원자를 기피하고 이공계를 선호하는 관행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족, 인문·예체능계열 교육을 계속 받아왔는데 아무런 기초도 없이 이공계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한 부담이 고용노동부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게 하는 이유였다. 또 교육기간이 결국 취업기간을 길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더불어 고용노동부의 대안이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는 비판과 실제로 기업이 이공계 교육을 받은 타 계열 전공자를 차별 없이 채용할 지도 의문이 따른다.

해결책으로 고용노동부는 비전공자가 훈련과정을 무리 없이 이수할 수 있도록 수준별 맞춤형 과정 설계, 멘토링 시스템 등으로 인문계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고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IT·소프트웨어 기업에 인문계열 학생 고용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정책을 통해서 이공계 학벌 선호를 개선해야 한다는 방안도 나왔다.

고용노동부의 대안 외에 전문가들은 고교, 대학 등 전공 교육과정에서 교육자치를 해하지 않는 범주의 공급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일자리 격차를 줄여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 현재 인문·예체능계 취업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