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오전 10시에 출근하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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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와혁신
  • 승인 2015.10.05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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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부족하면 감정 조절 어려워
55세 이하 성인, 10시 이전 근무 효율 떨어져

아침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게으르다거나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들은 습관을 고치려 애썼고, 관련 서적도 쏟아졌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이런 편견에 맞서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됐다. ‘저녁형 인간’의 장점들이 속속 공개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나이대별로 수면 패턴이 다르니 너무 이른 시간에 일어나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출퇴근 시간이 우리 몸에 맞지 않다?

지난 몇 년간의 연구를 찾아보면 저녁형 인간이 창의적이라는 보고가 많다. 2009년 영국 런던정경대 사토시 가나자와 교수팀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집단의 IQ가 더 높게 나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청소년 2만 745명을 대상으로 수면 패턴과 IQ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다.

스페인의 마드리드대학 심리학과 연구팀도 2013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12~16세 청소년 887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저녁형 인간이 창의력이 높고 귀납추리능력과 문제해결능력도 우수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저녁형 인간들은 ‘아침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이라는 일반적인 시간표가 수면 패턴과 맞지 않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침형 인간이냐 저녁형 인간이냐는 유전자에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졌다. 각각 강한 면이 있으니 적합한 직업을 고르고 맞는 일을 해나가는 게 현명하다. 그런데 아침형 인간이라도 오전부터 일에 집중하기란 어렵다. 출근 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정신 차려 본격적으로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은 대략 10시 정도다.

영국 옥스퍼드대 폴 켈리 박사팀은 이런 현상의 원인을 ‘연령대별 생체리듬’에 있다고 분석했다. 55세 이하의 성인들에게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6시에 퇴근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직장인이나 학생에게는 오전 10시 이전에 하는일이나 공부의 효율이 높지 않고 스트레스도 커진다.

연구진은 연령대별로 24시간 동안의 생체 리듬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10세 이하의 학생들은 오전 8시 30분 이전에 공부할 때 집중력이 크게 떨어졌다. 16세 학생들은 오전 10시 이후, 대학생들은 오전 11시 이후에 집중력이 높아 학습효율이 높아졌다. 아침에 눈 뜨면 좋을 시간도 연령 별로 달랐다. 10세 전후의 어린이는 오전 6시 30분, 16세는 오전 8시, 18세는 오전 9시에 일어나는 게 가장 알맞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중고교에서는 학생들의 생체 리듬에 맞지 않는 수업 시간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켈리 박사는 “생체 리듬에 따르면 10세와 55세의 기상과 취침 시간은 거의 비슷했다”며 “우리는 수면 부족을 강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활동과 감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체 리듬에 맞도록 직장과 학교에서 일과 공부를 시작하는 시간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50대 이상인 사장의 근무 시간에 맞춰 모든 직원이 오전 9시부터 일을 하는 방식을 조정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잠 못 자면 짜증과 화가 늘어난다

생체 리듬에 맞지 않는 일상을 소화하다 보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경우가 많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든데, 회식이나 야근 등이 추가되면 충분한 수면은 꿈꾸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짜증과 화가 솟구치는데, 그 원인은 우리 뇌에 있다.

미국 UC버클리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수면이 부족할 경우 감정을 조절하는 뇌 전전두엽의 활동이 저하된다. 이렇게 되면 부정적인 일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므로 화가 나고 짜증도 늘어난다.

연구진은 건강한 사람 26명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쪽은 정상적으로 재우고, 다른 한쪽은 35시간 동안 못 자게 했다. 이들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촬영한 결과 잠을 제대로 못 잔 그룹의 감정 중추(뇌 전두엽)가 60% 이상 과잉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 전두엽은 감정을 다스리고 정신을 집중하는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미성숙하거나 손상되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불필요한 자극에 쉽게 반응하게 된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감정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매슈 워커 박사는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뇌가 감정조절회로를 회복해 다음 날의 어려운 일에 대비하게 된다”며 “수면이 부족하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 이성을 잃고 감정적이 대응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잡하고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생체 리듬에 맞지도 않는 일정에 맞춰야 하고, 잠을 줄이느라 예민하고 날카로워진다. 조금 덜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잠을 충분히 잘 수 있는 스케줄’을 짜고 실현시키면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