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기업인수, 빗장 푸는 한국
사모펀드 기업인수, 빗장 푸는 한국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10.0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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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과제는 ‘단기 매매이익 극대화’
자본 융통·투자활성화 장점 VS. ‘먹튀’ ‘하이에나’ 악명
[사건]사모펀드 기업인수

1990년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열연한 리처드 기어는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백만장자 역을 맡았다. 영화에서 그는 매력 있고 유능한 기업인으로 나온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사모펀드에 대해 마치 죽어가는 기업을 수술해 살려내는 의사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현실도 그럴까. 투자 활성화, 금융자본 유동성 강화라는 장점 이면에는 정리해고, 회계조작, 세금포탈 등의 문제가 있다. 사모펀드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들을 ‘기업 사냥꾼’, ‘하이에나’ 등에 빗대 표현한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사모펀드는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 참여와 혁신 DB
대량 해고 - 씨앤앰사태

2008년에 맥쿼리펀드와 MBK파트너스를 주축으로 한 MBK컨소시엄은 케이블TV업체 씨앤앰 지분 95%를 2조 1,000억 원에 인수하여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가 되었다. 인수 당시 컨소시엄은 유료방송 시장에서 케이블TV 업체가 시장 전반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방송이 전환된 이후, 결합서비스상품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씨앤앰이 MBK컨소시엄에 인수된 시기 이후로 예상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국내 미디어 시장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IPTV 등 케이블TV와 경쟁하는 유료방송 업체는 결합상품을 바탕으로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또한  디지털방송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케이블 업체의 자산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유료방송 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케이블TV가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이 때문에 씨앤앰을 인수한 MBK컨소시엄은 1조 6,000억 원이라는 당시 최고 차입금을 기간 내 상환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조직 통합, 외주화, 인력감축 등으로 가뜩이나 나쁜 고용환경에서 일하고 있던 씨앤앰 노동자들은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에 노동자들이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 지부를 설립함에 따라 약 5년여에 걸친 씨앤앰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노조는 1년 동안 노조인정 투쟁,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한 임금인상·근로조건 개선 투쟁을 벌였고 2014년, 사측의 조합원 109명 대량해고에 대해 176일 노숙농성, 고공농성 49일 투쟁을 벌여 해고자 전원 재고용과 고용안정을 얻어냈다.

문제는 일반 기업들의 경우 당기순이익의 상당 부분을 회사 발전을 위한 투자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비해,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은 배당금 명목으로 대부분의 이익이 빠져나가는 것에 있다. 대주주들은 인수회사에서 수익을 더 내고 매각금액을 높이기 위해 도급·하청을 늘리고 복지를 축소하는 등 기업 전체의 비용절감을 실시한다. 씨앤앰의 경우, MBK컨소시엄이 인수한 이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A/S업무를 단계적으로 외주화해 정규직으로 일하는 인력 중 상당수가 하청·도급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먹튀자본 - 외환은행

본래 국책은행이었던 외환은행은 1989년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되면서 민영화되었다. 1997년 IMF외환위기가 터지며 도산의 위기까지 갔지만 독일 코메르츠방크로부터 외자를 유치하며 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근본적 개선 없는 외자유치로 경영악화는 지속되었고 2003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매각되었다.

이후 2012년에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까지 약 10년의 시간동안 론스타는 사모펀드의 부정적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인수부터 금융기관이 아니라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특례를 받아 인수대상이 된 점, 매입 당시 인수금액을 더 낮추기 위해 주가조작을 했다는 의혹, 기업의 발전과 성장보다 단기간 매매차익 극대화라는 사모펀드의 목적에 맞춰 4조 6천억 원이라는 이익을 얻은 점 등이 있다.

정부는 문제가 벌어지고 나서야 금융위를 통해 외환은행 매각심사를 하고 역삼동 스타타워 매각 세금부과,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법인과 대표에 유죄를 선고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인수와 매각과정에 있어 많은 정관계 인사가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 공정성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론스타는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 매각지연 및 세금 부과로 인한 손실을 이유로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5조 원가량의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낸 상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국민의 혈세 240억 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전체 소송비용은 500억 원이 넘을 전망이다.

예외사례 - OB맥주

OB맥주는 본래 두산그룹이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그룹 구조조정을 위해 OB맥주를 세계적 맥주기업인 인터브루(현 AB인베브)에 5,000억 원 가량을 받고 매각했다. 2009년, 당시 인베브는 미국의 앤호이저부시와 합병하기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 미국계 사모펀드인 KKR과 우리나라 사모펀드인 어퍼니티가 만든 컨소시엄에 18억 달러(1조 9,000억 원)에 매각했다. 그러나 6년 만인 2014년, OB맥주는 58억 달러(6조 1,700억 원)에 AB인베브에 재매각되게 된다.

사모펀드의 본 목적인 매매차익을 실현했지만 KKR·어퍼니티의 방식은 여타 사모펀드의 양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OB맥주는 KKR·어퍼니티가 인수한 이후 4년 동안 매출액 68%, 영업이익은 120% 증가했으며 시장점유율 60%를 기록하며 하이트맥주에 내줬던 국내 1위 자리를 탈환했다. 경직된 우리나라 주류업계 구도에서 이와 같은 현상은 드물다.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해 KKR·어퍼니티는 주류 시장에서 오래 재직한 장진수 사장을 CEO로 영입하는 한편, 총 2,000억 원 이상의 추가자금을 투자해 생산시설을 개선하고 마케팅 비용을 지속적으로 늘려 인지도를 키워왔다. 노동자의 고용불안 문제도 인위적 정리해고 없이 고용승계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OB맥주 사례에 대해, 대기업이 계열사 시너지를 생각하며 신중하게 경영에 임하는데 비해 사모펀드의 경우는 경영 성과를 높이는 것이 당면한 과제이기 때문에 공격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을 취한다고 보고 있다.

 ⓒ 장원석 기자
현재 진행 중 - 홈플러스

홈플러스는 삼성물산과 최대 유통기업인 테스코 사이에 체결된 합작투자계약에 따라 1999년 삼성테크로 출발했다. 이후 삼성물산의 유통부문이 영국 테스코사에 인수되면서 삼성테스코가 설립되었다. 삼성테스코는 2011년 테스코와 삼성간의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홈플러스가 되었다.

홈플러스는 꾸준히 성장하여 2003년부터 국내 할인점 부분에서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3년 기준 매출액 9조 1,592억 원, 영업이익 2,980억 원, 당기순이익 4,993억 원을 기록했으며 총 10만여 명의 직·간접 노동자, 2천여 개의 중소기업, 수천 명의 자영업자가 홈플러스와 관계를 맺고 있다.

홈플러스는 영국 테스코가 자본의 100%를 소유하고 있는데 본사의 경영위기에 따라 지난 6월, 매각 주관사로 HSBC를 선정하고 안내문을 발송하면서 홈플러스 인수가 시작되었다. 인수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6월 24일 MBK파트너스,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7개 업체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한데 이어 7월 1일, 5개 업체가 선정되었으며 9월 2일, MBK파트너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결국 9월 7일, MBK파트너스가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 캐나다공무원연금, 테마섹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7조 2천억 원에 매입하게 되었다.

홈플러스노조는 사모펀드 매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노조 측은 사모펀드가 ▲일반 기업과 달리 경영의사 없이 이윤만 내려 하는 점 ▲이윤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 비용절감을 추구하는데 이것이 대규모 해고를 비롯한 구조조정·점포폐쇄·분할매각으로 이어진다는 점 ▲길어야 4~5년 내에 매각하게 됨으로서 노동자들이 지속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홈플러스를 인수하는 것을 반대한다.

특히 MBK가 이전 씨앤앰 사태에서 보여주었듯 노사간의 합의를 뒤집고 대량해고를 실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미 지난 8월, 사측이 부산 홈플러스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4명을 계약해지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노조는 MBK측에 ▲경영계획 공개 ▲강제적 구조조정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많은 문제점들, 장점도 있다.

투기자본이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들이 매매차익 실현을 위해 바이아웃 투자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아웃은 특정 기업의 경영권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 50% 이상의 소유지분을 인수한 뒤, 구조조정이나 내부효율화 전략 등을 통해 가치를 극대화하고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실현하는 투자방식이다.

이로 인해 가장 먼저 피해 받는 사람들은 인수대상 기업 노동자일 것이다.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마치 도축업자가 고기를 해체하는 것과 같이 기업을 분할하고 노동자들을 정리 해고하는 사례는 앞선 씨앤앰과 ING생명 등, 사모펀드에게 인수된 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이다. 매각이 진행되고 있는 홈플러스도 3개 법인으로 나눠져 있고 대형, 중형, 소형 점포로 구성되어 있어 MBK가 홈플러스를 분할매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공공성이 있는 기업이 사모펀드에 매각되었을 경우, 그 기업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전문성과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씨앤앰의 경우 역시 방송 공익성이나 미디어 이용자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외환은행도 태생부터 한국은행의 외환부였던 조직이 외환업무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독립한 기업이었고 우리나라의 외국환 업무 대부분과 국내·해외업무의 자금정산 전반도 담당하는 위치에 있는 은행으로서 타 은행보다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다. 이에 더해 면세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세금포탈을 하는 부분, 기술유출과 유상감자를 통한 투자금 회수 등 수많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장점은 없을까. 자본시장연구원의 노희진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사모펀드가 부실기업을 인수함으로서 투자자의 후생을 증진시키고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제고하며, 유동성 공급이 어려운 실물경제 부문에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공급이 활성화 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돈이 돌지 않을 때 자금의 흐름을 만들어주는 펌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불어 사모펀드의 투자는 신규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면에서 장점을 가진다. 특히 신규 벤처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시장을 이끌어나가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사모펀드가 신규 IT기업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소셜커머스 업체인 쿠팡, 위메프, 티몬 등도 사모펀드의 적극적 투자를 받고 있다. 노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사모펀드를 통해 국가 경제적으로 꼭 필요한 녹색기업, 혁신기업, 구조조정 부문에 자금을 제공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장원석 기자
빗장 푸는 우리나라, 빗장 거는 선진국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는 2004년, 간접투자자산 운영업법 개정으로 인해 허용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3년 말 기준, 개수로는 237개, 총 출자 약정액은 44조에 달한다.

박근혜 정권은 사모펀드의 국내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 규제 완화 기조에 힘입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지속적으로 개정함으로서 사모펀드 진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2014년 개정안에서는 인가제인 설립요건을 설립 후 14일 내 등록제로 바꾸고 라이선스 단위도 5억 원으로 완화했다. 또 지난 7월 개정을 통해 ▲적격 투자자 대상 차등설정 ▲등록요건 자기자본 20억으로 완화 ▲설립보고 정기보고 항목과 주기 완화가 되었다.

박근혜 정권은 이러한 규제완화를 통해 투자를 활성화하고 벤처캐피탈 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금융자본 선순환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작년 말, 최경환 부총리가 노동개혁과 같이 “실물경제로 돈이 흐르지 않는 ‘돈맥경화’현상이 심각해 이대로라면 금융이 실물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금융의 역동성 제고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내용은 이런 관점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세계적 흐름은 사모펀드 활성화와 거리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금융시장 전반이 침체기에 빠져 사모펀드 역시 자산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매입한 기업의 재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외국의 금융정책 역시 변화를 겪고 있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사모펀드에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대표적 사모펀드 운용국인 미국과 영국에서도 사모펀드를 세분화 하여 바이아웃 사모펀드를 딱히 규제하지는 않고 있지만 중장기 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탈 펀드를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금융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독일,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은 사모펀드 차입금에 한도를 두기도 한다. 특히 EU 차원에서 사모펀드 매각에 대해 ‘대체투자 펀드 운용자 지침’을 마련했는데 그 내용은 크게 ▲차입금 대출 제한 ▲인수회사 노동자 권리보호 ▲인수회사의 자산 가치 훼손 규제로 볼 수 있다. 일정 부분의 한도를 마련함과 동시에 기업을 뼈만 남기고 발라먹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정승일 사민저널 편집위원장은 사모펀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박근혜 정권의 창조경제론이 구현되려면 금융서비스 산업이 발달한 미국이나 영국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제조업 벤처 창업이 활발한 독일·스웨덴을 모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