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에는 ‘3성’이 없다?
노동위원회에는 ‘3성’이 없다?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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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공정성·전문성·신속성 논란 산별·복수노조 시대 대비해 개편 서둘러야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 지난 2004년 대구지하철노조는 경북지방노동위원회가 노사간의 면책합의를 무시한 판정을 내렸다며 지노위에 '편파판정'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은 여전히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노동위원회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노동계의 불신이 심각하다. 최근 GS칼텍스와 (주)코오롱의 해고자 복직 문제로 중앙노동위원회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화학섬유연맹은 9월부터 중앙노동위원회 ‘편파성’을 문제 삼아 무용론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규탄의 수준을 높일 계획이다.

사용자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일선 기업의 노무인사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노동위원회에 가는 것보다 행정심판을 내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애초에 “노동관계의 판정 및 조정업무의 신속·공정한 수행과 노사관계의 안정 및 발전을 위해” 설립된 노동위원회가 노사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례 1.
편파성 시비 _ 사업주와 밀접한 인물이 판정위원?

지난해 9월 중앙노동위원회에 회부된 금호석유화학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은 해고 당사자의 계속된 업무미숙을 이유로 해고 정당 판결이 났다.
올해 6월 판결이 확정되자 금호석유화학노조의 상급단체인 화학섬유연맹은 공익위원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 사건의 판정을 맡은 세 명의 공익위원 중 한명이 금호석유화학의 회장과 남다른 관계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 확인 결과 공익위원 중 한 명인 주모 변호사는 경총 자문위원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금호석유화학의 허삼수 회장이 경총 부회장이라는 점이 편파성 시비의 원인을 제공했다.

노동위원회법 제21조 제1항은 “위원은 자기와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사항에 대하여는 심의·의결 또는 조정에 관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노동자측 위원들은 “당사자는 심의·의결 또는 조정의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위원이 있을 경우에는 위원장에게 그 사유를 적어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기피신청을 했지만 해당 공익위원은 교체되지 않았고 최종 판정까지 공익위원 직을 유지했다.
화학섬유연맹 유영구 교선실장은 “누가 봐도 공익위원의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사실상 둘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중립성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노동위원회가 스스로 의심받을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례 2.
전문성 시비 _ 노사합의·대법판례에 역행하는 판결

지난 2004년 9월에는 경북지방노동위원회가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 판결을 내린 것을 두고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측 위원들이 사퇴하는 등 한동안 갈등이 이어졌다.
앞서 대구지하철노조는 2003년 파업과 관련해 2004년 대구지하철공사가 노조위원장 등 노조간부 4명을 직위해제 하자 경북지노위에 구제신청을 냈다. 문제는 노사의 면책합의였다. 협상 타결과 동시에 대구 지하철 노사는 단체협약을 통해 파업과 관련해 사측이 일체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약속한다는 면책합의를 했다. 그런데 공사측이 이를 어기고 2004년에 직위해제라는 불이익을 주자 노조가 경북 지노위에 구제신청을 낸 것.
하지만 경북지노위는 노조가 신청한 부당전직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해 심문회의를 거쳐 ‘기각’ 결정을 내렸다. 기각결정이 내려지자 대구지하철노조와 지역 노동계는 “경북지노위가 노사의 자율적 합의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노사간 ‘면책합의’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마저 뒤집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이 사건은 중앙노동위원회로 올라갔고 중노위는 공사측의 인사권 남용을 인정해 노조의 구제신청을 받아들였다.

대구지하철노조 관계자는 “경북 지노위는 2004년에도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사례가 한 건도 없어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바 있다”며 “공정성은 물론이고 전문성까지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례 3.
신속성 시비 _ 해고 구제, ‘세월아, 네월아’

2004년 엄청난 상처를 남기고 정리된 GS칼텍스 (옛 LG정유) 파업은 여러 명의 해고자를 남겼다. 이들 중 2005년 2월과 5월에 해고된 해고자들은 지방노동위원회를 거쳐 중앙노동위원회에까지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중앙노동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가 올해 7월에야 판결이 났다. 사건 당사자인 해고자 이모씨는 “만약 노동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원으로 갔다면 이미 1심판결이 나고 2심판결을 기다리고 있을 시기”라며 “해고는 생계문제와 직결, 시급을 다투는 사안인데도 늑장 판결을 일삼는 것은 노동위원회의 ‘구제 기능’이 마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 외에도 현재 노동위원회의 사건처리기간은 평균 1년을 넘는 게 보통이다. 이처럼 법원 판정보다 빠른 구제를 위해 만들어진 노동위원회가 오히려 법원보다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문제 때문에 노동위원회 ‘무용론’마저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조정실적, 너무 저조하다
노사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은 대체로 △공정성 △전문성 △신속성 △조정기능 미비 △강제성 부족 등으로 모아진다.


노동위원회의 운영 실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치는 조정성립률이다. 2005년 중앙노동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조정성립률은 2002년까지만 해도 절반에 못 미치는 40%를 유지하다 2003년 50.4%로 간신히 절반 수준에 다다랐고 2004년에 48.2%로 다시 떨어졌다가 지난해에는 57.5%로 조금 올랐다. <표 참조>

하지만 2005년 조정성립 건수 중 ‘조정안 수락’으로 성립된 조정은 전체 433건 중 114건에 불과하고 나머지 319건은 당사자 간 합의 또는 취하에 따른 것이다. 또, 조정 불성립의 경우 조정안 거부로 불성립 처리된 것은 ▲2001년 220건(조정안 수락은 100건) ▲2002년 192건(조정안 수락은 123건) ▲2003년 123건(조정안 수락은 94건) ▲2004년 144건(조정안 수락은 89건) ▲ 2005년 116건 (조정안 수락은 114건)으로, 노동위원회의 조정안이 받아들여 지지 않은 비율이 줄곧 더 높았다.

이처럼 조정 실적이 낮은 데는 인력의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미국이나 영국의 분쟁조정 기구의 경우 상근자만 150~200명에 달하지만 우리 노동위원회는 13개 노동위원회에 상임위원 17명, 조정실무 인력은 60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노동위원회 활동이 사후적 조정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현행법은 노동위원회에 의한 조정에 대해 사후조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는 단체교섭이 결렬된 후에 실시되는 조정으로, 분쟁이 발생하기 전에 개입하는 예방적 조정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분쟁상태가 발생한 이후에 조정을 개시할 경우 시간상 제약으로 인해 분쟁조정이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거나 형식에 치우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교섭타결에 필요한 적절한 시기를 놓칠 위험도 높다.

공정성, 중요도는 높고 만족도는 낮아
사실 노동위원회는 설립 당시에는 노동문제에 대한 법원의 전문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법원에 의한 해결에 비해 전문성과 신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혀 온 것도 이 때문. 하지만 설립 목적은 이미 현실과 많이 떨어져 있는 듯하다.

노사관계 조정업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정성 문제에 먼저 적신호가 들어왔다. 중앙노동위원회가 2005년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고객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공정성’ 항목은 중요도는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실제 만족도는 가장 낮게 나타났다. <그림 참조>

이 조사에서 전체 평균보다 낮게 나타난 항목은 ‘전문성’과 ‘공정성’ 두 항목뿐인데, 사실상 이 두 항목은 노동위원회의 공신력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어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한편, 공익위원 위촉 과정의 문제 때문에 공정성 시비가 더 많아진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공익위원 선출 방식은 노사단체 및 위원장이 추천하고 노동자 및 사용자위원이 투표로 선정하는 방식인데, 노사단체가 추천 및 투표 과정에서 이중으로 관여하기도 하고 판정 시 추천 단체의 이익을 과도하게 대변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1년 기다린 판정,
행정소송 앞에선 휴지조각

신속성과 법적 구속력 문제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현행법에 의하면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및 원직복직 판정을 내린다고 해도 사업주가 이를 따르지 않고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사실상 중앙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무용지물이 된다.

결국 해고노동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강제성도 없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을 기다리면서 허송세월을 한 셈이 되는 것.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가 신청 1년여 만에 ‘원직복직’ 판정을 받았지만 회시가 행정소송을 제기해 결국 해고를 당한 정모 씨는 “1년 넘게 (판결 때문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변변한 일자리도 갖지 못했다”며 “차라리 그 기간 동안 취직자리를 알아봤다면 가족들 생계가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신속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사건 적체를 꼽는다. 중노위가 지난해 12월 발행한 “심판사건 처리지침”은 “진행 중인 재심사건이 700여 건에 이르고 사건처리에 평균 150여일이 소요되는 등 재심사건의 적체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2007년 대비해 개편 서둘러야
이러한 문제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직 및 운영상의 비효율성, 제도의 미비도 한 몫하고 있다. 현재 노동위원회의 심사관의 법적 지위나 업무 범위 등을 정한 규정은 전무한 상태.

이런 속에서 인력 부족으로 인해 심사관들이 사건조사, 당사자 주장 파악, 안건정리 등의 업무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여러 가지 공정성 시비나 의혹에 휘말리기도 한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위상 문제도 있다. 현재 중노위는 12개 지방노동위원회를 총괄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강력한 통제력을 갖는 중앙단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노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중노위 상황으로는 증가하고 있는 사건을 처리하기만도 급급해, 지노위의 조정 및 심판을 위해 각종 정책이나 지침 등을 개발하거나 교육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이라고 털어놨다.

여러 논란 속에도 노동위원회는 노동관계를 조정하고 심판하는 유일한 기구다. 2007년 산별·복수노조 시대를 맞아 증가하게 될 노동 분쟁과 노사, 노노 간의 갈등을 처리할 유력한 후보로 노동위원회가 올라있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역부족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위원회의 개편을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