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고된 노동을 씻어주고 삶을 펴주는 세탁소
이웃의 고된 노동을 씻어주고 삶을 펴주는 세탁소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5.11.03 10:55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쇠다리미에서 스팀다리미까지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도서관
낡은 미닫이 유리문에 적힌 ‘수선’, 노동개혁도 이곳에 맡기자
[노동이 머문 오래된 공간을 찾다]충신동 일광세탁소 (2)

충신동 일광세탁소엔 없는 게 하나 있다. 대부분의 일터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시계가 벽에 걸려있지 않다.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손을 댄 일을 마쳐야 작업 끝. 일의 양에 따라 몸이 조금 빨라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와이셔츠 한 장을 다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그만의 ‘육하원칙’이 김영필의 시계다. 어쩌면 자신의 노동(력)을 빼앗기지 않은 산업화 이전에나 볼 수 있었던 장인의 노동을 여전히 지키는 이가 김영필일지 모른다.

리처드 던킨은 이렇게 말했다. “직업의 의미는 ‘해야 하는 일정한 양의 일’에서 ‘시간이라는 변수에 묶이는 고용과 수입의 지속적인 원천’으로 급격하게 변화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퇴색하거나 혹은 사라진 노동의 의미

50년 가까이 세탁을 한 김영필이지만 지금도 난감한 과제를 만나곤 한다. 얼마 전에는 한 봉제공장에서 실크 재킷을 가져왔다. 재봉질을 하는데 원단이 노루발(재봉을 할 때 원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에 끼여 앞으로 밀려 나가지 않자 원단에 초칠을 해서 박음질을 한 거다. 재킷을 납품했더니 초를 칠한 자국이 남아 클레임을 받았다. 여기저기 세탁소를 돌아다녀도 이 자국을 지울 수 없어 일광세탁소로 가져온 거다.
단순히 초 자국도 문제지만 이 얼룩을 없애려고 클리닝을 하면 옷에서 물이 빠지며 변색이 된다. 중국산 원단인데, 이런 현상은 처음 마주했다. 지금껏 몸에 익힌 방법이 아닌 새로운 기법을 찾아야 한다. 김영필은 자신이 만든 약품을 이용해 초 자국을 제거하며 세 번이나 클리닝을 되풀이하며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배웠으니 다음에 이런 제품이 오면 훨씬 쉽지. 어떻게 하는지 알아냈으니.” 이런 과정을 통해 김영필은 자신의 노동에 자긍심과 명예를 지킨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의 의미 혹은 노동윤리란 말을 꺼내면 고리타분하다. 일터에서 요구하거나 강제하는 규율이 있을 뿐이다. 노동자의 자긍심이나 명예, 노동의 의미나 목표와 같은 것을 잊어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데 맘이 편하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새로운 빈곤』에서 “노동윤리로 위장한 규율이 권장되었다”고 썼다. “자긍심이나 명예, 의미나 목표 따위는 잊어라. 날마다, 한 시간 한 시간을 온힘을 다해 일하라. 노력해야 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더라도, 노력의 의미를 알 수 없더라도.”

공장 시스템에서 노동은 자신의 노동에서 의미를 찾았던 이들의 사고를 변화시켜야 가능했다. 공장주나 공장장이 정한 규율과 방식에 따라 감독을 당하면서 공손히 일하기를 바란 거다. 씨를 뿌리고 곡식을 수확하는 날을 스스로 계획했던 농부의 노동이나 기술로 공정의 시작과 끝을 주관했던 장인의 노동이 동력으로 돌아가는 방적기가 있는 공장에서는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아예 걸림돌이었다. 기술의 연마나 발전, 수확량의 증대를 위한 노력도 기계는 필요로 하지 않았다. 곡식을 수확할 때의 기쁨이나 더 멋진 제품을 만들었을 때의 뿌듯함도 공장 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맹목적인 훈련을 통해 노동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복종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훌륭한 작업 결과에 대해서도 긍지를 갖지 않고, 자신들에게 의미가 사라진 일을 해내야 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김영필의 세탁소에서는 공장제도가 빼앗아간 노동자의 정신을 아직도 온전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노동윤리란 말은 산업혁명 이후 부정적인 요소가 더욱 강해졌다. 노동윤리의 시초는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가 아닐까 싶다. 근대 이전의 노동윤리는 노동을 통해 나와 가족이 먹고 살아가는 ‘가부장’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도록 했다. 공장 시스템이 등장하면서는 자본가가 봉건적 가부장의 위력으로 노동자에게 가하는 수단이 됐다. 프로테스탄티즘과 함께 이민 노동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며 아메리칸 드림이 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삶의 방식 또는 사명’으로 진화해 전 세계로 퍼졌다. “이제 성실한 노동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삶의 방식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버는 수단으로 선전되었다”고 바우만은 말한다. 현대의 노동(윤리)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더 풍족한 물질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와서는 노동이라는 말 자체가 폐기처분될 위기에 봉착했다. 노동도 여전히 존재하고, 그에 따른 윤리나 의미가 분명하게 있을 텐데, 노동은 마땅히 차지해야 할 단어의 공간마저도 빼앗기고 있다. 과학기술 문명의 놀라운 발전과 기업 성장의 화려함에 노동도, 노동윤리도, 그리고 노동자마저도 세상의 ‘실존’이 아닌 그림자로 대우받게 된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노동계급’을 파렴치한 욕심쟁이처럼 표현했다. “우리는 노동계급 일반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만족스런 임금을 받아 가겠다는 자긍심을 찾아볼 수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들이 하는 유일한 노력이란 되도록 많이 받고 일로서는 되도록 적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이 말은 지금도 권력자나 기업가들이 하는 말이고, 요즘 말하는 ‘노동개혁’에도 이런 의식에서 비롯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노동자들이 장인정신을 가지고 일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바우만이 말한 ‘장인과 장인의 노동 사이에 불꽃 튀는 사랑’을 무너뜨린 게 누구인가? ‘지난날 장인이 자신의 작업을 주관하던 시절에 자연스럽게 장인의 몸에 배어 있었던’ 정신과 윤리를 폭력적으로 말살시킨 게 무엇인가를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이 먼저 답한 뒤에 ‘노동계급’을 불평하거나 질타해야 옳았을 것이다. 노동이 사라지거나 노동자 정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노동과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공간(공장)과 시스템(자본주의)이 이를 억누르고 말살한 것은 아닐까? 김영필의 낡은 세탁소에서 문득 든 생각이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연탄에 달궈 쓰던 무쇠에서 스팀다리미로

1960년대 세탁소와 2015년 김영필의 세탁소에서 가장 큰 기술의 변화는 다리미다. 처음 세탁을 배울 때는 연탄불에 무쇠다리미 두 개를 달궈서 번갈아 가며 썼다. 이 무쇠다리미의 무게가 4킬로그램에 달했다니 하루 종일 다림질을 하면 손목이 빠질 듯하고 어깨에 묵직한 통증이 전해졌으리라.

“그땐 어떻게 다리미 온도를 맞춰요? 너무 달궈지면 옷이 타버릴 건데?” 무쇠를 다리기 좋게 온도를 맞추는 기술이 궁금했다.

“그래서 태워 먹기도 하지. 그래서 온도 맞추는 것도 기술이야. 일단 연탄불에 꾸어(구워) 놓으면 엄청 쎄(뜨겁)거든. 그것(온도)을 가늠하는 것이 손바닥을 딱 때리면 알아. 침을 (손가락에) 묻혀서 다리미 바닥에 때리면 ‘짜락’ 소리가 나. ‘짜락 짜락’ 소리를 듣고 이번에 너무 쎄다 그러면 여기에 물 대야가 있어. 대야에다 식혀. 어느 정도 식혔다하면 딱 (침을 묻혀) 때려보면, 아 이제 됐다 하면 다리지.”

그러다 전기다리미가 나왔고, 그 뒤에 현재 사용하는 스팀다리미가 등장했다.

“물을 뿌려야 잘 다려지잖아요. 스팀 나오기 전에는 어떻게 했어요?”

김영필은 다림판 출입구 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호스로 저짝에 물통이 있어가지고, 호스를 이리(작업대 중앙 천장 아래)로 해서 여기서 뿜압기를 쥐면 물을 뿜어. 그래가지고 다리미질을 했어. 그거 봤어?”

“아뇨. 못 봤는데요. 세차할 때 호스 끝에 달아 손잡이를 쥐면 물 나오는 분사기처럼요?”

“맞아. 그게 두 번째야. 그 전에는, 옛날에는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뿜압기도 못 갖추고 하는 사람은 여기에다가 물통을 놓고 물을 입에 머금어 뿌우.” 입 안에 물을 머금고 밖으로 뿜는 시늉을 한다. “지금도 내가 뿜으면 (물이) 먼지처럼 고르게 입에서 나와. 그게 습관화 되어서.”

“그것도 기술이네요?”

“그럼. 물 못 뿜는 사람은 덩어리째로 나오지. 그런데 우리는 기술화 되었지.”

세탁업을 하는 사람을 ‘땟물 빼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천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세탁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일이 고되기 때문에 자신들끼리 모여도 자신의 일을 천하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아침 6시에 문을 열면 밤 11시까지 일하는 게 일상이고(요즘 일광세탁소는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저녁 9시에 닫는다), 열기가 가득한 곳에서 뻘뻘 땀 흘려 일해야 하니 ‘중노동’이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노동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여전히 몸을 써 일하는 직업을 천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남아있다. 펜대를 잡아야 인간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김영필은 자긍심을 갖는다. 딸 둘, 아들 둘을 자식 넷을 ‘(옷) 땟물 빼서’ 키워 시집장가를 보내니 제 밥벌이들을 훌륭히 하고 있고, ‘옥탑방까지 하면 4층인 빌딩(다세대주택)’인 자신의 집을 지녔고, 일흔이 넘어도 국가에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벌어 세금 내가며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을 하겠다는 김영필은 낡은 세탁소지만 꿋꿋이 지키며 노동하는 게 남부럽지 않고, ‘애국’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누구보다도 깨끗한 옷을 반듯하게 다려 입고 세탁소 문을 연다. ‘펜대’ 잡은 이들보다 더 반듯한 셔츠에 칼주름 잡힌 양복바지를 입고 일한다. 자신이 나이 들어 일하는 모습이 남들에게 추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꼿꼿이 허리를 펴고 다림판 앞에 선다. 정년 없이 자신의 일을 하는 김영필을 동네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충신동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와 외국으로 이민을 갔던 이들이 나이 들어 한국에 오면 “왜 그런지 모르는데” 꼭 충신동을 찾는다. 와서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광세탁소와 여전히 그곳에서 꼿꼿한 자세로 일하는 김영필을 보고, “아직도 계시네요”하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집안 어른들이 사주를 보면 맞는 소린지는 모르지만 ‘너는 만인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산다.’ 그런데 크게 되기는 니미 세탁소야.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세탁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질 인물이 될 사주팔자였나. 그런 뜻이었나 봐.”

세탁소 작업대 앞에는 서울시 미래유산 지정 인증서가 액자에 걸려 있다. 반세기를 한 자리를 지킨 이곳은 대한민국이 소중히 여겨야 할 유산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 공간을 지키고 있는 김영필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노동에는 한국 근현대사가 새겨져 있고, 세탁소의 변천사가 박물관처럼 웅장하게 서있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친 여섯 시간의 인터뷰로 김영필의 모든 것을 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여섯 시간의 목소리만으로도 훌륭한 도서관 한 채를 내 몸에 지닌 것처럼 뿌듯함이 밀려온다.

이웃의 노동을 세탁하고 삶을 펴주다

“이제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지. 부모들이 그렇게 갈차(가르쳐) 놨으니까. 중노동은 피하려고 하고.”

어쩌면 노동이 사라진 시대인지 모른다. 노동의 가치가 월급의 액수, 정년 보장, 근무환경이나 복지로 측정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하고픈 일, 해야 할 일보다는 어느 직장에 들어가야 편하게 많은 돈을 벌 것인가가 진로이자 삶의 목표다. 김영필의 기술과 노동이 요즘 청년들에게는 하찮은 일로 보일지 모른다. 기술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넓고 번듯한 세탁 체인점을 차릴 수 있는 시절이 아닌가. 다리미 온도를 맞출 줄 몰라도, 얼룩을 빼지 못해도 세탁업을 할 수 있다. 세탁물만 수거해 본점 공장에 보내면 끝이다. 이렇게 운영해도 4평짜리 김영필의 낡은 세탁소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김영필의 세탁소에는 이런 곳과 비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노동의 자긍심이다. 고객이 세탁한 옷의 얼룩이 지워지지 않았다고 하면 체인점에서는 다시 본사로 되돌려 보낼 수밖에 없는, 그래서 세탁 체인점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김영필만의 떳떳함이 있다. 자신이 일단 옷을 맡았으면 그 결과물에 대해 김영필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새 옷처럼 만들어주어 고맙다는 감사인사도 받는다. 다 같은 다림질 같아도 김영필이 다림질한 옷은 그 옷의 주인이 입어보면 안다. 같은 옷이라도 김영필의 손을 거치면 입에서 저절로 “잘 다려졌네!”라는 말이 나온다. 김영필은 늘 하듯이 일했을 뿐인데, 옷 주인은 ‘다름’을 기가 막히게 안다. 이게 인간의 노동이 지닌 힘이자 가치다.

“다림질은 기술이야. 김만 쏜다고 해서 되는 거 아녀. 도수에 맞게 뿜어줘야 하고, 그 힘에 맞춰 똑같이 쏴줘야 주름이 딱 서거든. 펴지는 거야. 그냥 힘껏 물만 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녀.”

다림질이 대단한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숙련하면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쉽게 볼 일은 아니다. 설사 그 기술이 하찮다고 치더라도 그 노동을 마주하고, 완성하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노동의 결과물에 담긴 가치는 천양지차기 때문이다. 김영필의 노동에는 혼이 담겨 있다. 옷의 주인에게 전달하는 성실한 신뢰가 깃들어 있다.

바우만은 “노동은 평생 한 사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키는 일의 중심에 있다”고 했다.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을 타인으로 받을 때, 혹은 자기를 소개할 때 자신이 고용된 회사나 그 일터에서 하는 일을 말한다. 그래서 “노동이력은 삶의 여정이고, 한 사람이 삶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기록”이다. 그럼 김영필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이게 중노동이야. 그래서 이 기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힘이 드니까 대체로 술을 좋아해. 힘드니까 술을 마셔야 속도가 나고 일이 된다는 거야. 그런데 술 먹고 일하면 되겠냐고. 비록 술기운에 빨리 일을 할지언정 손님 의복을 맡아가지고 말이야.”

반백년을 한 자리에서 그 어려웠던 보릿고개, 아이엠에프 등을 이겨내고 김영필이 충신동 일광세탁소를지킬 수 있었던 비법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노동을 통해 이웃의 고된 땀이 밴 노동(옷)을 깨끗이 씻어주고 반듯이 다려주는 사랑을 담는 일.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위기라는 말도 부족해 골든타임이라고 협박(?)한다. 진짜 위기는 노동의 위기, 노동자의 위기다. 그 위기를 돌파하는 법은 노동하는 이가 자긍심을 갖게 하고, 자신의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회를 만드는 길은 아닐까. 일광세탁소 낡은 미닫이문에 붉은 글씨로 적힌 ‘수선’, 대한민국 경제도 이곳에 맡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