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의 행보는 ‘횡보’(橫步)?
한국노총의 행보는 ‘횡보’(橫步)?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5.11.21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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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만 위원장이 뽑은 칼은 무딘 날인가, 선 날인가
산하 조직 간 줄다리기 계속돼 ‘중대 결단’ 귀추 주목
▲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대 결단' 발표를 하고 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97년 이후 10여 년 만의 ‘노동 쓰나미’ 앞에서 그동안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지향해 오던 한국노총이 ‘횡보’(橫步 ; 앞으로 곧게 걷지 못하고 좌우로 걸음)하는 모양새다.

19일 오후 무렵,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중대 결단’을 선언하겠다고 알려오자 그 내용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그러한 탓인지 다음 날(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은 취재진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중대 결단’의 뚜껑이 열림과 동시에 한국노총 내 산별 연맹들 간의 이견도 드러났다.

김동만 위원장의 어조는 격앙돼 있었다. 그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하며 ‘신뢰’를 강조했다. 말 그대로 신뢰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 다는 뜻으로, 이날 기자회견은 김 위원장 개인에 있어서는 깊은 고민의 결과였다.

‘대의’를 강조하며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낸 김 위원장이 여당에 대한 배신감과, 일각에서 ‘야합’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 관계자에 따르면, ‘중대 결단’의 수위를 놓고 19일 밤늦게까지 내부에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만 위원장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부담 외에도, 정부·여당이 강경 일변도로 나서는 와중에 이를 돌파할 묘수가 없다는 점, 특히 새누리당의 ‘노동개혁 5대 법안’에 대한 산하 조직들 간의 의견 충돌 등이 그 배경으로 지목된다.

▲ 지난 9월 14일 열린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은 노사정 합의를 둘러싼 한국노총 내부의 갈등을 상징한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기자회견을 위해 김동만 위원장과 한국노총 지도부가 입장하자, 류근중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동차노련) 위원장은 “제대로 하라”며 소리쳤다. 이것이 단순 해프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류 위원장이 기자회견장에서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월호 이후에 최우선은 안전이다. 이번에 이인제(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법을 보면 비정규직에 유리한 법안이 들어가 있다. 제일 중요한 생명과 직결되는 데에는 비정규직 사용 못하는 게 들어있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이 직결되는 법안을 노총에서 반대해서 안 됐다고 말이 나오면 어떻게 할 거냐”

이러한 류 위원장의 발언은 최근 크게 늘어난 버스업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를 담고는 있지만, 결국 김동만 위원장의 ‘중대 결단’에 제동을 걸겠다는 인상을 준다.

반면, 제조업계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5대 법안으로 인해 전반적인 노동조건이 크게 후퇴할 수 있다. 실제로 기자회견장에서 한 언론사 기자의 질문이 김만재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위원장에게 향하자 그에게서는 류 위원장과는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김만재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합의 내용이 있지만, 결단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총 내부에서 그동안 합의를 해주는 쪽으로)입장 정리를 해왔다. 합의 이후에 여당에서 9월 20일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등 노동개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직도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데에 대해서 (내부에서)말이 많다. 폐기 촉구가 아니라 무효 선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한 답변의 핵심은 노사정 합의의 “무효 선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산별 연맹 위원장의 발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여전히 한국노총 내부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이날 발표된 기자회견은 당초보다 그 수위가 낮아졌다는 후문이다.

일단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노동계가 불리한 상황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내부의 진통 끝에 노사정 합의를 만들어낸 한국노총이 정부·여당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정부·여당의 ‘폭주’와 내부의 갈등까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신의 한 수’가 있을지, 있다면 무엇일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