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 제기
노동시장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 제기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5.12.09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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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진단과 경제의 ‘이중화’ 해법 모색
다양한 방안 제시 속 실현 주체의 문제 남아
▲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한국 노동시장 어디로 가는가? - 성장체제 전환과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새누리당이 발의한 ‘노동개혁 5대 법안’(노동5법)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연내 법안 처리를 강조면서, 이 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노동시장의 방향을 묻는 토론회가 8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의원실이 공동으로 주최한 ‘한국 노동시장 어디로 가는가? - 성장체제 전환과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에서는, 한국 노동시장 진단과 경제의 ‘이중화’ 해법에 대해 폭넓게 논의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우원식 의원(새정치연합)은 인사말에서 “상임위를 거치지 않고 (노동5법)합의처리는 불가능하다”면서, “이번 토론을 통해 박근혜 노동개악이 한국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논의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종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은 “기업들이 낮은 임금과 세금으로 돈을 버는 데 맛을 들였다”고 국내 기업을 비판했다. 이어 “총체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는 심각한 걱정에서 자리를 마련했다”며, 이날 토론회의 취지를 밝혔다.

사회를 맡은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서는 노동법 몇 가지를 바꾸는 것으로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바꾸기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는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과,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가 맡았다. 토론에는 박수근 한양대 법학과 교수, 임상훈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각각 나섰다.

한국 노동시장의 진단, 개혁방향은?

▲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노동시장을 진단하고, 개혁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통계청 및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노동시장의 현재에 대해 ▲ 고용불안정 ▲ 소득불평등 ▲ 노사관계 파편화 등으로 요약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노동자들이 전반적으로 고용불안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고용보호지수가 OECD 국가들 중 22위에 그친다는 점을 들었다. 또, 전체 노동자들 중에서 근속 1년 미만인 노동자의 비율이 31.9%, 2013년 한 해 동안 이직자의 수가 562만여 명에 달한다는 점 등을 들었다.

소득불평등 문제의 경우, ▲ 정규직도 예외 없이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 ▲ 노동소득 분배율 하락 ▲ 임금불평등 심화와 높은 저임금계층 비율 ▲ 사업체 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 10대 재벌 사내유보금 증가에도 감소한 실물투자액 등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또한, 김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조합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10% 안팎에 머무르는 현실과, 노사 간 힘의 균형이 사용자에게 쏠리는 문제를 지적했다. 노사관계가 개별 기업과 노동자 개인 사이의 관계로 국한되면서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노동시장의 세 가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네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 고용의 양과 질을 제고하고, 실직자의 생계를 보장하는 일자리 정책 ▲ 최고임금제 도입과 소득세율 인상, 최저임금 인상과 사각지대 해소 등의 임금 정책 ▲ 근로기준법에 따른 관리·감독 강화를 통한 노동인권 보호 ▲ 노조 교섭력 회복, 재벌개혁과 세제개혁, 금융규제로 소득주도 성장전략 채택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의 ‘이중화’와 성장체제의 전환

▲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전병유 교수에 따르면, ‘이중화’는 단순히 불평등이나 양극화를 넘어, 정치·제도로 인해 경제에서 내부자와 외부자로의 구분이 진행되는 과정이다. 이는 ‘9·15 노사정 합의’에서도 강조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연상시키는 개념이다.

전 교수는 이러한 이중화 문제의 핵심 원인으로 ‘대기업에 의한 수출 주도의 성장체제’를 지목했다. 그는 한국의 성장체제는 소수의 대기업이 부품을 조달해 이를 조립하여 완성품을 만들어 해외로 판매하는 ‘조립형 산업화’였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조립형 산업화’를 토대로 한 대기업-수출 주도 성장체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는 거시경제 불균형 현상이 제시되었다. 생산과 소득, 노동과 자본, 가계와 기업 등 각각 경제변수와 생산요소, 경제주체에 해당하는 부문들 내에서 불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이 피고용인에게 분배되는 비율)이 1% 증가할 때 국민경제의 총수요(가계소비, 기업투자, 정부지출, 순수출의 합)는 1.24% 증가한다는 포스트케인즈학파 이론에 근거한 자료를 제시했다.

결국 소득주도 성장전략을 기반으로 한 내수-소득 주도 성장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 교수는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른바 ‘내수주도 성장체제’는 지속가능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에 대한 요인으로 ▲ 조립형 생산체제의 한계 ▲ 중국의 성장과 동아시아 분업 구조 ▲ 임금-생산성 간 선순환 구조 구축 실패 ▲ 금융 및 자산에 대한 통제력 약화 등을 꼽았다.

이에 따라 정책적 방안으로는 ▲ 공유자산 형성을 통한 혁신정책 ▲ 공적 성격을 강화하는 자산정책 ▲ 노동의 이중화를 해결하는 소득정책 등을 제시했다.

노동시장 패러다임 전환의 주체는?

발제가 끝난 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참가자들은 두 전문가의 문제 인식에는 대체로 공감했다. 그러나 해법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을 보였다.

김진방 교수는 두 발제자가 제시한 해결방안의 당위성을 떠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정책이든 법규든 노동자들의 단결과 결단이 선행돼야 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노동시장 패러다임 전환의 ‘주체’가 누구인지의 문제로 귀결됐다.

이에 대해 이상호 연구위원은 노사정 합의 과정에서 드러난 노사정위원회의 ‘정치화’와 ‘형해화’ 문제를 지적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개혁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사정위원회가 이용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이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해 ‘반 박근혜’ 전선의 일부로 인식하면서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유종일 이사장은 “언제부터인가 정부가 끼어들면 좋은 일도 다 망한다”면서, “공유자산 전략은 주체들 사이의 신뢰와 협동에 따른 것인데, 여기에 관이 들어가면 있던 신뢰도 다 깨진다”고 비판했다.

이는 노동계가 노동시장 패러다임 전환의 주체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사용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부’ 주도의 논의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지적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한편, ‘노동5법’이 12월 임시국회를 통해 연내 처리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날 진행된 토론회는 다소 늦은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