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앞 11미터 상공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있다
부산시청 앞 11미터 상공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있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5.12.1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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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탁·한남교통 노동자 고공농성 200일 넘겨
사업장 달라도 노동권 보장 한마음
[커버스토리] 부산 고공농성 200일

부산시청 앞 광고탑 위에 두 명의 노동자가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갑작스러운 찬바람이 불어 닥친 11월 1일은 이들이 고공농성을 벌인지 200일이 되던 날이었다. 한 사람은 부산의 이름난 막걸리 ‘생탁’을 만들던 노동자였고, 또 다른 이는 부산의 한남교통에서 택시를 몰던 노동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일을 했지만, 이들의 바람은 같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는 것, 하루라도 빨리 땅 위를 밟는 것. 200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두 사람에게는 가장 절박한 일이 돼버렸다.

 ⓒ 송복남 생탁노조 총무
부산 대표 막걸리 ‘생탁’ 실상은…

막걸리라고 하면 서울 사람들이 ‘장수막걸리’를 먼저 떠올리듯, 부산 사람들은 ‘생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부산의 식당에서 막걸리를 달라고 하면 생탁이 나온다. 그만큼 생탁은 부산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술이다. 그러나 생탁을 마시면서 술을 빚는 노동자들을 떠올린 이는 몇이나 될까?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서 2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송복남 생탁노조 총무는 생탁 제조장에 대해 “근로기준법 치외법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새벽 4시에 출근했지만 심야수당을 받지 못했다. 생탁 노동자들이 한 달에 교통비 명목으로 받은 돈은 단돈 7만 원으로, 하루 왕복 버스비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회사는 ‘포괄임금제’를 이유로 새벽 4시부터 2시간 동안의 심야수당은 물론, 대체 휴무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명확한 생탁과 같은 경우에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이외에도 생탁의 노동환경은 열악하기로 이미 알려져 있다. 한 달에 단 이틀에 불과한 휴무, 연장근로 수당 및 휴일근로 수당 미지급, 곰팡이와 쥐로 가득한 휴게실과 샤워장, 삶은 달걀 또는 고구마가 전부인 휴일 식사까지. 한 만화는 생탁의 이 같은 현실을 그려내며 ‘노동자지옥’으로 표현했다.

노동자들은 일을 하다 다쳐도 회사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대부분이 1년 단위로 계약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50~60대인 탓에 재계약에 실패하면 쉽게 취직을 할 수도 없다. 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위치한 장림제조장의 경우 촉탁계약직의 비중은 공장 내 노동자들 중 3분의 2가 넘었다.

노조 결성과 파업, 이후 드러난 문제들

그러던 2013년 말, 구내식당에 서류철 한 권이 놓인다. 생탁 노동자들은 회사가 취업규칙 변경을 위해 갖다놓으면서 처음으로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된다. 거기에는 연차휴가를 기간 내에 쓰지 않으면 소멸된다고 적혀 있었다. 연차휴가가 있어도 몰라서 못 썼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민주노총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부산합동양조현장위원회’(생탁노조) 결성의 도화선이 된다. 이후 생탁노조는 회사에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2014년 4월 29일, 파업에 돌입한다.

노조의 파업으로 묻혀 있던 사실들이 알려졌다. 생탁은 사장만 41명(현재는 40명)에 달했고, 그중 장림제조장에만 25명의 사장(현재는 24명)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부산지역의 토호 세력으로,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이었다. 이들 중 경영에 관여하는 사람은 6명뿐이지만, 41명의 사장은 한 달에 2,300만 원씩 배당을 챙겼다. 이들이 한 해 받는 돈을 합하면 100억 원에 달한다. 정확한 정보는 회사가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한해 매출은 200억 원 가량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1972년 박정희 정부는 주류 업체의 대형화를 명분으로 지역의 양조장들을 통폐합했다. ‘주류 통폐합’으로 생탁은 각 양조장의 사장들이 동업을 하는 형태가 됐다.
한편,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사실도 속속 드러났다. 생탁은 지하에서 뽑아 올린 천연암반수로 만들어진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조사 결과, 일부 제품이 수돗물로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나 과징금이 부과됐다. 또한 스테인리스 술통을 세척할 때 독성이 강한 무기염소를 사용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섭씨 10도 이하에서 냉장 유통해야 하는 막걸리를 상온에 노출된 채로 배송해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 송복남 생탁노조 총무
하루 4시간 20분만 일하는 택시기사?

부산시청 앞에서 고공농성 중인 다른 한 사람은 심정보 한남교통분회 쟁의부장이다. 한남교통분회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민주택시노동조합’이다. 부산지역 택시회사 한남교통 노동자들이 받는 기본급은 한 달 25일을 만근으로 할 때, 2교대 근무자가 51만 2천 원, 1차량 근무자가 54만 4천 원이었다. 하루에 12~13시간 동안 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차량으로 일하는 노동자의 기본급은 시간당 약 1,813원 꼴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 5,580원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시간은 4시간 20분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위반은 아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는 한남교통이 ‘사납금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들이 하루 사납금을 채우는 데 4시간 20분이 걸린다고 간주하면, 나머지 8시간은 택시기사 자신의 추가 수입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라는 얘기다.

한편, 2014년 1월 28일에 제정된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은 택시의 구입 및 운행에 드는 비용(택시 구입비, 유류비, 세차비, 교통사고처리비)을 택시기사에게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택시회사는 사납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택시업계에서는 ‘전액관리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남교통 역시 내년 10월부터는 전액관리제로 전환해야 한다.

 ⓒ 송복남 생탁노조 총무
부가세 경감세액이 ‘생산수당’으로

한남교통분회는 회사가 부가세 경감세액을 택시기사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문제도 지적했다. 부가세 경감세액이란, 조세특례제한법에 의해 택시기사가 사용한 유류에 붙는 부가세의 90%를 감면해 이를 택시기사에게 환급하는 돈이다. 그러나 한남교통 외에도 많은 택시회사들이 갖은 편법을 동원해 이를 빼돌렸다. 이에 대해 현행법상 부가세 경감세액 지급 주체가 택시회사에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남교통의 경우 부가세 경감세액이 월 10만 원의 생산수당으로 지급됐다. 이에 대해 심정보 쟁의부장은 “택시는 물건을 생산하는 제조업이 아닌데도 생산수당을 주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공농성을 시작 후 ‘부가세 경감세액’ 항목이 생겼다고 전했다. 대신 회사는 사납금을 하루 4천 원 인상했다. 이를 한 달로 계산하면 10만 원으로, 이전과 달라진 바가 없는 셈이다. 한편, 국토교통부가 작년 6월 23일에 개정·발표한 ‘택시 부가세 경감세액 사용지침’에 따르면, 택시 부가세 경감세액은 전액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 송복남 생탁노조 총무
복수노조의 교섭창구단일화, 우려가 현실로

생탁과 한남교통은 사업장은 물론 업종도 다르지만, 두 곳의 노동조합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복수노조 체제에서 ‘교섭창구단일화’가 두 노조 입장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생탁노조의 경우, 설립 당시 조합원 수는 45명에 달했다. 하지만 새 노조가 생기고, 조합원들이 대거 새 노조로 가면서 조합원 수가 9명으로 줄어 소수 노조가 됐다. 한남교통분회는 기존 노조에서 조합원들이 빠져나온 경우로, 설립 당시부터 소수 노조였다.

두 노조가 각 사측과 교섭을 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생탁과 한남교통 사측은 소수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는 명분으로 교섭창구단일화를 내세웠다. 송복남 총무는 “사측에서는 말 잘 듣는 노동조합이 생겼으니 우리와는 교섭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심정보 쟁의부장은 “회사에서 돈 안 들이고 구사대를 고용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구사대’는 한남교통에 있던 한국노총 산하의 노동조합을 가리킨다. 그만큼 다수 노조와 소수 노조 간의 갈등이 깊다.

정부는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도입하면서 기대되는 효과 몇 개를 꼽았다. 그것은 “단일 노조가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가 사라지고, 현장 노동자의 다양한 의사와 실수요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노조 활동의 투명성과 민주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탁과 한남교통의 사례를 본다면, 당초에 정부가 기대했던 효과를 거뒀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2011년 7월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될 당시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농성 200일, 이대로 잊히나

송복남과 심정보. 두 노동자의 고공농성도 200일을 훌쩍 넘겼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은 편이었다. 지난 9월에는 이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부산시청 앞으로 ‘희망버스’가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느 ‘장기투쟁’ 사업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외로운 싸움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이들이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30미터 상공에서 비바람과 도시의 소음을 견디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땅 위로 내려올 명분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노사 간 교섭이 진행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상황은 낙관적이지 못하다. 농성 중인 두 사람 모두 따뜻한 방에서 잠 한 숨 푹 자보고 싶다고 전했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바람이지만, 200일 넘게 고공농성을 이어온 이들에게는 가장 간절한 바람이 돼버렸다. 한편, 부산합동양조 장림제조장 사장 24명은 생탁노조 조합원 8명을 상대로 모두 1억 2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 송복남 생탁노조 총무
미니인터뷰(1) 심정보 공공운수노조 한남교통분회 쟁의부장

“택시문제 짊어졌다는 신념으로 버티겠다”

제2노조를 설립하면서 기존 노조와의 갈등은 없었나?

“많다. 지금도 겪고 있다. 그 사람들이 노조 활동에 대해 방해를 한다. 다른 지역의 민주택시 조합원들이 회사 앞에서 연대 집회를 한 후로 회사에서는 사내 화장실에 못 들어오게 했다. 결국 회사 앞 식당에 얘기해서 그쪽 화장실을 쓰기로 했는데, 기존 노조 조합원들이 차로 입구를 막아버려 노상방뇨를 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 앞에 농성장을 만들었을 때, 밥을 해먹으면 기존 노조에서 수도를 잠가버렸다. 회사에서 한 게 아니고 기존 노조에서 한 거다.”

사측은 현재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회사 측과 교섭을 하려고 해도 기존 노조에서 적극적으로 반대를 한다. 교섭창구단일화를 명분으로 자기들하고만 교섭을 하자고 한다. 사실 사측에서 교섭을 하자고 한 적도 있었다. 경찰 정보과 형사, 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 기존 노조, 사측 등이 사무실을 내주겠다고 우리와 5자간 구두합의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기존 노조에서 그걸 깼다.”

두 분이서 대화는 많이 하는가?

“처음에는 많이 했는데, 지금은 대화 소재가 다 떨어졌다. 부부들도 24시간 내내 같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현안에 대해서 가끔씩 이야기를 한다.”

지금까지 버틴 원동력은 무엇인가?

“저 같은 경우에는 제일 큰 게 신념이다. 우리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 우리 요구가 무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부산의 택시 문제 전체를 자임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비록 불법이긴 하지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동지들과 함께 한다는 것,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있을 것 같다.”

현장에 남아있는 노동자들과 소통은 되는지?

“소통은 잘 되고 있다. 조합원 수가 조금 되다 보니까 거의 매일 여기로 온다. 그런데 가능하면 밑에서 일어나는 사항을 알려고 안 한다. 잘 될 것 같다가 갑자기 안 됐을 경우에 실망감이 크기 때문이다. 협상이 끝나서 타결이 됐을 때 얘기를 해달라고 한다.”

지상으로 내려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따뜻한 방에서 몸부림치면서 혼자서 한 번 자보고 싶다. 공간이 좁고 전기가 안 들어오다 보니까 춥고, 소음이 심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서 넓은 방에서 보일러 틀어놓고 몸부림치면서 자보는 게 제일 큰 바람이다.”

미니인터뷰(2) 송복남 부산일반노조 부산합동양조현장위원회 총무

“단체교섭권 인정받겠다는 의지로 이겨낼 것”

건강은 어떤가?

“밑에 있는 사수대 동지들이 걱정할까봐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좋지는 않다. 크레인을 한 번 부르는 비용이 30만 원이라 의료진이 올라오기도 어렵다. 소화기 계통은 두 사람 다 엉망이다. 부정맥도 있어서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데 추워지면 큰 일 난다고 한다. 밑에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고혈압 증세도 있다. 그래도 밑에 있는 동지들을 대할 때에는 웃고, 인사차 물어보면 건강하다고 말한다.”

지금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

“매일 갇혀 있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조그만 소리에도 신경이 쓰인다. 도로 위에 있다 보니 자동차 소음에 시달리고 매연도 올라온다. 소음, 진동, 매연 때문에 상당히 힘들다. 매일 면봉으로 닦는데도 귓구멍 안이 시커멓다.”

지금까지 버틴 원동력은 무엇인가?

“오로지 승리해서 내려가야 한다는 의지, 소수 노동조합으로 단체교섭권을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아무 힘이 없지 않나. 고공농성은 단식보다 더 높은 투쟁 강도인데, 이마저도 안 된다면 극단적인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다. 사측이 만든 어용노조가 인원 수 많다고 그쪽하고만 이야기하고, 우리와는 얘기 못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현재 파업에 참가하는 인원은?

“원래는 9명이었는데, 진덕진 조합원께서 장기 투쟁으로 인한 피로누적과 스트레스로 집에서 홀로 돌아가셨다. 지금은 8명이 함께하고 있다.”

파업 후 달라진 게 있다면?

“많이 바뀌었다. 파업을 시작하고부터 사내에 있는 목욕탕, 휴게실부터 수리했다. 1980년대에 지어진 목욕탕인데, 타일 색깔이 누렇고 샤워기도 없었다. 이전까지는 술통으로 쓰던 스테인리스 통에 물을 받아서 오토바이 안전모를 바가지로 썼다. 휴게실은 바퀴벌레, 쥐, 곰팡이로 엉망이었다. 식당도 정말 지저분했는데 개·보수했다. 자기들도 부끄러운 줄 아는 거다. 그리고 지금은 일요일에 무조건 쉰다. 월급도 1인당 20~30만 원 정도 인상했다.”

지상으로 내려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나서 시원한 맥주 한 캔 하고 싶다. 그 다음에는 조용한 곳에서 푹 자고 싶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 정도를 자는데, 깊이 못 잔다. 팬티 바람에 뽀송한 이불에서 잠 한 번 실컷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