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건·의료도 민영화 나서나
정부, 보건·의료도 민영화 나서나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6.01.1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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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업 범주는 대통령령, 기재부가 위원회 장악
의료민영화, 열악한 보건·의료노동자에 치명타
[사건]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논란

국회가 노동개혁 법안 통과를 놓고 연일 시끄럽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번 임시회기 내에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과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등의 법안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5개 노동개혁 법안을 ‘노동개악’으로 규정하고 반대하고 있다. 특히 파견근로자법과 기간제근로자법은 절대불가라는 입장이다. 모두의 이목이 5개 노동개혁 법안 통과에 쏠리고 있는 지금,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관심을 끄는 다른 법안이 있다. 사실 이 법안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활성화 법안의 핵심이기도 하다. 바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다.

 ⓒ 장원석 기자 wsjang@laborplus.co.kr
3년 넘게 잠자던 서비스기본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기본법)은 이명박 정부 당시 ‘서비스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2012년 7월 국회에 처음 제출되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정부는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의를 만들어 5년마다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서비스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며, 추진상황은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점검한다.

또, 서비스산업 연구개발 개념의 정립과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연구개발 성과를 정부가 인증하고 재정지원과 금융지원 등 연구개발 성과에 대한 지원을 더하며 필요한 시책의 수립ㆍ시행과 우수 활용 사례를 발굴ㆍ지원한다.

교육에 있어서도 전문 인력 양성 정책을 수립ㆍ추진하고, 서비스산업 특성화 기관ㆍ단체, 고등학교ㆍ대학 등을 서비스산업 특성화 교육기관으로 지정하여 지원한다.

정부는 입법예고에서 “서비스산업은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핵심 산업 분야이나,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이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쟁력 강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추진 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서비스산업이 대한민국 경제 성장 동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 한다”고 법안 제정의 이유를 밝혔다.

정부는 이 법안의 통과를 통해 우리경제가 제조업과 수출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서비스업과 내수가 같이 경제 성장을 이끄는 ‘쌍끌이’구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설명을 들으면 서비스기본법은 현재 청년 문제와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비스업 취업자는 전체 취업자의 70%, 생산은 전체의 60%에 달하며 고용에 이어서도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제조업에 반해 서비스업 취업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서비스기본법의 필요성에 힘을 준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는 연일 노동개혁 5개법과 함께 서비스기본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대국민담화 통해 서비스기본법의 통과를 촉구한데 이어 지속적으로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황교안 총리와 최경환 부총리 역시 이에 가세하고 있으며 새누리당 역시 긴급재정·경제명령까지 거론하며 입법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비스업 범주는 대통령 마음

하지만 서비스기본법은 상정 이후 줄곧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결국 18대 국회의 회기가 종료됨에 따라 폐기되었다가 19대 국회에 들어 다시 제출되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서비스기본법의 대상에 보건·의료와 같은 공공 서비스가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비스산업산업발전기본법 2조는 서비스산업을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보건·의료라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령으로 지정한다면 얼마든지 서비스산업이 될 수 있다.

야당과 보건·의료분야 단체들은 연일 기자회견을 하며 서비스기본법의 국회 통과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서비스기본법이 통과된다면 지금까지 보건·의료분야에서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던 많은 규제들이 완화되거나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영리병원 등이 도입되어 의료민영화·영리화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서비스기본법 관련 토론회에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할 근거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미 의원도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공공성이 강하게 침해받을 수 있다”고 말했고 김용익 의원은 “기재부가 의료산업분야의 발전을 원한다면 의료장비를 국산화하거나 의료인력의 고용 확대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장원석 기자 wsjang@laborplus.co.kr
보건·의료도 기재부가 쥐락펴락?

더불어 우려되는 부분은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의 구성과 권한에 대한 문제이다. 위원회는 위원장 2명과 당연직 위원 및 10명 이내의 위촉의원을 포함 총 30명 이내로 구성되는데 위원장은 기획재정부장관과 위촉위원이 맡는다. 위원장을 민·관이 공동으로 맡기는 하지만 위촉위원은 각 부처 장관이 추천해 기재부 장관이 위촉하는 방식이다. 서비스산업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전문가의 비판적 의견을 듣기보다 이런 사람들을 배제하고 친정부적 인사들을 배치한 밀실위원회가 될 공산이 높아 보인다.

또 서비스전기본법에서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에서 기본계획 등을 수립 후 위원회에 보고하면 위원회에서는 심의 의결을 진행하게 되어 있다. 결국 각 서비스 분야를 책임지는 주무부서는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고 원래 타 부처에 비해 권한이 강했던 기재부가 위원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이를 이용해 보건·의료 등 공공서비스의 영역에 시장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게 된 것이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를 통해 직접 관련 부처의 정책 사안이나 법령 등을 개폐할 수 있는 권한까지 기재부에 부여한다”고 지적하며 “명백한 기재부 권한 독점 법안 이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성명서에서 “서비스기본법 통과로 보건의료정책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총괄하지 못하고 기획재정부장관이 좌지우지하게 되면 보건의료정책은 경제적 논리에 따라 급속히 영리추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영리병원 도입, 건강보험 붕괴 등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공공성 마지노선마저 급격하게 무너지게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공서비스인 보건·의료 영역에 시장논리를 대입한다면 음압병동이 사라져 수용시설이 부족했던 지난 메르스 사태처럼 제2, 제3의 의료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서비스기본법은 의료민영화나 특정 정책을 염두에 둔 법이 아니고 오히려 의료나 교육과 같이 범국민적 접근성이 큰 서비스에 대해 공공성이 유지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명백하게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 의료·보건 분야를 명시적으로 제외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의료 민영화 판짜기 들어가나

지난 3월,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대표 간의 3자 회동에서는 서비스기본법에 대해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한다면 합의할 수 있다’는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갑자기 의료·보건 분야를 포함하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지금도 야당은 보건·의료분야를 제외한다면 서비스기본법은 즉시 통과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서비스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을 위해 내놓은 자료도 문제가 있었다. 지난 10월 국회에서 열린 ‘서비스산업과 청년일자리에 대한 토론회’에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는 청년 1,000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대상자 중 88.4%는 서비스법에 찬성했다는 내용이었다. 또 청년층의 80%가 서비스산업 분야에서 일하기를 희망하고 50.6%가 서비스기본법 도입 시 청년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서비스업종에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층이 80%나 나온 것은 전체 희망 취업분야에서 농업이나 어업같은 1차 산업과 건설·제조업을 뺀 수치라 가능했다. 인지도에 대한 설문에서도 90.7%는 서비스기본법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이름만 들어봤을 뿐 내용은 알지 못했다. 법안의 내용도 모른 채 법안 도입에 대해 찬성하는 인원이 88%가 넘었다고 말한 셈이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내놓은 산업분야별 등록규제에서도 제조업(338개)에 비해 서비스업이 (3,601개)로 월등히 많은 것처럼 설명하고 있으나 이 서비스업은 금융·보험, 교육, 보건·의료, 정보 통신·출판·방송, 관광·문화·스포츠로 정부가 묶은 5대 서비스산업을 포함해 운송·창고, 공공기관, 연구개발 등 총 15개 업종을 망라한 수치이다.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을 두고 일각에서는 ‘의료민영화를 본격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는 미국 의료서비스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민간의료보험의 범람으로 일부 공공의료보험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1972년 2,100만 명에서 2006년 4,700만 명이 되었고 병원비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도 연간 200만 명에 달한다. 미국 가계 파산의 주된 원인으로 의료비가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태국과 싱가포르는 영리병원의 발달로 의료관광을 발달시키고 있다. 태국은 연간 2조 원 규모, 150만 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하지만 태국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내국인 의료서비스 기회와 질이 악화되고 있으며 지역 간, 계층 간 불평등이 매우 심한 상태라 주장한다.

국내의 경우는 어떤가. 의료서비스의 질이나 가격 경쟁 면에서 어중간한 수준이라고 볼 때, 의료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영리 추구의 대상이 외국인 유치보다 내국인이 주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난 12월 3일, 경제활성화 법안 중 하나인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이하 의료지원법)가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의료지원법은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고 해외환자의 유치를 활성화하며 해외 환자 의료사고 시 절차 등을 기본 내용으로 한다. 의료지원법은 그간 야당과 보건·의료단체가 주장한 비판을 상당부분 수용했다. 보험사의 외국인환자 유치 조항도 삭제하고 해외에서 설립한 영리의료법인의 국내 우회투자금지조항을 신설했으며 의료광고는 성형외과, 피부과에 한정했다. 금융세제 혜택 역시 해외 진출 의료기관에 한해서 지원하며 원격진료는 외국환자의 사후관리에만 사용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비영리법인으로 제한되어왔던 국내 의료법인이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정부가 세금으로 이를 지원해준다는 것, 어떤 방식이든 광고와 원격진로의 길이 열렸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이러한 길이 넓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12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입원료 본인 부담률이 인상되고 보건복지부가 중국계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제주도 설립을 허가함에 따라 이 법으로 본격적으로 공공분야에 대한 민영화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 장원석 기자 wsjang@laborplus.co.kr
보건·의료부문 인력난 가속 전망

보건·의료부문은 언제나 고질적 인력부족과 업무가중에 시달린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에 따르면 입원환자 2.5명당 1명의 간호사를 두도록 되어있다. 이는 미국(1.5:1), 일본(1.7:1)에 모자라는 수치이며 이마저도 80%가 넘는 의료기관들이 위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위반시 처벌이 가볍고 실제 단속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OECD 국가별 간호인력당 환자 수는 유럽 주요 10개국 평균(8.8:1)에 3.5배(31:1)에 달한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보통 3교대 근무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2013년 실태조사 결과 16.9%에 이르는 높은 이직률을 보이고 있는데 의사들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서울대병원에서는 성과제를 도입하려는 병원 측과 노조 간의 갈등이 지속되었다. 성과제로 인해 받지 않아도 되는 진료나 치료를 받게 하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서비스기본법이 재정된다면 핵심전문인력인 의사와 간호사에게는 성과제가 빠르게 확산되고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 등의 비정규직 비율이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부문에 있어 공공성과 전문성이 저하되고 서비스의 질의 격차가 생기며 메르스 사태 등 의료재난 시 대응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야당과 보건·의료단체들은 대안으로 서비스기본법에 핵심 공공분야에 대한 제한규정을 신설하거나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로 서비스업의 범주를 규정하는 안, 통합적 서비스산업의 육성 법안보다 각 서비스업별로 제정되어 있는 산업진흥법을 해당 서비스업종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개정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경제·민생을 외치며 적극적으로 경제·노동 관련 법안의 연내 처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고 노동개혁 5법이 연말 임시국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서비스기본법이 정치적 ‘거래’를 통해 통과될 가능성도 있어 보건·의료 업계와 노동자들은 연말 국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