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소비진작-경기회복, 밑그림은 그렸으나
임금인상-소비진작-경기회복, 밑그림은 그렸으나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6.01.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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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으로 보는 한미일 경제해법
‘계획’만으론 움직이지 않는 현실
[사건]임금인상과 경기회복의 관계

한파(寒波)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썼던 한 해였다. 경기와 경기순환을 두고 다소의 온도차가 있지만, 썩 낙관적인 전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봄바람에도 한여름 불볕더위에도 좀처럼 얼어붙은 채 녹을 줄 몰랐던 경기진작을 위해,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붙잡은 콘셉트는 ‘소비촉진’이었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해 소비를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밑그림은 비슷했지만, 구도나 화법은 제각각이었다.

 ⓒ 참여와혁신 DB
시작은 창대했으나...

2016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는 아직 본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열띠게 달아올랐다. 세월호 사고 이후 1년 반 가량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지속적인 경제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임금인상을 통한 내수증대를 유도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기업인들과의 만남 자리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민간기업의 임금인상을 강요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번지자, 정부 차원에서 최저임금을 종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 수장의 이와 같은 발언은 정책 차원에서 발상의 전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정책은 경기침체가 총수요의 부족으로 나타난다고 보고, 이자율 하락을 통한 투자지출의 증대나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총수요를 늘리는 방향을 유도했다. 이와 같은 정책이 소득증대로 파급되어 ‘승수효과’ 식의 경기회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는 이른바 ‘낙수효과’다. 예를 들어 법인세를 인하하면 일단 법인세를 내는 기업들의 부담이 감소하는데, 이렇게 부담을 감소시키면 기업의 투자여력을 늘리고, 이는 다시 다른 경제 주체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데 유효하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론과 실제가 잘 맞아들지 않는 부분인데, 최 부총리의 발언은 정책이 기대한 효과를 거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 들어 10여 차례 넘게 부동산 관련 정책이 선보였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가계부채 문제,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비롯한 사회 양극화의 심화, 또 많은 이들이 문제제기를 했던 것처럼 대기업은 유보자금이 늘고 있음에도 투자의 증대는 거기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일감 몰아주기 등 사회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소비촉진, 경제의 화두로 자리매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은 다시 말해, 최저임금 인상이 소비와 고용, 빈곤 등의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하여 긍정적인 예상이 가능할 때 추진될 것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 Congressional Budget Office)은 오바마 행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법안이 빈곤상태와 고용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정계는 물론이고, 학계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의회예산국은 의회조사국(CSR), 연방회계감사원(GAO), 기술평가원(OTA)과 함께 미 의회의 4대 입법 보조기관 중 하나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법안은 두 가지의 상반된 효과를 보여준다. 2016년 약 4,5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빈곤층 중 약 1,650만 명의 임금을 증대시키고, 약 90만 명이 빈곤층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반면, 약 50만 개의 취약계층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의 경우 공식 빈곤층은 1인 가구의 경우 연소득 1만 1,140달러 미만, 4인 가구의 경우 2만 2,310만 달러 미만에 해당하는 계층이다. 1달러 당 1,186.8원의 환율 기준으로는, 1,322만 952원, 2,647만 7,508원 수준이다.

연구결과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노동비용 상승은 미숙련 노동자들은 물론, 비용절감을 위한 고용주들의 기술투자 확대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도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고용을 유지하는 저임금 근로자들의 임금 증가는 전체적인 구매력 감소를 일정 부분 상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저임금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소비성향을 갖는 만큼 재화와 용역에 대한 수요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임금상승은 가격상승과 이윤감소도 초래하는 만큼 경기진작 효과에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최저임금 법안과 관련한 내용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소비촉진’에 대한 부분이다. 일본의 경우도 정부가 나서 최저임금 인상을 주도한 것도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해서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7월 최저임금을 이전보다 18엔 높은 798엔(전국 평균)으로 인상했다. 2.3%의 인상폭인데, 역대 최대의 인상폭이다. 1엔 당 9.93원의 환율로 계산했을 때 7,923.90원 수준이다.

또한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지난해 11월 열린 경제·재정 자문회의에서 최저임금을 2016년부터 매년 3%씩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가능한 한 빠르게 1,000엔 수준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계획에 접근하는 수준이다.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방침은 지난해 11월 국무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의 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소비 확대에 가장 유효한 정책은 임금 및 상여금 인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침체된 일본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유효하다는 의미다. 아베 정부는 2020년까지 GDP 600조엔 달성을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는데, GDP의 60% 가량을 차지하는 개인소비 확대는 꼭 필요하다.

이와 같은 추세는 일본 기업들의 평균임금 인상률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 최대 노동단체인 렌고(連合)는 지난해 춘투 기간 노사교섭 집계를 보면 평균 임금인상률은 2.4%로 이전 해보다 0.2%p 늘었다고 밝혔다. 이는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인상률이라고 한다.

생각만큼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비롯한 임금인상을 통한 소비진작, 다시 이를 통한 경기회복이라는 밑그림은 그럼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지는 미국의 기업들이 임금인상에는 미온적이지만, 근로자들의 이직을 막기 위해서 복리후생 패키지에 집중하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미국 인적자원관리협회(SHRM)는 지난해 근로자 복리후생 연구보고서에서 미국의 노동시장이 개선되고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직원 이직을 막기 위해 더 다양한 종류의 복리후생과 특전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SHRM이 450개 이상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약 35%의 기업이 전반적으로 복리후생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해의 경우 28% 수준이었다. 구체적인 복리후생의 내용은 의료보험에서 체력단련비, 사내 카페테리아 비용 보조 등 수백 가지에 달한다. 에브렌 에센 조사팀장은 “미국 내 많은 산업에서 임금이 거의 상승하지 않은 가운데 이처럼 복리후생을 늘릴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기업은 직원 유치와 이탈 방지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실업률은 최근 5.1%까지 내려가는 등 채용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임금인상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중분 이후에도 시간당 평균임금은 해마다 약 2%씩, 총 12% 상승에 그쳤다.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연 3%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서 앞서 살펴본 복리후생은 크게 늘었는데, 2001년부터 집계하면 임금이 40% 인상되는 동안 복리후생은 60%가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진보성향 사회과학연구소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노동경제학자 게리 버틀리스도 지적하고 있다. “거의 모든 고용지표에서 지난 6년 사이 노동력 수요가 증가했는데, 그런 환경치고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임금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1,300만 명이 일자리를 새로 얻는 동안에도 연간 임금인상률은 2%선 이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과연 노동시장의 안정이라고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30년 이래 최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많은 이들이 취업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은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 버틀리스 연구원의 지적이다.

그는 오늘날 “조직화된 노동자(organized labor)들의 역사적인 세력 약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지목했다. 즉 “경제상황과 무관하게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 민간부문 노동자 중 1/3에 가깝던 노동조합 조합원 비율이 오늘날 7%까지 떨어진 현상을 덧붙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급여와 수당을 요구하고 획득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300배 연봉의 CEO, 불균형한 임금인상

그런 가운데 미국에서는 많게는 300배 넘게 차이가 나는 최고경영자(CEO)와 근로자 간의 연봉 비교를 통해, 소득불평등에 대한 논란이 점화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차기 대권주자들 역시 이와 같은 문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 내 매출규모 350위 이내 기업의 CEO와 근로자 연봉 비율의 평균은 303:1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한화로 계산하면 CEO는 약 186억 원, 근로자는 6,400만 원 수준이다.

앨리샤 데이비스 EPI 연구원은 “이는 단순히 불평등의 상징이 아니다”라며 “경영진의 치솟는 연봉이 근로자들에게 갈 수 있는 소득을 빨아들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CEO의 연봉 증가 추세가 상위 0.1% 고소득자의 연봉 증가 추세보다 훨씬 가파르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로렌스 미셸 EPI 소장은 “초고액 연봉은 CEO의 재능에 대한 시장의 수요와 관계가 없다”며 “아주 생산성이 뛰어나 그런 연봉을 받는 게 아니라 자기 연봉을 결정하는 데 더 많은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경영진들의 초고액연봉을 삭감하면 소득불평등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까? 미국의 데모스연구소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미국 10대 기업의 CEO 연봉을 100만 달러로 삭감해, 차액을 그 회사 근로자들에게 똑같이 나눠줄 때 불평등이 얼마나 개선될 지에 대한 내용이다. 근로자들은 평균 1,419달러씩 연봉이 인상되며, 이는 미국 근로자들의 평균연봉 대비 4~5%의 인상효과다.

실제로 카드결제 대행업체인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CEO 댄 프라이스는 지난해 4월 100만 달러가 넘는 자신의 연봉을 7만 달러로 깎고, 대신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5만 달러로 설정하는 실험적인 경영을 도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해당 기업은 매출과 이익에서 순항 중이다.

100만 달러를 버는 한 사람의 소비규모와, 100달러를 버는 만 명의 사람들의 소비규모가 어떻게 차이가 날지는 분명하다. 단순한 비교이지만, 임금인상을 통한 소비진작과 경기회복이라는 국가 경제정책의 큰 연주에서 불협화음이 들릴 만한 소지가 어디인지를 찾아보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1월 1일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시간당 6,030원, 월 209시간 근로 기준으로 126만 270원이다. 당초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될 무렵의 분위기나 기대치에 비하면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선 좀 더 파격적인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졌어야 했다”며 “공익위원 중재안을 볼 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영세사업자·중소기업의 강한 반발을 우려해 기대에 못 미치는 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통해 소득양극화 완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한계산업’ 퇴출, 산업구조 고도화 등 우리 사회와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기회를 다음으로 미룬 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제 막 달력의 첫 장을 넘긴 2016년 한 해가 한국 경제에 어떤 분수령이 될 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