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화역(驛)으로 달리는 서울 지하철
외주화역(驛)으로 달리는 서울 지하철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2.1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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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지하철공사 ‘정비 외주화’ 방안 검토
양 공사 차량부문 4개 노조 강력 반발
[사건]서울 지하철 통합 보고서 논란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5~8호선)에 대한 통합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측이 수행한 용역 보고서 내용에 대해 차량부문 4개 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 전동차 정비 업무의 일부를 자회사에서 맡는 방안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지하철노조 차량지부(지부장 임헌용), 공공운수노조 서울지하철비정규지부(지부장 최인수), 서울도시철도노조 차량본부(본부장 김정섭), 서울도시철도ENG노조 전동차정비본부(본부장 한태희) 등 차량부문 노조들은 연대기구인 ‘차량4노조연대’를 꾸렸다. 이들의 요구는 통합 지하철공사의 전동차 정비 직영화이다.

ⓒ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
‘참여형 노사관계’ 말하더니 외주화가 웬 말

2016년 2월 현재 서울 시내를 지나는 지하철(광역전철) 노선은 1~9호선을 포함하여 14개에 달한다. 이 중 1기 지하철(1~4호선)은 서울메트로가, 2기 지하철(5~8호선)은 서울도시철도가 운영한다. 2014년 12월 서울시는 두 지하철공사를 2016년 말까지 통합 완료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양 공사 통합으로 총 연장 300.1km, 하루 평균 이용객 68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철공사가 탄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계획 발표 당시 양 공사 통합으로 경영 효율화를 이룰 것이지만, 인위적인 인력감축이나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박 시장이 내건 이른바 ‘노동이사제’를 통한 참여형 노사관계 정립 방안은 숱한 화제를 낳기도 했다.

서울시가 양 공사 통합을 선언한 이후 1년여 만인 2015년 12월 7일, ‘서울지하철 통합혁신을 위한 조직인사분야 설계용역’ 최종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양 공사 통합 방안에 대해 KMAC 측이 서울시로부터 용역을 받아 작성한 것이다. 이로써 서울 지하철 양 공사 통합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런데 KMAC의 보고서에는 당초 박원순 시장이 밝혔던 내용과는 달리, 일부 업무가 자회사 또는 민간위탁 등의 형태로 전환되는 내용의 방안이 담겼다. 이 중에서도 전동차 정비 업무를 외주화 하는 방안에 대해 차량4노조연대가 이에 반발해 정비 업무 직영화를 요구하고 나서 논란이 일 전망이다.

우선, 차량4노조연대는 공사 직영과 자회사는 고용관계에서부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자회사 소속 정규직 노동자라 하더라도 자회사와 모회사가 도급 계약을 맺기 때문에 결국 공사로부터 간접 고용된 형태라는 것이다.

KMAC 보고서 역시 공사 정규직(직영)과 자회사 정규직을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공사에서 지분을 출자해 만든 자회사라 하더라도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노동조합과 다르다. 이러한 맥락에서 KMAC 보고서는 공사가 자회사에게 업무를 맡기는 것을 외주화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KMAC는 외주화 활용 단점으로 “노사분규, 외주업체 파산 시 운영의 어려움”과 “빈번한 계약업체의 교체로 기술축적을 방해” 등을 꼽았다. 이는 외주화를 민간위탁 형태로 한정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때에 따라 외주화의 범주를 다르게 적용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KMAC 측은 일부 전동차 정비 업무 일부를 자회사에 위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비록 일부라 할지라도 민간위탁 방식의 외주화는 안전에 대한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업무’에 대해, 단순 반복 업무로서 직영으로 할 정도는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중정비 일부 제외하고 외주화

KMAC에서 이와 같은 방안을 내놓긴 했지만, 이미 지금의 양 공사 모두 전동차 정비 업무가 상당 부분 외주화돼있다.

전동차 정비 업무는 크게 경정비와 중정비로 나뉜다. 경정비는 다시 1일 주기의 일상검사와 3·6·12·18개월 주기의 월상검사로 나뉘는데, 서울메트로의 경우 경정비 업무를 (주)프로종합관리라는 민간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그러나 최인수 지부장에 따르면, 각 작업 공정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 최 지부장은 “의자를 여는 건 저희(외주업체 노동자)가 하는데, 닫는 건 정규직이 한다”며, 서울메트로 소속 정규직 노동자와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가 같은 현장에서 근무한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메트로 창동차량기지(4호선)에서 일하는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다.

한편,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에는 중정비 업무를 자회사(서울도시철도공사 지분 100%)인 서울도시철도ENG(주)에 맡기고 있다. 서울도시철도ENG가 맡은 중정비 업무는 차체파트, 대차파트, 회전기, 기계장비 등으로 나뉜다. 전동차 중정비 과정으로 보면, 입창검사와 출창검사, 컴퓨터·인버터장치 정비, 제어·제동장치 정비, 대차 탐상(探傷, 열차 바퀴 부분의 요철을 검사하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공정을 서울도시철도ENG가 담당한다.그런데 정비 업무의 외주화는 양 공사 이외에 국내·외 다른 철도 운영기관에서도 다방면에 걸쳐 진행된 상태

다. KMAC의 보고서는 몇 가지 외주화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부산교통공사(부산 1~4호선), 대구도시철도(대구 1~3호선)가 중정비를 외주화했다. 특히 서울9호선운영(주)은 경정비와 중정비 모두 외주화했다.

그럼에도 KMAC는 무분별한 외주화 검토는 지양했다고 밝혔다. KMAC 보고서에 따르면, 업무 별로 외주화 여부를 선정할 때의 방향성은 ▲ 새로운 외주화 부문 도출 지양 ▲ 양 공사에 동일한 외주화 판단 기준 적용 ▲ 안전성 강화 등이다.

이에 따라 KMAC 측은 직영 또는 외주화 판단 기준을 전략적 연계성, 기술전문성, 안전영향도, 고객서비스영향도 등 네 가지 지표로 계량화했다. 그 결과 전동차 정비 업무에 관해서는 중정비 업무 중에서 입·출창, 대차 탐상, 컴퓨터·인버터장치 정비, 제어·제동장치 정비 등의 업무만 직영으로 하고, 나머지 정비 업무는 모두 자회사에 위탁(외주화) 하는 방안을 도출했다.

그런데 문제는 KMAC 측이 이러한 검토 결과를 낸 이유였다. KMAC의 보고서에 의하면, “직영우선검토업무로 도출되긴 하였으나, 위 공정(직영 검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차량4노조연대는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정비에 중요도가 낮은 업무가 어디 있느냐”는 반응이다.

또 한 가지 KMAC의 보고서에 언급된 내용은 “양 공사의 운영방향성도 자회사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양 공사 모두 전동차 정비 업무의 일부 또는 전체를 자회사에 위탁하는 방안을 추구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도 차량4노조연대는 “양 공사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 서울도시철도 ENG노동조합
“자회사 안정적 운영 중” vs “민간위탁보다 더 하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KMAC에서 내놓은 자회사 위탁 방안이 이미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시행 중인 체계와 거의 같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KMAC는 보고서에서 “현재 도시철도공사에서 자회사로 안정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에 대해서도 노조는 다른 입장이다. 임헌용 지부장은 서울메트로 직원들로부터 의견수렴을 해서 만들어졌다는 보고서가 현재 서울도시철도공사 시스템하고 똑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요성이라기보다는 답을 정해놓고 과정을 맞춘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인수 지부장도 KMAC의 검토 결과에 대해 “현장 실사도 하지 않은 채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노조 측은 현재 서울도시철도ENG의 운영이 KMAC의 보고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안정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기업의 자회사’와는 실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김정섭 본부장은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도시철도ENG의 관계가 단순 도급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록 서울도시철도ENG가 자회사 형태이긴 하나, 독립된 사업 영역을 가지지 않고, 단지 동일한 차량기지 내에서 이루어지는 정비의 일부를 위탁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이 받는 처우를 고려하면 사실상 민간위탁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서울도시철도ENG노조에 따르면, 2016년 현재 가장 낮은 직급인 7급 1호봉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기본급(128만 원)에 각종 수당(17만 원)까지 합해서 145만 원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2016년도 서울시 생활형임금 수준(149만 3,305원)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 노조에서는 서울시에 질의하였으나 “간접고용 분야는 현재 생활임금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태희 본부장은 “모회사가 자회사와 도급 계약을 맺는 형태이지만 비용 지출 내역에 대해 모회사로부터 감사를 받게 돼 자회사가 독립적으로 임금을 인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은 정비 업무의 어려움도 호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차령이 20년이 넘어가 노후화 되면서 정비지침서와 맞지 않는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열악한 처우로 인해 퇴직자가 늘어나면서 기술이 축적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태희 본부장은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자잘한 정비 오류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모회사에서 잘못된 부품을 보급하여 자회사 소속 기술자가 이를 지적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 서울메트로
노사정합의로 해법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이유들로 차량4노조연대는 전동차 정비 업무가 자회사 위탁 방식이 아닌 통합 지하철공사 직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서울시는 지하철 양 공사 통합의 쟁점을 노·사·정 간 합의를 통해 풀기로 결정했다. 서울시와 양 공사 노조는 ‘노사정 실무책임자협의회’를 구성하고, 2월 말까지 합의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이에 차량4노조연대는 노사정협의체에서 양 공사 민간위탁업체 및 자회사 소속 정비노동자들의 통합 지하철공사 직접고용을 요구할 방침이다.

특히 서울메트로의 경우 지난해 4월 비정규직노조가 경정비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24일 간의 천막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의회 민생실천위원회의 중재로 이들을 2017년 1월 1일 자로 통합 지하철공사의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노·사·정이 합의했다. 그러나 KMAC의 보고서에 전동차 정비 업무 외주화 방안이 제시되면서 당시의 합의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 노사정협의체에서 이 문제가 다뤄질 수 있도록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 공사 노조 내부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김정섭 본부장에 따르면, 서울도시철도노조의 경우 조합원들이 서울도시철도ENG 소속 노동자들의 사정과 주장에 대해 전반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서울지하철노조는 상황이 썩 좋지 못하다. 임헌용 지부장은 최근에 입사한 신규 조합원들 중심으로 민간위탁업체 노동자들을 통합 지하철공사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대한 회의적 시각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임 지부장은 앞으로 계속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차량4노조연대는 2월 16일 회의를 통해 노사정합의 마무리 기한인 2월 말까지의 투쟁 계획을 세부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직급 통합과 교대제 등 양 공사 통합을 놓고 숱한 쟁점들이 떠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들이 상대적으로 무게가 덜 쏠려 있는 정비 업무 직영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