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191억 보전금, 적자인가 복지예산인가
연 2,191억 보전금, 적자인가 복지예산인가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4.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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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깎자’ 업계는 ‘안 된다’
대부분이 환승비용 … 요소비용 줄여라?
[사건]서울 시내버스 재정지원금 논란

2004년 서울 시내버스는 큰 변화를 겪었다. 민영제로 운영되던 것이 공영제와의 중간 형태인 준공영제로 바뀌었고, 광역(R)·간선(B)·지선(G)·순환(Y) 네 가지 유형의 버스가 도입됐다. 서울시는 그에 맞춰 25개 자치구를 0권역부터 7권역까지 8개 권역으로 나누고 노선을 전면 개편했다. 이 같은 변화는 서울시민은 물론 인접한 경기지역 주민들에게서도 호평을 받았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을 대통령으로 만든 공신이 시내버스 대개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에서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버스업체에 지급한 연 평균 2,191억 원의 보조금은 해마다 논란거리였다. 그러자 최근 서울시는 버스업체에 운송원가 절감을 위한 자구노력을 주문하고 나섰다.

▲ ⓒ 참여와혁신 DB

민간운영 폐단 막기 위해 준공영제 도입했으나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전국에서 서울시가 처음으로 도입했다. 노선의 관리는 시에서 맡되, 버스의 운행은 민간업체에서 맡는 방식이다. 사실상 버스업체는 차량을 관리하고 각 노선을 운행하기만 하면 된다. 운송수입금의 경우 서울시에서 일괄적으로 거둬들인 다음 각 버스업체별로 운행실적에 따라 비용을 정산하여 지급한다. 쉽게 말해 서울시가 버스업체들과의 계약을 통해 운행 수수료를 지급하는 셈이다.

서울시는 버스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안정적인 노선 운행과 과다경쟁 완화, 시민안전 제고 등을 기대효과로 꼽았다. 한 마디로 대중교통으로서 갖춰야 할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준공영제 시행 이전에는 서울시가 요금수준을 결정하는 것 이외에는 시내버스 운수업에 개입할 여지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업체들은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내기 위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위주로만 노선을 편성했다. 또한 이곳저곳에 버스를 세우면서 노선의 굴곡이 심해져 가까운 거리임에도 목적지까지 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해진 시간 내에 1대의 차량으로 최대한 많은 운행횟수를 확보하기 위해 버스업체는 운전기사들에게 난폭운전을 암암리에 종용하기도 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버스준공영제의 성과는 뚜렷하다. 굴곡노선이 상당 부분 개선돼 운행시간이 단축됐고, 비수익노선에도 안정적인 운행이 이뤄졌다. 무엇보다 난폭운전도 대부분 사라져 사고율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러한 변화는 시민들의 시내버스 이용 만족도를 높였다. 서울시에 따르면, 준공영제 시행 초기인 2008년 70.66점이던 시민 만족도는 꾸준히 상승해 2013년 78.1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역할이 큰 폭으로 늘어나 66개 업체, 7,500여 대에 달하는 버스를 소수의 담당 공무원이 맡게 됐다. 이는 잦은 인사이동과 겹치면서 관리능력의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계로 지적된 부분은 서울시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버스업체에 매년 지원하는 보조금은 해마다 편차가 크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증가 추세에 있다.

▲ 서울 시내버스 재정지원 추이, 자료 : 서울시(2015)

‘수입 < 지출’이니 적자다?

서울시에서 버스업체에 지급하는 운송비용은 ‘시내버스 표준원가에 따른 운송비용 정산지침’에 고시된 버스 한 대당 표준운송원가에 따른다. 그리고 표준운송원가는 곧 버스업체들이 서울시로부터 시내버스 운행의 대가로 받는 금액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어디선가 돈을 끌어와야 한다. 버스준공영제 이후 서울시의 재정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운송수입금이 표준운송원가를 보상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 차액만큼 서울시 재정으로 버스업체에 지원해온 것이다.

버스업체의 입장에서 보자면 매년 서울시로부터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는 셈인데, 해마다 2,000억 원이 넘는 시 재정이 투입되면서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에서 사용한 ‘버스업체의 방만한 경영’, ‘혈세 낭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적자 누적’ 등의 표현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최근 한 신문은 “준공영제인 서울 시내버스의 임원 최고 연봉이 5억 4,900만 원에 달한다”며, “자본잠식 상태인 17개 회사마저 임원 인건비를 줄이기는커녕 서울시의 임원 인건비 표준액을 넘겨 지급해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의 보도는 지난해 6월 대중교통 요금 인상 이후 악화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분노를 요약하자면, ‘내 주머니 털어서 사업주만 배불렸다’ 정도가 될 듯하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바로 흔히 ‘적자’라고 표현하는 서울시 재정지원금의 성격이다. 서울시버스노동조합 관계자는 시 재정지원금을 적자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운송수입금이 표준운송원가에 크게 못 미치는 까닭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 2009년 서울 시내버스 재정지원금 구성, 자료 : 서울시(2011)

서울시가 버스업체에 매년 지급하는 재정지원금의 상당 부분은 환승할인 혜택에 따른 운송수입금 손실분이다. 서울시는 2004년 버스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교통카드 이용 승객에게 환승할인제를 시행했다. 2016년 기준 간선 및 지선버스의 경우 10km까지 기본요금 1,200원, 이후 5km마다 100원이 더 붙는다. 만약 13km를 1회 환승하여 이동한다면 환승할인제가 없을 때에는 2,400원을 내야 하지만, 실제로는 기본요금 1,200원에 추가요금 100원을 더해 1,300원만 내면 된다. 승객 입장에서는 1,100원을 아낀 셈이지만, 버스업체는 그만큼 손실을 본다.

특히 2009년 수도권 통합 환승할인제가 전면 시행된 이후 환승이용객이 늘면서 업체의 손실도 늘어나고 있다. 시내버스만 놓고 보면, 환승손실액은 2007년 3,713억 원에서 2012년 4,611억 원으로 5년 새 900억 가까이 늘었다. 서울시정연구원은 2009년 기준 서울시 부담 환승손실 보전금을 약 2,253억 원으로 추산했다. 같은 해 버스업체에 지급한 재정지원금 2,900억 원의 77%에 달하는 액수다. 시민들의 편익 향상 측면에서 보자면 재정지원금의 성격은 ‘적자보전금’이라기보다는 ‘복지비용’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건비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시내버스 재정지원금 서울시 살림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서울시는 운송비용 절감을 위한 자구노력을 버스업체들에 요구하고 있다. 재정지원금 지급의 기준이 되는 표준운송원가를 줄이기 위한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표준운송원가를 정할 때 업계와의 협의를 거치는데, 운전기사 인건비와 연료비, 사업주의 이윤 등을 줄이는 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운전직 노동자들의 인건비 관리 적정성에 대해 매년 서울시가 시행하는 시내버스 평가 항목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표준운송원가에서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아끼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매뉴얼을 통해 “적정 운전자 고용 및 효율적인 인력운영을 통해 운송수지를 개선한 버스회사에 인센티브 부여”가 평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 인건비 집행률 ▲ 운전직 장기근속자 가점 ▲ 수당 관리 적정성 등 3개의 세부항목에 대해 각 10점씩 모두 30점이 배정돼 있다. 이와 관련해 노동조합은 ‘무리수’라고 지적한다. 운전기사들 월급 깎아서 시 재정을 메울 거냐는 비판이다.

문제가 되는 세부항목은 인건비 집행률과 수당 관리 적정성 항목이다. 인건비 집행률의 경우, 별도로 지정된 급여 한도에 비해 실제 급여 지급액이 얼마인지를 계산해 집행률이 낮을수록 높은 평가점수를 받는다. 이 항목에서 만점(10점)을 받기 위해서는 급여 한도보다 최소 4%는 적은 급여를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 2015년 시내버스 평가 매뉴얼 중 인건비 항목(서울시버스노동조합 제공)

또한 수당 관리 적정성 항목이 경우에는 쉬프트(교대근무)수당, 휴일근로수당, 기타 연장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서울시내 전체 업체의 차량 1대당 수당 평균금액을 산출해 평가대상 업체의 수당과 비교하는 식이다. 이 항목에서 만점(10점)을 받기 위해서는 전체 업체의 평균 수당 대비 75% 이하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매뉴얼에 따르면, 평가대상 업체에서 운전직 노동자에게 전체 업체의 평균과 같은 수준의 수당을 지급하더라도 6점이 감점된다.

서울시버스노동조합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적게 줄수록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평과 결과에 따라 사업주가 가져가는 성과이윤이 달라져 결국 서울시 재정 절감의 부담은 고스란히 현장 노동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매년 업체 평가 결과에 따라 66개 버스업체의 순위를 매겨 이윤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수당을 줄이기 위해서는 연장근로나 휴일근로를 줄여야 한다. 결국 운전직 노동자를 더 채용해야 하지만, 서울시에서 버스 1대당 적정 운전기사 수를 2.77명으로 정해놓고 있어 그마저도 쉽지 않다.

▲ ⓒ 참여와혁신 DB

환승할인의 사회적 편익 따져봐야

언론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재정지원금이 시민들의 ‘혈세’인 만큼 관리의 허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운전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 연간 2천억 원이 넘게 투입되는 시 재정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버스요금 인상이 매년 언급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버스 환승 때 발생하는 5km당 100원의 추가요금 이외에 환승요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주민 1인당 연 평균 61만 2천 원(일 평균 1,678원)의 환승할인 혜택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환승 때마다 단 몇 백 원이라도 추가요금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시에서는 요금인상 카드를 쉽게 꺼내기 어렵다.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칠 게 빤하기 때문이다.

환승요금을 별도로 받는 방안이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또 한 가지 이유는 대중교통 서비스가 갖는 성격 때문이다. 이른바 ‘보편적 이동권’의 보장은 진부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원하는 목적지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중앙정부 또는 지자체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소득계층 간 불평등을 대중교통 환승할인제를 시행한 배경으로 지목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정책아카이브’ 웹페이지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소개돼 있다. ‘정책아카이브’에 따르면, 지하철역 부근에 사는 사람과 먼 곳에 사는 사람 간의 형평성과 시내 중심부에 사는 사람과 외곽에 사는 사람 간의 불평등이 대중교통 환승할인제 시행의 핵심 배경이다. 지하철역 부근에 살거나 시내 중심부에 사는 사람은 지하철역이 없거나 외곽지역에 사는 사람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데도 더 적은 대중교통 요금을 부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연간 2천여 억 원의 재정지원금에 대해 서울시에서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복지혜택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돈이 새는 구멍은 막아야겠지만, 재정지원금을 마냥 줄여야 한다는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서울시와 업계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