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구조조정 시즌 2
증권사 구조조정 시즌 2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6.05.09 14:1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융당국의 ‘대형화·특화’ 전략, 대규모 지각변동 시작
급격한 재편으로 인한 대량실직사태 우려
[사건]다시 돌아온 증권사 구조조정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돌아왔다. 여의도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저녁이면 사람들은 윤중로를 걸으며 봄의 정취를 한껏 누린다. 이렇게 봄이 왔건만 여의도에는 아직도 겨울인 곳이 있다. 오히려 한겨울보다 마음은 춥고 고달프다.
지난 4년 동안 증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 8천여 명이 짐을 싸야 했다. 비중으로 따지면 18%, 5명 중 1명꼴이다. 많은 관계자들은 2015년에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이 덜해지자 ‘줄일 만큼 줄였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증권업종을 둘러싼 내외적 상황은 구조조정 ‘시즌 2’를 예고하고 있다.

금융당국, 증권사 ‘레드오션’ 판단

그간 증권 전문가들은 국내 증권업종이 규모에 비해 많은 증권사가 난립하여 과도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꾸준하게 지적해왔다. 금융당국이 지난 2007년 이후, 증권사 신규 진입을 허용하면서 2008년 40개였던 국내 증권사 수는 꾸준하게 늘어 현재는 65개에 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여 2013년 말, 증권사 구조조정 방안을 담은 ‘증권회사 인수합병(M&A) 촉진방안’을 내놓았다. 2013년 이전까지 증권사의 구조조정은 M&A보다는 주로 업황에 따라 내부적인 구조조정을 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금융위는 촉진방안을 발표하며 “선진국에 비해 영세한 규모의 62개 증권회사가 위탁매매업 위주의 유사한 영업구조로 한정된 국내시장에서 영업 중”이라며 “과도한 수수료 경쟁 등으로 증권업계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어 M&A를 통한 구조조정을 촉진한다”고 밝혔다. 이 촉진방안에서는 크게 ▲M&A 추진 증권회사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경영부진 증권회사에 대한 적기시정조치 기준 강화 ▲M&A를 제약하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제도 개선을 담고 있다.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경영 부실 증권사는 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 “M&A를 추진하는 회사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며 우선적으로 업계가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리할 것임을 확인했다.

ⓒ참여와혁신DB

이후 2014년 말까지 주식시장의 불황이 계속되면서 증권사간 M&A와 구조조정은 계속되었다. 전문가들은 수수료 인하, 혹은 일부 구조조정을 통해서는 증권사들이 더 이상 실적을 개선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NH농협금융지주가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고 대만의 유안타 증권이 동양증권을 인수했으며 메리츠종금증권은 아이엠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등 M&A가 끊이지 않았고 그 여파에 더해 각 증권사들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2014년까지 6,000명 이상이 구조조정 되었다.

ⓒ참여와혁신DB

포인트는 ‘초대형 IB’와 ‘특화 증권사’

2015년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중국 증시의 반등으로 인해 전체 증권사들의 영업이익이 좋아졌고 이로 인해 빈번하던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이제 줄 만큼 줄였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 기회에 증권업의 체질을 완전히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밝힌 증권사 개편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대형 증권사들을 초대형 투자은행(IB)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016년 4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NH투자증권과 우리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 등 대형증권사 간 인수합병은 금융투자산업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며 “증권사들의 대형화 노력에 맞춰 금융당국은 대형 IB 육성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 위원장은 “투자은행의 적극적인 위험 분담과 이에 따른 완충 역할을 할 자기자본 확보 등 대형화가 필요하다”며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전면 개편해 자본시장의 기업금융 기능을 강화하고 초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해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하도록 만들겠다는 금융당국의 계획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금융위는 올해 상반기 중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전면 개편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러한 기조 속에 대형 증권사들의 몸집불리기는 계속 되는 상황이다. 대우증권을 인수해 몸집을 불린 미래에셋증권은 자기자본이 5조 8,000억 원에 달해 단숨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해 1위를 고수해오던 NH투자증권은 4조 5,505억 원으로 한 계단 내려갔다. 현대증권을 인수하게 된 KB투자증권은 3조 9,000억 원의 자기자본이 되어 18위에서 3위로 수직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초대형 증권사들의 등장은 금융투자업계가 기존 위탁매매(브로커리지)에서 IB로 재편되는 신호탄”이라 말한다. 위탁매매에서 나오는 수수료로 이득을 보는 구조는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는 좋으나 변동성이 높은 요즘에는 매우 불확실한 이익을 가져다 준다. 증권사간의 경쟁 가중으로 인해 수수료율 자체가 내려간 것 또한 중요한 원인이다. 그래서 대형화를 통한 IB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자기자본 3조 이하의 종합금융투자회사가 아닌 대형 증권사들까지 잠재적 M&A 대상으로 보기도 한다.

중소 증권사들에 대한 금융당국의 방향은 ‘특화’에 맞춰져 있다. 금융위는 2015년 10월 14일, ‘금융투자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으며 중소·벤처기업 기업금융에 특화된 중기 특화 증권사의 지정과 운영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그 결과로 2016년 4월 14일, ‘중소기업 특화 금융투자회사’ 6개사(IBK투자증권, 유안타증권, 유진투자증권, KB투자증권, 코리아에셋투자증권, 키움증권)를 선정했다. 금융위는 “중소·벤처기업의 기업금융업무에 특화된 중소형 증권사를 육성해 중소·벤처기업의 자금조달 기회를 확대하려는 의도”라 설명하며 6개 증권사 선정을 통해 ▲중소형 증권사 중소·벤처기업 IB업무역량의 강화 ▲자금조달 활성화 ▲투자 후 회수의 용이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 자본조달, M&A 등에 특화된 기업금융을 할 수 있는 중소증권사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참여와혁신DB
ⓒ참여와혁신DB
ⓒ참여와혁신DB

금융당국의 목표는 명확하다. 포화된 증권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증권사들을 개편하는 것이다. 국내 증권시장이 포화된 상태라는 점은 많은 증권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금융당국이 숫자를 줄이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업계에서는 초대형, 특화 증권사 등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중소형 증권사들 활로 찾지만

초대형 증권사에 편입되지 않는 증권사, 중기특화 중소 증권사가 되지 못한 나머지 증권사들은 생존에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거나 자금동원력을 가지고 있는 증권사는 수익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올해부터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크라우드펀딩(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 시장은 중기특화 증권사 선정에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소식에 SK증권, HMC증권, IBK투자증권, 코리아에셋투자증권, KTB투자증권, 키움증권, 유진투자증권 등이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을 등록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도 중소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영역이다. 교보증권, HMC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이미 2015년부터 PF사업을 통해 상당한 양의 수익을 얻었으며 대신증권 등도 속속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또한 직접 부동산 투자를 하거나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등의 인수를 통해 소형 종합금융투자회사로 변신을 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투자 여력이 없는 상당수의 증권사들에겐 M&A나 청산과 같은 방향이 남아있을 뿐이다. 금융당국의 각종 제도 변화 역시 이러한 증권사들을 자연적으로 ‘도태’시키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다. 이러한 경향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올해부터 변한 NCR(영업용순자본비율)이다.

NCR은 증권사의 국제결제은행비율(BIS)에 해당하는 것으로 NCR이 높으면 높을수록 증권사의 재정건전성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권사는 이 비율이 100%를 밑돌면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 권고를 받는다. 50% 미만은 ‘경영개선 요구’, 0% 미만으로 내려가면 ‘경영개선 명령’으로 바뀐다. 작년까지 NCR은 ‘영업용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눈 값을 의미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NCR을 구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뺀 값을 다시 ‘인가업무 단위별 필요유지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으로 바뀐 것이다.

변화된 NCR기준을 기존 NCR기준과 비교하면 자기자본 1조 이상의 대형 증권사들은 NCR이 높아지고 3,000억 이하인 소형 증권사들은 NCR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당장 금융당국의 권고를 받지 않더라도 건전성 악화로 인해 소형 증권사들의 영업 활동 등이 위축되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새로운 NCR 기준을 적용하면 100% 밑으로 내려가는 토러스증권의 경우는 금융당국에 자문업, 투자일임업 등록업무를 반납하는 방식으로 NCR비율을 맞출 방침이고 리딩투자증권은 매각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 NCR비율 위험군에 속한 포함한 일부 증권사들은 매각이나 청산 절차를 준비하고 외국계 증권사들도 증자나 폐업을 생각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중기특화 증권사에게는 완화된 NCR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는데 몇몇 특화 증권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증권사들은 자연스레 정리하겠다는 의도를 밝힌 것이다.

대량실직사태 예고, 연착륙 위한 개입 필요

금융투자협회의 조사결과, 2015년 말 국내 증권사의 임직원 수는 3만 6,096명으로 2011년 말, 4만 4,060명보다 7,964(18.1%)명 줄어든 수치다.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 더불어 지속되는 증권시장 불황, 비대면 업무의 증가, ‘로보 어드바이져’의 등장 등 외부 환경의 악화로 인해 이번에도 증권사에 강력한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인수된 기업의 임직원들은 구조조정의 칼날이 목에 들어와 있다. 미래에셋증권에 인수된 대우증권은 중복되는 부분(IT 등)에 대한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중복되는 인력을 포함, 4~500명 선의 인력을 직무전환을 통해 내보내지 않겠냐는 관측이 있다. 이자용 대우증권 노동조합 위원장 역시 “본사의 경우 중복업무부분에 대한 직군전환 위험성, 지점 같은 경우는 원격지 발령이나 지점 통폐합으로 인한 구조조정 문제가 가장 큰 상황이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에 인수된 현대증권의 경우, 규모와 구조가 KB투자증권과는 많이 다르기에 구조조정이 심하지는 않겠지만, 역시 합병 이후 본사 인원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참여와혁신DB

비교적 소형사인 리딩투자증권과 LIG투자증권은 사모투자펀드인 AJ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 케이프인베스트먼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매각에 들어갔고 한화투자증권, SK증권, 삼성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골든브릿지증권 등에 매각설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매각에서 당장 벗어난 경우도 구조조정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2013년까지 대다수의 증권사들은 희망퇴직 등으로 정규직을 줄이고 다시 계약직으로 받거나 외부 전문 계약직을 들이는 방식으로 인력구조를 재편해왔다.

노동조합에서는 대응에 골치를 앓고 있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대협국장은 “금융당국의 개편 방향은 증권시장의 경쟁력과 관련된 부분에서 한편으로 이해가 된다”면서도 “일본의 금융정책을 그대로 베껴 온 대형화 정책에는 기본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400개가 넘는 홍콩 주식시장의 예처럼 중소 증권사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대응문제는 단사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고 산별노조는 단사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정도 이상은 대응하기 어려워 증권사의 노사갈등 역시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증권사 수를 줄이려는 정책 방향은 인정하면서도 급격한 업계의 재편은 대량 실직이나 인수합병 사고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금융당국이 연착륙을 할 수 있도록 개입을 통해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