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상담사, 숲에서 치유받다
고객상담사, 숲에서 치유받다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6.05.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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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근로자건강센터 고객상담사 힐링사업
대상자 확대 통해 효과 확산해야
[기획]광주근로자건강센터 고객센터 상담사 힐링사업

고객센터에 전화를 거는 대부분의 고객은 감정적이다. 상품이 고장나거나 잘 작동되지 않아 화가 난 상태로 전화를 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고객센터 상담사는 이러한 사람들을 상대한다. 온갖 욕설과 위협, 때로는 악의적 성희롱에 당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로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말해야 한다. 상담사들의 감정노동 사례가 발표된 이후, 기업과 지자체 등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에서는 2015년 콜센터 상담사에 대한 성희롱에 대해 한 번만으로도 경고 없이 바로 법적 조치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시행했다. 그 결과 악성전화가 92.5% 감소되었다.

하지만 이미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치고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광주에서는 고강도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고객센터 상담사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업이 결실을 맺고 있다.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고객센터 상담사 '숲 힐링캠프'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광주시, 상담사 감정노동 개선에 들어가다

광주광역시 일자리경제국은 광주지역 고객상담사들의 지속적 고용유지와 정신건강의 증진을 위해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조선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와 함께 ‘2015년 지역 고객센터 산업육성을 위한 고객센터 상담사 힐링사업’을 진행했다.

광주시가 고객상담사들에 대한 ‘치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 고객센터의 감정노동 문제가 사회 전면에 부각되면서이다. 2013년 4월 29일 국회에서 있었던 ‘감정노동의 실태와 개선방향에 대한 긴급토론회’에서는 고객상담사 일을 하며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입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거나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사례도 나왔다. 그동안 보지 못해 가려져 있던 고객상담사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당시 심상정, 한명숙 국회의원은 심리상담서비스 도입 의무화, 성희롱 시수사기관 고발 조치 등의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을 발의하기도 했다.

지자체 등에서도 문제제기가 나왔다. 서울시인권위원회가 건강권과 휴식권의 보장, 근로환경 개선과 노동통제 금지와 직접고용 등이 포함된 다산콜센터 상담사 인권보호 대책을 요구했다.

▲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감정노동, 열악한 근무환경에 지치는 상담사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고 업무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장인입니다. 어느 순간 고객상담사를 ‘감정노동자’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각종 메스컴에서 고객상담사의 고충을 널리 알려준 덕분이죠.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특별한 관리를 받아야 할 대상이며 기피하는 직종으로 전락해 버린 것 같아 씁쓸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여느 직장인들과 똑같은 한 회사의 사원이에요. 고객센터는 나의 소중한 일터이고요. 어떤 직장이든 스트레스가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업무에 따르는 고유한 스트레스가 있어요. 가장 큰 스트레스요? 고객의 반응에 휘둘리는 회사와의 긴장관계, 업무실적에 대한 압박, 그런 스트레스가 좀 더 많지요.”

실제로 고객센터 상담사의 감정노동으로 인한 직무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2년에 발표한 ‘상품판매원·전화상담원의 감정노동 실태’ 보고서에서는 콜센터 상담사의 72%가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을 들었고 ‘무리한 요구를 들었다’는 답변이 68%, ‘욕설을 들었다’ 65%, ‘성희롱을 당했다’는 답변도 32%로 나타나 대부분의 상담사들이 일상적으로 언어폭력에 의한 직무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2,000여개 콜센터 직원 2,130명을 조사한 보고서에서도 39.4%의 상담사가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이 중 24%는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성희 아주대 산업 및 조직심리 연구실 연구원은 “전화로 업무를 수행하는 특성으로 인해 대면서비스 제공자들보다 고객들로부터 언어적 폭력에 더욱 노출되어 있다”고 밝혔다.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고객센터 상담사 '숲 힐링캠프'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특히 상담사들이 근무하는 기업에서 스트레스상황에 대한 대응 스크립트나 매뉴얼이 부재하는 경우가 많고 고객에 대해 무조건적인 사과를 요구하거나 상황 악화 시 징계를 하는 등 불이익을 주고 있어 상담사들이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과도한 업무부하와 지원체계의 부족으로 인한 열악한 근무환경 역시 고객상담사를 힘들게 하는 요소다.

아주대 최우성 교수의 연구에서는 고객상담사들을 업무과부하와 시간적 압박 및 고객관련 스트레스 같은 과도한 직무요구가 요구되는 동시에 자율성, 통제력, 보상, 인간관계 등의 직무자원이 부족한 상태임을 밝혀냈다. 대부분의 콜센터가 시간당 콜수(CPH)에 따라 실적을 평가하고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고객상담사의 압박은 더욱 심각하다. 콜센터 근로자는 실적강요에 따른 직무스트레스, 고객과의 통화에서 경험하는 비인격적인 대우 등에서 오는 직무불만족으로 이직률이 매우 높은 편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고객센터 상담사 '숲 힐링캠프'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쉼·돌봄·성장, 고객상담사 치유받다

“에니어그램을 통한 나의 참 자아를 찾고,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남보다 다른 내가 틀림이 아닌 다르고 특별하며 소중한 존재... 더 나를 사랑할 계기가 되었다. 항상 사무실에만 앉아서 주 5일을 살아가는 답답한 삶에서 야외에 나와 충분한 자외선 및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참가하게 된 1박 2일이 너무 좋았다.”

광주근로자건강센터는 2014년 4개 사업장 268명의 고객상담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 집단심리교육, 집단심리교육, 중간관리자 대상 사진예술치료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된 2015년 고객센터 상담사 힐링사업은 쉼, 돌봄, 성장이라는 주제로 9개 참가사업장에 101명이 참가했다.

4차에 걸쳐 진행된 1박2일 메인프로그램은 ▲ 감정노동스트레스로 인한 심신의 긴장을 완화하고 즐거움을 향상하는 친밀감 형성 프로그램 ▲ 심신의 자유를 얻고 스스로의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숲치유명상 ▲ 나와 타인의 유형별 특성과 의사소통 및 스트레스 대처방식을 이해하는 에니어그램 ▲ 나와 타인의 내면의 집을 발견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 자아존중감 및 효능감을 향상시키는 마음챙김명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메인 프로그램은 근로자건강센터 심리상담실, 산림문화연구소, 에니어그램 전문가, 캘리그라피 전문가 등 전문가 집단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상담사에 맞춰져 새롭게 준비되었으며 참가 상담사들은 메인 프로그램 이외에도 사전 오리엔테이션을 겸해 사진예술치료와 심리검사를, 그룹작업과 강의, 성장보고서 등의 사후관리를 받았다.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고객센터 상담사 '숲 힐링캠프'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힐링사업의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사회심리적 건강척도(PWI-SF, 낮을수록 긍정적 반응) 기준으로 고객센터 상담사 101명의 사전 단기변화척도 평균값은 6.89±2.04였으나, 사후 단기변화척도 평균값은 2.66±2.19로 4.23이나 감소했다.

연구 결과는 이러한 예방산업의 효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다수의 연구결과는 회사와 상사의 정서적, 도구적 지원이 높을수록 스트레스의 수준이 높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사업주를 위한 여성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 역시 휴식시간·장소 등 물리적 환경개선, 고객과의 마찰시 적절한 대처규정 및 절차의 마련, 심리적 지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번 힐링사업에 참가한 송한수 조선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이번 힐링사업의 특징을 ▲ 참가자들의 숲 치유 프로그램의 활용 ▲ 참여자들의 강점과 긍정성을 이끌어 내는데 중점을 둔 프로그램 구성 ▲ 같은 직종 또는 같은 직장 구성원을 묶어 집단 내 상호작용을 극대화 ▲ 명상과 에니어그램 교육을 통한 자아성찰의 기회 제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고객센터 상담사 '숲 힐링캠프' ⓒ 광주근로자건강센터

힐링사업이 보완해야 할 점도 있었다. 힐링사업 보고서에서는 ▲ 1박2일 유급휴가를 통한 프로그램을 선호한 상담사와 휴일 단기 프로그램을 원한 사업주간 일정 조정의 어려움 ▲ 57개 업체 8,820명을 대상으로 추진한 프로그램에 9개 업체 101명이 참가(1.15%)한 저조한 참여율 ▲ 사업체에서 우수사원만을 대상으로 선정한 점 등을 문제점으로 들면서 “사업장에 맞는 여러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준비하고 교육장소를 발굴하며 본인부담금(19,500원)을 낮추고 중간관리자 심리프로그램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분명한 의미와 성과가 있는 사업이었다. 송 교수는 “참가자만큼이나 준비한 스텝에게도 특별한 기회”라며 “이러한 프로그램이 높은 직무스트레스와 일·가정의 이중 의무에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이 살아가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꼭 필요하다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광주근로자건강센터의 이철갑 센터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고객상담사들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마음을 활짝 열고, 자기돌봄과 성장의 경험을 함께 나누었던 시간이 녹녹치 않은 상황마다 힘이 되는 소중한 기억으로 지속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