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6.05.23 13:25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노총 서울본부, 모범 조합원 대상 독도 문화시찰 진행

▲ 독도를 배경으로 준비해 간 태극기와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진행했다.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한 카드사 광고 카피가 아무리 화제가 되어도, 아무리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졌더라도,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난 뒤 기분전환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기엔 마음에 걸리는 게 많다.

익히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한국의 노동시간은 매우 길다. OECD 주요국 평균 연간 노동시간은 1,770시간. 한국은 2,285시간에 달한다. 소위 선진국들과 비교해 보면 이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독일이 1,371시간, 네덜란드가 1,425시간을 일한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노동자들은 연 1,729시간, 미국의 노동자들은 1,789시간을 일한다. 장시간노동과 관련한 통계에서 한국과 늘 1, 2위를 다투는 멕시코의 노동자들은 2,228시간을 일한다.

장시간노동은 노동자의 삶에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 개인의 건강과 산업안전보건적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여가의 활용 방법, 문화생활, 가족과의 관계 등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17개 시도지역의 15세 이상 10,000명을 대상으로 국민여가활동조사를 벌인 결과, 평일 여가시간은 3.6시간, 휴일 여가시간은 5.8시간으로 나타났다. 2012년 조사 결과(평일 3.3시간, 휴일 5.1시간)에 비해 소폭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2010년(평일 4.0시간 휴일 7.0시간)을 기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줄어들었다.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여가시간 뿐일까? 2007년의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서 여가시간에 ‘관광활동’을 1순위로 하고 싶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15.7%였다. 2014년 조사에선 0.7%에 지나지 않는다. 휴식을 취하거나, 간단한 취미활동을 즐기는 것, TV나 영화를 감상하면서 보내는 여가보다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든, 비용이든 말이다.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의장 강신표)는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 동안 지역본부 산하 조합원들 1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울릉도‧독도 문화시찰을 진행했다. 매년 진행됐던 문화시찰 행사였지만 올해가 더욱 특별했던 것은, 단위노조 대표자나 간부 등이 중심이 된 행사가 아니라 훈‧포상을 받은 조합원, 업무나 노동조합 활동 면에서 조직에서 추천을 받은 모범 조합원들이 행사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먹고 마시거나, 기념품을 사는 데 쓰는 것 외에, 행사에 참석하는 이들의 경비 부담은 전혀 없다.

‘열심히 일한 당신’들이지만 주중에 2박 3일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동해의 외로운 섬, 울릉도까지는 육지길로 3시간 반, 뱃길로 3시간 반이 걸리는 먼 여정이다. 문화시찰 일정이 시작된 것은 아직 한밤중이었던 18일 오전 2시, 영등포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회관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조합원들이 모여들었다.

모처럼 여행의 설렘을 만끽하기에는 피곤이 몰려오는 시간, 속초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조합원들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속초에 도착해 일찌감치 아침식사를 할 때까지 이들의 ‘숙면모드’는 계속됐다.

오전 6시 반 무렵 아침식사로 준비된 시원한 물망치 해물탕 국물과 함께 서울경기항운노조, 서울가락항운노조 조합원들은 반주를 곁들인다. 이들에게 지금 시간에 마시는 소주 한 잔은 여느 직장인들의 퇴근 후 석양배와 진배없다. 가락농수산시장 하역 일은 새벽별이 중천일 때 한창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공공연맹 산하의 대한산업보건협회노조(위원장 정정희)도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위원장을 포함해 상집 전체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갑순 노조 사무처장은 “사측과 교섭이 진행 중이라 사실 노조가 자리를 비우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런 일정이었지만, 노조 설립과 함께 한시도 쉴 틈 없이 몇 년 동안을 내달려온 것을 생각하면, 한번쯤은 기분전환이 필요할 거 같았다”고 말한다.

시민들과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사업장에서는 이렇게 시간을 내는 것이 더욱 부담스럽다. 전력노조 한전고객센터지부에서 참석한 네 명의 조합원들은, 자신을 대신해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서울메트로노조에서 참석한 신승국 조합원도 “다른 분야의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빠진 업무는 누군가가 메워야 하니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나마 이번 문화시찰처럼 노동조합에서 주도하는 경우면 부담이 덜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라면 내 연차를 내가 쓰면서도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뭍에 두고 온 일과 일터에 대한 작은 근심도 말끔히 날려버리라는 듯 2박 3일의 일정 동안 하늘과 동해 바다는 푸르고 맑았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배를 대고 발을 딛을 수 있다는 독도 앞바다도 잔잔했다. 문화시찰에 참석한 이들은 우리 국토의 첨단인 독도를 바라보며 감격에 젖기도 했고, 저녁에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김창수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처장은 “예년과 달리 노동조합 위원장 중심의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라, 모범 조합원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매우 의미 깊었다”며 “좀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