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 서울시의 꿈은 이루어질까
‘노동존중’ 서울시의 꿈은 이루어질까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6.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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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노동존중특별시 2016’ 대대적 홍보
준비 안 된 노동이사제, 사상누각 될 수도
[사건]노동존중특별시와 노동이사제

서울시가 제126주년 노동절을 앞둔 지난 4월 27일 노동권 침해를 뿌리 뽑겠다며 ‘노동존중특별시 2016’이라는 계획을 야심차게 내놨다. 서울시는 이 계획에 대해 “작년에 지자체 최초로 수립한 ‘노동정책기본계획’을 업그레이드한 노동조합정책”이라 소개하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특히 서울시가 지난달 10일 ‘노동존중특별시 2016’ 계획의 일환으로 발표한 ‘근로자이사제’(노동이사제)에 유독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시장경제 질서에 위배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고, 노동계는 양대 노총이 온도차는 있지만 노동이사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 입장을 같이 했다.

서울시의 ‘노동존중’ 청사진은

서울시의 ‘노동존중특별시 2016’ 계획에 따르면, 시는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법적 권리구제를 지원하는 ‘노동권리보호관제도’를 신설한다. 또 280여 민간위탁 기관 1,480명에게 오는 7월부터 생활임금을 보장한다. 2012년 5월부터 진행돼 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올해 연말에 100% 완료를 목표로 하며, 현재 민간에 위탁하고 있는 ‘노동인권센터’도 독립된 재단으로 재편한다.

또한 월 소득 250만 원 이하의 시민이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산업재해 등을 당했을 경우, ‘노동권리보호관’을 통해 상담부터 법률적 절차까지 무료로 도움 받을 수 있게 된다. 변호사(25명)와 노무사(15명) 등 40명의 전문가로 구성될 노동권리보호관은 오는 2018년까지 100명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리고 서울시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시간 외 근무 주8시간 상한제를 비롯한 ‘노동시간 단축모델’을 시 투자출연기관에 확대 추진한다. 이외에도 올해 10월 노사합의가 이루어진 투자출연기관에 우선적으로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하고, 자치구 별로 노동전담팀을 신설해 지역기반 노동정책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와 같은 서울시의 계획은 ▲침해 예방에서 구제까지 원스톱 해결 ▲노동사각지대 해소 ▲생활임금 확대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근로자이사제 도입 ▲노동정책 네트워크 구축 등 7가지로 요약된다. 여기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근로자이사제’(노동이사제)이다.

서울시는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노동자대표 한 명 내지 두 명이 이사회에 참여하여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고 밝혔다. 노동이사의 임기는 3년으로, 별도의 보수가 없는 대신 회의참석수당과 각종 비용을 실비로 지급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서울시가 노동이사제 도입 대상으로 선정한 기관은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서울시시설관리공단, SH공사 등을 포함해 모두 15곳이다.

경영계가 노동이사제에 반대하는 다섯 가지 이유

▲ 노동존중특별시 선언 기자설명회 ⓒ 서울시

이 같은 내용의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도입 방침이 발표된 직후, 경영계는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경총은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도입 계획에 대한 경영계 입장’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경총의 노동이사제에 대한 비판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데, ‘우리나라의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경총이 노동이사제 도입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사항은 모두 다섯 가지다. 첫 번째로 시장경제 질서 및 주주자본주의 체제와의 괴리를 언급한다. 경총은 노동이사제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독일과 비교해 한국은 경제구조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경우 은행, 채권자,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모두 고려하는 구조이지만, 한국은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 ‘주주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노동자가 단순 이해관계자로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얘기다.

ⓒ 서울시

두 번째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점을 꼽는다. 그러면서 유럽노동조합연구소의 2011년 보고서 <근로자의 기업 이사회 참여에 관한 유럽의 제도>를 인용해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3국의 노동이사제와 기업 성과 간 연관성에 관한 31건의 사례 중 20건이 ‘부정적’ 또는 ‘무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자료의 원문에는 “문제의 복잡성과 분석에 포함된 매우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단순한 연관성을 증명하는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뿐이어서 논쟁의 여지는 있다.

경총은 세 번째로 우리나라의 대립적 노사관계의 현실을 지적한다. 독일은 중대한 경제위기마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온 데 반해, 한국은 9.15 노사정합의가 불과 4개월 만에 파기된 점을 들었다.

네 번째로 경총은 노동이사의 전문성 부족과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노동이사가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역할보다는 노동조합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로 편중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기업 경영이 악화될 경우 의사결정권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책임을 부담한다고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는 경쟁구도가 아닌 공공기관의 특성으로 인해 효율성보다는 방만 경영과 측근비리의 온상이 될 거라는 비판이다. 이에 관해 경총은 경영상 판단의 공익적 측면과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비시키기도 했다.

독일은 이미 노동이사제 시행 중

경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미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을 비롯해 유럽의 18개 국가에서 노동이사제가 시행 중이다. 특히 경총에서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공동결정제도가 주된 비교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독일에서 노동이사제는 공동결정제도의 한 부분이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다소 복잡한데, 크게 세 가지 공동결정제도가 있다.

1951년 제정된 ‘몬탄공동결정법’은 1천 명 이상의 탄광·철강기업을 대상으로 노사 동수의 감독이사회를 구성해, 노동자대표 1명이 경영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석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듬해 제정된 ‘종업원대표법’은 500명 이상 2천 명 미만 탄광·철강산업 이외의 기업을 대상으로 노동자대표가 3분의 1을 차지하는 감독이사회를 구성하되, 경영이사회에 노동자대표가 참석하지 않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마지막으로 1976년에 제정된 공동결정법은 2천 명 이상 탄광·철강기업을 제외한 기업을 대상으로 노동자 측에 중간관리자가 포함된 형식적 노사 동수의 감독이사회를 구성하고, 노동자대표 1명이 경영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이 핵심이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에서 실질적으로 경영을 담당하는 것은 경영이사회이다. 감독이사회의 경우 기업을 대표한다기보다 경영이사회 이사를 임명하거나 해임하고, 기업 경영을 감독하는 권한을 갖는다. 경총에서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에 대해 ‘노사 동수의 노동이사제’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이 지칭하는 이사회는 경영이사회가 아닌 감독이사회다.

독일의 이 같은 공동결정제도가 한 순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1848년 독일 전역에서 몰아친 혁명 이후 노동운동이 성장한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독일에서 100여 년에 걸쳐 완성한 공동결정제도를 서울시에서 관 주도로 도입하는 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를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 참석한 노동자 단체 대표로부터 건의서를 받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 서울시

관 주도 노동이사제에 필요한 것

한편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한 노동계 내부의 반응은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한국노총은 경총의 논평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서울시의 ‘근로자이사제’ 도입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이미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착된 제도”이며, “우리나라라고 해서 특별히 도입돼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도입 계획에 대해 “갈 길이 멀다”고 혹평했다. 민주노총은 서울시의 노동이사제에 대해 “비상임이사로 직원 규모에 따라 최소 1명, 최대 2명이 참여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노동자대표는 노동조합을 탈퇴해야 하는 등 노동자의 실질적 경영참여와도 거리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뿐만 아니라 경총이 노동이사제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데 대해서는 “호들갑”으로 일갈했다.

ⓒ 서울시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노동계는 노동이사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노동이사제 도입에 앞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우선 노동자의 경영참여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경영계를 설득시키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시는 이 점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며 “조례 제정까지 정책토론회 등을 통해 제도를 가다듬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무엇보다 각 이해당사자가 노동이사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지 여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말 서울시의 의뢰로 진행한 연구용역 보고서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제도 마련뿐만 아니라 노사 관계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노동이사제가 노사 간 협의에 의하지 않고 시 정부 주도로 도입되는 만큼, 이해당사자의 충분한 고민 없이는 경영계의 주장처럼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시가 당초 발표한 올해 10월 제도 시행은 다소 이른 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야심차게 내놓은 정책이 ‘사상누각’으로 되지 않도록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는 신중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