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밑거름
다양성,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밑거름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6.0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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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연료’ 만드는 제조업 공장의 종합선물세트
최고에서 최저로, 오랜 세월 정체돼 있는 근로조건
[사람]유복현 한전원자력연료노조 위원장

한전원자력연료, 이름만 들어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원자력 발전에 사용되는 연료를 만드는 곳이라는 설명을 들어도, 사업장이 어떤 모습일지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원자력’이란 세 글자가 주는 의미는 크다. 접근하기도 어려운 분야이고, 까닭 모를 공포나 혐오감도 만만찮다. ‘전기’는 어떨까?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전기의 31.2%가 원자력 발전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원자력에 친근감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유복현 한전원자력연료노조 위원장을 만나, 이처럼 멀고도 가까운 조합원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유복현 한전원자력연료노조 위원장

낯선 그들의 일 들여다보기

1984년 설립된 한전원자력연료. 국내는 물론, 해외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연료를 생산, 납품하는 사업장으로, 모기업인 한국전력이 지분의 97%를 갖고 있다.

이보다 과거에는 한전원자력연료가 위치한 일대가 '핵 공단'으로 불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원자력 연구소와 함께 군사적인 목적, 상업적인 목적으로 원자력 분야 개척에 국가가 전면적으로 나섰던 것.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소설에서 널리 알려진 이휘소 박사의 에피소드 등이 당시의 이야기다. 중수로 방식의 국내 1호 원전인 월성 1호기에 쓰이는 연료도 당시에는 원자력 연구소가 납품했다.

그러다가 좀 더 효율이 좋은 경수로 방식의 원자력 발전이 도입된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또 다른 시장이 형성되고, 국가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들어가는 연료의 제조 기술을 확보하려는 시책에 의해 한전원자력연료가 설립되고 상업적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 1998년에는 연구소의 중수로 관련 연구, 설계 인력, 생산 인력, 장비 등도 한전원자력연료에 합쳐진다.

그래서 한전원자력연료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사업장이 되었다. 중수로와 경수로의 연료를 모두 생산, 납품할 수 있는 유일한 핵연료 제조 회사가 된 것이다.

한전원자력연료에서 생산하는 핵연료의 원료는 과거 구소련 지역,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들어온다. 우라늄 광석에서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기술과 설비는 핵무기 개발과 직접적 연관이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규제되고 있는 상황.

그래서 젤 타입으로 가공된 농축 우라늄이 수입되는데, 이 우라늄 수급권은 한국전력이 갖고 있다. 한전에서 수입한 농축 우라늄을 한전원자력연료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연료 형태로 2차 가공하고, 이것은 다시 한국수력원자력에 납품되어 발전에 쓰인다. 한전은 그 과정에서 적정한 가격이 형성될 수 있도록 조율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한전원자력연료의 직원들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제조업의 거의 모든 분야가 다양하게 망라된 공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국내 공기업 중에서 이렇게 직접 생산을 하고 있는 곳은 한국조폐공사와 우리 밖에 없어요.

젤 형태의 농축 우라늄은 이중, 삼중의 방폭 장치 등이 마련된 캡 형태로 국내에 수입됩니다. 부산에서 트레일러로 이 원료가 이송됩니다. 그러면 경찰이 에스코트에 나서고 보안이 삼엄하지요.

농축 우라늄은 화학공정을 거쳐 분말 형태로 가공됩니다. 산화시키면서 까만 분말로 만드는 거예요. 그 우라늄 분말을 프레싱 작업을 하고, 다시 1,800도에서 열처리를 해서 세라믹 제품을 만듭니다.

그게 끝이 아니고, 그걸 다시 가공해서 튜브를 만듭니다. 열전도율이 좋은 튜브에다 하나씩 집어 넣고, 그걸 다시 다발로 만들어서 연료봉을 만드는 겁니다. 그걸 또 다시 집합체로 만들어서 완성된 제품을 납품하는 거지요. 이 모든 과정을 처리하는 겁니다.”

▲ 한전원자력연료 생산 공정의 다양한 과정

줄줄이 앞둔 정년, 숙련인력 부족 걱정

화학, 금속 분야의 주요 제조업 공정이 핵연료 생산 공정에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각 부서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의 직무도 대단히 다양하다. 그래서 순환 보직을 갖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다른 공정에서 일하려면 새로운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수반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20여 년을 넘게 근무하면서 숙련된 인력에 갑자기 공백이 생길 경우 문제입니다. 1989년 상업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당시에 들어왔던 생산, 기술인력이 아직 그대로 근무하고 있거든요. 이들의 정년퇴직이 본격화되는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1년에 수십 명 씩 빠져나가는 공백을 메우는 것이요.

생산성의 저하와 같은 시행착오면 모르지만, 우리가 취급하는 제품이 핵연료이다보니, 혹여 숙련 부족으로 인해 불량이 발생할 경우 자칫하면 막대한 참사로 이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거든요. 그렇다고 필요 인력을 민간기업에서 스카웃해 올 수 있는 구조도 아니잖습니까.”

이와 같은 인력구조의 문제는 조직 내에서 다양한 현안을 발생시킨다. 특히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조합원들의 근로조건과 관련한 부분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한전원자력연료는 신입 직원의 초임과 고참 직원들의 임금차가 다른 공기업에 비해 좁은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서 임금이 줄어드는 폭도 40%로 큽니다. 절약되는 임금을 신입인력의 인건비에 맞추려고 정책을 설계했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고연봉을 받는 다른 공기업 고참직원들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은 우리 조합원들은 더 많이 깎여야 하는 우스운 상황이 생기는 거지요.”

단순히 임금피크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유복현 위원장이 입사했던 1989년 무렵, 막 회사가 태동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한전원자력연료는 전력 그룹사 내에서도 최고 수준의 임금과 복지, 인근 연구단지 내에서도 손꼽히는 근로조건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7년이 흐르면서 다른 곳의 조건이 나아지는 동안, 한전원자력연료는 정체돼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설립 당시에 핵연료 부문이야 최첨단의 산업이었고, 그만큼의 대우를 해줬거든요. 그게 계속 정체돼 있던 겁니다. 정부의 정책에 발 맞춰 우리가 저렴하게 원전의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싸게 공급되는 전기로 기업들은 혜택을 누리고, 그 일부는 다시 기업의 직원들에게도 돌아갔습니다.

일례로 생산직들에게 위험수당이 지급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생산라인에서 아무리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해도, 우라늄 세라믹 분말이 스며들어서 손톱 밑에 까맣게 낍니다.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해도, 입 주변에 분진이 묻어요. 그게 어디 몸에 좋은 거 입니까?

세라믹 공정 부서에서는 유독 인공관절 수술을 한 조합원들이 많습니다. 방사능 물질이 폐나 연골에 주로 협착되기 때문입니다. 특정 부서 근무 후 퇴직한 이들을 추적해 보면 유독 암 발병률이 높습니다. 그 대가로 27년 전부터 한 달에 만오천 원의 위험수당을 받았습니다. 이거를 작년에 처음 만 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조합원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처지 바라보며 이해와 배려 배운다

전체 1,200여 명의 임직원 중 노동조합 조합원은 900여 명 가량. 생산직이 조합원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일반직이나 연구직 조합원들도 있다. 노동조합 역시 생산직 쪽에서 주로 집행부를 맡아왔지만, 과거 일반직 출신 위원장이 배출됐을 때 조직 차원에서 잘못된 결정을 하기도 했다.

“계약직 직원을 채용하는 데 동의를 한 겁니다. 사측은 그렇다쳐도, 노조에서도 계약직을 쓰는 게 달콤한 유혹일 수 있어요. 계약직들은 적은 임금을 주고 이들의 인원은 정규직 인건비를 배정받는 겁니다. 차액만큼을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배분하면 다소나마 임금인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수 년에 걸쳐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정규직 전환, 세 번에 걸쳐 처우개선을 추진했어요. 지난해 드디어 마지막 계약직 인원들을 정규직화 했습니다. 120명 가량을.

노조의 교섭 결과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정규직 조합원들은 왜 이들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에 노조가 역량을 낭비하느냐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바로 옆에 120명 계약직 동료들이 앉아 있음에도 말이죠. 같은 일을 하고, 또 우리 옆에서 일하고 있는 바로 저 분들을 그럼 어떻게 바라볼 거냐고 되물었습니다. 나중에 계약직 직원들은 눈물을 흘리더군요.”

유복현 위원장이 바라보는 한전원자력연료노조는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89년 설립 이래 매 집행부마다 치열한 경쟁을 거치기도 했다. 그만큼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조합원들의 의식과 평가도 엄격하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직무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요구를 모두 맞춰준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선거 때마다 각 직군을 대표하는 4인으로 러닝메이트를 구성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원자력연료가 똘똘 뭉쳐 하나의 목표로 매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유복현 위원장은 오히려 이와 같은 '다양성'에서 찾는다.

“비교 대상이 단순하고 매일 보던 것이라면 노조도 조합원도 금방 타성에 젖습니다. 그러면 쉽게 타협하려고 하지요. 남에 대한 이해나 배려도 굉장히 각박해집니다. '나도 똑같은 일을 하는데 쟤는 왜 불만인 거야'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한전원자력연료라는 조직 안에서의 다양성이 조합원들의 수준을 높여 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이해하고, 배려하고, 또 필요하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건강한 조직문화의 출발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힘, 건강한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은 이제 단순히 조합원들의 일시적인 이익만이 아닌,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 폭을 넓혀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