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화된 일터에 안전은 없다
외주화된 일터에 안전은 없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7.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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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율 줄고는 있다지만 찝찝한 건 기분 탓?
안전과 맞바꾼 ‘이것’, 대가는 하청노동자들이
[커버스토리]일터의 안전은, 지금

<참여와혁신>이 내건 가치는 ‘행복한 일터의 동반자’다. 종종 취재원들에게 ‘행복한 일터’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으면 “글쎄요…”라는 답을 자주 듣는다. “월급 많고 ‘칼퇴’하는 직장 아니냐”며 되묻는 이도 있다.

제조업, 건설업, 운수업에 몸담은 노동자들은 “오늘도 무사히, 다치지 않는 일터”라는 답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공장에서, 조선소에서, 철도에서, 건설현장에서 달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전한 일터에 대해 관심이 모이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터는 지금, 안전하지 않다.

안전을 이야기할 때 세월호 참사는 굉장히 자주 인용된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 아직도 곳곳에서 인명사고가 터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시작하는 말이나 글귀가 으레 쓰는 수식어처럼 무덤덤해진 게 아니냐는 자조가 절로 나온다.

일터의 안전도 마찬가지다. 일단 통계만 놓고 보면 산업재해율은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6분마다 1명꼴로 다치고 매일 5명꼴로 사망한다. 산업재해의 원인은 작업자의 실수 또는 ‘안전불감증’으로 지목되는 때가 많다. 그런데 최근 비중 있게 언급된 사례를 보면 노동자 개인의 탓으로만 생각하기 어렵다. 특히 올해에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표현도 자주 보인다.

사고, 사고, 사고…

 

▲ ⓒ 참여와 혁신 DB

instance 1

부천 전자부품업체 메틸알코올 중독

지난 2월 4일 고용노동부는 경기 부천의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 두 곳에서 20대 노동자 4명이 메틸알코올에 중독돼 시력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알루미늄을 자를 때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메틸알코올을 사용했다가 증기에 노출됐다. 메틸알코올은 독성이 강해 증기를 마시거나 신체와 접촉할 경우 두통을 유발하고 중추신경계가 손상된다. 사고 이후 해당 업체에서 원가를 아끼기 위해 메틸알코올을 사용했으며, 현장에는 어떠한 위험 표시도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instance 2

현대중공업 ‘죽음의 조선소’ 오명

이른바 ‘빅3’ 조선업체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에서 노동자가 잇달아 숨졌다. 지난 2월 20일부터 4월 19일까지 두 달 만에 5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자 조선소의 안전실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건조 중인 배에서 추락하거나 크레인에 압착되고, 지게차에 치이기도 하는 등 사고유형도 다양했다. 이후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253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적발했다. 그러면서 현대중공업 측이 기본적인 안전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instance 3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PSD 사고

지난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발생한 사고로 또 한 번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PSD(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김 모(19) 씨가 승강장에 진입하던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김 씨의 어머니는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통곡했다. 이어 PSD 정비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가 속속 드러났다. 이는 PSD 유지보수 외주화 실태와 ‘메피아’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서울지하철 2호선 운영기관인 서울메트로는 PSD 정비를 은성PSD(주)에 위탁했고, 그 과정에서 온갖 부조리가 자행됐다는 것이다.

instance 4

남양주 도시철도 건설현장 폭발사고

구의역 사고 나흘만인 지난 1일, 경기 남양주의 당고개-진접 간 도시철도 공사 현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당시 작업 중이던 노동자 4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경찰은 용단(용접·절단)작업 때 사용되는 액화석유가스 누출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시공사인 (주)포스코건설과 감리를 맡은 협력업체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가스 누출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기는커녕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교육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재 사망자·재해율 줄고 있다는데

▲ ⓒ 참여와 혁신 DB

고용노동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와 지난해 말 내놓은 ‘산업재해 현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일터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2015년 기준 1천810명이다. 연간 산재 사망자수는 2005년 2천282명을 기록한 이후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그럼에도 하루에 5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셈이니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같은 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노동자는 9만 129명에 달한다. 6분에 1명꼴이다. 2005년부터 10년 동안의 변화를 보면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8만여 건에서 10만여 건 사이를 맴돌고 있다. 반면 2005년에 비해 노동자 수가 600만 명가량 늘어 재해율은 감소하는 흐름을 보인다.

노동부는 “산업재해 지표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면서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산업재해 지표가 개선될 수 있도록 재해 예방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오래 전부터 일각에서는 정부의 산재 통계를 믿기 힘들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정부에서 집계한 산재 노동자 수가 실제보다 적다는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비정규센터’)는 2013년에 발간한 <월간 비정규노동>에서 경제활동인구에 비해 산재보험 대상자 수가 천만 명 가랑 적다는 점을 들어 “우리나라에서 제시되는 산재통계는 과소 산정”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인구는 2천593만 명인데 반해 산재보험 대상 노동자 수는 1천797만 명으로 800만 명 정도 차이가 있다. 비정규센터는 다른 보상체계에 흡수되어 있는 공무원, 직업군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을 제외하더라도 600만 명의 노동자가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경제활동인구는 ‘만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취업자 또는 실업자’를 뜻하기 때문에 비정규센터의 추산이 정확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산재 통계가 보다 폭넓고 정교해져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 ‘하청노동자’

▲ ⓒ 참여와 혁신 DB

비정규센터의 지적처럼 우리나라 산재 통계에 맹점이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산재를 당한 이후의 안전망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당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메틸알코올 중독사고, 조선소 사망사고, 구의역 PSD 사고, 건설현장 사고 등 중대한 산재 사고가 날 때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강조했다.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다루는 경우 그에 맞는 표지가 있는지 ▲추락 및 낙하물 등에 대비한 보호구가 제공됐는지 ▲충분한 작업시간과 공간이 확보됐는지 ▲인화성·폭발성 물질은 안전하게 보관돼 있는지 등은 각각 네 건의 사고가 일어날 당시 지켜지지 않았던 내용들이다. 이들은 모두 사업주의 의무로서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돼 있다.

▲ ⓒ 참여와 혁신 DB

네 번의 사고에는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각각의 사고로 장해를 입거나 목숨까지 잃은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메틸알코올 중독사고가 난 사업장은 국내 대기업에 휴대전화 부품을 납품하는 3차 협력업체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파견노동자였다.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사고의 경우, 5명의 사망자 중 3명이 하청노동자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내 조선과 해양부문을 통틀어 하청노동자의 수는 2만 3천 명, 정규직 대비 2.5배에 달한다.

구의역 PSD 사고로 숨진 김 씨 역시 서울메트로 협력업체 은성PSD 소속이다. 남양주 건설현장 사고 희생자들은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한 목소리로 다단계 하도급구조와 무분별한 외주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부는 하도급구조가 안전을 저해하는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자체를 손대기 보다는 사업주들이 안전수칙을 준수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제조업, 조선업, 운수업, 건설업 등은 산재 사망사고가 가장 잦은 업종이면서 동시에 하도급구조, 외주화가 폭넓게 자리 잡은 업종들이다. 고용규모 면에서 이들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탓에 때로는 하도급이 가장 보편적인 질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외주화된 일터, 안전의 책임마저 외주화하나

▲ ⓒ 참여와 혁신 DB

글로벌 기업인 애플은 휴대전화와 PC 등 연간 2억 대에 가까운 전자제품을 판매하지만, 생산라인을 갖고 있지 않다. 생산 전체를 외주화한 덕분에 애플은 30%에 육박하는, 제조업으로서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이익률을 자랑한다. 한 자릿수 이익률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기업들에게 애플은 선망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비단 애플 때문만이 아니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노무비용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외주화를 선호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경영여건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슬림화’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던 때도 있고,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작업장 안전에 대한 책임도 함께 외주화한 것은 아닌지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외주화 자체가 옳은지, 나쁜지는 지금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살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작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러니를 바로잡으려면 ‘지금’ 무엇을 할지 찾아봐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