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협회의 외도? 고용불안에 떠는 노동자들
무역협회의 외도? 고용불안에 떠는 노동자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8.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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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무역협회 자회사 구조조정

한국무역협회(회장 김인호, 이하 ‘무역협회’)가 창립 70주년을 맞아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기념식에는 역대 무역협회 회장, 주요 경제단체장, 정관계 인사, 무역업계 대표 등 그야말로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협회는 대규모 기념식을 통해 설립 70주년을 자축했다.
같은 시각 행사장 밖에서는 코엑스노조(위원장 서명식), 한국도심공항노조(조합장 채규만), 한국무역정보통신노조 등 무역협회 자회사 노조 조합원들이 무역협회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지난 5월 20일 무역협회 측이 ‘한국종합무역센터 구조개선 계획’을 공식화 한 이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제2코엑스’ 노리는 무역협회, 장밋빛 꿈

무역협회는 지난 5월 2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잠실지구에 국제수준의 MICE 인프라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코엑스에서 한전을 거쳐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을 아우르는 지역을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안을 2014년 4월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듬해 8월 무역협회는 잠실종합운동장 부근에 제2전시·컨벤션시설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MICE란?

MICE는 회의(Meetings)·포상여행(Incentives Travel)·컨벤션(Conventions)·전시(Exhibitions)의 약자로, 기업이나 정부, 학회 등의 비즈니스 일체를 일컫는다. MICE 산업은 MICE 수요자들을 대상으로 전시·회의장, 숙박시설 및 각종 편의시설 등을 제공하는 산업이다. MICE 관광객들은 일반 관광객보다 소비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이 MICE 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다.

자료 : 한국관광공사

무역협회 측은 이른바 ‘제2코엑스’ 건립 추진에 대해 “우리나라 MICE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무역 2조 달러’ 시대의 조기 개막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하며,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겨질 경우 무역센터와 잠실지구 MICE 시설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무역협회는 잠실지구 MICE 시설 개발에 앞서 재원 마련을 위해 자회사의 ‘경영효율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무역협회는 3조 원에 달하는 총 사업비 중 15%인 4,500억 원을 자체적으로 자회사 구조조정과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무역협회가 대주주로 있는 자회사는 (주)코엑스, (주)한국무역정보통신(KTNET), 한국도심공항(주)(CALT), 코엑스몰(주) 등 모두 네 곳이다. 이른바 ‘무역센터 구조개선 계획’에 따르면, 이들 자회사에서 수행하던 사업 일부를 외부에 위탁하거나 분할·매각하게 된다.

코엑스의 경우 전시장·회의실 운영사업을 제외한 사무실 임대사업을 외부에 위탁한다. 한국도심공항 역시 도심공항터미널 지하상가(칼트몰) 운영과 사무실 임대사업을 분할 또는 외주화 해 도심공항·운수·물류사업 중심으로 재편된다.

▲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소문만 무성하다 한 곳은 ‘청산’, 한 곳은 ‘분할’

이 같은 계획이 발표되기 한 달 전부터 무역협회 자회사 네 곳에서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코엑스노조에 따르면, 지난 4월 5일 박영배 코엑스몰 사장으로부터 “무역협회가 코엑스몰을 청산할 것이며, 무역센터 내에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이 나왔다. 이후 구조조정에 관한 소문이 무역협회 자회사 전체로 퍼져나갔다. 우선 4개 자회사 노조들은 연대투쟁을 결의했다.

물론 당장 시급한 곳은 코엑스몰이었다. 코엑스몰은 지난 2014년 코엑스에서 쇼핑몰(코엑스몰) 운영사업을 분리해 만든 회사로, 분리 2년여 만에 청산 얘기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사업 청산을 막기 힘들 거라는 내부 여론이 강해 투쟁동력이 충분치 않았다. 결국 조합원에 대한 고용승계와 일부 희망퇴직 등의 조건으로 5월 20일 코엑스몰 청산이 확정·발표되고, 노조가 해산했다. 코엑스몰 청산이 발표됐지만 나머지 자회사들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의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현장에는 여전히 ‘카더라’만 무성했다. 자회사 노조 대표자들은 이미 한 차례 무역협회 회장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했고, 협회 경영본부장으로부터 “자회사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4개 자회사 노조들 중 남은 곳은 현재 3개 노조다. 이들 중 한국무역정보통신의 경우 아직까지도 구조조정에 관한 언급이 없어 비교적 느슨하게 결합하고 있다. 결국 코엑스노조와 한국도심공항노조가 사실상 연대투쟁을 주도하는 셈이다.

한편 코엑스노조는 코엑스몰 분리 이후 청산 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이 됐다. 이 때문에 조합원들이 느끼는 고용불안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코엑스 사측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공고까지 냈다.

서명식 위원장은 “코엑스몰이 코엑스에서 떨어져 나간 후에 어떻게 됐는지 너무 빤히 보이니까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어수선하다”고 전했다. 한국도심공항의 경우 지난 6월 9일 제4차 이사회에서 자산관리사업의 외부 위탁 운영 방안을 의결했다. 같은 달 21일에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자산관리사업 위탁 운영업체 입찰 공고를 냈다.

이를 놓고, 노조는 회사를 분할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노조는 회사의 행위가 “단협 위반”이라며 지난 7월 18일 서울중앙지법에 ‘사업분할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와 관련해 채규만 조합장은 “입찰 제안서에 보면 기존 직원의 고용을 ‘3년 이상 보장’한다고 돼있는데, 사실상 3년짜리 계약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구조조정 과정 노조와 공유해야

문제는 구조조정 과정의 투명성이다. 무역협회의 이번 자회사 구조조정에 대해 코엑스노조와 한국도심공항노조는 답답함을 드러낸다. 고용불안도 문제지만 사전 협의 없이 소문만 잔뜩 키웠다가 급작스럽게 계획을 발표하거나, 한국도심공항의 사례처럼 이사회를 통해 사업 분할을 결정해 버리는 등의 방식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코엑스몰이 그랬던 것처럼 노조가 눈 뜨고 코 베이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노조 집행부도 ‘들리는 설’ 외에 달리 사측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방법이 사실상 없는 모양새다.

결국 무역협회가 애당초 노조를 구조조정에 관한 협상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자회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그 과정을 노조와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무역협회는 “고유한 경영권”이라거나 “자회사의 자율 경영에 따르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만 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외 지역에서는 무역협회가 이른바 ‘제2코엑스’를 세우게 되면 국내 전시컨벤션 수요를 빨아들여 가뜩이나 낮은 타 지역 컨벤션센터의 가동률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무역협회가 자회사 구조조정까지 감행하며 ‘제2코엑스’ 건립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제기된다. 그러나 자회사 구조조정과 ‘제2코엑스’ 건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건넬 무역협회의 답은 어쩌면 이미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코엑스몰 청산 지켜보며 고용위기 현실로 느꼈다
_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코엑스노조 서명식 위원장

코엑스몰 청산 결정 이후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가?

“코엑스몰이 분할됐다 청산된 역사가 있다 보니까 ‘주주가 결정하면 영락없이 잘릴 수밖에 없다’는 패배의식 같은 것이 있다. 협회가 저렇게 강한데 우리가 투쟁한다고 되겠냐는 우려다. 이러다가는 전시·컨벤션사업 마저 쪼개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강하다.”

사측과의 만남은 이루어지고 있나?

“최근에는 안 만났다. 지금 사장은 만나 달라고 해도 안 만나준다. 노조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단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자신들 방안대로만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회사를 노동부에 고발하면 ‘문제가 있으면 시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나온다. 지금 사장이 취임한 후로 노동부에 진정이나 고발을 넣은 게 네 번인데, 모두 회사가 잘못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앞으로의 계획은?

“조합원들의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서려면 지속적으로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을 거다. 무역협회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확실한 안을 안 내놓는다. 한국도심공항처럼 분리방안이 확정되면 조합원들에게도 공유해서 본격적인 투쟁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공항·운수사업은 ‘공익사업’… 구조조정 안 된다
_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한국도심공항노조 채규만 조합장

조합원들에게는 이번 쟁의가 처음인 걸로 들었는데?

“지난 5월 20일에 무역협회에서 구조조정 계획이 나오고 나서 상급단체인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의 연대로 31일 아침에 무역협회 트레이드타워 앞에서 첫 집회를 했다. 그날 조합원들이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랑 ‘파업가’를 배웠는데 곧잘 따라 해서 놀랐다.”

한국도심공항의 ‘공익적 성격’이란 어떤 의미인가?

“코엑스가 만들어지고 인근에 각종 업무시설이 들어서면서 삼성동 일대가 국제적인 비즈니스 지역으로 성장했다. 그러면서 무역 관련 업무를 위해 서울과 김포공항, 인천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을 수송해 왔다. 수익은 오피스 임대 같은 자산관리사업에서 많이 나지만, 공익적 성격이 강한 부문은 아무래도 공항업무나 운수업이다. 우리가 급여를 동결하고 성과연봉제,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인 것도 공익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가 집회를 계속 하니까 사장이 ‘칼트몰’을 넘겨주고 ‘트레이트타워’와 ‘아셈타워’를 가져오자는 제안을 협회 회장한테 했다. 코엑스에서 하던 사업을 한국도심공항이 가져와서 노노갈등을 유발하겠다는 의도다. 이미 조합원들의 80%가 파업에 찬성했기 때문에 상황을 보면서 최후의 수단도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