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와 중노동이 삼켜버린 집배원
폭우와 중노동이 삼켜버린 집배원
  • 고연지 기자
  • 승인 2016.08.1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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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아들, 둘째 출산 앞두고 폭우 속 배달하다 숨져
[사건] 집배원 인력부족 현황

지난 4일 오전 11시 30분경 우편물 배달을 하던 집배원 배씨가 차량과 충돌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벌써 이번 년도 들어 벌써 4번째 집배원의 사망소식이다. 전국우정노동조합(우정노조) 관계자는 “34살의 젊은 가장이 4살 아들과 출산을 한 달 앞둔 부인을 두고 사고가 났다”며 “사고 당일 폭우가 쏟아짐에도 밀린 업무량에 쫓겨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 ⓒ 참여와혁신 DB

빈발하는 사고, 위태로운 집배원 노동자

집배일을 한지 9년 차에 접어든 배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토바이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우체국을 나섰다. 동료 직원의 결혼으로 주중 배달물량이 늘어 평상시보다 더 서둘렀다. 우편물 배달을 위해 빗길을 헤치고 가던 배씨의 오토바이가 현서면사무소에서 영천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려던 순간, 영천 방향에서 청송방향으로 직진하던 차량과 정면충돌했다. 배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배씨를 제외하고도 최근 5년간 15명(2012년 5명, 2014년 2명, 2014년 3명, 2015년 2명, 2016년 3명)의 집배원이 집배업무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2월에 사망한 서수원우체국의 집배원 정씨도 우편물을 정리하며 출국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으나 급성 뇌출혈로 사망했다. 사고가 난 화요일은 택배 등 배달물량이 몰리는 시기로 집배원들에게는 주중 가장 바쁜 날로 꼽힌다. 이들이 이렇게 스스로를 재촉하고 무리해서 몸을 움직인 이유는 무엇일까?

‘고객만족도 1위’ 포장 속 장시간, 중노동

우정사업본부는 2013년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실시한 한국산업의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일반행정서비스 부문 15년 연속 1위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객만족도 1위’라는 포장 안에 집배원노동자의 장시간, 중노동이 당연시하게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 집배원노동자의 소통시기별 주당 노동시간 60시간 이상 비율

『집배원노동자의 노동재해·직업병 실태 및 건강권 확보방안』에 따르면 집배원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연평균 3,379시간으로 한국 연평균 노동시간인 2,200시간의 1.5배에 달한다. 특히 구정, 추석, 선거기간 등 특별소통기간에는 늘어난 소포로 인하여 격무에 시달리며 하루 15시간을 넘기는 노동을 한다. 이러한 장시간, 중노동은 집배원노동자들의 건강을 갉아먹는다. 전체 집배원의 74.6%가 하나 이상의 부위에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으며, 50%에 달하는 집배원노동자가 뇌심혈관계질환 고위험집단으로 순직·중경상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소통을 위해 특별 소통 대책을 마련·시행한다고 하지만 현업에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필요한 건 인력충원

숨진 배씨가 일하는 청송현동우체국 배달 인력은 늘 부족했다. 2004년 집배통합부터 2014년까지 집배원 10명이 해당 구역을 맡았다. 2년 사이 우편물량 감소를 이유로 우편물 배달 가구 수가 늘었는데도 집배원 숫자는 7명으로 줄었다. 이마저도 감원대상국으로 지정되어 한 명을 추가로 감원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 놓인 상태다.

연초 순직사고가 발생한 서수원우체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년 10월 소포위탁배달원이 퇴직한 이후 집배인력 증원을 수 차례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집배원노동자들은 한정된 인원으로 가중된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었다.

집배원의 정년·명예퇴직 및 병가 등 집배원 유고시 사전에 인력을 충원(업무숙지 최소 6개월소요)하여 미리 업무인수인계를 해야 한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는 집배구 평준화를 실시한다며 집배인력 감축을 추진하고 있는 현실이다.

▲ ⓒ 참여와혁신 DB

2013년에 ‘장시간·중노동으로 인한 집배원 중대재해,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당시 참석한 우정사업본부는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이 인력증원’이라고 인정하면서 매년 1000~1900명 규모의 인력 충원에 합의했지만 실제 이뤄지지 않았다. 우정노조는 정부가 2014년부터 2년에 걸쳐 160명씩 총 320명을 충원하겠다는 계획을 실행했으나 실제 필요 인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이다.

최근 청송현동우체국의 집배원 사고 이후 우정노조관계자는 “배달하는 우편, 소포 등이 줄고 집배 관할구역이 통합되었다는 이유로 인력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런데 실상 편지 한 통만 있어도 배달을 가야하고, 관할 구역은 더 넓어졌기 때문에 물량소화를 위해서 집배원들은 서두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정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안전사고가 과거에도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보다 인력 충원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