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금융현장, 곧 지옥이 될 것
전쟁터 금융현장, 곧 지옥이 될 것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6.09.1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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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종훈의 프리킥

지난 2000년 7월 10일, 전국의 지점에서 근무하던 금융노조 조합원들은 업무를 마감하고 속속 연세대학교와 명동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밤샘 협상을 벌이던 지도부는 11일 오전 4시 협상 결렬과 함께 총파업을 선언했다. 장마철이라 비는 쏟아졌고, 조합원들이 운집한 운동장은 진흙탕이 되었다. 2014년 9월 3일, 금융노조 조합원들은 목동 종합운동장에 모였다. 이날도 아침부터 하늘이 꾸물거리다 비가 쏟아졌다.

세 번째 총파업을 금융노조는 준비하고 있다. 디-데이는 9월 23일, 장소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이다.

지난 2000년 금융노조의 최초 총파업에는 6만 5천여 조합원이 결집했다. 2014년 총파업에는 주최측 추산 4만여 명이 참여했다. 오는 9월 23일에는 8만 5천에서 9만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할 것이라고 금융노조는 자신한다.

2000년 당시에는 은행간 인수합병이 본격화되면서 조합원들의 구조조정 문제가 가장 큰 화두였다. 위기의식을 느낀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이어졌고 분위기도 뜨거웠다. 관치금융 철폐 및 낙하산 인사 저지를 맨 앞에 내세웠던 2014년 총파업은 13년 전보다는 미지근한 온도였다. 다가올 9.23 총파업은 성과연봉제 저지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과연 얼마나 뜨거운 자리가 될 것인가? 파업 참여율, 집회 규모라는 숫자 자체도 화제이지만, 이후의 향배도 관심거리이다. 금융노조를 포함한 양대 노총 공공부문 조직들이 비슷한 시기 파업 투쟁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규모로만 보자면 가장 큰 투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패에 대해선 다양한 예측이 들린다. 금융노조 조합원들을 비롯해 이동, 인사, 고과 등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사무직들은 사실 파업에 참여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열 명, 스무 명 남짓 되는 지점에서 매일 같이 얼굴을 맞대고 근무해야 하는 현실에서, 관리자들의 눈총을 받으며 파업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떨쳐 일어나기가 쉬울까.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금융노조도 이런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또 파업 참여를 막기 위해 사측은 갖은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이번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해프닝 와중에 그나마 가장 형식을 갖춘 산별 노사관계라고 평가 받았던 금융산업 노사는 타격이 크다. 8월 26일 각 금융기관 대표자들은 사용자협의회 탈퇴를 의결하면서 금융노조는 교섭 파트너가 모호해졌다.

9월 23일 당일 총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 규모는 금융노조가 예상하는 것보다 매우 적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새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노조 역시 사활을 걸고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참석자 수가 한 눈에 띄는 상암 경기장을 집회 장소로 잡은 것도 일종의 배수진이다. 아무튼 9월 23일, 그날의 풍경이 앞으로의 향배를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중요한 물음이고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사안이지만 지금으로선 뚜렷하지 않다. 평상시라면 불가능한 의결기구인 조합원 총회가 열리는 격이니, 당일 2차, 3차 투쟁계획을 의결하겠다고 금융노조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노든 사든, 혹은 정이든(?) 어느 쪽의 승리로 문제가 일단락되고 난 다음, 금융노조 조합원들의 일터는 예전처럼 그대로일까? 선배이자 상사에게 ‘사인’을 강요 받으며 죄인 취급을 당했던 기억은 쉽게 잊힐까? 지금이라고 금융산업 현장에 경쟁과 성과가 강요되지 않는 건 아니다. 본격적으로 성과연봉제가 도입된다면 ‘전쟁터 같은 지금의 일터는 지옥처럼 될 것’이라는 게 금융노조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