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노총, 돌아오지 못할 강 건넜나
양 노총, 돌아오지 못할 강 건넜나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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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in Issue 로드맵? 들여다봐도 길이 안 보인다 ?
감정 대립 아닌 주도권 다툼 성격 짙어
노동계 판도 변화에 영향 줄 지 주목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정부, 경총, 한국노총의 로드맵 합의 직후인 9월 12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고 한국노총을 강하게 비판했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민주노총이 '야합' 규탄집회를 열었던 12일.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영등포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이용득 위원장 폭행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

경총과 한국노총의 노사관계 로드맵 합의 이후 양 노총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며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은 ‘야합세력’이라고 비난하고 나서자 한국노총은 ‘대안 없는 떼쓰기’라며 맞불을 놓고 있다.

양 노총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강도가 유례없이 강한데다 단순한 감정·논리 대립이 아니라‘주도권 싸움’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향후 방향이 주목된다.

공조에서 파기, 극한 대립까지
양 노총의 공조와 공조 파기의 반복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지난 2005년 김대환 노동부장관 퇴진 운동 당시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함께 단식 농성을 하며 끈끈한 연대를 과시했고 같은 해 9월에는 아주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복수노조 시대를 대비해 양 노총의 통합을 고민하자”는 이용득 위원장의 제안이 있기도 했다.

조준호 현 위원장이 당선된 뒤에도 느슨한 공조는 한동안 유지됐다. 그러던 양 노총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비정규직 보호법안 입법을 둘러싸고 입장이 갈려 사실상 공조 파기 선언과 감정 대립을 계속해 왔다. 그러다 4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법안 처리가 다시 미뤄지면서 5월 노동절 대회에서 조준호 위원장이 “양대 노총의 공동투쟁을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으로 양 노총 사이에 잠깐 ‘훈풍’이 부는가 싶었지만 로드맵 합의로 양 노총은 완전히 갈라 설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양 노총의 이번 갈등은 9월 11일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해 한국노총-재계-정부가 전격 합의하자 민주노총이 발끈하면서 촉발됐다. 민주노총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전체 노동자의 기본권을 팔아먹었다”며 한국노총을 거세게 비난했고 “노동법을 30년 후퇴시킨 한국노총 해체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여기에 일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합의안에 서명하고 나오던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다음날 한국노총 조합원 1000여 명은 민주노총 앞으로 몰려가 규탄집회를 열었다.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을 상대로 집회를 연 것은 노동운동 역사상 처음 있는 일. 한국노총은 “떼쓰기와 폭력만을 행사하는 민주노총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며 이번 기회를 폭력이 난무하는 노동운동의 행태를 근절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이용득 위원장이 조선일보에 “민주노총은 협상장에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는 취지의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연초부터 시작된 ‘주도권 쟁탈전’에 기름 부은 격
양노총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로드맵 합의를 두고 터져 나왔지만 주도권 싸움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올해 초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면서 한국노총은 ‘규모’에서 1위에 밀렸고, 새로운 방향으로 민주노총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행보를 계속해 왔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에 대한 규탄 목소리를 높이며 감정싸움까지 불사하는 것은 로드맵 합의를 계기로 높아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민주노총 소속 조합들의 과격 투쟁에 대한 여론이 나빠진 것도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을 압박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로드맵 합의를 이끌어 낸 한국노총은 실리를 챙기면서 대외적으로 협상력을 과시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최종 협상에서 ‘왕따’를 당한 데다 계속 주장해 왔던 대체근로 금지 등 ‘실익’도 챙기지 못해 내부에서조차 협상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자신들을 배제한 통과를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에 대한 내부의 비판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의 영향력과 교섭력이 상당히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현 집행부와 반대노선을 걷고 있는 공공연맹 등의 상당수 사업장이 필수공익사업장인 점을 감안하면 내부의 갈등은 더 거세질 않을 전망이다.

양 노총의 주도권 다툼은 올 초부터 시작됐었다. 한국노총이 연초에 노사정위원회와 노동위원회에 복귀하면서 ‘사회적 대화’에 적극 임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표면적인 이유는 김대환 장관 퇴임에 따라 그 동안 갈등을 빚었던 노정관계를 해소하겠다는 것이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 ‘규모’ 면에서 양 노총의 우위를 가를 ‘캐스트보드’였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민주노총에 가입, 민주노총이 조합원 80만을 거느린 최대 조직으로 부상함에 따라 강력한 견제수를 뒀다는 것.

강경투쟁을 고집하는 민주노총과 노선을 확실히 차별화해 노사정 대화를 주도해 나가고 국민 여론의 지지를 얻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었다는 얘기다. 또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노조가 많아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의 영향이 민주노총보다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때부터 ‘현실론’에 무게가 많이 실린 것도 사실.

반면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경총의 비정규직법안 합의를 시작으로 한국노총과 달리 강경노선을 유지했고 현행법상 불법노조인 공무원노조를 받아들임으로써 정부와의 대립각도 계속 세워왔다.

민주노총, 협상 전략 실패에 내분까지
양 노총의 주도권 싸움의 연장선인 이번 대립은 누구의 승리로 결말이 날까.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로드맵 협상에 임한 민주노총의 태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면서 민주노총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민주노총의 이번 전략은 실패였다”며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지킬 것과 포기할 것을 구분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은 모든 것을 다 얻기 위한 현실적 대안도 없이 주장만 앞세웠다”고 비판했다. 배 본부장은 또 로드맵 합의에 반발해 총파업을 벌이겠다는 민주노총의 계획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실질적인 위협력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위력만 과시하는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내부의 분열도 가중되는 모양새다. 지난 9월 19일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된 ‘모든 노사정 대화 불참’은 대의원 전원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표결에 붙여졌지만 과반수를 넘기지 못해 부결됐다.

이 수정동의안은 상정 자체가 민주노총 지도부에겐 ‘뜨거운 감자’였다. 가결됐다면 그 동안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온 현 지도부에 대한 불신임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부결됨으로써 현 지도부의 지도력 위기 국면은 잠시 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겉으로는 ‘11월 총파업’, ‘노무현 정권 퇴진’을 외치면서도 속으론 대화의 여지를 남겨놓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냈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한국노총, 협상력 과시했다지만 3년 후엔?
하지만 한국노총의 ‘판정승’을 기대하기에는 한국노총 내부의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일단 한국노총의 태도에 ‘야합’ 이라며 표면상 단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민주노총과 달리 한국노총 내에서는 지도부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조직들도 생겨나고 있다.

또, 한국노총이 조직의 사활을 걸었던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경우도 이번 합의로 3년간 유예된 것일 뿐이라는 데에 또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당장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있지만 3년 후면 다시 위기감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노총의 한 산별연맹 위원장은 “지난 10년간 유예를 거듭하면서도 아무 준비도 못한 상황에서 3년이 또 유예된다고 별 수가 있겠냐”면서 “현실적으로 당장 시행하기에는 부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내부 개혁과 대응 능력 향상을 도모할 수도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한국노총 스스로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적응력을 갖출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지연시킨 측면이 있다는 지적인 것.

이 위원장은 “2005년 2월 재선 직후 ‘3년 동안 한국노총을 많이 변화시키겠다’며 개혁 의지를 다졌던 이용득 위원장이 스스로 ‘개혁의 기회’를 밀어냈다”고 안타까워했다.

노동계 판도 변화에 영향 줄까
양 노총의 이번 갈등은 과거와 달리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말 실시되는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에서 어떤 성향을 가진 집행부가 당선되느냐가 변수가 될 수는 있지만 서로가 주도권을 두고 벌이는 싸움인 만큼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보수를 표방하는 ‘신노동연합’의 출범과 제 3노총 건설 움직임에, 양 노총의 확실한 차별화 전략까지 가세해 노동계의 판도 변화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