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긴 철도파업, 종착역은?
한 달 넘긴 철도파업, 종착역은?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12.0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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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인력 투입 비판에도 공사는 ‘초강경모드’

전국철도노동조합(위원장 김영훈)의 파업이 한 달을 넘겼다. 종전까지 최장기 철도파업이었던 2013년 철도민영화 반대 파업은 23일 동안 진행됐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저지 투쟁의 상징이 됐다.

이와는 별개로 여전히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일찍부터 ‘불법파업’ 공세에 나섰고, 수도권광역전철 전동차에는 군복 입은 기관사와 승무원이 눈에 띈다.

노조 역시 이번에는 끝장을 보겠다는 입장이다. 파업 조합원 중 일부가 복귀하긴 했지만 여전히 ‘대오’는 흩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열차사고는 시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 열차가 이대로 달려도 괜찮을지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성과연봉제 강행이 ‘최장기파업’ 불러

한국철도공사(사장 홍순만)는 지난 5월 30일 이사회를 열어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골자로 하는 보수규정 전면개정안을 의결했다. 노조는 “불법 이사회”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철도노조 간부들은 이사회 당일에서야 소식을 듣고 급하게 개최장소인 서울본부로 달려갔지만 철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현장의 분위기도 어수선해졌다. 특히 지난해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의 노사합의가 이행되지 않은 데 따른 조합원들의 실망감이 커질 대로 커진 상태였다. 철도공사 노사가 임금피크제의 조건으로 향후 2년 동안 1,500여 명의 신규인력을 채용키로 했으나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노사합의에 따라 올해에만 1,300명이 넘는 인원을 채용해야 하지만 420여 명 수준에서 멈췄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는 외주화와 인력감축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홍순만 사장은 지난 5월 취임과 동시에 성과연봉제 도입 의사를 강하게 표명해 왔다. 철도공사 사측이 ‘성과연봉제 관련 보충협약’ 교섭을 제의하자 노조는 이에 수락했고, 5월 20일 1차 본교섭이 열렸다. 노사가 서로의 의견차를 확인한 뒤 27일 2차 본교섭을 열었지만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기획재정부가 수시로 공공기관장 워크숍이나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압박해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토부 고위관료 출신인 홍순만 사장이 정부의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밀어붙였다는 평가가 많다.

이사회에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의결되자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한다. 한 달 가까이 조정절차가 이어졌지만 노사는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그러자 노조는 6월 22일부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해, 24일 “70.2%의 조합원이 쟁의행위에 찬성”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6월 29일 중앙노동위원회 특별조정위원회는 조정안을 양측에 제시했다. 조정안에는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과 관련하여 개정한 보수규정의 효력 유무에 대해서는 사법적 판단에 따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은 임금체계 변경이므로 단체교섭에 따라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며 조정안을 거부했다. 근로조건의 변경에 관한 사안을 노사자율교섭이 아닌 사법부의 판단에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철도노조는 “5월 27일 마지막 본교섭 이후 지속적으로 교섭을 요구해 왔지만 공사는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며 9월 27일 파업에 돌입했다.

무리한 대체인력 투입, 철도 안전 ‘빨간불’

철도노조가 파업을 예고하자 국토부는 9월 23일 비상수송대책을 발표했다. KTX는 전 노선에서 정상 운행하고, 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수도권광역전철 1호선·분당선·경의중앙선·경춘선 등은 출퇴근시간 운행률을 100% 수준으로 유지키로 했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등 일반여객열차는 각각 평시대비 42%와 37% 감축해 운행하기로 했다. 화물열차의 경우 평시대비 30%로 운행률이 떨어질 것으로 국토부는 예상했다. 10월 31일 현재 국토부가 발표한 열차 운행현황에 따르면 KTX는 100%, 수도권전철은 95.1%, 일반여객열차는 63.6%, 화물열차는 61.8%의 운행률을 보이고 있다. 이번 철도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의 숫자는 8천 명에 육박한다. 평소 철도공사의 운용인력 2만 2천여 명의 3분의 1에 달하는 인원이 파업에 참가했지만 KTX와 수도권전철은 거의 대부분 정상 운행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6천 명 규모의 대체인력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대체인력의 상당수는 철도공사 직원이 아닌 ‘외부인력’이다. 이들의 수는 2,100여 명에 달한다. 수도권전철에는 457명의 군 인력도 투입됐다. 이처럼 많은 대체인력이 운전·승무·차량(정비)·시설·전기 등의 업무에 투입되자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철도노조가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과 필수유지업무 대상 조합원으로부터 수집한 사례를 보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철도노조가 공개한 구체적 사례 외에도 황당한 사고들이 많이 일어났다. 수도권전철 차장으로 투입된 대체근무자가 출입문 스위치를 잘못 조작해 인천역에서 구로역까지 칸마다 하나의 출입문만 열렸다. KTX에 열차팀장으로 투입된 한 대체근무자는 차내 좌석 등받이를 젖히는 방법을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상황도 빚어졌다.

철도노조의 파업기간 중 언론에 알려진 대표적인 사고사례는 수도권전철 1호선 종로3가역에서 발생한 사고다.

지난 10월 17일 종로3가역에 진입한 철도공사 소속 인천행 열차가 출입문 표시등 고장으로 멈춰 섰다. 해당 열차에는 특전사 소속 대체기관사와 차장이 탑승하고 있었다. 10분이 넘도록 아무런 조치가 없자 한 승객이 출입문 개폐 밸브를 임의로 조작해 출입문을 강제로 열었고, 이를 알지 못한 대체기관사가 강제로 열차를 출발시키면서 해당 열차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 당시 열차에 탑승했던 어느 승객은 “열차가 멈춘 채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고, 별다른 안내방송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5일 뒤인 22일 분당선 왕십리역에서도 전동열차가 멈춰 섰다. 해당 열차는 이날 오후 서울숲역을 출발해 종착역인 왕십리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당시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사고 한 시간여 만에 구조대의 도움으로 내릴 수 있었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특전사 소속 대체근무자의 운전취급 미숙으로 인해 안전장치가 비상 작동했으나 초기 대응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열차 승무업무 이외에 안전과 직결되는 차량 정비에서도 대체근무자가 투입되면서 각종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특히 KTX의 경우 일정 주행거리마다 열차 바퀴와 레일이 닿는 부분을 깎는 작업(차륜삭정)을 해야 하지만, 운행률을 높이느라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현장 관계자의 전언이다. 열차 바퀴를 다듬는 작업이 제때 진행되지 못할 경우 자칫 열차 탈선사고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무리하게 운행률을 높여 안전사고를 초래하느니 차라리 운행률을 낮추더라도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부당노동행위 의혹까지

무리한 대체인력 투입으로 인해 철도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비판에도 철도공사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홍순만 사장은 10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파업 참가자들이 복귀하지 않더라도 6개월 이내에 추가인력 확보, 외주화 등을 통해 화물열차를 제외한 모든 열차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밝혔다. 또 3년 내에 기관사 3천 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장 군 인력이 대체근무자로 투입된 점도 논란이다. 국방부는 군 인력 투입의 근거로 철도파업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 규정하는 “사회재난”에 해당된다는 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법률에는 “사회재난”에 대해 “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화생방사고·환경오염사고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에너지·통신·교통·금융·의료·수도 등 국가기반체계의 마비, 감염병 또는 따른 가축전염병의 확산 등으로 인한 피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철도공사와 국방부는 노조의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본 것이다.

이처럼 오히려 철도공사는 “역대 최장 철도파업 불구 열차 운행 큰 지장없었다”면서 “대체인력의 숙련도가 향상되어 갈수록 (열차운행이)안정화 되고 있다”고 밝히는 등, 대체인력 투입을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철도파업에 대한 철도공사의 자세는 매우 강경하다. 지난 27일에는 철도노조 간부 25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금액 143억 원을 403억 원으로 두 배 가량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철도공사가 흑자를 내는 KTX는 100% 운행하고, 적자가 나는 일반열차는 운행을 줄이면서 오히려 수익이 늘었다”고 주장했다.

부당노동행위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사측 관리자가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의 집을 방문해 가족들에게 업무복귀지시서와 사장서한을 직접 전달한 사례가 확인됐다. 한 지역본부에서는 파업에 불참한 조합원은 원하는 근무지에 배치해 주겠다거나 반대로 파업에 참여할 경우 타 부서로 발령 내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파업 첫 날에는 필수유지업무 대상이 아닌 조합원을 사업소장이 개인차량에 태워 특정 장소에 집합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길어지는 파업, 종착역이 안 보인다

한편 철도파업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상황을 마무리할 계기는 전혀 마련되고 있지 않다. 10월 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노조·공사·국회·정부가 참여하는 4자 연석회의를 노사에 제안했다. 하지만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불법파업에는 원칙대로 대응하겠다”며 거부의 뜻을 밝혔다. 홍순만 사장 역시 “노사문제는 노사가 풀어야 한다”면서 국회의 중재를 거부했다. 특히 홍 사장은 “(정치권이)왜 개입하느냐”는 태도를 보여 야당 의원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철도노조 또한 홍 사장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노사문제는 노사가 풀어야 한다면서 왜 정작 교섭에는 나오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철도노조의 이번 파업은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면서 충분히 예견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파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철도공사가 지나치게 대응하면서 노조를 자극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더욱이 철도는 시민의 안전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