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노사, 새해 벽두부터 물류‧시설 외주화 갈등
철도 노사, 새해 벽두부터 물류‧시설 외주화 갈등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2.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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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공사 분할민영화 의혹 ‘솔솔’
[리포트]철도 물류·시설 외주화

74일 장기 파업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철도 노사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사장 홍순만)가 오봉역 구내 입환 업무와 안산선 선로 유지보수 업무를 외주화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철도공사 측이 물류·선로 부문의 전방위적인 외주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그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노동조합과 공유하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철도 현장에서는 “철도공사가 빈껍데기만 남는 게 아니냐”는 불안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늘 많은 이용객들을 볼 수 있는 서울역사 내 모습.

오봉역 입환 외주화에 수송원 반발

경기 의왕에 위치한 오봉역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화물전용역이다. 물동량으로 따지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다. 오봉역은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ICD)와 접해 있어 쉴 틈 없이 화물열차가 드나든다. 각지에서 수도권으로 들어오는 철도 화물은 대부분 오봉역을 거친다.

그런데 지난 12월 철도공사 오봉역 입환 업무를 외주화 할 거라는 계획이 수송원들에게 알려졌다. 철도노조가 내부 제보를 받아 공개한 바에 따르면, 오봉역의 경우 현재 74명인 인원이 14명으로 줄어들고, 53명이 외주화 될 계획이다.

아울러 오봉역 뿐만 아니라 오는 3월부터 전국 각 권역별로 물동량이 많은 화물역의 입환 업무를 외주화 하겠다는 계획도 드러났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올해 중 입환 업무의 외주화가 진행되는 화물역은 철암역(강원), 입석리역(중부내륙), 대전조차장역(충청), 부산신항역(영남), 태금역(호남) 등이다. 철도공사 측이 입환 업무 외주화를 추진하는 명분은 ‘경영효율화’다.

철도를 통해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환 작업을 거쳐야 한다. 입환 작업이란 객차 또는 화차를 기관차에서 분리하여 행선지별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하나의 열차로 연결하는 작업을 말한다. 일반적인 택배에 비유하면 각 권역의 물류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상·하차 작업 같은 것이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철도 현장에서 수송원이 기피 직종으로 꼽힐 만큼 열차 입환은 까다로운 작업이다. 기관차와 화차 사이의 연결기를 분리하거나 고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동시험을 통해 연결기 결합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송원들은 기관사에게 수신호로 출발 여부를 전달한다. 화차의 수가 많을수록, 역 구내의 선로가 많고 구조가 복잡할수록 작업 과정이 복잡할 뿐 아니라 사고 위험도 커진다.

이 때문에 철도노조는 입환 업무 외주화 계획과 관련해 수송원들의 안전을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데 외부 위탁이 이루어지면 걷잡을 수 없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역 구내의 열차 운행을 통제하는 로컬관제원과 역장, 수송팀장 등은 철도공사 소속으로, 실제 입환 작업을 하는 수송원은 외주업체 소속으로 나뉘게 된다. 하나의 회사로 묶여 있던 관제 체계가 둘로 쪼개지면서 지시와 수행이 서로 엇박자를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 경부고속철도 김천구미역 부근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역시 선로 위에서 작업 중이던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들에게 열차 운행정보가 잘못 알려진 게 원인이었다.

선로 유지보수 외주화, 탈선 사고 위험 높여

오봉역 화물열차 입환 업무 외주화는 노조가 천막농성과 이른바 ‘준법투쟁’을 강도 높게 벌이면서 올해 12월까지 유보된 상태다. 하지만 외주화는 철도 현장 곳곳에서 노사갈등의 뇌관이 되고 있다. 이번에는 안산선 선로 유지보수 업무 외주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철도공사는 경기 군포시 금정역에서 시흥시 오이도역까지 수도권 광역전철 4호선으로 이어진 안산선 구간의 선로 유지보수 업무를 외주화 하는 계획을 내놨다. 해당 계획은 지난 2011년에 한 차례 추진됐다가 노조와 지역 시민사회의 반발로 이듬해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철도공사가 외주업체를 선정하고 계약까지 끝낸 상황이었지만, 사고 위험성이 제기되면서 철도공사 측은 위약금을 감수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앞서 언급한 입환 업무가 노동자들의 안전과 연관이 깊다면, 선로 유지보수 업무는 이에 더해 승객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기온 변화에 따라 선로에 균열이나 뒤틀림 등이 발생한다. 레일을 받치고 있는 침목이 상하거나 선로에 깔린 자갈이 유실되기도 한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선로를 점검하고 보수해야 하는데, 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열차가 탈선하고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2011년 4월 발생한 수도권전철 분당선 죽전역 구내 열차 탈선 사고 역시 선로의 수평이 맞지 않아 발생했다. 물론 당시 선로 유지보수 업무를 맡았던 곳은 외주업체가 아닌 철도공사 수도권동부본부 청량리시설사업소였다. 철도공사 직영으로 선로 유지보수가 이뤄졌음에도 사고가 난 것이다.

그러나 분당선 열차 탈선 사고의 배경에는 만성적인 인력부족이 있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관계자는 “선로 유지보수 작업을 할 때에는 선로에 열차 진입 여부를 관측하기 위해 양방향에 한 명씩 안전감시원을 둬야 하지만, 철도공사 직원들도 인력이 부족해 안전감시원 없이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그는 “네다섯 명이 할 일을 두세 명이 하다 보면 선로 상태를 아무리 꼼꼼히 살피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현장 인력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외주화까지 진행될 경우 철도 안전에 더욱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외주화가 갖는 구조적인 결함 때문이다.

철도공사의 외주화는 공사 직원 일부가 관리 인력으로 남고, 현장의 작업 인력이 외주업체 소속 직원들로 채워지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철도공사 직원은 “불법파견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외주업체 소속 현장소장을 통해서만 업무 지시 및 관제가 이루어지는데,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곤 한다”고 말했다. 2004년 철도청이 철도시설공단(시설)과 철도공사(운영)로 분리될 당시 선로 유지보수 업무를 철도공사가 맡기로 한 이유도 관제와 현장의 분리가 갖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외주화=정상화’ 성립 안 해

철도공사는 동시다발적인 외주화의 명분으로 ‘경영효율화’ 내지는 ‘경영정상화’를 내세우고 있다. 조직 축소로 15조 원에 달하는 부채를 오는 2019년까지 12조 원 수준으로 감축하고, 흑자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주화가 반드시 경영정상화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분별한 외주화가 오히려 철도공사의 정상적 운영을 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수도권에서 철도 수송원이 상주하는 역은 외주화 계획이 나온 오봉역을 포함해 수색역, 청량리역, 망우역, 광운대역, 인천역, 의왕역 등이다. 이들 7개 역 중에서도 신입 수송원을 대상으로 한 화물열차 입환 실습 교육이 가능한 역은 오봉역, 의왕역, 인천역에 불과하다. 수도권지역 내 화물을 취급하는 역에서 근무할 신입 수송원들은 이 세 곳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철도 현장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오봉역의 입환 업무가 외주화 될 경우 신입 수송원 교육이 어려워질 거라는 반응이다. 외주업체 소속 직원이 철도공사 직원을 교육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봉역의 입환 교육 기능을 인천역이나 의왕역으로 분산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나머지 두 역의 입환 업무량도 포화 상태여서다.

외주화의 비용 절감 효과 역시 불분명하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개된 철도공사의 2015년 당기순이익은 860억 원이다. 그런데 2015년 9월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철도공사의 흑자는 자산 매각에 의한 ‘억지 흑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외주화가 경영지표 개선의 원인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외주화가 오히려 비효율성 증대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한다. 2006년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당시 연구위원)이 6개 공기업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외주업체의 이윤과 관리비용을 보장해 주면서 오히려 비용이 증가하는 사례가 발견됐다.

철도공사의 오봉역 입환 외주화 역시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외주화가 이루어질 경우 철도공사 잔류 인원을 제외하고 외주업체 소속 현장소장 1명, 수송팀장 3명 등 모두 4명의 관리자를 두게 된다. 철도공사 소속 역장과 수송팀장, 로컬관제원 등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관리인력 중복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외주업체에 보장하는 적정 이윤까지 더해지면 외주화의 비용 감소 효과는 대부분 사라진다.

철도공사, 분할민영화 수순 밟나

철도공사 외주화 계획을 둘러싼 숱한 모든 논란은 분할민영화 의혹으로 모여든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3년 6월 내놓은 ‘철도산업 발전방안’과 상당 부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철도노조가 2013년 12월 수도권 고속철도 분할 저지를 이유로 파업을 벌이자 국토부 측이 “철도공사 민영화 계획이 아니다”라며 극구 부인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토부의 ‘철도산업 발전방안’에는 철도공사에 간선여객운송 기능만 남겨둔 채 나머지 ▲지선 및 수도권고속철도, 공항철도 여객운송 ▲물류운송 ▲차량정비 및 임대 ▲시설 유지보수 및 자산 관리 ▲역세권 개발 기능을 각각 분할하여 자회사로 설립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방안이 실현될 경우 철도공사는 각 자회사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철도공사의 외주화 계획이 당장의 자회사 분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류와 시설 부문의 대대적인 외주화와 함께 조직 축소가 일어나면서 자회사 분할로 가는 과정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개통한 수도권고속철도(SRT) 운영사인 (주)SR은 코레일의 자회사로 설립됐다. 공항철도는 2009년 철도공사에 인수됐다가 KB공항철도특별자산투자신탁에 다시 매각됐다. 여객부문 외에도 전 영역에 걸쳐 자회사 설립 및 민간 위탁이 상당수 완료된 상태다.

노조의 반대로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긴 했으나, 철도공사는 분할민영화에 바짝 다가서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전국 철도망 구축에 향후 10년 동안 19조 8천억 원의 민간자본을 유치하겠다는 국토부 계획도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사실상 철도 건설과 운영이 모두 민간에 개방된다.

외주화의 안전성도 논란이지만, ‘외주화-자회사-민간개방’으로 이어지는 철도 민영화 수순을 따라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봉역 입환 외주화와 안산선 선로 유지보수 외주화 계획이 다시 한 번 민영화 의혹에 불을 지피고 있다. 국토부 관료 출신인 홍순만 사장의 지론이 민영화인 점도 외주화 계획과 분할민영화의 연관성에 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한편 철도공사 측은 이 같은 외주화 계획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홍순만 사장 직속 전략기획실에서 비공개로 추진되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결국 국토부와 철도공사가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않는 한 이른바 ‘밀실 분할민영화 추진’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