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목소리는 동일, 조직선거로 회귀?
변화 목소리는 동일, 조직선거로 회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7.02.1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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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한국노총 선거를 덮다
[리포트]한국노총 선거인대회

한국노총 제26대 위원장과 사무총장에 김주영(현 공공노련 위원장), 이성경(현 고무산업노련 위원장) 후보조가 당선됐다. 이들은 2020년 1월까지 3년 동안 한국노총을 이끌게 됐다. 새 집행부가 임기를 시작하는 2017년은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로 온통 어수선한 정국이다. 한국노총의 제 역할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커지고 있다.

 

2파전, 공약은 대동소이

당락을 불문하고 노력을 기울였던 당사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뜨거운 나날이었을 것이다. 각 후보조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선거 공약은 큰 틀에서 뚜렷한 차별점을 보이고 있지 않다. ▲정부의 노동개악 정책에 맞서는 강한 한국노총을 정립해 나가겠다는 점 ▲임기 내 임원들의 정계진출을 막겠다는 점 ▲각 산별과 현장의 현안들을 살피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점 등은 공통적이다.

김만재-이인상 후보조는 ‘개혁 후보’임을 전면에 내세우며 김주영-이성경 후보조와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했다. 하지만 ‘개혁’은 김주영-이성경 후보조의 입에서도 마찬가지로 나왔다. ‘박근혜 정권 심판, 정권교체’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사자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표면적으로 보기에 이와 같은 ‘차이 없음’이 생겨난 까닭은 무엇일까? 또 한 가지 이번 한국노총 선거인대회를 지켜보면서 짚어볼만한 점, ‘여전히 한국노총의 선거문화는 조직선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어떤 해석을 내려야 할까?

과거 선거인대회의 잔상

23대, 25대 선거가 치러졌던 2011년과 2014년 초를 상기해 보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정책에 대한 한국노총의 대응이 시급한 시기였다. 23대 선거에서 세 후보조가 공약의 전면에 내세웠던 사안은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 노조법 전면 재개정이었다. 이는 전임 22대 집행부의 노사정 합의에 대한 현장 정서를 반영한 내용이었고, 실제 선거 결과에서도 이와 같은 바람은 표심으로 이어졌다. 25대 선거에서도 통상임금, 공공기관 정상화대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노사정논의 등 굵직한 노동이슈가 한국노총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23대 한국노총 집행부는 당선 직후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를 선언하며 정부‧여당과의 관계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이후 한국노총은 야당을 새로운 파트너로 받아들인다. 민주통합당의 창당 과정에 한 축으로 참여하면서 밀월 관계가 시작된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이와 같은 정치 방침은 조직 내부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는다. 치열했던 경선 과정에서의 갈등의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와 같은 결정은 여권 성향의 대표자들과 조직으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반발도 한편에서는 일리가 있다. “특정 업종이나 지역 단위에선 활동의 특성 상 여당과의 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며 “이와 같은 개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정치방침 하달은 문제가 많다”는 주장이었다.

갈등은 점점 깊고 넓어졌다. 2012년 정기대의원대회는 한국노총 역사상 최초로 성원부족으로 유회되기도 한다. 급기야 3년 임기의 절반을 남겨둔 채 당시 이용득 위원장이 사퇴하기에 이른다.

이용득 위원장이 당선되었던 23대 선거인대회 직후, 한국노총 관계자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이른바 ‘조직선거’ 풍토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현장의 조합원들이 상층 지도부를 독단적이라고 바라보고 있으며, 이와 같은 분위기가 표심에 반영됐다는 의미다. 정부기관이나 경제단체, 언론 등에서 예상했던 것과 선거 결과가 크게 달랐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용득 위원장의 사퇴와 이후 치러진 보궐선거까지 일련의 과정을 볼 때, “몰아주기 식의 조직선거 문화나 한국노총 내 세력이 재편됐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25대 선거에서도 이와 같은 양상이 잘 드러난다고 말한다. 1차 투표에서 923표를 얻으며 1위를 했던 문진국-김주영 후보조는 결선투표에서는 164표를 더 얻는데 그친다. 반면 755표를 얻었던 김동만-이병균 후보조는 594표를 추가한다. 결선 투표에서 미리 대회장을 빠져나가 투표에 참여한 선거인이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몰표가 나온 셈이다.
개별 선거인들의 ‘소신 투표’보다는 조직 차원의 지시에 의한 몰표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거센 외풍 속에 선거과정은 평탄?

24일 치러진 26대 선거인대회도 과거와 비슷한 양상이었다는 평가는 과연 정확한 것일까?

경선 구도가 수립되고 선거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선거의 국면은 큰 전환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관전평’이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선거 중이다보니 네거티브한 공격도 이뤄졌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추세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의 선거인대회를 포함해, 이번의 선거 또한 딱 잘라 ‘조직선거’라고 단정 짓는 것은 좁은 견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각 후보들이 그동안 한국노총의 주요 리더 그룹으로서 보여줬던 역량과 노력, 또한 후보자 개개인의 성향과 매력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표심과 연결되는 것이지, 단순히 표 동원 수로만 셈하는 식의 조직선거라고 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앞서 살펴본 과거의 사례들을 보더라도, 선거를 치르는 매 순간 한국노총이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해 먼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노총이란 조직의 위상과 성격을 감안하면, 순수하게 조직 내 역량을 겨루는 선거라는 게 가능할지에 대한 물음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 정권의 성향,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정책 등 외부적 요인들은 한국노총 선거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제로 작용한다. 이러한 외부적 요인들을 선거에 출마한 각 후보조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대응 방안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차이가 곧 후보의 차이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2017년의 상황을 감안해 볼 때 과연 다른 결의 이야기를 내세울 위원장 후보가 나올 수 있을까? 국정농단 사태 이후 촛불정국은 지금까지 그 어떤 노동이슈보다도 강한 파급력으로 한국 사회를 장악했다. 국정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 정책은 한국노총도 진즉 노동개악, 반노동정책으로 규정했다. 뭔가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두 후보조의 공약이 비슷하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선거 과정 중 ‘큰 변수가 없었다’라고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사회 전반을 장악한 강한 외풍에 움직일 여지가 좁았다는 이야기다.

새 집행부의 순항, 관건은?

선거는 끝났고, 한국노총호를 이끌어갈 새 집행부가 구성된다. 열띤 경쟁 중에 혹시나 생겼을지 모를 갈등이 선거 후유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새 집행부는 많은 신경을 쓸 것이다. 김주영 위원장 역시 당선 일성으로 ‘조직통합’을 거론했다. 그동안 조직 내 분열과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채 점점 더 어려운 문제들을 낳았던 사실을 지켜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노총호가 헤쳐 나가야 할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정치권은 이미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고, 이래저래 한국노총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노총의 새 집행부가 슬로건처럼 ‘한국노총의 횃불이 되어’ ‘노총혁신, 정권교체, 사회개혁’을 이뤄나갈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요 공약

조합원 중심의 한국노총 건설

정체된 노동운동 활성화 위해 시대에 부응하는 운동이념 재정립 SNS, 휴대전화로 전 조합원과 즉시소통체계 구축, 주요회의 생중계 조합원 100명당 1명 선거인단 선출로 중소노조 참정권 확대 핵심정책은 전 조합원 투표, 단위노조 대표자회의, 선거인단회의로 결정 대의원대회 정책심의기능 강화, 중앙위원회 정례화 사무총국 및 부설기관 혁신, 재정자립을 통한 정부지원 최소화

신규조직화, 노동법 개정으로 강한노총 재건

노총 중앙, 지역본부에 신규조직화사업단 설치로 임기내 조합원 100만 달성 삼성 등 무노조 재벌경영 분쇄, 10만 비정규 조직 건설 비정규직, 최저임금, 근로시간 관련법 총체적 개정 노사 자율에 기반한 복수노조, 타임오프제 혁신

제대로 된 노동정치 실천

한국노총 임원 각종 선거 불출마 선언, 출마시 자동해임조항 규약에 명시 정치아카데미 설립 등을 통한 정치역량 제고, 조합원의 지자체 선거 등 정치 참여 적극지원 규약 개정을 통해 조합원 정계 진출시 사전심의제, 예비경선제 도입

박근혜정권 심판, 정권교체로 사회개혁

재벌부패정권 심판, 반노동관료 퇴진투쟁으로 친노동자정권 수립 전 조합원 총투표를 통한 대선지지후보 결정, 전조직적 지원 노동악법· 반노동정책 폐기와 핵심노동과제 입법 및 정책협약 추진 대선 이후 정국 주도, 강력한 압박과 투쟁을 통해 협약내용 관철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동·농민·청년·여성·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범국민적 연대체 발족

소통으로 한국노총 통합

각 산별 및 지역과 노총임원 정례적인 간담회 개최 노총임원 현장대장정 수시 실시로 주요현안에 대한 조직내 이견 해소 조직간 이해관계 조정을 위해 분쟁조정위원회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