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편지
어떤 편지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7.03.0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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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성상영의 촌철살인미수

한 마디 말로 큰 위력을 발휘할 때를 ‘촌철살인’이라고 하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다.

휴대전화는커녕 집전화도 몇 대 없던 시절, 편지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요한 소통수단이었다. 사람들은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안부를 전하고자 할 때, 아니면 딱히 별 일이 없더라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당연히 그 중에는 반가운 편지도 있고, 그렇지 않은 편지도 있었다. 아들의 취업 소식을 담아 도시에서 전해온 편지는 시골의 부모님들이 어깨춤을 추게 했다. ‘양’, ‘가’가 수두룩한 성적표는 이를 부모님께 들키지 않으려는 학생들을 ‘우편함 사수대’로 만들기도 했다. 어버이날을 맞아 삐뚤빼뚤 쓰인 유치원생의 편지는 ‘아빠미소’가 절로 나오게 한다.

지금은 우편물의 대부분이 기관이나 기업에서 보내는 각종 고지서, 통지서 같은 것들이다. 굳이 펜과 편지지를 꺼내 틀린 글자는 두 줄씩 그어가며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고심해 가며 수식어를 덧붙였지만, 이제는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의 스티커 하나면 족하다.

영상편지도 있다. 한때 어느 TV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던 ‘고향에서 온 편지’는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도시의 자식들에게 전하는 소식을 담아냈다.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과 재치 있는 말들은 어지간한 예능프로그램 출연자의 말보다도 더 시청자들의 배꼽을 빼놓았다. 때때로 영상편지는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를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기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편지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영상편지가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헌재에 출석 여부를 놓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민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 경우의 수 중에는 직접 출석 대신 ‘영상편지’도 들어있다는 전언이다. 탄핵심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영상에 담아 법정에서 틀겠다는 것이다. 황당하다.

‘창조경제’를 외치던 대통령답다고 해야 할까. 박 대통령 측은 보통 사람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해괴한 방법으로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방해하고 있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이미 재판 과정에서 각종 기행을 벌였다. 대통령의 헌재 출석 여부와 관련해 재판관들과 ‘밀당’을 벌이더니 이제는 영상편지까지 언급한다. 재판정에서의 태극기 퍼포먼스나 ‘필리버스터’식 변론은 애교로 보일 지경이다. 그야말로 ‘창조변론’이다.

탄핵에 찬성하는 80%의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영상편지를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탄핵심판을 질질 끄는 모습에 이미 질릴 대로 질렸다. 진심이 담긴 대통령의 사과문은 바라지도 않는다. 3월 8일이든, 9일이든, 아니면 13일이든 그저 탄핵 인용을 기다리는 것이 정도(正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