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사각지대 방치 언제까지 이어지나
노동법 사각지대 방치 언제까지 이어지나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3.0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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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의 권리 20년 넘게 요지부동
[리포트] 특수고용노동자 실태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레미콘 기사, 방송작가, 방송 외주 PD, 학원차량 운전기사, 대리운전기사, 텔레마케터…. 우리 귀에 친숙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노동을 하고 있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름표를 단 채, 노동자라면 마땅히 적용받아야 할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싸움은 2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싸움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노동자성 외면받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실태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015년 12월 발표한 특수고용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의 특수고용노동자 규모는 218만 1천여 명으로 밝혀졌다.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산업구조는 많이 변화를 겪었고 그로 인해 기존의 고용관계와는 다른 형태의 노동자가 생겨났다. 그중 하나가 특수고용노동자이다.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직접 고용된 노동자였다. 어느 날부터 사용자들이 일방적으로 이들을 개인사업자라고 칭하며 ‘근로계약서’를 ‘업무위탁계약서’, ‘도급 계약서’로 바꿨을 뿐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를 지켜주는 법적 테두리 밖에서 오늘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억울하게 해고를 당해도 구제 요청을 할 수 없고 같은 회사에서 10년을 일해도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 초과 노동 수당, 월차, 연차휴가, 4대 보험 등 노동자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그 어느 것 하나 누릴 수 없다.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실 우문숙 국장은 이 같은 현실을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죽도록 일을 시키면서도 책임을 안 져도 되는 이런 식의 구조에 재미를 본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안 지켜도 되고, 단체교섭을 안 해도 되고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이게 진짜 ‘노다지’가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사용자는 아니라고 못을 박지만 외양만 바뀌었을 뿐 이들 대부분은 특정 업체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직·간접적 업무 지시와 감독 하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이다. 사용종속성과 경제종속성이 그동안 특수고용노동자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법적 근거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제거하기 위한 시도들을 꾸준히 해왔다. 특히,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종속성을 제거하려 했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중요할 역할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민주노총, 노조법 2조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 열어

지난 2월 7일 국회 정론관에서 ‘특수고용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노조법 2조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와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주최한 이날 기자회견은 민주노총의 ▲공공운수노조 ▲건설노조 ▲서비스연맹 ▲언론노조 ▲보험설계 노동자 노조 추진위원회 ▲관광통역안내사 노조 준비위원회 등이 함께했다. 이들은 ‘근로자’의 개념을 실질화 구체화하여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를 주장했다. 이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조 개정안을 발의했다. 2조 1항의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에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근로자로 본다”라는 단서를 신설하는 내용이다.

노조법 2조 개정안 단서 신설

(가) 자신이 아닌 다른 자의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
(나) 그 밖에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서 이 법에 따른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자 둥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

특수고용자의 권리보장 입법 논의는 2001년 노사정위원회에서 처음 특수고용노동자 보호대책에 대한 논의로 시작되었으며, 2007년 6월 5일 4차례의 기초안 협의에 의해 “특수고용 종사자로는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한 노무를 제공하지만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이 적용되지 않는 자, 그 중 특수고용 종사자의 범위를 시대에 맞게 유연하게 정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으로 다시 한정한다”는 정부안이 확정되어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조항이 생기면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확인하기 위한 싸움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특례조항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산재보험을 적용하겠다는 취지지만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후 10년째 권리보장 입법은 중단 상태이며 노동법상 근로관계가 아니라는 명목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됐다.

우리는 단결이 필요하다

제일 큰 문제는 노조를 결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조 설립을 못 할 뿐 아니라 이미 설립된 노조조차 노조로서 인정받지 못하여 임금 및 단체협약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특수고용형태의 대부분의 직종들은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없는 상황일 때가 많다. 실제로 사례를 보면 노조를 결성했으나 노동자성에 대한 법적 판단이 모호하거나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기존의 노조가 거의 와해되는 경우가 있었으며 노조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해 처음부터 법외노조로 조직된 사례도 있었다. 또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사용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도 흔하다.

윤애림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가장 효과적 길은 노동자의 단결에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노조로 단결하면 현장에서 권리 침해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개별 노동자의 권리뿐 아니라 전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라며 노동자의 단결을 강조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김진혁 조직쟁의부실장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범위와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라며 “같은 목소리를 내는 특수고용노동자가 함께 투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신정부와 20대 국회에서 하나의 가지만 볼 것이 아니라 큰 숲을 보고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노동자성 부인 사례>

학습지교사
위탁교사의 사무실 출근규정 및 업무일지 작성이 존재했으나 사용종속성을 피하기 위하여 회사는 출근규정 및 일지작성을 중단함

방송작가(막내작가) / 외주독립PD보조 / 헤어디자이너보조
이들은 전속적인 관계를 가지며 경제적 종속성도 높음에도 불구하고 도제관계식으로 왜곡되어 있으며 특히 막내작가, 외주PD보조(조연출), 헤어디자이너 스텝들은 노동자성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노동자성이 약한 메인작가, 외주PD, 헤어디자이너와 동일하게 취급되어 노동자성이 부인되고 있음

골프장 경기보조원
캐디피를 골프장에서 지급하던 관행을 고객들이 직접 지급하도록 변경하여 경제종속성을 부인함

보험모집인
과거 위탁계약관계를 갖고 있는 보험모집인들에 대해 1인 대리점을 만들어 주고 사업자등록을 하도록 하여 사용종속성을 제거하려고 함

텔레마케터
근태 및 업무 진행이 원청회사에서 콜센터 위탁업체로 이관하여 결과적으로 회사의 종속성을 부인하고 사용, 경제, 조직종속성을 위탁업체로 위장하고 있음

학원차량운전기사
학원차량기사는 전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종속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차량에 소유권을 이유로 경제종속성을 부인하고 있음

대리운전기사
과거 출퇴근이 정해져 있는 전속적인 형태의 대리운전기사가 존재했으나 업체에서 PDA를 지급하던 관행을 바꿔 개인이 구매토록 함으로써 경제종속성을 제거하려고 함

덤프트럭기사
건설 장비를 불하하여 고용관계를 계약관계로 대체해 왔음. 이 과정에서 기사에게 지급해야 할 보상을 건설장비에 대한 임대료로 대체함

택배기사
택배회사와 택배기사간의 직접 도급계약을 택배회사–대리점–택배기사간의 계약관계로 바꿔 택배회사의 사용, 경제, 조직종속성을 대리점으로 떠 넘겨 근로자성을 부인하고 있음

출처 : 2016. 9. 6. 『20대 국회 비정규직 입법과제 대토론회 자료집』,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실태 및 법적 보호의 필요성(한국노동연구원 정흥준)

[미니인터뷰] 보호망 밖의 열악한 근로조건

쇼핑가이드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_관광통역안내사노조 준비위 문경숙 준비위원

가이드의 업무는 공항으로 중국인 손님을 마중 나가는 일부터 시작한다. 3박 4일 또는 4박 5일 투어가 시작되면 공항으로 손님을 마중하는 것부터 시작해 마지막 날 손님을 공항에서 배웅하면 비로소 근무가 끝이 난다. 이때 하루 근무시간은 무조건 10시간을 넘는다. 휴식시간이라는 개념도 없다. 손님에게 자유시간을 줘도, 호텔에 돌아와 잠을 자더라도 손님의 호출에 즉각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한다.

가이드는 여행사에서 일거리를 주면 그 일을 진행하고 급여를 받는다. 원래대로라면 일을 주는 여행사에게 급여를 받아야 하지만 여행사한테서 단 돈 1원도 받지 않는다. 대신에 쇼핑점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예를 들어 관광 코스에 있는 인삼 쇼핑점에서 손님이 인삼을 구매하면 그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손님이 인삼을 사지 않는다면 일을 해도 가이드에게 돌아오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손님이 손님으로 보이겠는가? 한국의 좋은 것을 알리고 소개하는 것이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그들의 멘트는 항상 쇼핑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이 뿐 만이 아니다. 회사 규정에는 정해진 양만큼 물건을 팔지 못했을 경우 부족한 양은 인당 얼마로 계산해서 가이드한테서 받아 간다. 이것은 회사 규정이라는 이름의 ‘벌금’일 뿐이다. 관광이 아닌 쇼핑 투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기적 출퇴근에도 우린 개인사업자 _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정난숙 사무처장

학습지 교사의 하루는 오전 10시 본인이 담당하는 지점으로 출근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출근 후 2시간 정도의 미팅이 끝나면 점심 식사를 하고 학생들을 만나러 나간다. 가정 방문은 오후 10시 또는 11시까지 이어진다.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약 12시간이다. 매일 정기적인 출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학습지 교사를 회사의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개인사업자라고 칭한다. 계약서는 근로계약서가 아닌 업무위탁계약서, 학습지교사의 급여는 기본급이 없고 학생들을 가르치면 나오는 수수료 뿐이다.

학습지 교사의 업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다. 회원수를 늘려야 수수료가 올라가기 때문에 영업도 주요업무 중 하나이다. 집집마다 홍보 전단지를 돌리거나 야외에서 파라솔을 펼쳐놓고 설명회를 하기도 한다. 홍보 비용은 전적으로 학습지교사가 부담해야한다. 홍보 전단지는 회사에서 받지만 그것을 돌리는 것은 교사의 일이다.

실적 압박으로 인한 부당 업무도 비일비재하다. 회사는 교사에게 실적 압박을 가하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학습지 교사는 가짜 회원을 제 돈을 들여 등록하게 된다. 더욱 큰 문제는 회사에서는 퇴회 회원을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실적만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회사 때문에 학습지교사는 가짜 회원을 퇴회 처리 하지못하고 누적되는 퇴회 회원을 보며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불합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도 학습지교사는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