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요긴하게 쓰이는 의사들이고 싶다
사회에 요긴하게 쓰이는 의사들이고 싶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3.08 11:33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터 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인터뷰] 강충원 회장 / 신경석 부회장

“기억되고 싶지 않습니다” 훗날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는지 물었다.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순간 당황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알려주는 ‘손가락’이에요. 사람들이 저희가 가리키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이어진 설명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2월 4일 ‘일터 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이하 의사회)’가 출범식을 열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진료실이라는 한계를 넘어 사회에 요긴하게 쓰이고 싶다는 66명의 의사들이 모였다. 지난달 15일 의사회 강충원(경기보건센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회장과 신경석(씨젠의료재단 직업환경의학과 의료과장) 부회장을 만났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어떤 일을 하나?

강충원 회장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은 개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영역을 벗어나 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직업·환경적인 요인들을 바꿔 그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사회의사’다. 건강에 안 좋은 것들을 바꿔서 노동자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현장에서 주로 하는 일은 ▲특수건강진단 ▲사업장 보건관리 ▲업무적합성평가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 ▲산업재해 관련 질병판정위원회 업무 ▲직업병 관련 역학조사 ▲연구 등이다. 의원으로 개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문에 산재신청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회사를 거치지 않고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의사회 소개를 부탁드린다.

강충원 회장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다. ‘일터건강’이 핵심이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면 편하다. 그러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우리는 4년간 노동자 건강문제를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해 배운다. 모든 것을 좀 더 깊게 고민하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다 보니, 한계에 봉착했다.

일선 산업보건기관과 의료기관에서의 근무환경은 의사들이 책임을 다하기에 열악한 편이다. 하루에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고객들은 진료실과 현장에서 만난다. 일터 문제나 사회적 과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요인들을 바꿔나가야 하는데, 개개인의 건강에만 집중하고 중요한 부분에 소홀하게 되고 현실에 순응하게 됐다.

그러던 중 우리의 존재 가치가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이 생겼다. 환자의 병이 나아도 의사가 필요 없지만,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일 때도 의사는 필요가 없어진다. 현재의 틀을 깨야했다. 당면한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한 방법으로 의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66명의 의사회 회원 중 다수가 민간산업보건전문기관에서 일하는 전문의들이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보는 한국의 노동현장은?

강충원 회장 현재 노동현장은 20년 전 처음 산업의학과가 생겼을 때와 달라진 것을 찾기 어렵다. 작년 1월 전자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맨몸으로 일하다 노동자들이 잇따라 실명했다.

한국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60시간을 일해도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한 노동자는 실적 압박에 네 아이를 두고 자살을 선택했다. 류머티즘이 있어도 공장에서 반복노동에 시달리고, 심장에 6개의 관을 박고도 야간 경비를 서야한다. 20년 전에 큰 탈이 없었다는 논리로, 지금도 과거와 같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염색, 도금, 가공, 세척 작업을 한다. 병원에 가는 것도 관리자가 허락을 해줘야 가능하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노동자는 보상과 위로를 기대하기는커녕 오히려 회사에서 쫓겨날까봐 불안해한다.

의사회를 만든 계기는?

신경석 부회장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라는 이름값을 하며 살고 있는가. 의사회를 조직한 것은 올 2월이지만, 의사들 내부에서 고민을 한지는 오래됐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적은 수가 전국 곳곳에 퍼져 있다.

2013년 서로 고민을 나누고 소통하자는 취지로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그해는 야간작업을 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야간특수건강검진(이하 야간특검)’ 제도가 시행된 때다. 기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열악한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야간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주도적인 담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고용노동부가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아니어도 야간특검 진단을 할 수 있게 제도를 풀어버린 것이 큰 계기였다. 사실 이는 민감한 문제다. 한국사회에 야간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많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야간특검 진단을 필요로 하는 시장의 수요 등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고 야간특검 제도를 시행하곤,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치자, ‘뭐 그럼 자격조건을 풀지’ 하는 식으로 가볍게 대처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이후 조직해 하나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고, 실천에 옮긴 것이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수는 사회적 수요를 어느 정도 충당하고 있나?

강충원 회장 2008년 이전에는 한해 10명 안팎의 전문의가 배출됐다. 이후 제도가 정비되면서 20명, 최근 5년간은 30여 명의 전문의가 나오고 있다. 산업안전법에 따른 야간특검 대상자만 200만 명 정도다. 야간작업 외의 유해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더 많다. 전문의 수가 적가 적은 것은 맞다. 건강문제는 복지, 산재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망 위에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이 같은 전제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제도조차도 왜곡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 건강권을 지키는 것보다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인 탓도 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전문의들의 수도 점점 늘어나야한다.

직업환경의학과는 노동자 건강을 연구하고 그들과 소통이 가능한 의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어진 과다. 처음에는 인기가 없는 분야였다. 노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말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간과되기 일쑤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제도정비가 되면서 직업환경의학과의 세가 확장됐다. 학문의 정체성이 명확해지면서 전문의들이 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의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의식적인 활동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무렵 고용노동부가 진지한 고민 없이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이 해오던 야간특검 진단을 모든 의사가 할 수 있도록 푼다고 하니 반발하게 된 것이다. 전문분야의 구별을 없애는 것에 대해 분노하게 됐다. 의사회를 조직한 것은 일종의 ‘인정투쟁’이기도 하다.

의사회의 목표는?

강충원 회장 일터건강 영역의 ▲전문가적 독립성 ▲건강형평 ▲주체역량 향상을 핵심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많은 산업보건전문가와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고 활동할 예정이다.

‘전문가적 독립성’은 노동자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사들이 가져야하는 첫 번째 도구다. 현장에서 실무적 역량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 도구를 쓸모 있게 다듬는 작업이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의 소통능력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대화와 학습의 장을 마련하고, 자정노력을 위한 감시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회사와 산업보건기관의 가격흥정, 덤핑으로 인한 산업보건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의사들이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신경석 부회장 내부 전문의들부터 노동단체와 연구기관, 정부 등을 아우른다. 특히 진료실에 있으면서 노동자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건강 증진에 나서는 모두와 소통을 하려고 한다.

강충원 회장 노동자를 포함한 대중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작년에 노동자들이 메탄올에 중독된 사건은 사회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모른다.

1년마다 2000명씩 산재로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노동자 건강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드러내고 이슈화해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이 노동 문제를 이야기를 하면 이해당사자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과 사람이 소외되는 슬픈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전문의들이 작업현장의 문제 사안을 알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 공감과 연대의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사람들은 손세정제나 화장품, 워셔액 등에 포함된 유해 성분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정작 그 제품을 만드는 노동자는 더 심각한 수준의 유해물질에 노출된다는 사실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가 모든 상품과 재화 서비스에도 노동자들을 생각할 수 있는 ‘노동 감수성’이 생기면 좋겠다. 이를 위해 여전히 고민 중이다.

훗날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

강충원 회장 기억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손가락이다. 노동현장에 이런 문제가 알려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대중들은 그 문제를 봐줘야 한다. 다들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크다 보니 건강문제를 외면하고 있는데, 건강해야 일도 계속 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은 왜 이렇게 무시되고 있나. 생명이 무시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시스템 속에서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쓸데없는 비용으로 탈바꿈한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노동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노동자의 건강권 향상에 대한 의식이 있는 지도자가 선출되길 바란다.


향후 중점적으로 다룰 사안은?

강충원 회장 의사회 내에는 다양한 생각이 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두루 수렴해 활동방향을 구체화해나갈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산업보건 분야의 공공영역이 확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반보건과 산업보건이 분리돼 있는데 최소한 일반보건이 갖추고 있는 공공 틀 정도는 갖춰야 한다. 부족한 인력으로 운용되고 있는 안전보건근로감독관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안전이 전문분야다. 보건전문가는 적다. 산업보건에 대한 의료적 접근을 통해 산업안전보건 체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신경석 부회장 또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적정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산업전문보건 기관들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 기관들을 평가를 한 후, 기관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떻게 관리하고 그 과정에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바람직한 방향은?

강충원 회장 노동과 관련된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우선해야 할 과제다. 이것이 선행될 때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산업재해율과 관련된 통계만 보면 한국은 산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상적인 나라다. 그런데 현장은 다르다. 문제는 성과주의다. 고용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 등의 성과는 산업재해율로 평가 받는다. 한 지역의 산재율이 높아지면 그 지역을 담당하는 고용지청이나 고용청의 성과가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문제를 드러내려고 하겠는가? 이같은 상황이 고착화되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측은 대증적인 요법으로 노동현장의 문제를 감춘다. 제도 개선을 위해 은폐된 산업재해, 직업병 등을 드러내는 것이 첫 단계다.
그 다음은 사실상 답이 없다. 연대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예를 들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어도, 법망을 피해가는 수법이 생긴다.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질 사장을 없애는 하청, 재하청 등 만연해 있는 하도급불법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여러 유관단체, 노동자 시민단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의사회를 조직한 것에 대한 주변 반응은?

강충원 회장 직업환경의학과는 의사협회 26개 전문 과목 중 하나다. 질병의 원인을 한 개인에게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직업과 일터·생활환경을 고려해 찾고 해결방법을 고민하는 과다.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의사회 외의 사람들의 마음까지 모으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모든 민간산업보건전문기관들이 뜻을 모아 부당한 사업주의 행태에 맞서준다면 아름다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사업주들의 검진기관 쇼핑은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