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시내 곳곳에는 노래방, PC방보다 사행성 오락업소 간판이 더 눈에 띄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사과를 한 비리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업소는 재미를 넘어 ‘인생역전’을 꿈꾸는 소시민들의 주머니를 노렸으며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이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갔습니다. 한해 경마장을 찾는 인구가 프로야구장을 찾는 인구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돈을 걸고 돈을 버는 것만큼 사람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요. 명절에 온가족이 모여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한판 하는 ‘꽃그림 놀이’에서부터 정선의 카지노까지, 도박은 그 역사가 짧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명절의 화투판과 정선 카지노의 슬롯머신을 ‘도박’이라는 이름아래 하나로 쉽게 묶기는 힘들 것입니다.
화투판에 얽힌 인간군상의 욕망과 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도박소재 영화가 추석명절과 함께 개봉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흔히 도박영화라고 하면 헐리우드 영화나 홍콩영화를 떠올리기 쉬운데 오랫동안 이들 영화에서는 현란한 손놀림과 도박사들의 애증관계, 그리고 탄탄한 스토리구조는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많은 관객들의 눈을 고정시켰습니다.
영화 <타짜>는 몇 년 전 스포츠 신문에 연재하여 화제를 모았던 허영만, 김세영의 동명 만화를 각색하여 스크린에 옮긴 것입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원작과 달리 영화는 1990년대로 시간적 배경을 옮겼고 총 4부인 만화 가운데 1부인 ‘지리산 작두’를 감독이 직접 각색하여 영화화하였습니다.
‘타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전문도박사를 일컫는 은어로 영화는 48장의 꽃그림으로 펼치는 화투판과 관련한 욕망, 원한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강한 승부욕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고니(조승우)는 공장 한구석에서 벌어진 화투판에 우연히 끼게 되고 3년 동안 모은 돈을 한순간에 모두 잃게 되면서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단순히 잃은 돈을 찾고자 도박을 시작하지만 내면에 감춰져 있던 강한 승부욕이 꿈틀대면서 고니는 욕망의 화신으로 변하게 되지요.
본격적인 타짜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고니는 스승 평경장 (백윤식 분), 정마담 (김혜수 분)과 함께 화려한 도박의 세계를 만끽합니다. 하지만 허황된 꿈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도박의 특성상 그 결말이 아름다울 리 없습니다. 고니는 죽음을 담보로 한 싸움 앞에서야 비로소 일장춘몽의 쓰라림을 깨닫게 되지요.
감독은 각색을 할 때부터 주인공 고니 역할에 조승우를 낙점하였다고 할 만큼 그는 영화 속에서 완벽한 고니를 열연합니다. 그리고 김혜수, 백윤식, 유해진 등 주·조연 연기자들의 호연과 감독이 직접 각색한 살아있는 대사와 지문으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인생의 축소판인 도박판의 씁쓸함을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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