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이 자기착취로 이어지는 현실
자기계발이 자기착취로 이어지는 현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4.1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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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직장인 ‘샐리던트’
[리포트]공부하는 직장인 샐리던트


사무직에 종사하는 직장인 A(26)씨는 오늘도 퇴근 후 학원으로 향한다. 매주 월수금은 2시간씩 중국어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컴퓨터 활용 자격증 공부를 한다. 이런 생활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A 씨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직장으로 가려면 어쩔 수 없다”라며 “그렇다고 지금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직장에 이직 준비 중인 것을 들켜서도 안 된다”라고 답하며 쓰게 웃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A씨와 같은 ‘샐리던트’들이 늘고 있다.

직장인 절반 가까이는 ‘샐리던트’

‘샐리던트(saladent)’란 ‘샐러리맨(salaried man)’과 ‘학생(student)’를 합친 신조어로 직장을 다니면서도 학생처럼 끊임없이 공부하며 자기계발에 열심인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과 공부열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조기교육부터 시작해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최근 취업시장이 동결되면서 취업난을 극복하기 위한 청년들의 모습은 눈물겨울 지경이다. 지금도 노량진에 학원가에는 각종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학점 관리, 어학 점수 및 각종 자격증 취득까지 방대한 양의 공부를 끌어안고 사는 대학생이 즐비하다. 그리고 공부는 최종 목표인 취업 후 직장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의 공부는 자기계발이라는 명분 하에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자기계발이 스스로 원해서, 순수한 의미의 자기계발이 아닌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강제 사항이 된 것에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작년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과 함께 직장인 및 대학생 2077명을 대상으로 ‘자기계발’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학생 84.6%, 직장인 89.0%가 “평소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낀다”라고 답했다. 성별로는 여성(85.2%) 보다 남성(90.1%)이 자기계발에 대한 부담을 더욱 많이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좁을 취업문을 뚫고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서도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과 비슷한 수준의 자기계발 압박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응답자 중 실제로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대학생의 47.0%, 직장인의 45.5%라는 결과가 나왔다. 설문 결과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이유는 ‘취업 및 이직에서 보다 유리하기 위해서(54.5%)’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전공 및 직무변경, 창업 등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기 위해’라는 응답도 34.0%를 차지했다.

특히 직장인의 경우 자기계발 항목으로 직무관련 지식이 40.7%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서 직무관련 지식(38.9%)이 2위, 외국어(38.0%)가 3위를 차지했다.

취업이 끝나기 무섭게 이직, 하지만 현실은…

기업의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조기 퇴직 관행이 고착되면서 더 이상 직장인들에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남아있지 않다. 실제로 직장인 10면 중 9명은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한 곳에서 오래 근무하는 것보다는 이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취업포털 사람인에서 직장인 1,682명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이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조사한 결과, 93%가 ‘필요하다’라고 응답했다. 무려 10명 중 9명이 이직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이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로는 ‘연봉 등 더 나은 조건을 찾는 거라서’(61.3%, 복수응답)를 첫 번째로 꼽았다. 다음으로 ‘개인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어서’(46%),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40%), ‘본인의 커리어를 되돌아볼 수 있어서’(28.8%),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23%),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어서’(16.8%) 등의 답변이 있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이직 열망과는 반대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리해고 당하거나 사직, 퇴직한 사람이 전체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이직률이 4.3%가 나와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기업이 사람을 뽑지 않으니 직장을 그만둬도 들어갈 일자리가 부족할 것이다. 이직률뿐만 아니라 전체 근로자 중 신규‧경력 채용자, 복직‧전직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입직률은 지난해 4.5%를 기록했다. 이 역시 2010년 이후 최저치이다. 입직률과 이직률을 더해 산출하는 노동이동률은 8.8%에 그친 것이다. 직장이 불만족스러워도 버티는 근로자가 늘어나고 이직을 한다 해도 새로운 직장이 안정적이고 임금이 늘어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자기계발이 자기착취로

현대사회의 성과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책에서 “강제 사회에서는 모두가 저마다의 노동 수용소를 달고 다닌다. 그리고 그 노동 수용소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라고 말했다. 과도한 성과주의 사회가 직장인을 자기착취로 밀어 넣고 있지 않나 반성해봐야 할 시점이다.

‘건강한 샐리던트’가 되기 위한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자기착취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진정한 자기계발로 나아갈 수 있는 현실은 아직 요원한 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