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없고 전문가만 남은 산재보험법
환자는 없고 전문가만 남은 산재보험법
  • 권태식_구로한의원 원장
  • 승인 2006.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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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수요자 참여 보장되는 논의 시급해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o.kr

인생사에서 40대가 되면 많은 것들이 변한다. 모든 일에 혈기 넘치던 청년은 온데 간데 없다. 건강에서도 마찬가지다. 20~30대에서 주로 고인이 된 집안의 어른들과 친구의 부모님 상가집에서 밤을 지새웠다면, 이제는 망자가 된 친구들과 친한 형님들의 상가집에서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늘어난다. 세계최고의 40대 사망률이 현실적인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가장으로의 책임 때문에, 집안 외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것은 참고, 웬만한 것은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빚을 갚고 애들 교육하고, 집안을 꾸려 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리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 몸의 한 두 곳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 걱정된다.

20대부터 시작해서 강산이 바뀌는 세월을 월급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업화된 사회에서 눈뜨고 일어나 대부분의 시간을 반복적인 작업 혹은 자세로,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생존했던 인간이 지구규모의 분화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인간 생존조건, 인간끼리의 생존 경쟁조건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존조건에 잘 적응하고는 있을까.
성공의 한 측면에 평균수명의 연장이 있는 반면,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등등의 만성습관질환이 늘어나고 있다.

산재와 개인질환 사이, 그 애매모호한 경계

인간의 근골격 구조는 어떠할까. 특정근육, 인대, 관절을 주로 사용하는 반복 작업을 몇 년 몇 십 년을 연속으로 하는 것을 인간의 신체구조가 감당할 수 있을까.
현재의 과학수준으로 10명이 1년을 일해도 다치지 않도록 노동조건을 조정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1000명이 10년을 다치지 않도록 작업조건 노동조건을 조정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단순 반복 작업으로 인한 인대 관절의 퇴행성변화는 당연히 나타나는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연령변화 역시 퇴행성변화를 유발한다. 그런데 연령변화만으로 퇴행성이 진행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일하지 않고 나이만 먹는 사람의 퇴행변화의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이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비교대상이 되어야 할 대상군마저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40대에 반이 가지고 있는 요추의 퇴행성변화를 가지고 산재의 승인여부를 결정할 수가 있을까. 순수한 연령의 증가로 인해 퇴행성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은 일을 해서 퇴행성이 발생했다는 것과 논쟁에 빠져들 뿐 명확한 증거가 되기에는 불충분하다. 게다가 일반적인 의료분쟁에서는 의사가 과실이 아니라는 증거를 밝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산재에서 있어서는 환자가 산재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가.

산재냐 아니냐의 결정하는 의학에서의 고전적인 원인과 결과의 법칙은 연령변화에 따라 구별을 할 수 있는 불연속적인 비약점이 존재할 수 없다. 어디까지가 산재이고, 어디까지가 회사의 책임이고 어디까지가 개인의 책임이라는 의학적인 판단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확률로 존재하게 된다.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열쇠가 된 산재승인

사회보장제도가 미약한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에게 있어서 현실적으로 산재승인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재판이 될 수도 있다. 참고 일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개인질환으로 회사에서 쫓겨나느냐 여부를 산재승인여부가 결정할 수도 있다. 산재불승인은 자살의 현실적인 이유가 된다.

전문가들의 어려운 논쟁이 멀쩡한 몸으로 입사해서 하루 종일 일한 것 밖에는 특별히 쓴 일이 없는 몸이 아픈데, 이것이 왜 산재가 아니냐는 노동자들의 체험적인 반박을 뒤엎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논의로 만들어지는 산재보험법의 개정 이후, 아마도 99년처럼 소외된 노동자들의 연속적인 자살과 그 이후 상가집이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 앞에 차려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 남은 수순일 지도 모른다.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의료 수요자로서의 노동자 권리는 어디에

만성질환에 있어서 환자의, 의료수요자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논의는 전체적인 의료 비용증가를 가져오고, 비용 상승의 수혜자인 의료 공급자와 의료비용 지불의 의무를 전가할 수 있는 권력층에게 유리하다.

현재 산재를 둘러싼 논의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의료수요자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시민의 입장, 민중의 입장에서 의료와 산재의 제반서비스가 공급되고 있지 않다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대안적인 준비를 해야 하는 노동자와 전문가 집단의 결합은 느슨하고 소수이며, 미약하다.
남은 것은 몸뚱이로 복잡한 논리와 상관없이, 체험적으로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