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으로, 공무원 자부심 지킬 것
주체적으로, 공무원 자부심 지킬 것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6.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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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집행 최전선, 잘못된 작은 관행부터 바로잡는다
[인터뷰]석현정 시군구공무원연맹 위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대한민국 최고의 악덕 사업주로 인정한다’ 공무원들이 선관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5.9 조기대선을 20여 일 앞둔 지난 4월 20일 일이다. 전국의 시군구 공무원들은 선거기간에 각 투표소로 투·개표 업무 지원을 나간다. 그런데 선관위가 이들을 공무원이 아닌 위촉 직원(알바)으로 대해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시군구공무원 노동조합연맹’이 나섰다. 석현정 시군구연맹 위원장은 올 3월 중앙선관위와 행정자치부에 지방공무원 선거 관리 업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면담을 진행하며 꾸준히 문제제기를 했다. 그 결과 4월 25일 행정자치부로부터 지방공무원의 선거업무를 ‘합법적 업무로 인정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대선이 끝난 이튿날, 서울 용산구 시군구연맹 사무실에서 석 위원장을 만났다.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이하 시군구연맹) 소개 부탁드린다.

 

2011년 기초자치단체 단위노조위원장 회의에서 기초연맹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모였다. 이듬해 11월 전국기초자치단체공무원노동조합연맹으로 출범했다.

이후 ‘기초’라는 표현이 명확하지 않고, 광역자치단체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진정한 지방자치시대에 어울리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작년 6월 대의원 대회를 열어 대의원 95%의 압도적인 지지로 현재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으로 이름을 바꿨다. 27개 단위노조로 출발해서 현재 46개 단위노조 4만 9,500여 명의 조합원을 둔 조직으로 성장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하 공노총) 산하 최대 조직이다.

어떤 점에서 시군구연맹의 필요성이 제기됐나?

공무원은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뉜다. 또 지방공무원 안에는 광역과 시군구 공무원이 있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행정공무원 내부에서 시군구공무원이 가장 많은 차별을 받는다. 시군구 공무원의 인원이 제일 많지만 행정협의회와 토론회, 위원회에서 아예 배제된다. 광역단위에서 어떤 사안에 대한 광역을 거치면서 자치단체장이나 해당 부서장이 원하는 바대로 내용이 정리될 수밖에 없다. 정부와 기관장들과 소통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기초연맹 출범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공노총 안에 광역연맹과 시군구연맹이 있다. 굳이 구분한 이유는?

광역공무원은 위에서 정책이 내려오면 중간라인 역할을 한다. 시군구공무원은 일선에서 주민들과 소통하며 시책을 집행한다. 작지만 큰 역할의 차이에 따라 정부와 협상을 할 때 광역과 시군구를 구분해 다르게 요구해야할 부분이 있다.

시군구공무원은 정책결정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정책을 집행하는 현장에는 가장 가까이 있다. 현장 공무원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이행해야 할 때가 많다. 이런 경우 굉장히 답답하다. 시책이 현장에서 뿌리내리려면 주민들과 만나 현장에 정책을 소개하고 집행하는 단위에 있는 공무원들과 정책결정 조직과의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그런데 공무원 조직은 층계가 너무 많아 그런 부분이 잘 안 된다.

같은 지방직 공무원이지만 광역과 시군구의 직급도 다르다. 같은 계장 역할이라도 구청의 경우 6급이 수행하지만, 광역의 경우 5급이 맡는다. 공무원사회에서는 직급이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회의에 가면 직급 높은 사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중앙공무원 4급이 말하면 광역 5급이 받고, 시군구 6급에게 내려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구조이다. 이같은 직급 차이가 지방자치라는 시대흐름을 막고 있다.

현장과 맞지 않다고 여겨진 정책의 예를 든다면?

복지파트 정책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자면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돌봄 정책이다. 이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근무하면서 어르신들을 대해본 공무원들은 안다. 조금 더 건강하다고 해서 노인이 같은 노인을 돌볼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돌봄을 제공하고 받는 어르신이 모두 마음이 넓어 완벽한 커플을 맺어 주는 것은 10%밖에 안 된다. 그 외 90%정도는 서로 간에 엄청난 갈등이 유발된다. 매칭을 잘한다고 해도 정작 당사자들 안에서 갈등이 생긴다. 이론적으로는 옳지만 현장에서 뿌리내리기 힘든 시책이 일방적으로 내려온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업무 지원을 나가는 시군구공무원들 ‘알바 취급’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방공무원들이 선거업무를 할 때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을 적용되지 않아 정상근무일 대체휴가를 사용할 수 없고, 선거 당일 15시간이 넘는 장시간 근무와 야간 개표 작업을 한 바로 다음날 정상근무를 해야 하는 등 그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매해 반복됐다.

임신을 했거나 몸이 불편한 일부를 제외하고, 90%에 달하는 시군구 공무원들이 선거기간에 투·개표 업무에 차출된다. 지원해 선거업무를 하는 식이 아니다. 다만 광역단위의 공무원은 다르다. 국가직 공무원의 경우도 선거업무 관련 공문이 내려오면 진짜 원하는 사람만 나가는 것으로 안다.

지방공무원법 제 56조 제1항에 따르면, 지방공무원은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 따라서 지방공무원을 선거업무에 종사하는 위촉직원 즉, 알바로 고용하는 자체도 문제다. 이번에 이에 대한 문제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행정자치부에 제기했다. 공무원의 업무로 인정받아 당당하고 책임감 있게 선거업무를 하기 위해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했다.

지방공무원의 복무를 책임지는 행정자치부의 입장은?

지난 4월 25일 행정자치부가 지방공무원의 선거업무에 대해 ‘합법적 업무로 인정할 수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선거업무는 중앙선관위라는 독립기구의 업무이다. 지방공무원과 관계되는 행정자치부나 인사혁신처와 상관없다. 그러나 선거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선거법에 중앙선관위는 ‘선거사무를 위한 인력 및 장비를 행정기관에 지시 또는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이유이다. 지방 공무원들이 협조해야하는 부분이 당연히 있다.

그동안 행정자치부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촉직원으로 수당을 받고 근무하는 것으로 소속기관장이 복무명령을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합법적 업무’로 인정한다는 의미는?

선거업무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이 대목에서 국민들은 우리의 이와 같은 문제제기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큰 벽처럼 여겨졌던 행정자치부가 하위직 공무원 노동조합을 논의의 대상으로 보고 입장을 변화한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동안 행정자치부는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해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행정과 지방자치를 지원하는 부처여야 하는데 통제하는 부처였다. 그런데 이번에 하위직 공무원 노동조합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근무개선이 아니라 공무원으로서 당당하게 일할 수 있도록 공무원복무로 인정해 달라고 행정자치부에 요구한 결과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매번 정권이 바뀌면 공직사회 개혁이 화두이다. 그것을 누가하는가만 달랐다. 지금까지는 외부의 손에 의해서 진행됐다. 이제는 공무원 스스로 개혁해야한다. 선거업무와 관련된 오래된 관행은 한 단면이다. 사소한 부분부터 주체적으로 바로 잡아나가면서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진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올해 중점 사업은?

올해 중점 사업
공직사회성과평가제 폐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안돼
후속절차 정비 집중해
완전히 없앨 것 

3대 위원장가장 큰 부분은 성과평가제 폐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이던 지난 4월 연맹사무실에 이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10년 넘게 진행된 정책은 대통령이 안하겠다고 해서 단번에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과 지침 등의 후속절차의 정비가 필요하다. 성과평가제, 퇴출제가 완전히 없어질 수 있도록 하반기 활동을 이어가겠다.

정부에 ‘신속집행’ 제도 폐지도 요구할 계획이다. MB정부에서 조기집행이라고도 불린 이 제도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도입됐다.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 수의계약을 하도록 하고, 예산을 상반기에 당겨서 집행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른 문제점이 많다. 지방의 경우 상반기에 수주가 몰리다보니 지역 업체가 감당하지 못해 외부업체가 들어오고, 정작 하반기에 해당 지역 업체는 일거리가 없어 위기를 겪는다. 무리하게 재정을 집행하면서 부실한 업체가 사업을 맡는 경우도 생긴다. 이 제도가 있었던 지난 몇 년간 경제적인 효과는 미미했다. 또 행정 절차적인 부분이 무시되면 원칙이 무너진다. 공무원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과정상에 비리 등의 문제가 발생할 틈이 생긴다.

이와 관련된 부작용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 신속집행부분을 적폐로 지적하고 바꿔 나가려고 한다. 결국은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적으로 예산을 집행해야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행정도 예산도 균형 있게 맞춰가야 한다.

노조 활동은 어떻게 하게 됐나?

석현정 위원장
2013년 3월
대구광역시북구공무원노동조합
제4대 위원장
2014년 12월 ~ 2016년 12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제3대 대변인
전국기초자치단체공무원
노동조합연맹(현 시군구연맹)
제2대 수석부위원장
2015년 3월
대구광역시북구공무원노동조합
제5대 위원장
2016년 12월~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 

1990년대 대구 북구청에서 행정 9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학교를 다닐 때 정의가 살아있는 민주사회를 꿈꾸며 학생운동을 했다. 하지만 공직사회에는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이 만연했다. 처음 동사무소 가서 선거 업무를 했던 때의 동장은 정치동장, 정치를 타고 들어와 선거운동을 도왔던 별정직 동장이었다. 행정인 마인드가 아니라 정치인 마인드였다. 집권여당에 유리하게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당시 동사무소의 주 행정 업무였다. 참 이상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1997년 직장협의회 준비위원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2013년 대구북구노조 위원장을 했고, 작년 10월 시군구연맹 위원장에 당선돼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맹 위원장에 나선 계기가 있다면?

사람을 좋아한다. 공무원 집단에서는 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을 하는 것도 컸다. 대구 북구청 안에만 머물렀다면 알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었던 일을 시군구연맹 차원에서 할 수 있다. 규정과 법을 바꿀 수 있다. 공무원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세상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 학생운동을 하면서 가졌던 희망을 나이 오십이 다 된 지금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군구연맹 위원장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정부가 참 딱하고, 답답하다.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강하다. 자신들이 기득권인지 모르는 행정고시 출신들이 한 요인이라고 본다. 그들은 노조의 욕 얻어먹는 신세라고 하지만 공무원이 돼 들어오면서 벽이 된다. 앞만 볼뿐 옆이나 뒤 등 다른 곳을 보지 못한다. 충분히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들인데 공직사회에서 딱딱한 관료가 돼 버린다.

이 같은 문제를 위해 우리 노조에서는 고시 폐지도 주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엘리트 자원이 필요했다. 현재는 9급 공무원도 다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이다. 5급과 7급, 9급 등이 크게 다르지 않게 다 똑똑하다. 직위공무원 즉, 전문 공무원을 채용하는 방식과 급으로 나뉘는 입직 경로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어느 문을 통해 공무원이 됐는지 보다 그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문으로 들어왔는지 연연을 해버린다. 이를 일원화하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고시 출신들도 고시제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어떤 위원장으로 남고 싶은가?

처음 공무원으로 들어왔을 때 공무원인 것이 당당하지 못했다. 지금도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면에서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지,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선명한 정책을 가지고 정부와 교섭하고, 정책 집행의 최전선에선 공무원으로서 올곧은 소리를 내 조합원들에게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을 주고 싶다.

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싶다. 누가 후임으로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게 어떤 걸림돌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연맹 활동의 모든 것을 오픈하고 소통, 공유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없으면 일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없어서는 안 되는 그 사람은 어리석하고 무능한 사람이다. 특히 공적 업무는 자기만의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와도 업무를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게 시스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임자가 나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연맹 위원장 자리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