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뒤에 숨겨진 방송작가의 민낯
화려함 뒤에 숨겨진 방송작가의 민낯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6.1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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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실태조사가 보여준 진실
[노동현장 엿보기] 방송작가 노동현장

우리가 방송을 통해 볼 수 있는 방송작가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방송작가의 꿈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방송국이라는 공간이 가져다주는 화려함, 동경의 대상인 연예인과의 친분 등 적어도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방송작가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일 뿐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는 무엇이 있는지 이번 <노동 현장 엿보기>에서는 방송작가의 노동 현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방송작가 노동환경, 이대로 괜찮은가?

오랜 시간 묵인되었던 방송작가의 노동환경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방송작가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 - 막내작가, 24시간이 모자라’(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실, 방송작가유니온,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가 열렸다. 국회에서 방송작가의 노동인권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이상돈 의원은 “PD나 장비 기사들도 그러하겠지만 우리가 방송작가들의 노동인권을 먼저 논의하는 이유는 이들의 고용구조와 노동여건이 가장 취약하기 때문이다. 흔히 막내작가라고 부르는 방송작가들의 근로여건은 정말로 취약하다. 이들은 방송을 위해 온갖 일을 맡아하고 있지만 신분과 대우는 취약하기만 하다”라며 방송작가들이 처한 노동환경을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고용차별개선과 임영미 과장은 “방송작가의 경우 프리랜서인지 근로자인지 사용자성이 현실에서는 매우 미묘하게 섞여있다”라며 “일하는 분들이 매우 불합리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외주제도의 도입 및 방송사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방송콘텐츠 제작 인력들은 급속하게 외주화되면서 방송작가들은 점점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하게 되었다. 방송콘텐츠산업은 점점 더 활기를 띠어 가지만, 콘텐츠 제작 인력은 저임금, 고강도의 불안정한 고용관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면 위로 올라온 방송작가의 노동환경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도 함께 시작됐다. 방송작가유니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방송작가의 실질적인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방송작가 노동환경, 도대체 어떻길래?

“작가라는 직업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에 있다고 생각한다. 막내작가부터 페이가 적은 것은 물론 연차가 올라가도 전문직으로서의 페이는 미비한 수준이며 그 격차가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프리랜서라지만, 선배들이 후배들의 기본 페이와 작가 전체의 페이에 대한 인상이 확실히 필요해 보인다.” - 여성, 30대, 경력 8년, 시사/보도

2016년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업무환경에서 가장 큰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낮은 급여 24.3%(487명) ▲강한 노동강도 19.5%(391명) ▲고용불안 12.9%(260명) ▲불방·결방 급여 미지급 12.9%(260명) ▲프로그램 저작권 및 재방료 미확보 5.9%(118명) ▲부당한 대우 및 인권침해 5.0%(100명) ▲급여 체불 1.7%(35명) 순으로 응답해 낮은 급여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밝혀졌다.

방송작가의 급여 지급 방식은 주로 프로그램 회당(건당) 지급으로 이루어지는데, 641명의 응답자 가운데 월평균 급여를 묻는 질문에 “100만 원 이상~150만 원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4%(282명)으로 가장 많았다. 또한 프로그램 제작 중단이나 불방·결방 시에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낮은 급여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634명의 응답자 가운데, (프로그램 제작 중단이나 불방·결방 시에 일한 대가를) “항상 받았음” 또는 “받은 적이 더 많음”이라는 응답은 합쳐서 15.5%(98명)에 불과했다.

주당 평균 노동 일수는 5.63일,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3.8시간으로 나타났다. 노동강도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616명의 응답자 가운데 50.5%(311명)가 “매우 불만족”이라고 응답해 노동시간으로 인한 노동 강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보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방송작가의 화려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방송작가유니온은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방송작가에게 ▲근로기준법 적용 ▲최저임금 가이드라인 도입 및 의무화 ▲4대 보험 가입 등 사회안전망 확충 ▲표준계약서 도입 및 의무화 ▲방송 여부와 상관없이 급여 지급 의무화(기획료 지급)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수치로는 확인할 수 없는 방송작가의 실상을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방송작가 23년 차 A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예능·교양·영화·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온 그는 조심스럽게 익명을 요청했다.

방송작가가 하는 일은?

방송작가는 연차에 따라 막내작가, 서브작가, 메인작가로 나누어지고 함께 일하는데 각각 하는 일이 다르다.

막내 작가는 회의 기록, 자료수집, 선배 스태프 보조, 잡다한 문서작업, 소품 챙기기, 출연자들 출연료 서류 챙기기, 운영비 등 영수증 정리하기, 출연자 연락처 수배하기, 녹화·인터뷰 프리뷰 등 24시간이 모자라다. 방송 편집할 때는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해야 해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막내작가에서 연차가 쌓이면 예고나 자막을 넣고 나레이션을 쓰면서 입봉 준비를 한다.

막내작가가 입봉을 하게 되면 서브작가가 된다. 서브작가는 중간에서 실질적인 조율을 한다. 막내작가가 구체적인 틀을 만들고 촬영 구성안을 쓰고 정리하면 빠진 것을 채우고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확인한다.

서브작가가 돼서 연차가 쌓이면 자기 이름을 맨 앞에 걸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메인 입봉을 하게 된다. 메인작가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려면 몇 년차 작가가 몇 명 필요한지를 확인하고 작가료에 맞춰서 작가들을 세팅한다. 밑의 작가들을 관리하면서 필요한 자료를 찾아 하나로 만들어서 회의를 이끌어 간다. 메인 피디와 같이 합을 맞춰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것도 메인작가의 역할이다.

작가님이 방송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94년도에 선배의 추천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이 일을 할 때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시작한 일인데, 주로 했던 일은 자료조사였고 그 당시 맡은 프로그램은 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특성상 군부대, 국방부, 국회도서관, 신문사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 그때는 인터넷도 없었고 삐삐 세대니까 기자들한테 삐삐 쳐서 기자들 만나고 공중전화 앞에서 줄 서 있는 게 일이었다. 지금은 국회도서관 자료를 신청하면 바로 열람할 수 있지만 그때는 오전에 자료를 신청하면 오후에 열람할 수 있었다. 그때 막내작가 필수가 공중전화카드, 삐삐, 국회도서관 복사카드였다.

그렇게 2년을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일이 너무 힘들어서 휴식기를 가졌고 대학 졸업하면서 다른 일을 구하려 했는데 IMF가 터졌다. 모든 회사들이 부도가 나고 그나마 살아난 게 방송사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는 방송작가의 길로 가게 됐다. 사회상황도 힘들었고 생활을 해야 했으니까. 아르바이트가 본업이 된 케이스이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 저임금 문제에 대해서

내가 94년도에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당시 주급이 18만 원이었는데 23년이 지난 지금 막내작가 주급이 25만 원 정도이다. 겨우 7만 원 오른 것이다. 제작비 때문에 많이 싸우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막내작가 주당 30만 원은 맞춰줘야 한다. 연차 있는 작가는 35만 원은 줘야 한다. 너무 심하지 않아? 먹고는 살아야지’라며 피디랑 계속 싸우게 된다. 그것도 메인작가의 몫이니까. 하지만 싸우기 싫어서 포기하는 메인작가도 많다.

프로그램 한 편을 만드는데 기획·준비기간이 2~3달이 걸리는데 그 기간에는 돈이 안 나온다. 방송이 나가면 그때서야 기획료 20~30만 원 정도 주는 게 다니까 버티기 힘들다. 거기다가 방송 날이랑 빨간 날이 겹쳐서 방송이 한주 밀리면 또 돈이 안 나오고. 있는 집 자식 아니면 방송 일 하지 말라는 게 이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문제점은?

계약이 없다. 계약을 해서 계약 조건에 따라 일을 하면 좋을 텐데 관례도 없고 최근 몇 년 사이 표준근로계약서가 나왔지만 방송사에서도 사용하지 않고 제작사에서도 꺼려한다.

폭언 등의 인권침해도 심하고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도 인격이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직업이고 순수 창작은 아니지만 정보를 기본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창작자인데 그 대우를 하지 않는다. 작가를 소모품 취급하면서 인격 무시 발언도 서슴없이 한다. 프로그램의 기초적 작업, 원석은 작가들인데 마지막에 가면 우리는 없다. 우리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닌데 ‘이 구조는 왜 이러지?’라고 반문하고 싶다.

또 임금체불이 생기면 있는 말, 없는 말, 감정적인 소모 다 해가면서 겨우 체불된 임금을 받아낸다. 내가 일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인데 당당해질 수 없고 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변하지 않는 방송사의 인맥 구조 사회. 좁은 방송판에서 눈 밖에 나면 도태되거나 지쳐서 나가게 된다. 방송사는 거대한 집단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맞설 수 없다.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감, 사람에 대한 회의감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일은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첫 번째는 익숙함을 버리지 못하는 바보 같은 면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방송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남몰래 화장실에서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우리 세대는 한 번 시작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끝을 봐야 한다고 배우고 자란 세대였기 때문에 힘들어도 그만 둘 수가 없어 울면서 버텼던 것 같다. 상처도 받고 피해도 보지만 이 일을 하다가 다른 일을 하려고 하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많은 방송작가들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방송판에서만 있던 사람들이 일반 직장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열악하지만 가장 익숙한 구조니까.

두 번째는 방송을 통해서 내가 누군가를 도와줬을 때의 보람이다. 방송작가는 프로그램에 의해서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직업군이다.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달했을 때의 보람, 내가 좀 고생했지만 내가 경력만큼 임금은 못 받았지만 이 할머니 한 분은 도와줬어 이런 보람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방송작가 노동환경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지?

방송도 공무원 시스템처럼 안정적인 체계가 잡혔으면 좋겠다. 잘못된 관행으로 유지되지 않고 작품과 콘텐츠로 공정하게 승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란다. 또,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을 수 있도록 계약서 작성이 일반화·의무화됐으면 한다. 아마 지금 상태로 봐서는 방송사의 자발적인 움직임은 기대하기 힘들 테니 외부에서 강제적인 제재가 필요할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방송작가 이미지는 굉장히 화려하고 ‘우아하게 앉아서 쓰고 싶은 글 쓰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방송작가의 허상을 잘 알고 이 직업을 선택했으면 한다. 법 안에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있는 법도 작가 자체를 보호하기보다는 업체를 보호하고 있고 강제성이 없어서 허울뿐이다. 이건 3D 직종도 아닌 4D 직종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