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쓸 수 있다면”
“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쓸 수 있다면”
  • 백민호_파이뉴스 기자
  • 승인 2006.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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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 백민호 파이뉴스 기자 mino100@pimedia.co.kr

 ‘자립’을 갈망하는 중증장애인의 도전

팔도, 다리도, 입도 불편한 뇌성마비 장애인. “내 아들 죽기 전까지 품고 살겠다”는 늙은 엄마를 눈으로 끌어안고, 글로 달래주는 이 사람은 ‘손가락 시인’ 정상석(35)씨다. 그의 소원은 “일 나갔다 들어오는 엄마가 힘들어하면 팔이며 다리를 주물러 주는 것”이다.

지난해 시집 <하늘을 사랑할 수 있다면>을 펴낸 시인은 창문에 꽂혀있는 하늘을 보고 시를 썼고, 제일 먼저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세상에 없는 아버지는 꿈에 나타나 등을 두드려주었단다.

하늘을 품에 안고서 환하게 웃을 수 있다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두발로 서서 걸어본 적이 없는 상석씨는 방바닥에 왼쪽 뺨을 붙이고선, 항상 주먹 쥔 상태인 오른손을 들어 키보드 자판을 두드린다. 굽은 중지 하나를 힘겹게 빼서는 글자 하나를 만드는데 이마엔 땀이 맺히고, 숨소리는 거칠어진다. 시를 쓸 때 그는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토너가 되고, 히말라야 8천 미터 고봉을 오르는 강철 산악인이 된다.

첫 시집에서 그는 말했다. 아무리 쓸쓸해도, 눈물 나도, 힘들어도, 배고파도 좋다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하늘을 바라보면서 시를 쓰고,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늘을 품에 안고서 환하게 웃을 수 있다면 헐벗고 가난해도 좋다고.

그는 환갑을 넘긴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늙은 엄마는 오후 4시부터 늦은 밤까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아들은 엄마가 들어올 때까지 살아있다.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는 엄마는 언제나 웃으며 그를 바라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상석씨의 고민이 모니터 위에서 깜박인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어머니도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시고… 저 같은 중증장애인이 자립해서 산다는 게 어렵겠죠. 여러 좋은 분들이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는 서른하고 다섯 해 엄마가 떠준 밥을 365일 삼켰다. 옷을 갈아 입혀준 것도, 대소변을 받아준 것도, 하루 종일 웅크리고 있다 보니 장이 뒤틀려 식후 꼬박 약을 챙겨주는 것도, 모두 늙은 엄마였다.

상석 씨의 얼굴은 방바닥에 부딪혀 상처투성이다. 몸을 비비 꼬고 기어 다니다 방바닥이나 모서리에 얼굴을 찧기 일쑤. 자신의 머리가 천근만근처럼 무거워 얼굴을 떨어트릴 때가 많다. 3년 전 '바다'를 처음 본 상석 씨. 그에겐 32년만의 외출이었다. '재가장애인 나들이' 길에 찾아간 강릉 경포대. 그는 기억한다. 그 때의 바다는 푸르렀고, 바람은 상쾌했다고.

▲ 백민호 파이뉴스 기자 mino100@pimedia.co.kr
 "보통사람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소원"
춘천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사는 이영희(43, 가명)씨는 매일 꽃단장을 한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방 표가 난다”며 화분에 물주는 일을 빼먹지 않는다. 사는 곳이 정갈하다. “어지럽히질 않아서…”라지만 그는 굽고 뒤틀린 손발로 종일 움직였을 것이다. 할 말은 머리 속에 가득한데,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겹치거나 계속 밀려나온다. 그는 A4지에 글씨를 쓰며 대화를 한다. 수려한 필체는 “밥 먹고 하는 게 글씨 쓰는 거”였기 때문이란다.

이영희 씨는 정부보조금 월 35만원으로 생활한다. 불편한 몸이지만 혼자 씻고, 밥을 손수해서 먹는다. 주방 싱크대며 세면대, 그릇이며 스위치가 그의 앉은키에 맞춰져있다. 가사도우미가 1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 영희 씨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정리한다.

“혼자 사는 게 어려운 것 같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 도움을 청하면 얼마든지 자립할 수 있다”지만 그에게도 어려운 일이 있다. 복지관에서 지원받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하고 싶어도, 1층까지 서너 계단을 넘어갈 수가 없어 매번 돌아선다. 영희씨는 보잘 것 없는 소원 하나를 꾹꾹 눌러쓴다.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 백민호 파이뉴스 기자 mino100@pimedia.co.kr
‘자유’를 향한 ‘도전’
정상석, 이영희 씨처럼 뇌성마비 지체장애 1급인 조미주(36, 가명)씨는 13년 전부터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손이 뒤틀려 손사래조차 치지 못하는 장애인이 혼자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번호를 잘못 누르면 어떻게 하나 싶어 전화 거는 게 겁이 났을 정도다.”

미주씨는 평생 시설을 옮겨 다니며 살 바에야 “한번 ‘도전’해보고 죽자”며 시설을 나왔다. 수중엔 4만원, 가진 건 옷가방뿐이었고 거처할 방도 없었다. 그에겐 오직 ‘자유’가 있었을 뿐이다.

13년 전 3만 원짜리 월세를 얻어 한해 겨울은 냉방에서 보냈고, 하루의 반은 굶고 살았다. 그래도 인정이 있었던지, 방세가 밀려있으면 이름 모를 이가 찾아와 내주고 사라졌다. 차츰 수급권 혜택을 받으며 살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미주씨는 현재 어느 누구보다 활기차게 살아간다. ‘베스트 드라이버’인 그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교회며 장애인 모임에 참석하고 일요일마다 방송고등학교에 나가 늦깎이 공부를 한다. 13년 전 ‘자유’를 선택한 미주씨는 자립을 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체득했다. 그가 사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받는 행복의 10분의 1이라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면 사는 게 즐겁고 행복할 것 같아요.”

이들 중증장애인에게 '자립'이란 저마다 다른 크기와 무게로 다가간다. 중증장애인에게 ‘자립’이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가족 없이 혹은 시설이 아닌 독립적인 공간에 홀로 남겨질 경우 이들의 일상은 혼돈 그 자체다. 아래는 ‘손가락 시인’ 정상석 씨가 한글파일에 적어둔 글이다. 한자 한자 새긴 그의 바람은 뇌성마비 장애인의 절박한 고백일 것이다.

“중증장애인들이 자립해서 산다는 것이 어렵고 때론 여러 좋으신 분들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중증장애인들은 모두 시설로 가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식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저와 같이 심한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도 자신의 의지대로 자립해서 얼마든지 살 수 있음을 이 세상 모든 분들에게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어리지만 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