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성공 가름할 ‘노동자 참여’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성공 가름할 ‘노동자 참여’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9.0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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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소통능력도 심판대 올라
[리포트]정규직 전환 노동자 참여

지난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사 내 비정규직 1만 명의 연내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이어 정부는 7월 20일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본격적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의 제 1호 사업장이자 시금석이 될 인천공항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협치’

지난 7월 20일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정책의 추진배경에서부터 기본 원칙과 방향, 정규직 전환의 기준, 전환 방식 결정기구 운영 등에 이르는 내용까지 담은 5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집이다.

정부는 이번 정책의 의의로 ▲공공부문 인사관리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 ▲공공부문 경영혁신의 새로운 접근법 ▲공공서비스 질 개선의 방법 혁신 ▲전환정책의 수립에서 집행까지 협치로 추진 등을 꼽았다.

이중 가장 중요한 대목은 ‘협치(協治)’다.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 정책에 얽혀 있는 구성원들 간의 협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다른 의의들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협치는 각 주체들이 협력해 문재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는 정해진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문화에 가깝다. 문제는 그동안 한국사회의 노사 관계에서는 이 같은 협치 문화를 공유하거나 성숙시킬 경험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파견·용역직원 정규직 논의할 노·사·전문가 위원회

인천공항은 직원의 약 84%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인천공항의 전체 직원 수는 8,834명, 비정규직은 7,396명이다. 12년 연속 세계공항서비스평가 1위를 차지한 인천공항의 명성을 무색하게 하는 수치다. 현재 공항에서는 물류, 보안, 환경미화, 교통관리 등 다양한 부문에서 파견·용역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고용안정 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파견·용역 직원의 경우 ‘노·사·전문가 위원회(이하 노·사·전위원회)’를 거쳐 정규직 전환을 결정한다. 기관에서 직접 고용하는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에서 결정토록 한 것과 차이가 있다. 이는 전자가 후자보다 더 직종이 다양하고 이해당사자들의 관계가 복잡해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노·사·전위원회 운영은 해당 기관이 협의기구 구성에 대한 계획을 공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노·사·전위원회에는 기관과 노동자·노조 대표단, 전문가 등이 당사자로 참여한다. 이때 노동자대표단은 참여를 원하는 노동자와 노조가 서로 자율적으로 의견을 조율해 대표단을 구성하면 된다.

공사, 협의체 구성보다 연구용역발주가 우선?

인천공항공사(이하 공사)는 대통령의 방문 직후 ‘인천국제공항 좋은일자리창출TF 자문단’을 발족했다. 이어 정일영 공사 사장은 비정규직 노조와 만나 지속적으로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사 소통의 분위기는 공사가 6월 13일 일방적으로 ‘좋은 일자리 창출 전략 및 실행 방안 수립용역’ 입찰을 발주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인천공항지역지부(이하 민주노총 노조)는 “공사가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며 “공사가 진정으로 협의해나갈 의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이들은 공사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노사가 따로 연구용역을 실시할 경우, 갈등이 커질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며 공동연구를 제안한 바 있다. 한재영 민주노총 노조 대변인은 “공사가 공동연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앞으로 논의과정에서 방해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공사는 9월말 나올 용역보고서에 노동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협의해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올해 안에 정규직화를 완료하기 위해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현재 계획대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공사가 노·사·전위원회 구성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사는 노·사·전 협의를 위한 위원회 구성의 첫 단계인 ‘협의절차 개시’를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온 지 2주 만인 지난 8월 9일 공지했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협의절차 개시 이후, 해당 기관은 협의에 참여를 원하는 노동자와 노조를 파악해야한다. 또 이들이 자율적으로 노동자대표단을 구성토록 회의 공지와 장소 제공 등의 실무를 지원하고, 부당한 개입 논란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노동자대표단을 포함해 구성되는 최종 20인 이내의 노·사·전위원회에서 향후 정규직화 방안을 결정하게 된다.

노동자대표단 구성 발목 잡는 복수노조

노·사·전 위원회 구성을 가로막고 있는 또 하나의 벽은 ‘복수노조’다. 인천공항 내 비정규직 노조는 민주노총 노조(3,200여 명), 한국노총 연합노련 인천공항환경노동조합(이하 한국노총 노조, 350여 명), 무상급 기업별노조(300여 명) 등 총 3곳이다. 이들은 자율적으로 노·사·전위원회에 참여할 10명 이내의 노동자공동대표단을 구성하기 위한 논의를 지난 한 달 동안 이어왔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노조는 조합원의 수를 반영해 대표단 수를 ‘5 : 3 : 2’ 안(1안)을, 한국노총은 ‘3 : 3 : 3’안(2안)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노조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과반을 대표하는 노조는 인천공항 내에 있는 타 비정규직 노조들과 자율적으로 노동자대표단 구성을 위해 양보와 배려 속에 논의를 진행해왔지만 일부 노조의 무리한 주장 때문에 자율적인 노조 간 조율은 교착상태에 이르렀다”며 “노사 간, 노조 간 소통 창구 역할을 해 온 공사 자문단의 조정안(1안)을 수용할 것을 제안했지만 이 역시 한 노조가 결사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권한과 책임이 있는 공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노조의 자리는 공석으로 비워두고서라도 노·사·전위원회의 구성해야한다”며 “자문단의 제안에 세 노조 중 두 노조가 동의했기 때문에 명분도 충분한데, 공사는 무책임하게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3개의 노조는 노동자대표단이 최후의 방법일지라도 다수결이 아닌 최대한 합의를 통해서 의사를 결정해야한다는 점에는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노조는 “사측과 교섭을 할 노동자대표단을 구성하는 것인데 조합원 수가 1명이든 만 명이든 뭐가 중요한가, 조직된 수와 상관없이 노동자들이 의견을 합의해 한목소리를 내면 된다”며 “민주노총 노조의 조합원 수가 많으니 대표단의 50% 이상은 들어가야 한다는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자문단이 2안을 중재안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1안에서 무상급 기업별 노조가 한 명을 민주노총 노조에 양보한 것”이라며 “복수노조 사업장에서는 각 노조가 작은 것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3개 노조가 같은 수로 참여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앞서 공사는 공사와 자문단, 노조들이 한자리에 모인 간담회에서 정규직노조 대표 1명과 비정규직노조 대표 10명 이내로 노동자대표단을 구성하라고 몫을 제시한 바 있다.

충분한 노동자 참여 보장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측이 적극적으로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우선돼야한다고 말한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민간위탁으로 운영돼 온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이 올해 시 산하 재단에 직고용으로 전환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의 사례는 비정규직의 성공적인 정규직 사례로 꼽힌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지난 2011년 취임한 이후, 꾸준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사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민간위탁업체를 통해 고용된 450여 명의 다산콜센터 상담사와 교육스태프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직고용과 재단설립을 통한 직고용 등의 정규직 전환 방법에 대한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시장과 노조와의 직접 소통창구를 만들어 노조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서울시 정무라인과 노조의 소통은 재단이 설립되기 전까지 1년 넘게 이어졌다.

물론 노동자들의 참여 보장이 모든 문제의 해결의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을 넘어 직무설계와 보수설계안을 두고 또다시 재단과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심판대에 오른 노조 소통능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있어서의 중심축이 ‘노사 소통창구 확보’에서 ‘노조 소통능력 검증’으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작년까지만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아우르는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진짜사장 나오라’고 외쳐야 했다. 지난 5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공공부문이 우선적으로 대상이 됐지만, 정부가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노사 협의를 기본 틀로 제시하며 대화할 것을 보장하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지침은 향후 다른 민간영역의 비정규직정규직 전환에도 선례가 돼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노조의 소통능력이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이문호 워크인연구소 소장은 “과거에는 노·사·정 관계에서 노조를 배제해 문제가 됐다면 현재는 노조가 참여할 수 있는 판이 깔렸다”며 “노조의 자율적 조정능력의 부족이 가장 큰 장애요소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조 스스로 자체적으로 소통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할 능력이 없으면 참여가 보장돼도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며 “노조 간, 정파 간 갈등은 새로운 노동권 확립 과정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노조가 대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문제해결을 해나갈 조정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며 “나아가 이를 위한 여러 가지 학습방법을 고민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