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에 머문 ‘노동과 연대하는 예술’
조연에 머문 ‘노동과 연대하는 예술’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09.0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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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노동자 인식 확산… 출발점 삼아 도약해야
[인터뷰] 이씬 뮤지션유니온 교육정책팀장

‘이 정도만 알아두면 어느 집회를 가더라도 립싱크를 하는 일은 없을 것’. 노동법을 알리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노무사가 집회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부르는 필수 노동가요 10곡을 꼽으며 쓴 소개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부터 ‘단결투쟁가’, ‘연대투쟁가’, ‘철의 노동자’, ‘파업가’ 등이다. 물론 이외에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불나비’, ‘바위처럼’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와 같은 서정적인 노래도 자주 불린다.

집회에 등장하는 음악이 다양해졌다지만, 노동자들의 투쟁, 결의대회 현장의 음악을 포함한 문화는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이씬 뮤지션유니온 교육정책팀장이다. 20여 년 동안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노래에 얹어 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 이씬 뮤지션유니온 교육정책팀장 ⓒ 이상균 사진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이끈 삶

- 민중가요(사회운동에 불리는 노래)를 시작한 계기는?

90년대 초 중반 대학생 때 광주에서 노래패 활동을 했다. 민중가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사람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삶과 고통, 함께 해야 할 부분들을 노래로 담아내는 민중가요가 맘에 들었고 부르는 게 좋았다.

교육대학을 중퇴했다. 음악교육과 학생이었다. 교육대를 다니기 전에는 공대를 다녔다.

- 공대를 다니다 교육대학으로 옮긴 이유가 있었을 텐데, 왜 선생님이 되지 않았나?

사회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교대 진학 당시 신학과도 함께 고민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이 뿌리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바탕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치는 일도 재미있게 하고 있다.

가수·활동가보다 앞으론 ‘예술노동자’

- 현재 어떤 활동을 하는가?

투쟁사업장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결합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있는 현장에 살다시피 하던 활동초기처럼 적극적으로 다니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 방식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투쟁현장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다른 면을 고민하며 활동의 중심축을 옮겼다.

- 뮤지션유니온 활동을 말하는 건가?

‘노래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하며 고민하고 있다. 이는 사실 민중가요가 생기던 무렵부터 이어져온 논쟁이다. 노동자들의 삶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현장 조직화나 투쟁를 위한 도구적 존재냐, 음악으로 삶을 살아가는 주인이냐. 생각해야봐야 할 대목이다.

뮤지션유니온은 민중가수로 불리우는 사람들을 비롯해 모든 뮤지션들이 음악노동자, 예술노동자임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Music is work(우리의 일은 음악입니다)’라는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 뮤지션유니온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홍대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인디뮤지션들의 처우와 경제활동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위한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현재 락밴드를 비롯해 다양한 인디음악을 하는 분들, 민중가수, 팝음악 작곡가, OST 작곡가, 음향 엔지니어, 실용음악학원 강사 등 200여명의 뮤지션들이 모여 있다. 2012년 준비위원회 모임을 시작했고, 2013년 9월 8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올해 노조 설립 신고도 했다.

▲ 홍대입구 9번 출구에서 작은 뮤지션들의 예술행동 ⓒ Daniel Jung(안녕낭만) 사진

대중과 예술노동자 모두 주체로 결합해야

- ‘예술노동자’라고 명명하는 것의 의미는?

우선 예술노동자들이 스스로 각성한다는 것이다. 음악활동을 하면서 주체적으로 사회적 삶을 살고 있다는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뮤지션유니온 내부에서부터 같은 노동자로서 다른 노동 현장들에 연대하는 활동에 관심이 높아지기도 하겠고, 예술노동이 사회적으로 소통하고 기여할 때 예술가의 정체성이 자리잡게 된다. 대중도 예술가들이 한번씩 와서 공연하고 가는 딴따라가 아니라, 예술노동으로 삶을 사는 같은 노동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현장의 요구에 따라 공연을 하지만 예술노동에 대한 일정한 사회적 지불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그동안 연대하는 예술노동자에게 무심했다는 건가?

예술노동자들은 노동가요라고 불리는 영역이 생기던 초기에 노동자들 삶의 문화를 변화시키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데 많은 시도와 기여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조직이 변화는 과정에서 노조들은 문화적인 활동에 꾸준히 관심을 둘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정리해고 문제가 고착화됐다. 노조들이 고용의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외부적인 환경이 있었다. 이후 노동자들의 생존권, 임금교섭, 단체협상, 현장의 안전 등이 중심이 됐다. 노동자들의 문화예술 운동은 왜소해졌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노조들의 문화활동 즉, 노동문화 자체의 역할이 축소되어 집회 공연이나 방송차의 음향 BGM으로만 기능한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노동자대회 노래연출을 맡았을 때 고민이 컸다.

- 노래연출은 예술노동자들을 섭외하고 서로 호흡을 맞춰 연습할 수 있도록 총괄하는 일 아닌가?

음악적 연출이나 무대에 필요한 공연에서 필요한 것들은 전체 연출팀에서 같이 논의해 결정했다. 민주노총 문화국이나 각 산별 문화국장들이 모여 논의를 통해 전국노동자대회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 전업 예술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문예패들이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자리이다. 특히, 노래문선대의 경우는 전국의 노동자 노래패들이 1년에 한번 모여 몇 만의 대오앞에서 노래를 한다. 노래연출을 맡았을 때 현장 노동자 노래패 패장들에게 연락하는 일이 먼저였다.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왜 당사자들이 나서서 조직하지 않느냐는 고민이 컸다. 전국노동자대회 노래연출을 맡은 5년 동안 했던 고민이다. 2008년부터 노동조합 현장 노래패들이 조직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을 했던 이유다. 2010년 가을 전국노동자대회가 끝나고 노래패 패장들이 전국노동자노래패협의회를 만들기로 했다. 홀가분했다.

투쟁 중이신 분들에게는 시간이 허락되면 작은 힘이라도 보태드리고 싶다. 그런데 투쟁하는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투쟁을 꾸려나가기 보다는 외부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공연하는 예술노동자들의 결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투쟁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아니라 모두 각기 대상이 된다.

노조들도 직접 나서고, 예술노동가도 적극적으로 함께 하려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창작을 하는 예술노동자들이 투쟁현장을 직접 경험해야 그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투쟁하는 상황을 봤을 때, ‘저런 일이 왜 벌어질까’ 고민을 하게 되고 그것을 담아서 노래를 하게 된다. 노동자와 예술노동자가 주체적으로 접촉면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훌륭한 예술작품들은 나오기 어렵다.

▲ 굴업도 생태여행 길 콘서트 활동 ⓒ 김용환 사진

전통적인 민중가요 범주 뛰어넘어야

-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집회문화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민중가요, 노동가요라고 개념짓는 의미를 다시 짚어봐야 한다. 범주를 깨야한다. 파업가와 같은 곡은 노동운동역사의 흐름 속에서 의미있는 노래이며 여전히 힘을 발휘하지만, 20대와 30대인 젊은 조합원들은 옛날노래라고 느낄 수 있다. 댄스, 랩, 힙합, EDM(Electronic dance music) 등의 노래를 들어온 세대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문화적 저항이 등장할 공간이 있어야 하고 이를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다고 대중문화를 추종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이를 위해서 노조들이 기존의 투쟁문화에 대해 관성적으로만 반복하지 말고 다양한 예술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 노조 핵심 활동가나 간부들이 시야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겪는 현실문제에 공감하고 투쟁을 지지하는 예술노동자라면, 그가 하우스뮤직(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한 종류)이나 재즈, 인디 음악을 해도 함께 춤출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새롭게 진입하는 예술노동자들도 투쟁과 집회에 적합한 공연을 잘 준비해서 기존의 투쟁가와 집회에 익숙한 분들과 공감하려는 노력을 당연히 해야 한다.

- 지난 촛불집회의 특징이 주체적인 참여, 자유로운 형식이었다. 그 영향은 없었나?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다양해지고 활발해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후 일상적인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몇몇 투쟁사업장의 투쟁문화제들에서 이어지던 노동대중과 예술노동자들의 재기발랄한 결합은 있어왔지만, 여전히 노동자대회나 규모 있는 집회무대에는 오르시는 분들만 올라가 공연하는 것 같아 아쉽다. 좀 더 다양한 예술노동자들이 노동자대회나 큰 집회무대에도 오르고 노동조합들의 활동 속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하찮은 실력이지만 노래를를 만들고 부를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 음악노동자의 삶을 버티고 있다. 뮤지션들이 만든 뮤지션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에 참여해 예술노동의 사회적 의미를 더 생각하며 내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생존권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우듯이 예술노동자들로서 우리 예술노동자들이 자신의 예술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 내 노래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고민, 내 예술노동에 대해 합당한 보상과 지속가능한 삶. 변하지 않은 것도 있고 바뀐 것도 있지만 내 몫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