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맞이하다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맞이하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10.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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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인간선언
[인터뷰] 김경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이 절박한 외침과 함께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시작됐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1986년 단위 노동조합 수는 2,658개 조합원 수는 103만 5,890명으로 조직률은 16.9%였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987년 10월 당시 단위 노동조합 수는 3,954개 조합원 수 137만 2,397명으로 조직률이 23.1%까지 높아졌다. 노동자들에게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6월 민주항쟁의 부록이 아닌, 본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숫자로도 드러난다.

지난 8월 22일부터 30일까지 19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기념하는 노동전시회 ‘노동자 인간선언’이 열렸다. 전시회를 주최한 민주노총과 노동자역사 한내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자들의 인권선언인 동시에 인간의 시간을 살기 위한 첫걸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다양한 선전물과 사진, 영상, 작품들은 당시 3개월 동안 전국을 휩쓴 파업 물결을 추억하기에 충분했다.

전시 마지막 날인 8월 30일, 전시회가 한창인 경복궁역 메트로 전시관 1관에서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민주노총에서 노동자역사 한내와 함께 이번 30주년 기념 전시회를 기획했다. 

▲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

19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기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텐데 노동전시회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작년 연말부터 올해 연초까지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킨 촛불항쟁이 있었다. 민주노총에서 이번 30주년 기념 방법을 고민하면서 촛불항쟁이 30년 전 87년 6월 항쟁과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6월 항쟁 때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직선제를 위해 헌법 지키는 것을 철폐하라고 외쳤다면 2017년 촛불항쟁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지키라고 외친 것이다.

6월 항쟁이 끝나고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됐다. 당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자기 권리를 지켰다는 것을 촛불항쟁 이후인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또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촛불항쟁 이후의 사회적 흐름 속에서 올해 민주노총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노동조합이라는 메시지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고민했는데 전시회가 가장 취지에 적합하다고 결론이 났다. 노동자역사 한내에서도 이번 전시를 위해 굉장히 애써주셨고 서울지하철노조에서도 이렇게 장소 마련에 힘써주셨다.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산별노조, 지역본부에서도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물품을 많이 보내주셨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87년도 결성된 노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전교조의 경우, 1989년 5월 28일에 결성된 조직이지만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대투쟁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직까지는 87년 노동자대투쟁처럼 촛불항쟁이 노동조합 가입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노조가 없는 사람들에게 노동조합을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이 전시회를 준비했다.

노동자 인간선언이라는 전시 제목도 그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면서 제일 답답한 것 중 하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권침해’는 굉장히 큰 문제로 인식하면서 ‘노동권 침해’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UN에서 한국의 인권실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노동권이 인권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노동자대투쟁 당시 노동자들이 ‘우리도 인간이다!’라고 선언한 것처럼 2017년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인권과 노동권은 하나이기에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것이 결국 한국사회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자 인간선언’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 대한 기억이 있는지?

당시 서울에서 학교 다니던 대학생이었다. 6월 항쟁 때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고 최루탄을 피해가면서 뛰어다닌 기억이 있는데 노동자대투쟁은 바로 눈앞에서 보기는 힘들어 TV를 통해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TV에 나온 노동자들을 보면서 굉장히 생경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생산직 노동자는 공부를 못하면 갖게 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요즘은 이런 비하적인 표현을 쓰지 않지만 그때는 정말 ‘공돌이’, ‘공순이’라고 불렀다.

TV 속에서 복장 자유와 두발 자유, 인금인상을 외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공돌이, 공순이가 아니고 노동자구나’, ‘이게 노동조합이구나’를 깨닫게 됐다. 그때 느낀 생경함과 놀라움을 시작으로 노동조합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후 89년 대학 졸업 후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고 곧바로 노동조합 활동에 뛰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노동조합하기 좋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노동자가 책상만 치면 사용자가 들어오던 시절이었고 사회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붉은 머리띠, 빨갱이 이런 인식이 있지만 87년 이후 사회분위기는 즐겁게 노조를 할 수 있었고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쁘지 않았다.

전시회 작품 중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하나를 고르자면 ‘평등사회 앞당기는 전노협’ 현수막을 꼽고 싶다. 민주노총의 전신이기도 하고 이 깃발을 보면서 전노협이 목표로 한 평등사회가 왔는가, 한국사회가 정말 평등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전노협 시절보다 빈부격차도 커지고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부를 만큼 자기 전망을 세우기 어려운 사회가 되지 않았나. 이 푸른 깃발을 보면서 전노협이 앞당기려 한 평등사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이 계승해야 할 노동자대투쟁의 정신은 무엇일까?

굉장히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민주노총이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활동은 상당히 효과를 거둬온 대신에 지역 연대가 부족해졌다. 전노협의 경우 지역조직이었기 때문에 지역연대가 가능했지만 산별노조는 중앙 중심이기 때문에 지역 안에서의 연대가 힘들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사회와의 연대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역에서의 환경문제든 학교 문제든 함께 연대하고 해결하려고 해야 노동자들의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 내 사업장의 근로조건만 해결하려고 하면 절대 시야가 넓어질 수 없다. 그게 살아남는 길이고 노조를 더 잘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계승해야 할 정신이 있다면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고 지역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 아닐까.

지금 노동자대투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고 2017년 촛불항쟁을 기억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지금의 이 시기는 미래에 어떻게 기억될까?

민주노총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2017년 촛불항쟁이 끝난 지금, 이대로 아무 변화도 없이 끝난다면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고 본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오고 나서 이전보다 조금 더 개혁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대중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고 만들어진 정권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바람인 적폐 청산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나. 6월 항쟁 이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서 노동자의 힘을 보여줬듯이 촛불항쟁 이후 민주노총의 활동이 한국사회 변화의 지렛대,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 ⓒ 민주노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