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업종 과연 필요한가?
특례업종 과연 필요한가?
  • 고관혁 기자
  • 승인 2017.10.13 10:49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65일, 24시간 노동 가능한 이유
[리포트]특례업종

오전 6시, 눈뜨기 무섭게 촬영 현장으로 출발한다. 현장에 도착하니 7시 30분, 촬영팀이 오기 전에 촬영 준비를 마쳐야 한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두 번째 촬영 현장으로 출발한다. 10시에 도착해 촬영준비를 다시 한다. 촬영팀이 오면 본 촬영이 시작된다. 오후 6시까지 이어진 촬영이 끝나고 드디어 한 시간 가량의 저녁식사 시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다시 재개된 촬영. 다음날 새벽 5시가 돼서야 마무리된다. 뒷정리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해보니 어느새 시간은 오전 7시. 8시가 돼서 잠이 들지만 3시간 뒤 또다시 일어나야 한다.

경력 3년차 영화 제작부에 종사하는 A씨의 일과이다. A씨는 이날, 저녁 식사시간을 제외해도 총 22시간 일했다. 이동시간까지 포함하면 24시간 가까이 된다. 하루를 꼬박 일만 한 것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이유는 영상 제작이 특례업종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는 노동시간 특례?

우리나라는 주당 40시간 노동 외에 연장근로 12시간만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특례업종에 포함된 업종들은 사용자와 근로자대표가 서면 합의를 조건으로 무제한으로 연장근로를 늘릴 수 있다. 특례업종은 근로기준법 59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근기법 59조가 장시간 노동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유이다.

1961년 처음 제정된 노동시간 특례제도는 도입 당시 ①공익 또는 국방상에 특히 필요할 때 ②보건사회부장관의 승인 ③주 36시간 범위 이내라는 조건이 달렸다. 하지만 이후 3번의 개정을 거치며 모두 삭제됐다. 정부가 무제한 장시간 노동을 장려한 꼴이 됐다.

근로기준법 제59조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에 대하여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제53조 제1항에 따른 주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제54조에 따른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특례업종, 많아도 너무 많다!
현재 특례업종은 총 26개의 업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상·해상·항공 운송업을 포함해 영상 제작, 의료, 청소, 우편 등이다. 문제는 이러한 특례업종이 너무나 많고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요건과 절차가 없어지며 특례 대상 업종과 노동자 규모가 대폭 상승했다. 2013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특례업종 해당 사업체는 60.6%로 절반이 넘고 전체 노동자 대비 특례업종 종사자 비율은 42.8%이다.
지난 7월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특례업종을 26개에서 10개 업종으로 줄이는 방안에 여야가 잠정 합의했다. 최근 발생한 집배원 사망사건과 버스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장시간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남은 10개 특례업종들 역시 폐지 돼야 한다며 근기법 59조의 완전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 환노위 잠정 합의한 특례 제외·유지 업종 (출처 고용노동부)

공익보단 사용자의 경영이익을 위한 특례법

2012년 근로시간특례업종개선위원회는 특례업종 설정 조건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공중의 불편 방지나 안전도모를 직접적 목적으로 하면서 연장근로 한도 및 휴게시간 준수를 통해서는 업무의 완성이 곤란한 사업’이 첫 번째 조건이었으며 ‘업종의 특수성으로 인해 종업시간을 정하기 어렵거나 작업의 중단 또는 연기가 불가능한 사업’이 두 번째 조건이었다.

노동계는 현재 제정된 특례업종들이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 59조 노동시간 특례 의견서’에서 “특례 유지로 분석한 모든 업종이 사실상 교대근무, 인력 확충으로 노동시간 특례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업종”이라고 밝혔다. 공익보다는 사업주의 영업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꼭 특례업종이 필요한가?

특례 유지업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업종은 영상오디오 제작 및 배급업과 방송업이다. 2012년 기준 선정 당시에도 공중의 편의, 안전도모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업종으로 분류됐던 바 있다. 또한 제작 중단, 연기가 불가능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3년째 방송 제작 현장에서 조연출로 일하고 있는 B씨는 장시간 노동의 원인이 인력의 문제이지, 업종 특성과는 무관하다고 꼬집는다. 특히 현 방송 제작 시스템 상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B씨는 “오전 7시에 지방으로 내려가 촬영을 시작하고 서울로 올라오면 오후 10시이다. 회사에 복귀하자마자 서둘러 영상을 백업 및 변환해도 새벽 6시에야 일이 끝난다. 하물며 다음날 또다시 촬영이 있으면 2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다시 촬영을 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PD를 포함해 4명 정도 인력이 한 달 안에 기획, 촬영, 구성, 편집 등 모든 작업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밤을 새는 건 기본이다”라고 했다.

영화 제작을 하는 A씨 역시 인력부족을 첫 번째로 꼽는다. A씨는 “미국에서는 2, 30명이 할 일을 우리나라에서는 4, 5명이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인력만 더 뽑으면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면서 일할 수 있는 제작환경이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방송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1일 평균 15.7시간을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일수를 합산해 월 단위로 환산하면 약 312시간을 일한다. 영화 스태프 역시 1일 평균 13.18시간, 월 평균 약 312시간 일하고 있다.

이밖에 다른 특례 유지업들 역시 인력만 확충하면 장시간 노동이 해결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진우 민주노총 안전부장은 “특례업종에서 남긴 업종들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 이미 장시간 근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업종은 제외하고 아닌 업종들은 남기는 식으로 이루어졌다”라고 말했다. 이번 특례업종 축소가 장시간 노동을 해결하려는 측면보다, 인력 추가 채용으로 인한 인건비 지출 증가를 꺼려하는 사업주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점에 주력했다는 것이다. 이 부장은 “예를 들어 이번 버스 사고로 육상운송업 중 버스만 (특례업종에서) 빠졌는데 과연 버스만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사고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가? 그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이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대 없이 종일 근무하는 택시노동자는 사고율이 68.9%에 달하고 화물운송업 역시 매년 관련 교통사고로 1,300명 내외가 사망한다.

국민과 생명이 직결되는 보건업의 경우 국가적 재난 같은 특수상황 발생 시 연장근무가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상황을 대비해 마련한 근기법 53조 3항이 있다. 사용자가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동의하에 법정 연장근무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사태가 급박할 경우 사후에 장관의 인가를 받을 수 있다고까지 명시돼 있다.

장시간 노동 OUT, 양대노총이 나서다

양대노총은 각각 대책위를 출범하고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 폐기를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했다. 또한 휴일근무를 연장근무에서 포함하지 않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과 포괄임금제 그리고 법적 휴일 유급 휴일화 등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역시 투쟁을 통해 개선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정부 역시 특례업종 축소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후보자 시절 특례업종의 무제한 노동시간을 규제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특례업종도 주당 법정근로시간 52시간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9월 8일 사회복지업 역시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법정 노동시간을 차츰 줄여나갔다. 하지만 반대로 특례업종 조건들은 간소화하고 범위를 넓힘으로써 장시간 노동을 현실적으로 사실상 방치해왔다. 지금이라도 특례업종 존재 이유를 상기하고 무분별한 장시간 노동을 규제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