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서비스 질·일자리 개선 이끌 ‘공공영역 확대’
사회서비스 질·일자리 개선 이끌 ‘공공영역 확대’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7.11.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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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서비스공단과 사회진흥원의 온도차
[리포트]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방안 논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좋은 일자리 81만개 확충’ 정책에 많은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영역은 사회서비스분야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오는 2022년까지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34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사회서비스는 아동 보육과 노인 요양을 큰 두 축으로 하는 공공복지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동안 한국의 사회서비스 영역은 민간이 전적으로 담당했다. 이로 인해 사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일자리도 열악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를 주장하며, 국가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할 뜻을 밝혀왔다. 그런데 최근 보건복지부가 사회서비스공단이 아닌 사회서비스진흥원 설립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단 설립에 기대를 품었던 현장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한국 사회서비스 시설 중 국공립 시설 5% 수준
“우선 공공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사회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김연명 중앙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한국의 사회서비스에 대해 필요성(수요)은 많은데, 서비스의 질이나 종사자들이 낙후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사회서비스공단 설립과 운영도 국공립시설 확충 계획이 밑바탕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사회서비스는 민간을 중심으로 공급됐다. 사회서비스 시설에는 보육시설, 사회복지관, 병원, 요양보호시설, 정신보건센터 국공립시설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시설을 따로 구분할 필요 없이 한국의 전체 사회서비스 시설 중 국공립 시설의 비중은 5% 수준에 그친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국공립 비율이 높아졌다고 하는 어린이집도 국공립시설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4%에 머문다. 공공장기요양기관의 경우 공공시설이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낮은 비중의 공공시설들마저도 개인이 위탁하는 경우가 많는 점이다. 실제로 사회서비스 현장에서는 무늬만 국공립시설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용된다.

이런 가운데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말 한국은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이상에서 14%이상을 넘어섰다. 인구가 고령화됨에 따라 치매와 중풍 등 노인성질환으로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의 수도 증가한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보편화되면서 늘어난 맞벌이 부부들은 영유아 자녀의 보육을 어린이집에 의존하고 있다.

민간 주도 사회서비스, 이용자 노동자 모두 불행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우선하는 민간시설이 주도하는 사회서비스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서비스 질은 저하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민간 사업주들은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고용과 처우 개선에는 무관심했다.

한국에서 사회서비스 관련 직군이 열악한 일자리로 분류된 지 오래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부터 저임금, 영세하고 개별화된 사업장이 만연한 것에 따른 노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 업무 특성상 원하는 시간에 휴가를 사용할 수 없는 조건 등에 반복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기본이다. 고용불안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는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김 교수는 “사회서비스 영역의 좋은 일자리는 서비스의 질 향상과 이어진다”며 “현재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로 일하고 있는 사회서비스 종사자들의 근로조건들을 합리적이고 균질적으로 통일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해 나가아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의 사회서비스에 대해 복지 분야 전문가들은 ‘민간주도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공급자는 공급자대로, 이용자는 이용자대로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올 초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을 논의하는 토론회에 참석한 양승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은 “사회서비스공단 신설과 종사자 직접고용에 대한 의견을 묻는 조사 결과 90%의 시민이 찬성했다”며 “시민들은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듯 다른 ‘공단’과 ‘진흥원’?!
사회서비스공단과 사회서비스진흥원은 어떻게 다른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 방안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달 11일부터 불거졌다. 같은 날 복지부가 비공개로 진행한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준비를 위한 지자체 현장 자문단 2차 회의’에서 ‘사회서비스진흥원 설립 추진계획(안)’을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사회서비스공단은 5년 전인 지난 18대 대선 국면에서 이미 한차례 논의된 바 있다. 당시 대선 후보로 나섰던 문 대통령이 올해 조기대선에서처럼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을 공약했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와 전문가, 정치인들 간에 관련 논의가 진행됐지만,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하면서 공약은 묻혔다.

연장선상에서 올 초 정부가 밝힌 사회서비스공단 설치의 핵심은 ▲공공복지시설 확충 ▲공단을 통한 시설 직영 ▲종사자 직고용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17개 시・도별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할 계획을 수립했고, 올 하반기에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법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반면 복지부가 논의한 사회서비스진흥원의 주요 기능은 ▲지자체의 복지시설과 공공센터를 수탁 운영 ▲민간 시설에 표준운영 모델, 경영 컨설팅 제공 ▲(이를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질 제고이다.

이에 대해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정부 정책이 ‘후퇴’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사회서비스공단 설립과 그 과정에서, 그동안 사회서비스 노동현장에서 겪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왔다.

다만 사회서비스진흥원은 현재 복지부에서 논의 중인 내용으로, 최종 확정된 내용은 아니다.

양대노총 “대통령 공약 축소한 복지부 규탄”

한국노총은 16일 성명서를 통해 “사회서비스공단 죽이는 사회서비스진흥원 설립 추진계획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정책은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 중 큰 비중을 차지했다”며 “복지사회건설과 복지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공단을 설립해 공공 사회서비스를 확대하고,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을 견인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공약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해야 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외려 공약을 폐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서비스제공기관의 확대계획에 대한 내용은 밝히지 않고 그저 공공수탁운영에 머물며, 핵심 서비스로 논의된 바 있는 보육·요양 등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도 “진흥원은 기존의 민간 중심 공급체계를 유지하면서 최상층에 진흥원을 추가 설립하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며 진흥원 설립계획 폐기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진흥원 사업 내용은 민간기관에 대한 인력지원”이라며 “이로 인해 발생할 공적 통제 약화와 사용자성 문제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공공인프라 확충(공립서비스제공기관 확대) 계획 없이 제대로 된 일자리, 서비스 질 개선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오승은 공공운수노조 정책차장은 복지부의 사회서비스진흥원 설립 계획으로 ▲공공인프라 확대 ▲직접운영 ▲직접고용 원칙이 파기됐다고 비판했다. “진흥원 계획에 공공인프라(공립서비스제공기관) 확충, 부실·부정민간 퇴출 등 ‘민간 축소’와 ‘공공 확대’ 방안이 통째로 빠져 있다. 노동자 처우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하면서도 근본적 해결책은 없다”는 것이다.

이어 “복지부는 민간 중심의 공급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옳게 진단하면서, 공공성 강화 방안으로 국가 책임의 서비스제공 대신 ‘통합·관리’, ‘민간 연계’, ‘민간 지원’을 제시했다”며 “현 민간 중심 공급체계에서 민간을 지원할 ‘전문기관’이 아닌 서비스 제공할 ‘공립기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양대 노총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부 정책 추진시기를 2018년 하반기로 정한 것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논의 중인 사항으로 결정된 바 없다. 오는 11월 중순에 가시적인 내용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논의의 취지는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라며 “이때 단순히 국공립 시설을 늘리기보다, 기존의 민간에 위탁 운영되는 국공립시설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해 기존의 해당시설을 우선 공공이 직영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제대로 공공이 운영하는 국공립시설이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 개선을 선도해 시장의 사회서비스 질을 높이고 노동환경 개선 향상을 견인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그동안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김연명 교수는 “사회서비스와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지역단위로 많다”며 “사회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정부 정책에는 장기적으로 이 같이 중첩되는 부분을 어떻게 통합하고 연계, 조정해 나갈지에 대한 큰 그림도 담겨야한다”고 조언했다.

동시에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정책의 실효성 있는 모델을 정립하기 위해서 보다 공개적이고 폭넓은 사회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노동계가 지지하는 정부의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안에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사회서비스 공단이 생기면 민간시설의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줄고, 서비스 제공인력들도 공공시설로 쏠려 생존권을 위협받는 민간영역의 사업자들이 대표적이다. 이와 다른 이유로 15개 유아 보육학회도 공단에 대한 반대 뜻을 밝혔다. 이들은 지난 20년 동안 단계적으로 추진해온 유아교육(유치원)과 보육(어린이집)을 합치려는 유보통합정책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서비스공단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중재하고 모아낼 것인지도 정부의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정책 성공의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