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투쟁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경남은행노동조합 하외태 위원장
“신뢰가 투쟁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경남은행노동조합 하외태 위원장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7.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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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업무 줄이면 생산성과 근로조건 모두 만족시킬 수 있어

경남은행노동조합 하외태 위원장은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투쟁으로 1%를 얻기보다 합리적 대화를 통해 1.5%를 얻을 때라고 말한다.
경남은행 노사는 상호신뢰와 존중, 참여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나섰다. 과연 이같은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외태 위원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 경남은행노동조합 하외태 위원장

경남은행 노사가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것에 대해 관심이 높습니다. 어떤 배경에서 공동선언문이 나오게 된 것인가요?

경남은행은 과거에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IMF때 부실은행으로 낙인찍히면서 공적자금을 받게 됐는데 그때는 생존권 때문에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부실은행으로 낙인찍힌 가장 큰 원인이 경영정책 실패였거든요. 지방은행은 지방은행에 맞는 영업을 해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시중은행화,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서울에 문어발식 점포를 확장시켰고 동아건설·대우 등이 터져버리니까 결국은 부실은행이 돼버렸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직원들이 경영진을 불신하게 된 거죠. 매번 은행장이 하고 있는 정책을 부정했다기보다는 예전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견제를 많이 해왔습니다

. 현재의 행장의 경우, 우려를 많이 했지만 2년 6개월 동안 정경득 행장을 지켜보니 정책의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자산 증가율과 건전성이 타행보다 월등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부실여신이 거의 없고 타행들이 인원감축, 임금동결을 하는 와중에 우리는 재투자를 통해 예전에 폐쇄했던 지역에 점포를 다시 개점했습니다. 고용안정을 넘어 오히려 고용창출이 되고 그런 부분에서 신뢰를 가지게 된 거죠.


노사관계가 기업의 경쟁력에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데 정 행장의 경영에 신뢰를 가지게 되면서 대립하기 보다는 신뢰 속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와 믿음으로 협력을 통한다면 우리 경남은행 기업으로 봐서도 좋고 직원들에게도 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습니다.

 

대화를 통한 1.5%가 더 크다

그렇다 할지라도 조합원의 입장에서 보면 어쨌든 임금을 위임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상당했을 텐데요. 조합원들은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제가 노동조합 활동을 10년 했는데 잠깐 현장에 복귀했다가 돌아왔을 때 사회는 많이 변화하고 특히 금융환경도 많이 변화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은 크게 변한 게 없더군요.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동운동은 패션과도 같지 않겠느냐라고 보거든요. 80년대나 90년대 초에는 시대상황이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기업들이 투명해지고 CEO들이 도덕적으로 많이 깨끗해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임금으로 말하자면 투쟁을 해서 1% 얻는 것과 대화를 통해서 1.5%를 얻는 것 중에 무엇이 득이냐는 거죠. 생존권 문제라면 반드시 투쟁을 해야겠지만 그런 사항이 아니라 단순히 임금이라든지 복지 문제라면 투쟁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사공동선언문 발표에 대해 물론 직원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크게 보면 임단협을 위임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느냐는 것과, 앞으로 노동조합이 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공동선언문 선포식하고 지역별로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조합원들에게 “무분규 선언은 복지·고용·사기진작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안에 들어가 있다. 만약에 이런 것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당장 무분규 선언은 깨지는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야말로 노사가 협력의 관계로 가자는 것이지 무조건 2010년까지 분규 안 하고 투쟁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신뢰를 깨버리면 자연스럽게 깨지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지금 긴박한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긴박한 상황이었다면 조합원들에게 동의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조직과 직원들한테 득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결정을 했습니다. 경남은행은 공적 자금을 받은 은행입니다. 실질적으로 외부적인 제약들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위원장 입장에서는 전략적인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노동조합이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임금 0.1% 가지고 치고 받고 싸우는 대신 조합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돌려주기 위해 노사간에 더 자주 만나고 많은 얘기들을 해가야 하는 거죠.


설명회가 끝나고 나자 조합원들이 이해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노동조합이 조합원들 모아놓고 술 한잔 먹고 레크레이션하는 것이 아니라 분회장들 중심으로 학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보들을 공유하고 노동조합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노사간의 가장 큰 이슈가 근로시간 정상화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근로시간정상화TFT를 노사공동으로 운영 중인데 논의는 어느 정도 진행됐습니까?

장시간 노동의 문제는 경남은행뿐만 아니라 전 금융기관이 아마 똑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명분 때문에 임금에 포커스를 맞추는데 분명히 조합원들은 임금보다는 당장의 근로조건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근로조건이 너무 열악합니다.

타행의 수신이 10~15% 증가하는 동안 저희는 30%나 급증했고 2년 동안 자산도 엄청나게 늘어났거든요. 이렇게 일이 많아지다 보니 지금 퇴근시간이 평균 10시, 11시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관행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악해보니까 늦게 남는다고 해도 도움도 안 되는데도 지점장부터 직원들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부분들도 이번 TFT에서 관행도 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금융권이 아직까지 보수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습니다. 눈치를 보고 퇴근을 못하는 거예요. 노사가 함께, 은행장하고 위원장이 직접 지점들을 방문해 보고 일이 없는데도 남아있는 문화도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근로시간 줄이고 생산성 높일 수 있다

그간에 보면 항상 근로시간단축이나 근로생활의 질 향상이라는 문제가 일반적으로 비용 상승·생산성 하락과 연동된다고 봐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극복해 나갈 예정인지?

예를 들어 TM이라는 것이 직원들이 고객한테 전화를 해가지고 마케팅을 하는 건데 저녁 늦게 9시, 10시 쯤 전화하면 고객이 좋아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전화 마케팅은 콜센터 인원을 확대시켜서 일과 시간 중에 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 중 하나가 대출 업무인데 고객과 상담을 하거나 하는 업무는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돈을 만지는 일과 전혀 상관 없이 쓸데 없는 서류 정리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집을 사면 매매계약서를 쓰지 않습니까. 그건 서류 한 장이면 되는데 대출과 관련해서는 대출신청서, 담보심사, 등기부등본 확인, 신용정보 조회 등등 필요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이중 일부는 외주를 줄 수도 있고, 또 대출 서류 자체를 간소화하면 직원은 물론 고객 입장에서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계산 업무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창구에서 직원들이 수납을 하면 전표가 발생되는데 이걸 계산주임이 모아서 처리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 번 일이 밀려버리면 전체적으로 업무가 늦어지는 거죠. 그럴 바에는 창구 담당자들이 자신의 전표는 자기가 처리하는 게 빠르죠. 이렇게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줄여나가는 것을 TFT에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업무 100을 80으로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100은 그대로 주되 지금까지 해 오면서도 생산성에 도움을 주지 않는 잡무들을 과감히 털어버리자는 거죠. 이렇게 되면 오히려 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지역민과 함께 해야 살아남는다

경남은행이 IMF 이후 여기까지 오기까지 물론 직원들의 피땀도 많았겠지만 위기 상황에서 증자에 참여했던 지역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앞으로 경남은행이 지방은행으로서의 지역민들에 대한 역할을 어떤 방향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IMF 이후에 지방은행이 10개에서 6개로 줄어들면서 지방은행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경남은행이 예전의 지방은행의 모습으로 거듭나려면 일차적으로 과거에 대해 고객들에게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 지역민 2000억원, 직원 500억원 등 2500억원의 돈이 증자에 들어갔지만 결국 공중에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분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혜택을 드려야 합니다. 수수료도 감면해주거나 대출 금리를 낮추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과거에 그렇게 해주어서 이만큼 성장을 했다, 어디 내놔도 경남은행은 경쟁력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지역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던 일이다, 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해야죠.

현재 경남은행은 지역공헌사업을 상당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50억원을 출원해 사랑나눔재단도 설립 했고 지방대학에 기금출원을 많이 하고 직원들이 1%씩 떼서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도 더 많이 해나가야겠지요.

결국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방은행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면 더욱 지역 밀착형으로 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지방은행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목적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자금이 흐르게 하는 역할에서는 한계가 많습니다. 이런 부분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전략적으로 지방은행에 힘을 실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군 금고 유치 등에서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 국책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지방분권화 한다고 합니다. 지방분권화가 가능하려면 금융이 중심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국책기관 이전 과정에서 지방 금융을 활성화시킬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 못합니다.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금융도 들어가서 같이 논의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위원장께서 새로운 노사관계, 미래지향적인 노사관계에 대한 말씀을 해오셨는데 앞으로 경남은행 노사관계는 이런 방향으로 만들어갈 예정입니까?

앞으로 노사관계는 시대와 금융 환경이 바뀐 만큼 좀더 합리적인 관계로 가야한다고 봅니다. 노사가 신뢰 속에서 조직원들을 위해서 지혜를 모아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2007년에는 매달 직원들의 복지향상을 위한 주제 하나를 선정해 그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입니다.

분기별로 진행되는 노사협의회처럼 틀에 박힌 것보다는 수시로 만나서 자주 이야기 하는 것이 직원과 조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노동조합 따로 은행 따로가 아니라 함께 가야죠.

경영진이 도덕적으로 투명하지 않게 경영을 한다면 당연히 경계하고 지적을 하겠지만 조직과 직원을 위해서 일해 나간다면 앞으로 경남은행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