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앞두고 “이래도 되는 거요?”
올림픽 앞두고 “이래도 되는 거요?”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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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경강선 KTX 개통 한 달…비좁고 깨지고

강원도에도 KTX가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면 강릉 정동진역까지 최장 5시간 57분이 걸렸지만, KTX를 이용하면 100분이 채 안 걸린다. 여기에 평창올림픽 효과까지 더해져 강릉행 KTX는 평일에도 만석이다.

다가오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 새로 지은 역들은 크고 화려했다. 하지만 이용객들이 눈길이 닿지 않는 곳마다 부실이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 서울발 강릉행 KTX-산천 열차가 서울역 승강장에 대기하고 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서울역까지 114분, 확실히 빨랐다

경강선 KTX는 지난해 12월 22일 개통됐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출발해 서울역, 청량리역, 만종역, 진부역 등을 거쳐 강릉역까지 이어진다. 중간 정차역으로 상봉역, 양평역 등에도 정차해 서울 강남 및 강북권, 경기 동부권에서의 접근성도 향상됐다. 1월 현재 인천공항에서 강릉으로 가는 열차는 하루 네 대뿐이지만,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하면 횟수가 대폭 늘어날 계획이다.

서울-강릉 간 KTX 개통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시간 절약이다. 한국철도공사는 전국 철도역마다 ‘서울-강릉 114분’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었다. 실제 소요시간은 열차에 따라 조금식 다르지만, 승용차나 고속버스 등 타 교통수단에 비해서는 확실히 빨랐다. 요금도 2만 7,600원으로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오전 10시 1분 서울발 KTX-산천 열차에 오르자 객실 모니터에 강릉역 도착시간이 11시 57분으로 표시됐다. 막 출발한 열차는 용산역을 통과해 강변북로와 나란히 달려 청량리역으로 들어섰다. 열차는 손님을 가득 태우고 기존 중앙선을 경유해 서원주역을 지났다. KTX 운행에 맞춰 기존 중앙선에도 선로가 개량되고 새로운 신호체계가 도입되는 등 변화가 생겼다.

경강선은 서원주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열차는 이곳에서부터 시속 250킬로미터까지 속력을 높였다. 어느덧 열차는 강원도의 A역에 도착했다. 동력차에 ‘KTX 평창’이라고 표시된 열차는 다시 터널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화려함으로 덧칠된 창문 없는 쪽방

A역은 신축 건물답게 내부는 깔끔하고 또 화려했다. 승강장을 빠져나와 사무실 내부로 진입했다. A시설사업소 사무실은 역사 내에 작게 마련돼 있었다. 승객들이 드나드는 맞이방과 달리 새 건물 특유의 냄새로 가득했다. 사무실에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과 작업자들이 착용하는 안전모 보관대가 있었다. 그 외 별다른 집기는 보이지 않았다.

시설사업소는 역 주변 일정 구간의 선로를 유지, 보수하는 일을 한다. 열차가 안전하게 다니기 위해서는 수시로 선로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기온의 변화, 눈·비 등의 영향을 받아 선로가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로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열차가 고속으로 주행할 경우 탈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열차의 안전운행을 위해 선로 유지 및 보수는 매우 중요하다.

대게 시설사업소에 근무하는 직원 수는 12명 안팎이다. 관리자 등 일부 인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3조 2교대 근무를 한다. 야간근무자들의 경우 오후 7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9시에 퇴근한다. 노사의 단체협약에 의해 1시간의 휴게시간과 4시간의 수면시간이 이들에게 부여된다. 수면시간은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사이에 주어진다.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다음 날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각 2시간씩 수면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 경강선 KTX가 지나는 구간의 선로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한 시설사업소 내 직원 휴게실 모습. 세 평도 채 되지 않는 공간에 5~6명이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창문 하나 없어 환기조차 잘 되지 않았다.

단협에 의해 수면시간이 보장되는 이유는 밤샘노동에 의한 집중도 저하와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는 열차가 다니지 않아 안전한 작업이 가능하다. 수면시간의 목적에는 열차가 다니지 않을 때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작업을 마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문제는 이들이 잠을 청하는 공간이었다. A시설사업소 직원들은 사무실 한쪽에 별도로 마련된 숙직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숙직실에는 침구를 보관하는 캐비닛 하나와 빨래건조대가 전부였다. 안쪽에는 세탁기 한 대와 세면장이 있었다. 외부로 창문이 나있지 않아 바람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면적이 매우 좁았다. 성인 남성 세 사람이 누우면 남는 공간이 거의 없어 보였다. A시설사업소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야간근무자들만 숙직실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면서 “사람이 많을 때에는 대여섯 명씩 끼여 잔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주간근무로 바뀌기 전까지 만 하루의 시간 동안 출퇴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강릉역을 제외하면 경강선의 역들은 하나 같이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A시설사업소 직원들은 쪽방 생활의 불편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관계자는 “A시설사업소뿐만 아니라 경강선의 모든 시설사업소가 열악하다”면서 “교대근무자들이 휴식 여건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1인 1실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근무자들이 생활할 공간을 반영했어야 하지만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24시간 운영되는 철도의 특성상 직원들에게 1인 1실 또는 2인 1실의 숙소를 제공하는 게 보통이다.

▲ 누수로 인해 천장 마감재가 깨져 있다.

물 새고 갈라진 천장… “새 건물 맞아?”

A역에서 강릉역 방향으로 가다 보니 저 멀리 차량기지가 보였다. 강릉차량사업소는 지난해 12월 18일 정식 운영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한국철도공사 직원과 식당 운영 및 청소 외주업체 소속 직원 등 14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향후 근무인원은 200여 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강릉차량사업소의 주 업무는 KTX-산천 열차의 검수 및 정비다. 향후 2단계 공사가 마무리되면 동해선·영동선 기관차의 검수 및 정비도 맡게 된다.

종합관리동에는 상황실과 관리실, 사무실, 회의실, 기계실 등과 함께 식당, 숙소, 휴게실 등 직원들의 복지 시설이 입주해 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마감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듯한 천장이 눈에 띄었다. 천장 곳곳이 누렇게 얼룩져 있었다. 누수로 인한 흔적처럼 보였다. 일부는 금이 가거나 심지어 깨진 곳도 있었다. 신축 건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공간 배치도 어색했다. 남자화장실과 사무실 사이의 벽 일부가 뚫려 있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경우 악취와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창문을 먼저 내고 벽을 나중에 세운 모양이었다.

▲ 사무실에서 화장실 쪽을 바라본 모습. 사무실과 화장실 사이가 뚫려 있어 용변을 볼 때의 악취와 소리가 그대로 전달된다.

복지 시설은 상황이 더 나빴다. 샤워실 한편에 마련된 세탁건조실에는 가정용 세탁기 2대와 건조기 1대가 놓여있었다. 강릉차량사업소 직원 B씨는 “100명이 옷을 세탁해야 하는데, 세탁기는 이게 전부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세탁기를 더 놓고 싶어도 수도배관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직원들은 세탁건조실 이용을 포기하고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채 출퇴근하고 있었다.

체력단련실은 운동기구를 보관하는 창고 같았다. 운동기구의 수는 많았지만 여유 공간이 없어 안전사고 위험도 있어 보였다. 직원 C씨는 “운동을 하고 싶어도 너무 비좁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건물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지었지만 운동기구는 철도공사에서 구입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검수고로 발길을 옮겼다. 당초 시속 250킬로미터급 준고속열차가 경강선에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차량 발주가 늦어지면서 KTX-산천 열차가 운행 중이다. 하지만 검수고는 KTX-산천 열차를 맞을 준비가 안 된 듯했다. 기장이 열차를 입고한 후 운전실 출입문을 통해 바깥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그때 이용하는 계단이 열차 바퀴에 해당하는 대차 부분을 가로막고 있었다. 해당 작업 선로는 대차를 교환하거나 댐퍼(완충기)를 검수하는 곳이지만 계단에 막혀 작업이 불가능했다.

직원들은 작업 내용이 고려되지 않은 부실한 설계 탓에 팬터그래프 검수도 더 위험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팬터그래프는 전차선과 직접 맞닿아 열차에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교류 2만 5천 볼트에 감전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단전 후 작업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직원 D씨는 “접었다 펼 수 있는 가동전차선이 설치돼야 한다”며 “KTX를 검수하는 다른 차량기지에는 설치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릉차량사업소 검수고는 화재가 났을 때 대피할 수 있는 시설도 미흡했다. 검수고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는 KTX-산천 열차 1편성의 길이에 맞춰 200미터가 넘는다. 2층까지 있지만 1층과 연결된 계단은 하나뿐이었다.

▲ 운전실에서 기장이 내려오는 계단이 대차(바퀴 부분)를 가로막고 있어 작업이 불가능하다.

설계·시공부터 잘못, “시설·운영 분리 때문”

열악한 근무환경과 미흡한 안전시설로 인해 경강선은 철도공사 직원들로부터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각 역 및 사업소 인근에 마땅한 주거·상업시설이 없는 데다 구내 편의시설도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A시설사업소와 강릉차량사업소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업소는 신입직원들로 채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경험이 있는 ‘고참’ 직원들도 철도공사 강원본부 관할지역에서 차출됐다.

사실상 ‘울며 겨자 먹기’로 경강선에 배치된 직원들은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다. 철도공사 소속인 이들은 한결같이 철도시설공단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철도 운영기관(철도공사) 입장에서 필요한 사항을 설계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2016년 7월 중순부터 올해 1월 초까지 노사합동점검과 시설물검증시험 등을 통해 드러난 문제만 580여 건에 이른다.

철도 건설 기관인 철도시설공단은 2004년 옛 철도청에서 건설부문이 떨어져 나와 설립됐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경강선 KTX의 부실은 시설공단과 철도공사가 분리되면서 초래된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 주체와 운영 주체가 서로 엇박자를 낸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두 공공기관이 재정효율화 성과 올리기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정작 써야 할 돈을 안 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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