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산업의 허리, STX・성동조선
조선 산업의 허리, STX・성동조선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3.1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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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릴 것이냐 잃을 것이냐... 기로에 서다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조선업, 지금! ③중형조선소의 위기

대한민국의 조선업은 197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경제성장의 상징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의 중심이 중화학공업에서 반도체로 옮겨가는 와중에도, 선박은 자동차·가전 등과 함께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효자 수출품이었다. 한국 조선업은 일본을 제치고 선박 수주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영광의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조선업이 비참하리만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조선업 위기의 신호탄이었다. 전 세계적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크게 줄면서 해운업이 타격을 받았다. 해운업의 충격은 1~2년 뒤 조선업으로 이어졌다. 세계 해운업체들의 신규 선박 발주는 급감했다.
조선사들은 수주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해양플랜트로 눈길을 돌렸다. 배럴당 100달러를 가볍게 넘길 정도의 고유가 국면에서 해양플랜트는 조선사들의 새로운 먹거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고유가 행진은 곧 끝났다. 대형 석유회사들이 유전을 개발할 동기를 잃고, 투자를 철회했다. 그들에게서 해양플랜트 설비를 수주했던 한국 조선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조선업 위기의 원인을 놓고 다양한 지적들이 쏟아졌다. 가격은 중국에 밀리고 기술은 일본에 밀린다는 견해부터 극단적으로는 사양산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높은 수출의존도와 외부 환경에 민감함도 제기된다. 하청 중심의 생산구조로 인한 높은 재해율과 낮은 숙련도를 문제 삼는 이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조선업의 침체는 지역의 고용,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른바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와 울산의 고용은 초토화됐다. 울산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2013년 6만 1천여 명에서 2017년 8월 기준 3만 8천여 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거제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9만 3천여 명에서 8만 1천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고용의 감소는 곧 지역 상권의 붕괴로 이어진다.
위기를 바라보는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의 시각은 어떨까? 그리고 조선업의 변화를 위한 큰 그림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의 2차 실사 결과보고서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와 함께 정부가 올해 1분기 안에 발표할 예정인 조선 산업 혁신성장방안도 수면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두 조선소 관계자들은 실사 결과보고서가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까지 실사 결과에 대한 발언은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조선 산업의 판도를 바꿔놓을 두 발표에 앞서 국내 중형조선소로 대표되는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의 현안을 진단해봤다.

첫 직격탄은 중형조선소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닥친 조선 산업의 위기에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곳은 중소형 조선소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불황의 여파가 신규 선박 수주량 감소로 이어지자 빅3(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로 불리는 국내 대형조선소들은 해양플랜트부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과잉 설비해소를 위한 구조조정은 중소형 조선소의 몫으로 돌아갔다. 조선업계의 1차 구조조정 시기로 볼 수 있는 2009년부터 부도, 법정관리, 폐업, 매각 등의 절차를 통해 다수의 중소형 조선소가 퇴출됐다. 특히 조선 산업 호황기에 신조로 전환했던 남해안 벨트 중소형 조선소의 몰락은 20개가 넘었던 중형급 조선업체들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통영 미륵도의 대표 중소형 조선소였던 삼호조선, 21세기조선, 신아에스비는 각각 2012년, 2013년, 2015년 차례로 파산선고를 받았다.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는 통영에서 미륵도 폐조선소 부지는 과거의 명성을 뒤로하고 녹슨 기계와 함께 흉물로 남아있다.

세계적인 해운리서치기관인 클락슨(Clarkson)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조선사별 수주잔량 순위에 남아있는 한국 조선소는 빅3 대형조선소를 제외하면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대한조선, 대선조선,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뿐이다. 대한조선은 2015년 10월 법정관리에서 졸업했으며 대선조선은 지난해 매각을 통한 새 주인 찾기에 나섰으나 한차례 무산됐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을 제외하면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이 남았지만 두 조선소 역시 지난 1월 삼정KPMG가 2차 실사에 들어가면서 생존의 기로 앞에 놓여있다.

두 조선소 모두 1차 실사 결과에서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높게 나왔기 때문에 2차 실사 결과보고서 발표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애초 2월 중에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2차 실사 결과보고서는 3월 중으로 미뤄졌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정부가 올해 1분기 중에 발표할 조선 산업 혁신성장방안 역시 2차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희망적인 실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의 위기를 놓고 조선 산업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난 2015년 신아에스비 파산 당시 금속노조 신아에스비지회 마지막 지회장을 지냈던 김민재 전 지회장은 “이대로 중형조선소가 무너지면 조선 산업의 허리가 무너지는 것”이라며 중형조선소 회생을 강조했다.

구조조정과 휴업, 중형조선소의 오늘

클락슨에 따르면 STX조선해양의 수주잔량은 2016년 말 20척(39만 5,000DGT)에서 2017년 말 15척(29만 3,000CGT)으로 감소했다. STX조선해양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수주잔량은 19척으로, 이는 내년 초까지 일할 수 있는 물량이다. STX조선해양의 경우 지난해 7월 법정관리를 졸업하면서 어느 정도의 수주를 확보한 상태다.

성동조선해양의 수주잔량은 2016년 말 28척(70만 8,000CGT)에서 2017년 말 5척(13만CGT)으로 STX조선해양보다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5월 5척 수주계약 후 수출입은행의 RG(Refund Guarantee, 선수금환급보증)발급에 따른 물량을 확보했으나 이를 마지막으로 추가 수주가 없는 상황이다. 또한 확보한 5척 마저도 2차 실사 실시로 인해 이달 말로 착공이 연기된 상태다. 금속노조 성동해양지회는 “1차 건조 착수금에 관한 선주의 자체 자금력이나 금융조달에는 문제가 없으나 성동조선해양 존속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착공을 강행하는 것을 선주와 수출입은행 모두 원치 않았던 것이 착공 합의 연기의 배경”이라며 “선주와는 3월 29일까지 착공을 연기하기로 합의돼 있으며 별도의 다른 합의가 없는 한 시한이 도래하면 착공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량이 감소하면서 희망퇴직과 정년퇴직을 통한 인적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인적 구조조정 결과 STX조선해양은 2016년 6월 기준 2,099명이었던 정규직 근로자가 올해 1월 1,333명으로, 하청업체 근로자는 같은 기간 4,219명에서 738명으로 줄었다. 금속노조 STX조선해양지회는 “고정비 줄이는 것에 급급해 수주한 배를 건조하기도 부족한 상황까지 인력을 줄이고 있다”며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회사 역시 인적 구조조정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고정비를 줄이라는 채권단의 요구는 결국 사람을 줄이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조선소가 돌아가기 위한 최소 인력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적인 인력 감소는 회사에서도 달갑지 않다”고 설명했다.

성동조선해양은 2016년 3월 기준 1,999명이었던 정규직 근로자가 2017년 11월 정규직 근로자 1,269명으로 줄었다. 58개 하청업체는 3개로 줄어 하청업체 근로자 221명이 남았다.

인적 구조조정에도 발생하는 유효 인력에는 휴업을 실시했다. STX조선해양은 선행 작업과 후행 작업을 나누어 휴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는 선행 인력만 현장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오는 6월부터는 선행·후행 인력 모두 작업에 들어갈 수 있지만 남은 물량은 내년 2월이면 끝이 난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내년에 떨어지는 물량에 대비해 하루빨리 수주에 들어가야 하는데 산업은행에서 RG발급을 막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주가 미뤄지면 미뤄질수록 휴업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올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성동조선해양은 지난해 2월부터 설비 유지보수 인력 30여 명만 남겨놓고 무기한 휴업에 돌입했다. 박경태 성동조선해양지회 수석부지회장은 “휴업도 인력 유지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노조가 세도 휴업을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수주계약 및 RG발급 보장하라”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은 물량 감소, 인력 구조조정 및 휴업 등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각각 가지고 있는 현안과 요구안에는 차이가 있다.

STX조선해양은 현안과 요구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사 모두 RG발급이라고 답했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STX는 중형 LPG/LEG선 세계 1위 기록과 운반선 및 벙커링 선박 관련 최고의 기술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며 “RG발급만 문제없다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기술이 있기 때문에 우리와 배를 만들고자 하는 고객들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지금은 성과가 바닥을 찍고 상승하는 시기라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데 수주를 하지 못해 손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산업은행의 우려와는 반대로 RG발급이 영업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현재 대금 분할지급 방법이 마지막 인도 시에 50~60%의 대금을 한꺼번에 지급하는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이기 때문에 내년에 배를 인도하면 적자 폭이 줄어들고 2020년에는 흑자전환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STX조선해양지회는 “회생 과정에서 RG발급 조건을 걸어 인력을 줄이고 설비를 줄이는 등의 방식은 옳지 않다”며 “이미 많은 인원이 조선소 밖으로 나갔으며 더 이상 구조조정을 통한 회생 방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동조선해양은 수주계약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성동조선해양지회는 “수출입은행의 통제로 RG발급 이전 문제인 수주계약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성동조선해양지회에 따르면 성동조선해양 안에서 21척의 선박에 대한 수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이를 저가수주라고 판단하는 수출입은행의 통제로 수주 논의가 수주계약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박경태 성동조선해양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이 때문에 최근 성동조선해양 관련 수주계약 기사가 한 줄도 나가지 못했다”며 “성동이 네임벨류가 떨어져 제대로 된 기업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주계약도 안 되고 있는 경쟁력 없는 회사가 되고 있으니 성동을 저평가하기 좋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서 성동의 기업평가를 할 때 수주 논의 중인 선박들을 포함해서 존속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수출입은행이 판단하는 것처럼 수주 논의 중인 선박들이 저가수주가 아니라는 주장도 내세웠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예를 들면 현재 선박시장에서 100원에 거래되는 선박을 선사가 120원 주고 배를 만들겠다고 하는데도 수출입은행에서 저가수주라고 판단하고 130원 받아오라고 하는 꼴”이라며 “RG발급은 수출입은행의 몫이지만 수주계약은 사업장의 몫”이라고 전했다. 이어서 같은 선박을 여러 척 만드는 시장 특성상 처음 만드는 선박과 이후에 만들어지는 선박의 이익금이 다른데도 이를 묶어서 계산하지 않고 한 척씩 따로 계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같은 배를 여러 개 만들면 설계 등의 공정이 줄어들기 때문에 저가수주를 논할 때 선박 한 척 기준으로 보지 말고 묶어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업계에 따르면 두 중형조선소의 2차 실사 결과가 막판 조율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차 실사를 맡은 삼정KPMG가 두 조선소의 운명을 어떻게 판가름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