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비정규직 연대 비결 “같이 살고자 같이 싸웠다”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 비결 “같이 살고자 같이 싸웠다”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3.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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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0년 만에 정규직 꿈 이룬 이랜드 홈에버 510일 파업 당사자들

영화 ‘카트’는 이랜드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510일 파업 내용을 담고 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통과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합원 자격 인정’이 물린 시기, 비정규직 대량해고에 맞선 파업은 노동자들이 하나 돼 버틴 생존 투쟁이었다. 영화는 노조 간부들이 일터를 떠나는 대신 해고된 노동자들과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복직하는 것으로 끝난다.

현실의 결말은 영화와 다르다. 훨씬 더 희망적이다. 노동자들은 10년이라는 지난한 세월동안 또다시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고, 오는 7월 마트에서 만 12년 이상 일한 무기계약직 57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 중 237명은 카트의 모티브가 된 실제 파업의 주인공들이다. 지난달 1일 서비스연맹 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이하 홈플러스일반노조)은 홈플러스스토어즈(주)와 올해 임단협을 맺으면서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인 홈플러스일반노조 ▲장은미 정책국장(사진 왼쪽)과 ▲황혜숙 조합원(사진 오른쪽), 정규직으로 비정규직 투쟁에 나서 해고됐던 노조 부위원장이었던 ▲이경옥 홈플러스일반노조 지도위원(사진 가운데,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정규직 전환을 앞둔 소감은?

장은미 만감이 교차한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현실이 됐다. 기쁘기도 하고 예전일도 생각난다. 10년 전 파업을 할 당시 우리를 보고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선봉에 섰다고들 표현했다. 그때는 감이 없었다. 지금에서야 참 큰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데 근속연수 기준이 안 돼 전환되지 못한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황혜숙 매장에서 노조조끼를 입고 일하는 조끼투쟁을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규직은 안 되겠다고 포기한 상태였다. 무기계약직으로 다니다가 정년퇴직이나 하자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정규직이 된다. 꿈인지 생시인지.

노조에 대해 원래 관심이 있었나?

전혀 몰랐다. 직원 휴게실 겸 식당에서 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계속 선전물을 나눠줬다. 그런데 관심자체가 없다. 매일 일에 치였다. 잠깐이라도 더 쉬거나 잠자기 바빴다. 상암동 월드컵 매장은 매출도 좋았다. 노조 간부들이 하는 말을 남의 나라 이야기로 흘려들었다.

이경옥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고, 노조 활동은 특별한 사람들만 한다고들 생각했다. 매장이 잘나가니 노조 건설이 어려웠다. 현장 분위기가 바뀐 건 이랜드 그룹의 뉴코아 매장 계산원들이 해고되면서 부터였다. 2007년 파업을 하기 한 달 전인 5월 노조의 월드컵지부가 결성됐다.

노조는 월드컵매장에 지부를 조직하기 위해 2006년 말부터 매주 문화제를 열었다. 왜 그렇게 공을 들였나?

홈플러스일반노조의 전신은 까르푸노조다. 2006년 까르푸가 이랜드로 매각됐다. 상황이 매우 어려웠다. 작은 기업 이랜드가 커다란 다국적 기업 까르푸를 인수했는데, 매각대금이 셌다. 노조 간부들은 대출이자 등으로 인해 사측이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매각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파열음을 내려면 가장 매출이 좋은 매장에서 파업을 해야 했다. 월드컵 매장은 까르푸 때도, 이랜드로 매각된 후에도 줄곧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전국 사업장에 총 1,150명 의 조합원이 있었다. 동시 파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조합원이 소수인 매장은 동참하지 못한다. 월드컵매장에 지부를 만들고 이곳에 모였다.

월드컵 매장 안에서도 특히 캐셔(이하 계산원)들의 조직이 중요했다. 노조가 쟁의권을 획득해서 쟁의행위에 돌입했을 때 자본의 손을 들게 하려면 계산대를 멈춰야 했다. 그래야 자본의 돈줄이 막히고, 회사에 압박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계산원의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투쟁이 필요한 직군이었다. 감정노동의 최 일선에 있었다. 정산업무는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종 정산금액이 남으면 회사의 몫이었지만, 부족하면 계산원이 사비로 채워 넣어야 했다. 월드컵매장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유동인구가 굉장히 많다. 화장실에 못 가고, 밥도 못 먹어 방광염과 위장염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 이경옥 홈플러스일반노조 지도위원

그 당시 파업에 참여한 규모는 얼마나 됐나?

1,150명 중 600명이 참여한 전면 파업을 했다. 1박 2일로 끝날 줄 알았던 파업은 장기화됐다, 1등 매장에서 열심히 일했는데도 한순간에 노동조건이 나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조합원 중에서 해고자도 나왔다. 두 개조로 나눠 교대로 농성장을 지켰다. 파업 종료 때까지 남아 있는 인원은 180명이었다. 월드컵지부가 든든하게 중심을 지켜줬다.

두 분 마트 일은 시작하게 된 계기는?

먹고 살기 위해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돈도 벌어야 했다. 10년 전만해도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별 조건 없이 입사해 일 할 수 있는 곳이 마트다. 2004년부터 일을 시작해 애들을 키우다보니 세월이 이만큼 흘렀다. 시작은 계산원이었다. 다양한 마트 업무를 했다. 지금은 신선코너에서 일한다. 손님들을 응대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어 편하다.

10년 동안 집에서 살림만 했다. 학습지 교사를 시작으로 동네 작은 마트에서 일했다. 이왕이면 큰 곳에서 일하자는 생각으로 2005년 가까운 대형마트 까르푸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산대 업무를 맡았고 있다. 힘들게 일했지만 그에 대한 돈도 받고, 동료들과도 잘 지냈다. 그러다 투쟁에 얽히게 됐고.

우리도 ‘얽혔다’고 표현한다, 그 당시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조합원들이 진짜 투쟁에 엮였나. 간부들은 조합원들 때문에 해고됐다고 말한다. 조합원들이 매일 점거하자고 했다.(웃음) 왜냐면 이랜드도 노조를 깨기 위해서 준비를 많이 했었다. 이에 맞서기 위해 단단히 싸워야했다. 점거를 할 때만 교섭을 할 수 있었고 답이 나왔다.

▲ 황혜숙 홈플러스일반노조 조합원

정말 그랬다. 투쟁으로 빚지고,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해야 했지만, 놓을 수 없었다. 내가 지금 그만두면 훗날 내 아들 딸들이 어느 사업장에 가도 똑같이 비정규직의 설움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노조 활동을 하면서 부당한 상황에 처한 약자인 노동자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로 힘들어도 즐거웠다. 참 무지했지만, 후회는 없다.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비정규직을 없애려면 비정규직들이 나서야 한다. 울타리가 되는 노조와 함께 하면 문제없다.

해고된 노조 간부로서 이번 정규직 전환 합의 어떻게 보시나.

정규직 민간분야인 마트에서의 진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됐다. 정규직의 승진체계를 똑같이 적용받는 진짜다. 이번에 전환되는 노동자들은 정규직 직군인 ‘선임’을 부여받다. 홈플러스 비정규직은 ‘담당’으로 16개월 일하면 무기계약직인 ‘사원’이 된다. 이제 사원에서 12년 일하면 자동으로 선임이 될 수 있고, 이후 주임과 대리, 과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

12년이라는 근속년수 기준은 아쉽다. 애초에 노조는 10년을 회사는 15년을 제시했다. 회사 기준으로 하면 정년퇴직자가 많아 약 100명, 노조 기준으로 하면 약 800명이 정규직 전환 대상자가 된다.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12년이라는 절충안에 합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지도 못했다. 다만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임금인상률을 낮추더라도 비정규직 딱지를 떼는 교섭을 하겠다고 결의했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지역본부별로 파업 준비를 했고, 이런 측면이 회사에 압박이 됐다.

사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계속 비정규직을 줄여나가 최종적으로 철폐하는 것이 목표다. 파업이 끝날 때 조합원은 350명밖에 남지 않았었다. 합법적으로 파업했지만, 회사는 선 복귀자들의 노조탈퇴를 원했다. 그런데 최근 정규직 합의를 하면서 조합원 수가 다시 1,150명에 도달했다. 고난 했던 10년 전 파업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다.

임금 개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승진제도다. 우리가 꿈꾸던 것이다. 초창기에는 마트에서 1년 정도 일하면 정규직이 됐다. 계산원들은 예외였다. 일하면서 불만이 많이 생기는 직군이라서 그런지, 개별 계산원들을 비정규직으로 남겨 각자의 시간대에만 투입하고 서로 마주칠 일이 없게 했다. 같은 해 입사해 베이커리, 즉석식품, 영업 일을 하던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돼 대리까지 됐다. 순차적으로 했다면 은미님이나 나 또한 대리가 됐어야 한다.

▲ 장은미 홈플러스일반노조 정책국장

임금인상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최우선에 둘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투쟁의 출발점이다. 비정규직 철폐는 노조가 처음부터 갈망하던 것이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하는 노조다. 노조 간부들의 결의가 있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넓은 마음으로 비정규직들을 포용했다. 같이 가야할 동반자로 대하고 연대를 해줬기에 가능했다. 노조 간부들을 존경하고 너무 감사드린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 된다. 정규직 이기주의로 정규직의 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 없다. 정규직도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도 직접고용 간접고용에 따라 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우리가 같이 싸워 해결해야 한다. 상생하지 않으면 서로를 지킬 수 없다. 배려하고 양보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신뢰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같이 살기 위해서 같이 싸웠다. 조합원들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