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정책 개별 노동자 문제 해결에 ‘무능’
한국 노동정책 개별 노동자 문제 해결에 ‘무능’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3.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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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람 수단·도구화해 생존한 한국 매커니즘의 민낯

지난 11월 노무사와 변호사, 노동활동가 240명이 모여 ‘직장갑질 119’를 만들었다. 이들은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SNS 오픈 채팅방을 열고,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문적인 조언을 하며 공익제보를 돕고, 고용노동부에 직접 근로감독을 요구하기도 한다. 활동을 시작한 후 약 3개월간 12,287명과 145,757번 대화를 주고받았다.

직장갑질 119 SNS 오픈 채팅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닉네임(#◯◯◯형식)부터 심상치 않다. #상여금 #용역 #비정규직 등 무난한 경우도 있다. #갑질노노 #힘없는사람 #슬픈노동자 #을중을 #도와주세요 #풍전등화 #퇴사라는꿈 #최무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요’의 줄임말) 등에선 닉네임을 정한 당사자가 처한 우울하고 힘든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달 7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전수경 직장갑질 119 운영위원을 만났다.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산재 문제를 다루는 노동건강연대의 활동가이기도 한 전 운영위원은, 한국의 직장생활을 재난상황에 비유했다.

 ‘직장갑질 119’ 활동 틀은 어떻게 잡았나?

 한국의 노조 조직률을 10%라고 본다면, 나머지 90% 노동자들은 누구와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할까.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던 광화문 광장에 밤늦게 왔다가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했던 생각이다. 90%는 사실 노동자라는 말도 잘 안 쓴다. 직장인이거나 회사인, 또는 이도 아닌 이들이다.

직장갑질 119 스텝들은 ‘촛불이 직장 앞에서 멈췄다’는 말을 많이 한다. 노조는 조직하기 어렵다. 노조를 만들어도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와해되거나 지쳐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위한 중간단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이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중간 커뮤니티를 만들게 됐다.

상담 요청이 많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인가?

오픈 채팅에 들어올 수 있는 최대 인원이 1,000명이다. 활동한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최대치 인원이 다 찼다. 동시참여 인원을 늘려달라고 회사에 요청했지만 불가능했다. 오픈 채팅방을 추가로 개설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채팅방을 운영할 인력이 부족하다. 현재 참여하는 전 스텝을 대상으로 채팅방에 상주하는 시간표를 짜서 돌아가면서 상담한다.

오픈 채팅방에 들어온 1,000명에게 간단한 상담을 진행한다. 이들에게 추가 상담이 필요한 경우 이메일을 보내달라는 공지를 계속 띄운다. 이를 통해 면대면 상담과 법률적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접근이 용이한 채팅방에서 상담의 물꼬를 트고 더 심층적인 상담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한국의 직장생활을 재난에 비유하기도 했다. 실제로 상담 내용은 얼마나 심각한가?

작은 곳은 작은 곳대로, 큰 곳은 큰 곳대로 직장 안은 재난 상황이다. 맨 처음 직장갑질 119 스텝들끼리 “지옥문이 열렸다”는 말을 많이 했다. 누군가의 일터를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실제로 상담을 하다보면 스스로를 노예나 노비라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다.

대기업이라고 해도 여성들에게 가하는 심리적인 린치(lynch, 잔인한 폭력을 가하는 일)와 욕설은 상상을 초월한다. 남성들의 성차별적 언행과 성희롱, 성폭력이 상당하다. 작은 곳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선이나 군대 문화가 있다. 어디에선 가해자지만, 동시에 그들 또한 엄청난 언어적 물리적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아울러 일을 핑계로 각종 회식을 강요하는 문화 등 한국사회에서 일반 직장인들이 느끼는 압박은 이전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강도였다.

사건을 많이 접해 온 노무사와 변호사들도 충격을 받았다. 다른 스텝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별 노동자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노조나 어떤 모임을 거쳐 접하는 내용과 또 달랐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일하는 분들을 얼마나 만나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제보·상담이 많이 들어오는 직종이 있나?

초반에는 보건의료업계 종사자가 많았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아직 언론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전공의들까지. 보육교사 직군도 굉장히 많았다. 보육교사들은 원장이 어린이집이라는 공간에서 전권을 지고, 자의적인 경영과 인사 방침을 펴는 환경에서 온갖 갑질에 시달린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방송작가들도 처음부터 간헐적으로 상담요청을 해왔다.

오픈 채팅방을 통한 상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서로 대화한다. 이후 그들이 직종별 커뮤니티를 만들어 권리 찾기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 1호는 ‘노동존중 한림성심병원모임’이다. ‘병원 간호사-직원 노동존중모임’, ‘어린이집 갑질 근절! 보육교사 모임’, ‘방송계갑질119’, ‘반월시화공단 노동권리모임’ 등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애초에 생각하지 못한 긍정적인 영향이다.

직장갑질 119 활동의 성과와 한계라면?

생각보다 다양한 분들과의 상담이 진행된다. 고학력인 연구원들 중 촉탁직이거나 계약직으로 고용된 사람들, 중앙부처나 공공기관 또는 지자체 산하조직에서 개별적으로 연락해 오는 분들이 많다. 익명으로 소속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는다. 자발적으로 모인 민간 상담네트워크이라는 점이 주효했다고 본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가 있지만, 한국사람들은 이를 통해서는 익명으로 상담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건설, 토목 현장과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들은 직장갑질 119가 운영하는 상담 방식에 조차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다양한 직종의 상담이 이뤄지지만, 분명히 접근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상담을 하다보면 “정부가 우리 회사를 감독하게 해 달라”는 요청이 많다. 고용상태에 위협을 받을까봐 스스로 문제 상황을 알리긴 두려워한다. 고용노동부나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기관이 대신 나서주길 바란다. 이 같은 경우들은 현재 시스템 상 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현재 시스템 상이라면 무엇을 말하나. 노동현장을 관리감독해야하는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인력 부족인가? 관련 제도 자체의 미흡인가?

두 가지 다 있다. 개별적으로 흩어진 채 자신의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당하는 문제에 대해서 고용노동부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조직 내부 운영, 근로감독관들의 승진 위주의 인식과 문화도 한 원인이다.

집단적인 노사관계에 대한 정리가 항상 우선이었다. 인력이 부족하니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해야한다. 어떤 문제가 더 급하고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차원이 아니다, 개별 노동자가 겪는 문제와 집단노사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면 후자가 훨씬 더 상징성이 크다고 보고 먼저 챙기는 것이다. 대공장의 파견문제가 한 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지 않다. 개별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적인 노력을 보이고 고용노동부가 제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지금 한국의 노동정책 시스템은 개별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하다.

앞으로 정부, 고용노동부가 해야 하는 일은?

정권이 바뀐 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이전에 비해 더 들으려고는 한다. 실제 변화로 이어지려면 내부의 조직적인 체질을 바꿔야 한다. 개별 노동자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근로감독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청산해야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고용노동부 구성원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개인이 모이면 조직이 된다. 개인이 바뀌지 않으면 어렵다. 사람도 조직도 금방 안 바뀐다.

이와 별개로 기업에 대한 견제와 제재가 이 정부에서 완전히 빠져 있다. 사회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강한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주체는 사실 정부 밖에 없다. 기업이 인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경영이 되도록 투자를 제한하거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규제를 할 수도 있겠다. 노동자들은 노동현장을 무정부 상태라고 말한다. 정부도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사람에게 노동이란 무엇일까?

한국사회에서는 고용되지 않으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고용되지 않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 없다. 사회 복지는 충분하지 못하고, 청년들은 취업난에 시달린다. 인격이 말살되더라도 고용되길 원한다.

한국사회의 노동이나 직장은 더 이상 신성하지 않다. 배울 수 있는 조직문화가 있는 것도,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권모독, 침해를 당하면서도 일하고 있다. 심각한 일자리 부족이 배경이지만, 한국사회의 핵심 생존 매커니즘도 문제다. 사람을 도구화하고 수단으로 대하는 것,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도구로 쓰이고, 인격이 말살당해도 순응하고 적응한다.

조직이 있는 곳 어디서나 문제는 발생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누군가 권력으로 자신을 누를 때 시민으로서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약하다. 상품을 소비할 때만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이나 속해 있는 조직 안에서 주체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부터 해나가야 할지는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직장갑질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우선 힘든 것은 무조건 주변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 동료 또는 가족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이때 상대방도 ‘돈을 벌면서 하는 일은 원래 부당하다’, ‘지금 조금 참으면 나중에 나아진다’, ‘실업률이 심각하다’ 등이 아니라 진지하게 들어줘야 한다.

직장갑질 119는 애초에 계획한 활동 기간은 한 달이었다. 예상치 않게 많은 제보들이 밀려들어와 상담을 이어오고 있지만, 정부가 제 기능을 회복해 가져가야하는 업무도 있다. 직장갑질 119가 받은 제보와 활동 내용을 사회적인 교훈으로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