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철도는 한국의 디스토피아인가
일본 철도는 한국의 디스토피아인가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3.1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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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7개사로 분할 민영화 후 외주화 늘어
‘공공성’보다 ‘수익’ 중심… 본받을 게 없다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으로 공공기관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간접고용 규모가 큰 한국철도공사에서도 정규직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웃나라 일본의 철도산업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6일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의 국유철도가 민영화 된 이후 대대적인 자회사 설립과 외주화로 인한 문제가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를 맡은 김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대해 “자회사 형태는 기존 간접고용의 문제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어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87년 JR 민영화 이후 고용규모 ‘반토막’

현재 일본의 철도 운영 주체는 국가가 아닌 민간이다. 여객철도의 경우 크게는 JR 6개사로, 그리고 지역 단위마다 사철이 다수 설립돼 있다. 김직수 연구위원은 일본의 국철 민영화가 1980년대 초중반부터 노동유연화와 함께 추진되었다고 진단했다. 주로 자회사 방식의 외주화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최근 한국의 자회사 설립을 통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민영화 이후 대폭 축소된 고용규모가 이를 방증한다. 일본 국유철도는 1987년 4월 JR동일본, JR서일본, JR홋카이도를 비롯한 6개 여객철도 회사와 1개 화물철도 회사로 분할 민영화 됐다. 보고서에 의하면, JR 민영화 이후 30년 동안 총 고용규모는 27만 명에서 13만 명 수준으로 반토막났다.

줄어든 고용규모는 외주 인력으로 대체됐다. JR 7개사의 시설부문에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영업부문의 경우 2000년대 후반 들어 본격적인 외주화가 시작됐다. 외주업체 대부분이 JR 각 회사가 100% 지분을 출자한 자회사 형태로 퇴직자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재고용하고 비정규직을 신규 채용했다. 반면 JR 관리자 출신들이 자회사의 고액 연봉을 받는 간부로 기용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JR동일본은 민영화 당시부터 철도 직접 운송 부문 이외의 영역을 분사하고 비철도 부문 자회사를 설립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5년 단위 경영전략으로 ‘뉴 프런티어 21’을 발표하며 직원 수 1만 명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다운사이징이 JR동일본 경영전략의 핵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JR동일본에서는 역사 및 사무소 통폐합과 역무·시설·차량 등 업무 위탁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JR서일본은 민영화 이전부터 시설 및 토목 분야의 외주화가 진행되다 민영화 이후 본격적으로 전 부문에 걸쳐 외부 업체로의 위탁이 이루어졌다. 2003년 ‘중장기 인력 운영 효율화 계획’을 수립하여 인력 감축과 외주화를 진행한 결과 2016년 기준 JR서일본 산하 역의 20% 가량이 위탁 운영 중이다. 차량부문에서는 2차 하청, 즉 자회사의 하청업체도 존재한다.

JR홋카이도는 도시화에 따른 통근·통학 수요 증가로 인력이 추가로 필요했지만, 대상이 되는 역의 운영을 외주화 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했다. 1990년대 후반 시설부문과 전기부문에서 업무 위탁이 본격 추진되면서 자회사 설립을 통한 외주화 규모가 큰 폭으로 확대됐다.

▲ 2014년 JR동일본 게이힌도호쿠선 탈선 사고 당시 모습. ⓒ 일본 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

“수익성 확보를 전제로 공공의 복지에 기여한다”

김직수 연구위원은 외주화의 문제점을 ▲불법파견 ▲고용 및 노동조건 악화 ▲숙련 공백으로 인한 기술력 저하 ▲대형사고 발생과 같은 안전 위협 ▲부실한 사고 대응 등 다섯 가지로 꼽았다. 일본 국철은 JR로 분할 민영화되면서 ‘공공의 복지에 종사한다’는 이념에서 ‘수익성 확보를 전제로 공공의 복지에 기여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는 수익성 확보를 우선순위에 두면서 안전은 그 이후의 문제로 치부돼 왔다고 비판했다. 그가 꼽은 다섯 가지 문제점은 서로 연관돼 있다. 외주화의 확대로 불법파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관리자는 늘어나는데 현장 작업 인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작업 강도가 올라가는 데 반해 외주업체(자회사) 노동자들의 임금이 저하되면서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고령화까지 함께 심화되면서 숙련된 청·장년 노동자가 바닥난 상황이다.

누적된 문제들은 대형사고로 나타났다. 지난 2014년 JR동일본의 게이힌도호쿠선 탈선 사고가 그 예로 지목된다. 당시 사고는 외주업체의 작업 차량과 여객열차가 충돌로 일어났다. 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은 “철도 공사용 차량을 선로 위에 놓고 공사를 준비하는 절차만 해도 5개 회사가 나눠 맡았다”고 밝혔다. 노조는 “외주화와 규제 완화의 결과로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기구들이 껍데기 상태가 되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무분별한 외주화는 사고 이후 대처에서도 많은 허점을 보였다.

김직수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주목할 일이지만, 자회사 설립을 통한 고용안정의 길이 열렸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면서 “안전과 직결된 산업의 경우 공공서비스의 형태와 내용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민영화와 외주화 폐해를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