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업, 노동시간 특례 제외 격랑 속으로
운수업, 노동시간 특례 제외 격랑 속으로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4.06 11:11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선버스만 빠져… 택시는 논란 끝 잔류
[리포트] 근로기준법 59조와 운수업 ①

노동시간 상한을 주52시간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3월 1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2015년 9월 15일 소위 ‘노사정 대타협’이 이루어진 지 2년 반 만이다. 당시 노사정 합의문에는 1주일을 7일로 간주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는 업종의 수는 노사정 합의문에는 16개로, 개정 근로기준법에는 21개로 차이가 있다. 특히 육상운송업 중에서는 유일하게 노선버스운송업만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빠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휴일·연장 중복할증보다 노동시간 특례가 관심사

개정 근로기준법은 오는 7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노동시간 상한이 주68시간인지 주52시간인지 분분하던 것을 주52시간으로 명확히 했다. 둘의 차이는 1주일을 며칠로 보는지에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는 1주일을 5일로 보고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하지 않아 주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을 더해 주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해석에 따랐다. 앞으로는 1주일은 7일로 법에 명시돼 휴일근로가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 노사가 합의하더라도 주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는 총 10여 차례의 논의를 거쳐, 지난 2월 27일 새벽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법안 20건을 통합해 이 같은 내용은 대안으로 냈다. 시행시기와 더불어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의 중복할증 여부가 쟁점이었으나, 여야는 8시간 이내의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만 수당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단 휴일에 8시간을 초과하여 일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의 100%를 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소위 회의가 종료된 직후 환노위 전체회의가 열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고용노동소위 개의부터 환노위 전체회의 산회까지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다음 날인 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재석 의원 194명 중 찬성 151명으로 가결됐다.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제59조에 명시된 노동시간 특례업종의 수를 대폭 줄이는 내용이 함께 담겼다. 노동시간 특례업종이란 노사 합의를 전제로 주1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가 가능한 업종을 말한다.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사실상 노동시간 상한이 적용되지 않아 이들이 무제한 노동에 노출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뿐만 아니라 대상 인원이 450만 명에 달해 초장시간노동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그중에서도 운수업은 노동시간 특례가 인정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노동시간 특례업종이 26개에서 5개로 줄었다. 앞으로도 노동시간 특례를 인정받는 업종은 육상·해상·항공운송업과 운송관련서비스업, 보건업 등이다. 육상운송업 중에서 유일하게 노선여객자동차운송사업(노선버스운송업)만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그 외 철도, 화물, 택시 등의 업종은 존치가 결정됐다.

근로기준법 개정 내용 중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및 수당 중복할증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지만, 육상운송업 내에서는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빠지느냐, 남느냐가 더 큰 관심사였다. 특히 장시간노동이 고착화 된 노선버스운송업과 택시운송업계는 환노위 논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에서 노선버스운송업만 특례업종에서 제외키로 하면서 두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언급조차 안 된 택시, 찬밥신세?

국회에서 노선버스운송업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될지 여부는 이미 지난해 7월 윤곽이 드러났다. 당시 환노위에는 노동시간 특례업종 수를 줄이는 법안부터 아예 제도를 폐지하는 법안까지 다수가 올라와 있었다. 어떤 업종을 남기고, 또 뺄 것인지에 대해 고용노동소위 위원들 간 이견이 있었으나 노선버스운송업을 빼는 데에는 반대하는 위원이 없었다. 여야 위원들이 긴 시간 토론을 벌인 끝에 노선버스운송업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반면 택시는 애초에 논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 7월 31일 고용노동소위 위원들이 노선버스운송업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키로 합의한 이후 회의에서 택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날 고용노동소위 회의에서도 택시는 의원들의 입에 단 네 차례 오르는 데 그쳤다. 국회 회의록을 보면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이 세 차례, 같은 당 임이자 의원이 한 차례 택시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나와 있다. 문진국 의원은 한국노총 산하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택노련) 위원장 출신으로 당시 회의가 공전을 거듭하자 “실제 장시간근로는 택시예요”라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문 의원의 발언처럼 택시운송업의 장시간노동 실태는 심각하다. 서울·부산 등 전국 대도시 법인택시 노동시간은 월 평균 250시간에 육박한다. 운송수입 감소에도 불구하고 사납금이 꾸준히 오르면서 택시운전기사들의 장시간노동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법인택시 운전자 수는 10만 8천여 명으로 전년 대비 5천 명이 감소했다. 택시운전기사 수의 감소는 하나의 추세로 자리 잡았다.

택시의 이러한 현실을 환노위 위원들이 몰랐을 가능성은 적다. 근로기준법 59조에서 택시운송업을 빼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주장과 존치해야 한다는 사업조합의 주장이 맞서는 상황에서 양측은 환노위 위원들을 상대로 꾸준히 설득 작업에 나섰다. 게다가 문진국 의원은 전택노련을 오랫동안 이끈 경험을 바탕으로 환노위 내에서도 택시 전문가를 자임하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시운송업은 근로기준법 59조에 관한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한 것이다.

택시운송업이 노동시간 특례업종 축소 논의에서 배제된 데에는 여론이 한몫했다. 노동시간 단축 법안이 국회에서 다루어질 무렵을 전후로 버스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대형 교통사고가 줄을 이었다. 졸음운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하루 16시간 이상의 장시간노동이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노선버스운송업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와 달리 택시운송업 장시간노동에 관한 대다수 국민들의 인지도는 사납금 문제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

택시운송업이 국회의 노동시간 특례업종 축소 논의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 배경에는 다른 한 가지가 있다. 사업자들은 택시운전기사들의 실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업종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운전기사들은 차고지로 출근해 차량을 배정받아 운행에 나선 뒤 퇴근 때 운송수입금 납입을 위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사업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운전기사들이 영업을 나가 있는 동안에는 자율적으로 휴게시간을 결정하므로 노동시간 상한을 주52시간으로 일괄 묶어둘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노조 측은 택시미터기에 세세한 운행정보가 모두 기록되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맞섰다. 결과적으로 국회 환노위 위원들은 사업주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노사 합의 없으면 특례업종이라도 연장근로 안 돼

노조 입장에서는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가운데 사업조합과의 논리 싸움에서도 밀리고 말았다. 그나마 이번에 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특례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근무일 사이에 11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단서가 달려 있다. 노동시간 특례업종이라고 해서 종전처럼 사실상의 시간제한 없는 노동은 불가능하게 됐다. 구체적인 파급 효과는 당장 알 수 없으나 미약하게나마 장시간노동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전제는 노조 혹은 노동자대표와의 서면 합의다. 노동시간 특례업종에 해당돼도 노조나 노동자대표가 합의를 거부하면 사업주는 주1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를 노동자들에게 시킬 수 없다. 철도사업은 그 대표적인 예다. 철도사업 역시 버스나 택시 등과 함께 육상운송업에 포함된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온라인을 통해 “철도의 경우 법 개정 이전에도 특례업종에 해당됐지만 노사가 서면 합의한 바 없고, 지금까지 특례를 적용한 적이 없다”고 조합원들에게 알렸다.

물론 사업장 전체가 2만 7천 명 규모의 단일 기업으로 묶여있는 철도와 업체 한 곳당 평균 고용규모가 70명이 채 안 되는 택시의 노사관계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웬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는 기업에서도 노조가 사용자에 대해 큰 소리를 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또 한 번의 근로기준법 개정이 택시운송업의 장시간노동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길일 수 있지만, 당분간은 힘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