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업종서 빠진 노선버스, 깊어지는 고민
특례업종서 빠진 노선버스, 깊어지는 고민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4.0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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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시행 앞두고 발등에 불
[리포트] 근로기준법 59조와 운수업 ②

3월 1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개정 근로기준법은 노선버스운송업을 육상운송업 중 유일하게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토록 했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대형 인명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특례업종을 손질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은 결과이기도 하다. 버스운전기사의 휴식을 보장하고 승객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어 다행스러운 일로 평가되지만, 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업계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 기사 내용과 무관.

장시간노동 부추긴 노동시간 특례 바로 잡아

노동시간 특례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노동시간 특례 조항이 처음 삽입된 때는 1961년이다. “공익 또는 국방상에 특히 필요한 때”에 “보건사회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주48시간 범위 내에서 1일 8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있었다. 주1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가 가능한 현행 근로기준법 조항과는 많이 달랐는데, 1961년 특례 조항이 지금보다 더 엄격했다. 노동시간 특례 조항이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바뀐 때는 1996년이다. “공익 또는 국방상에 특히 필요한 때”라는 문구가 삭제되고, 보건사회부 장관의 승인을 얻는 대신 노사가 서면 합의하면 되게끔 규정을 완화했다. 적용 대상 업종의 경우 1961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노동시간 특례 조항의 취지가 법률에는 나와 있지 않고, 대통령령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시행령은 노동시간 특례의 근거로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또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남용돼 장시간노동을 방치하거나 부추긴 원흉으로 지목됐다. 지난 2월 28일 국회에서 노동시간 특례업종을 현행 26개에서 5개로 대폭 축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려 450만 명의 노동자가 특례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스운송업은 특히 노동시간 특례 제도로 인한 병폐가 심각한 업종으로 손꼽힌다. 노사가 서면으로 합의만 하면 사업주의 편의에 따라 근무스케줄을 짜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 극단적으로 운전기사를 하루 16시간씩 주5일 운행에 투입시킬 수도 있었다. 1일 2교대제 이외에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나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복격일제 등 변형된 근무형태가 가능했다. 이는 지난해 7월 경부고속도로 양재IC 부근에서 18명의 사상자를 낸 광역급행버스 사고를 초래했다. 정부가 지난해 2월 사업주가 운전기사에게 8시간의 연속휴게시간을 부여하도록 법령을 바꿨지만, 특례제도 개편 없이는 사고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버스운송업은 그간 노동시간 특례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가능한 한 적은 인원을 오랫동안 운행에 투입해 운송수입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유지됐다. 1일 2교대 근무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를 위해서는 운전기사를 더 채용해야만 한다. 장시간노동을 통해 사업주는 추가 채용에 따른 비용을 절감하고, 운전기사는 부족한 기본급을 연장근로수당으로 메울 수 있다.

오는 7월 1일부터 노선버스운송업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 기형적 운영 실태가 바로 잡힐 것으로 기대된다. 주1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는 허용되지 않고, 대신 다른 업종들과 동일하게 1주일을 7일로 간주해 주52시간 상한이 적용된다. 다만 기업 규모별로 300인 이상은 올해 7월 1일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은 2020년 1월 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은 2021년 7월 1일부터 단계적으로 노동시간 상한이 줄어든다. 인력과 재정 문제가 해결된다면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대도시 지역 시내버스처럼 1일 9시간 2교대 근무형태 도입이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

3개월 안에 인력·재정 문제 해결해야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노선버스운송업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기까지는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서둘러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버스업체 상당수가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오는 7월 1일까지 근무형태를 개편하고 그에 맞는 인원을 채용해야 한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버스연합회)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임원을 제외한 직원이 전국에 9만 8천 명, 운전기사 수만 8만 3천 명에 이른다. 버스연합회는 2만 4천여 명을 추가로 뽑아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서울·부산을 비롯한 6개 대도시에서는 이미 1일 2교대제가 정착돼 있어 노동시간 특례업종 제외에 따른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중소도시 시내버스나 군 지역, 경기도 광역버스 등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추가 채용이 필요하다고 추정되는 인원 중 대부분은 이들 지역에 몰릴 전망이다.

마을버스 또는 전세버스 운전기사를 시내버스로 흡수하면 부족한 인원을 채울 수는 있다. 마을버스 운전기사들 중에는 시내버스로의 이직을 위해 경력을 쌓으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버스 역시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운전기사를 더 뽑아야 하는 만큼 이는 폭탄 돌리기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노선버스 운전 경력이 부족한 대형면허 보유자를 급조해 운행에 투입할 수도 없다. 만약 신규 인력이 원활하게 유입되지 못한다면 운전할 사람이 없어져 운행횟수가 줄거나 일부 노선의 운행이 아예 중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운전기사 채용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난관이다. 2만 4천 명을 더 뽑기 위해서는 8,600억 원에서 많게는 1조 800억 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기존 운전기사들의 임금손실분을 보전하기 위한 방책도 강구돼야 한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동차노련)이 조합원들의 임금실태를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노선버스운송업의 월 평균임금 대비 기본급 비중은 43.8%에 그쳤다. 임금의 절반 이상을 연장근로에 따른 수당으로 채우는 셈인데, 이 상태로 노동시간만 줄어든다면 임금이 반 토막 나게 된다.

고속버스는 기본급 비중이 37.4%로 특히나 낮아 노선버스운송업 내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저하가 가장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속버스업종은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수당이 책정되지 않고, 운행거리(km)에 따라 결정된다. 1km당 단가를 매겨 업체별로 운행하는 노선에 따라 작성된 임금표에 따라 임금이 지급된다. 이 같은 임금체계를 손질하는 일은 고속버스 노사가 풀어야 할 과제다.

주52시간 상한제 안착 위해 멀리 바라보자

버스업체가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지자체의 예산 투입은 불가피하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다. 이미 전국 지자체에서는 상당한 손실 보전금을 버스업체에 지원하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들의 재정 여력이 떨어지기는 매한가지여서 결국 중앙정부가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다. 현재 유력하게 논의되는 방안은 고용보험기금의 고용창출장려금을 활용하는 것이다. 고용창출장려금은 연장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직원을 채용하면 소정의 금액을 업체에 지원해주는 제도다. 이에 더해 업계는 노동시간 단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마다 일정 수준의 정부 예산이 배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요금 인상론이 제기된다. 추가 인력 채용과 기존 운전기사들의 임금 보전에 따른 재원을 마련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버스 요금을 올리는 것이라는 얘기다. 시내버스만 놓고 보면 2016년 전국 수송인원은 54억 1,517만 명으로 기본요금을 100원 인상할 경우 단순 계산으로 5,400억 원을 확보할 수 있다. 시내버스 기본요금이 200원 인상되면 버스연합회가 추산한 1조 800억 원을 모두 보상할 수 있다. 많은 지자체들이 오는 6월 지방선거가 끝난 후 하반기에 버스요금에 손을 댈 것으로 예상된다.

버스요금 인상이 시민들의 체감 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이를 추진하더라도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또 요금인상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중앙정부에서 각 지자체에 대중교통에 사용될 교부금을 내려 보내거나, 지역 내 기업으로부터 대중교통세를 부과하는 등의 대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런던은 대중교통에만 사용되는 재원으로 런던교통교부금(GLA Transport Grant)을 영국 교통부로부터 받고 있다. 프랑스와 일본에서는 관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1인당 대중교통 요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부과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도시에서 시행 중인 준공영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노선버스운송업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기까지 남은 시간이 3개월이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 일이 급선무다. 하지만 노선버스업종의 주52시간 상한 안착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대책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중앙정부 및 광역지자체 단위로 노조, 사용자, 정부, 전문가, 시민사회 등을 포괄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논의의 장을 만들 수도 있다. 물론 기본 원칙은 운전기사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승객들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것이 돼야 한다.